그 때 밖에서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특수단이 바깥 상황을 마무리하고 비사굴 안으로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온 특수단 사람들도 나를 중심으로 쓰러져 있는 백여명의 금위대 무사를 보고 경악을 하고 있었다.
특수단을 데려온 예현은 내가 다가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설마, 내가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무영이 너 혼자 저들을 다 제거 한거야?"
"조금 몸을 풀고 있었지."
"아무리 저들에 실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최소 초일류급은되었을텐데..네 실력은 어느 수준까지 발전한 거냐?"
"궁금하면 나중에 네가 직접 나랑 비무를 해보면 알겠지. 저들이나 얼른 마무리하자."
특수단 고수들이 숫자는 적었지만 다들 뛰어난 고수들이라 비사굴 안은 금세 정리되었다.
금위대와 동창 사람들은 모두 제거가 되었고 중앙에는 변절자들만 남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 있던 남궁세가 가주 남궁무군이 앞으로 나오더니 내게 말했다.
"난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무군이요. 우리들을 구해 주려 오셨구려. 고맙소이다."
"......"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그를 보며 나와 예현은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때 동굴에 있던 무림인들의 혈도를 풀어 주고 나오던 남궁세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훈아, 너희도 무사했구나."
"가주, 이미 다 들통났으니 더 망신 당하지 말고 스스로 자진 하십시요."
"이 놈이 감히 지금 내게 뭐라는 게냐?"
오히려 남궁무군은 역정을 내며 남궁훈을 나무라고 있었다.
예현이 특수단 사람들과 비사굴로 들어 오기 전에 이 곳 사정을 다 이야기하여 모두들 남궁세가 가주가 변절하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때 남궁무군 앞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남궁무정.
"아니! 네가 왜 이곳에?"
"형님은 끝까지 절 실망 시키는군요."
"난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 형님이라고 부르지도 말거라. 실망? 세가에서 버린 받은 놈이 감히 나에게 뭐라고 짓거리는 거냐?"
"여전히 주제 파악 못하고 상대를 무시하는 버릇도 여전하군요."
"뭐야! 이 놈이 미쳤나. 남궁세가 제자들은 저 놈을 제압해라."
하지만 그의 말에 남궁세가 사람들은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남궁세가의 장로인 남궁훈이 나서서 말했다.
"그만 하시요. 가주, 그럴수록 남궁세가의 위신만 떨어지니 이만 자신의 죄를 인정하세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이냐?"
"세가의 가주라는 자가 적에게 회유되어 변절하였으니 이보다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적과 내통했다는 증거 있느냐?"
"어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십니까?"
"난 잘못 없어. 남궁훈 네 이놈, 무정이를 가주로 만드려고 말 모함하는 거지?"
남궁무군과 함께 있는 자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그는 여전히 당당하게 큰소리를 치고 있었다.
다들 그를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우리는 조장들끼리 따라모여 변절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지 의논을 하기 시작했다.
"저자들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이미 적들에게 넘어간 자들 입니다. 살려두면 안됩니다."
"모두 같은 의견 같네요. 적에게 회유된 자는 그대로 두면 안되지요."
남궁무정도 같은 의견을 말하자 특수단 내에서는 변절자들을 처단하자는 의견으로 통합되었다.
우리가 검을 들고 그들을 제거하려 변절자들 앞에 섰을 때, 비사굴 앞에서 경계를 서던 특수단 단원이 소리쳤다.
"적들이 몰려옵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비사굴 입구로 달려나갔다.
"지금 동굴에서 갇혀있던 무림인들은 혈도가 풀렸어도 고독 때문에 무공을 쓰지 못하니 입구를 봉쇄 당하면 그들을 데리고 나가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러니 먼저 남궁세가 다섯분은 그들부터 무경원 바깥으로 빼내고 특수단은 황궁 병력을 막도록 하지요."
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주어진 임무대로 움직였다.
이번에 황궁 쪽에서 온 병력들은 비사굴을 지키고 있던 병력에 비해 훨씬 강했다.
하지만 그들보다 뒤에서 천천히 걸어내려오는 세 사람의 기운이 범상치 않음이 느껴졌다.
세 사람은 대화를 나누면서 내려왔다.
"꽤나 실력이 좋은 놈들이 왔나보군. 우리에게까지 순서가 넘어 온 걸 보면 말이야."
"그러게 말일세. 우리를 삼대봉공으로 임명한 뒤로 대우만 해주길래 직접 나설 일이 없나했더니 오늘 소 일거리를 주는군."
두 사람보다 조금 연배가 낮은 자인지 존대를 하며 말했다.
"그런데 선배님들 저들 중에 아는 자라도 만나면 조금 껄끄럽지 않겠습니까?"
"무슨 상관인가..저들을 전부 다 죽여버릴 것인데. 클클."
"우리가 이곳에 투신하는 순간 그때부터 이미 과거의 인연은 의미가 없는 것이네."
"그럼 부담없이 저희도 몸 좀 풀어볼까요?"
그들이 계단을 다 내려와서 검을 검집에서 빼어들고는 자신들의 검에 기운을 불어넣으니 강력한 기운의 검강이 검을 휘감았다.
'저 정도의 검강이면 초절정 경지에서도 거의 끝자락에 있는 초절정 고수다!'
운명을 건 대결
세 명의 절대고수.
그들이 무경원에 나타나면서 비사굴의 공기가 달라졌다.
금위대와 동창의 무사들도 그들이 등장하자 사기충천하여 우리들에게 적극적으로 달려 들었다.
숫적 불리함에도 우위를 점하던 특수단이 그때부터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여 어느새 비사굴 입구 쪽까지 밀렸다.
그대로 가다가는 비사굴 입구가 봉쇄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특수단은 입구가 봉쇄되는 건 막기 위해 입구 앞에서 배수진을 치며 금위대 무사들이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내고 있었다.
갇혀있던 무림인들을 무경원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내가 선봉에 서서 길을 터가며 조금씩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 곳으로 남궁세가 오인의 인솔 하에 동굴에 갇혀있던 무림인들을 무경원 바깥으로 하나 둘씩 내보내었다.
특수단에서는 초절정 고수 5인이 앞장을 서서 황궁 쪽에서 무리지어 내려오는 금위대 무사들을 강력한 무력으로 막아내며 다시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세 명의 고수들이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앞으로 걸어나오자 금위대 무사들이 양 옆으로 물러서며 길을 만들었다.
"오호. 초절정 경지에 오른 놈이 다섯 놈이나 되는군."
"그러게.. 초절정이 그리 쉬운 경지가 아니거늘. 그것보다 더 놀라운 건 한 놈 빼고는 다 처음 보는 놈들이군."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중년인이 물었다.
"저들 중에 아는 자은 누구입니까?"
"저기 가운데에 있는 녀석이 남궁천의 아들일거야. 이름이 남궁무정이었던가?"
"남궁천의 아들이 벌써 저렇게 컸단 말인가? 호부 밑에 견자가 없다더니 아들까지 초절정에 오르다니 대단하군."
중년인이 놀란 눈빛으로 말했다.
"전대 십대고수이자 검왕이셨던 남궁천님의 아들이라..호승심이 도는군요. 저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두 사람 중에 키가 큰 노인이 말했다.
"그렇게 하게나. 나와 사방주가 두명씩 맡으면 되니."
사방주라 불린 키 작은 노인이 말했다.
"그럼 내가 먼저 두 명을 고르겠소. 사교주."
사교주라는 자가 풍현과 초일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여기 두 명은 내가 갖고 놀겠소. 저기 두명은 방주가 알아서 데리고 노시요."
"그럼 난 선택권이 없군요. 남은 두 사람이 날 실망 시키지 않으면 좋으련만."
사방주의 말에 사교주란 자가 사악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너희들은 물러나 있거라."
말과 함께 그가 특수단과 금위대가 뒤엉켜있는 곳에 검을 휘두르자 두 무리로 검풍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서로 멀찌감치 떨어졌다.
두 무리의 중간 바닥에는 사교주의 검으로 인해 생긴 한개의 긴 줄이 나 있었다.
"제안을 하나 하지. 우리 세 명을 이기면 너희는 무사히 나갈 수 있을 것이고, 우리에게 진다면 너희는 모두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싸워야하는거 한꺼번에 저들을 모두 상대하기보다는 이렇게 소수로 대결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잠시 저희들끼리 이야기 좀 나누고 말씀드리지요."
"그러거라. 대신 시간은 오래 주지 못한다."
즉시 우리 다섯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기 서 있는 세 사람 실력이 보통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이 일대 종사의 느낌이에요. 그리고 저 중에 한 사람은 아는 사람입니다."
풍현의 말에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셋 중에 나이가 적어보이는 중년인이 흑사회 회주이자 신비문의 문주 공지철 입니다."
"아니. 흑사회 회주가 왜 이곳에?"
'대학사가 저들과 함께 나타났을 때 나도 놀랬지. 신비문에서 봤을 때만 해도 적이 아닐거라 생각했는데..'
"그들도 이곳에 있다는 건 처음부터 이놈들과 한 편이었거나 최근에 변절한 것 아니겠습니까.."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아시는 분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남궁무정이 대답했다.
"누군지 정확치는 모르지겠지만 저희 아버지를 알고 있고 하대하는 것을 보니 비슷한 연배의 고수들인 것 같습니다."
"언뜻 느껴지는 기운 만으로도 저희쪽 두 사람이 저기 한 사람을 상대한다고 해도 이길 수 있을 지 장담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보다는 대결해서 이기는 게 좀 더 쉬울 것 같습니다."
나의 말에 수긍하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대결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좋습니다. 받아드리지요. 저희 쪽 다섯명과 세분께서 대결하신다는 거지요?"
"그렇네. 나와 자네 그리고 저기 사람과 붙고 저기 사방주와 저기 서 있는 두명, 그리고 여기 공회주와 남궁무정 저 친구 이렇게 붙는 걸세."
"대결 방식은요?"
"대결은 한쪽이 다 죽어야 끝나겠지. 끝난 쪽은 다른 대결에 관여 할 수 있고 대신 그 전까지는 각자의 대결에만 집중하고 이해했나?"
"좋습니다."
사교주라는 금위대를 보면서 말했다.
"대결이 끝날 때까지 너희들은 나서지 말아라. 끝나고도 우리가 진다면 그냥 물러서라. 이겨도 우리가 알아서 정리할테니 나서지 말고 알겠나?"
"그건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 대장님의 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뭐라고? 너 지금 당장 죽고 싶은게냐?"
사교주가 검을 들어 그 자의 목을 내려치려 할 때 한 개의 비도가 날아와 사교주의 검을 쳐내었다.
"누구냐?"
황궁 방향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내려오며 말했다.
"봉공님 제 부하가 무례를 범해 죄송합니다. 사교주님이 원하시는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금위대는 갑자기 내려오는 그 두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대장님! 오셨습니까."
"당장 일어나서 물러서라. 아무도 세 봉공님의 대결에 관여 하지 말고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가면을 쓰고 있는 금위대 대장의 명에 일사불란하게 물러나 자리를 잡았다.
"저희 둘은 그냥 구경 하러 온 거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렇지요? 정화 대인."
"맞습니다. 저희는 세 봉공님께서 저들을 어떻게 혼내주나 구경하러 온 것이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저들이 반란군의 배후에서 이 일을 꾸민 주동자들이군. 정화와 금위대 대장. 삼대봉공.'
사교주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혹시 두 사람이 이곳까지 온 게 우리가 못 미더워서는 아니겠죠?"
사교주의 말에 금위대 대장과 정화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세 봉공님들의 실력은 저희가 가장 잘 아는데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그저 봉공님들이 몸 푸는 일은 흔치 않은 기회이니 보고 싶은 마음에 온 거지요."
"맞습니다. 저희는 옆에서 구경만 하겠습니다."
그들이 물러나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 사교주의 표정이 풀리며 우리에게 말했다.
"자, 구경꾼들도 제법 모였으니 시작해 볼까?"
"그러시죠."
그의 말에 우리는 서로의 대결 상대에 맞춰 서면서 대결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손을 쓴 건 흑사회 회주인 공지철이었다.
남궁무정은 공회주의 검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자 순식간에 피하며 자신이 만든 무공인 무정검법의 초식을 바로 펼쳤다.
남궁무정이 창궁무애검법을 펼칠거라 예상했던 공회주는 새로운 검법에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서며 방어하기에 급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