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습
내가 공격을 하면 순식간에 물 속으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솟구쳐 오르는 식으로 반복하며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자의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공격에 정신이 사나웠지만 간담을 서늘케 할 만큼 강력한 공격은 아니었기에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그 자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그 다음 공격에서 알 수 있었다.
고기 그물 같은 걸 나에게 던졌는데 검강으로도 단번에 잘리지 않을만큼 단단하여 뒤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연화 소저가 소리쳤다.
"무영 소협, 조심해요. 저 그물은 보통 그물이 아닌거 같아요."
"네. 연화 소저. 걱정말아요.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까."
나의 말에 그녀가 걱정하던 표정이 안도하는 얼굴로 변했다.
장성추가 내게 던졌던 그물을 회수하여 다시 던지며 말했다.
"네 놈이 용기망을 언제까지 피하나보자."
장성추가 그물을 던지면 피하면서 조금씩 그자에게 다가갔다.
또 다시 물 속으로 피하는 장성추.
'이대로는 승부가 나지 않겠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군.'
정공법으로 상대해서는 이기기 쉽지 않은 상대를 만났기에 그 자를 상대하면서 머릿속에서는 다른 방법을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 속에서 다섯 명의 인영이 솟구쳐 오르더니 일제히 나에게 그물을 던졌다.
내가 빠져나갈 수 없게 모든 방향에서 그물이 날아왔다.
한쪽 방향의 그물을 검강으로 잘라버리고 그 곳으로 빠져나가려 하는데 장성추의 그물이 날아왔다.
다시 한번 잘라 보려했지만 장성추의 그물은 다른 이들의 그물과 달라 흠집만 날 뿐 잘리지 않았다.
'기물이라도 되는가보군. 그물에 걸릴 바에는 차라리 물 속으로 들어가자.'
나는 그물을 피해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다섯 인영과 장성추가 곧바로 나를 쫓아 물 속으로 들어왔다.
'태산에서 연화 소저에게 수영을 배웠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위기에 빠질 뻔 했다.'
하지만 물 속에서는 여전히 불리한 상황이 이어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겨우 물 속에서 숨을 참으며 움직이는 정도였지만 저들은 바깥에서의 움직임보다 물 속이 더 편한 이들이였으니.
그들은 나를 포위하듯 둘러싸며 물 밖으로 못 나가도록 하려는 전략을 펼치는 것 같았다.
'지체하다가는 저들에 의해 물 속에 갇히게 되니 최대한 빨리
물 밖으로 나가야해. 그리고 숨 때문이라도 오래 끌면 안되겠어.'
빈틈을 만들기 위해 한명을 공격하면 다른 이들이 협공으로 나의 등 뒤를 노렸기에 물 속에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안되겠다. 승부를 걸어야겠어.'
현무검결 파천대멸겁.
사신검예 중에 가장 강력한 한 수인 사신대멸겁을 변형시켜 위력을 더한 파천대멸겁.
비록 물 속이라 원래의 위력보다는 조금 반감되었지만 수중에서도 파괴력은 엄청났다.
엄청난 물 회오리가 생기며 그 다섯명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다섯명은 파천대멸겁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장성추는 내가 파천대멸겁을 시전할 때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빨리 도망을 쳐서 그들과 같은 꼴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아끼던 제자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고 눈이 충혈된 것이 노기가 머리 끝까지 찬 모습이었다.
물 속에 있는 시간이 꽤 되어서인지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물 밖으로 솟구쳐 오르자 그 뒤를 노리고 장성추가 따라 올라왔다.
내 발 밑까지 올라온 그의 검을 쳐내며 역공에 들어갔다.
장성추는 나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려했다.
'이제 더 이상 네놈에게 끌려다니지 않는다.'
나는 장성추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물을 향해 장력을 분출했다.
현무한빙신장 빙하난무.
내 장력에 닿은 물은 곧바로 얼어붙고 그 주변부까지 점점 퍼져 나갔다.
그러자 당혹스런 표정의 장성추.
"음한지기의 무공을 익히고 있을 줄이야. 그렇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그 경지가 높기에 장력 한방에 저렇게 꽁꽁 얼 수가 있지?"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장성추였다.
'음한지기를 대성하니 확실히 위력이 더 강력해졌군.'
"내 음한지기의 위력이 그리 궁금하면 한번 맞아보던지?"
나의 말에 장성추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이가 없군. 내가 그런 어설픈 도발에 넘어갈 줄 아느냐!"
장성추는 얼어있는 곳을 피한 다음 다시 자리를 잡고 다시 나를 공격해왔다.
다시 그의 검을 피하며 반격에 들어갔다.
나의 검을 피해 장성추가 물 속으로 들어가려하는 것을 보고 나는 즉시 유령무흔보를 펼치며 그를 쫓아가 물 속에 현무한빙신장 장력을 분출했다.
나의 장력이 분출될 때 장성채의 몸은 물 속으로 반쯤 들어간 상태라 그 상태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머리와 상체는 물 속에 하반신은 물 밖에 있는 이상한 상태로 굳어버린 장성추.
내가 열화신공으로 녹여주지 않는 한 그대로 영영 깨어나지 못하고 죽을 운명이었다.
'한 평생을 물과 함께 보내더니 죽음도 물 속에 맞이하는군.'
나는 장성추를 그대로 두고 그 곳을 벗어나 연화 소저에게 갔다.
"무영 소협, 다치진 않았어요?"
"네. 괜찮아요. 많이 걱정했어요?"
"아무래도 수중에서는 그 자가 절대적으로 유리하기에 그랬는데.. 그렇게 태호까지 얼려버릴 줄은 몰랐네요."
"소저에게 배운 수영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나의 말에 연화 소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네 이제 태호 밖으로 나가죠."
우리는 태호 안쪽에서 밖으로 나가는 놀이배 위에 조용히 올라탄 후 밖으로 빠져나갔다.
태호에서 나온 우리는 곧바로 영경과 약속한 객잔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나타나자 영경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불렀다.
영경이 앉아있는 자리로 이동하자 영경이 말했다.
"사저, 태호 구경은 잘하고 왔어요? 무영이 넌 호수 물 속에 들어갔다 온 거니? 왜 이리 다 젖었어?"
"사매 말대로 무영 소협은 물 속에서 한참 있다가 왔어요."
"네? 물 속에요? 태호에 뭐라도 빠뜨린 거에요?"
"그게 아니라 장강수로채 채주에게 암습을 당했어요."
"장강수로채 채주가 무영이를 노렸다고요?"
"네. 태호 안에서 갑자기 무영 소협을 노리고 공격 했어요."
연화 소저의 말에 영경이 나를 전신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 다친 곳은 없는 걸 보니 네가 어렵지 않게 이긴 것 같은데, 그 자는 어떻게 되었어?"
"수공에 능한 자를 상대하는 건 처음이라서 나름 힘들었어. 그 자는 지금 태호 중앙에 꽁꽁 얼어 있어."
"뭐라고? 그 자가 얼어있다고?"
"응.. 어쩌다보니 좀 내력이 과했는지 호수와 함께 그대로 얼어붙었어."
나의 말에 영경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와! 대단한데. 너의 음한지기가 이제는 호수를 얼릴만큼 강해졌단 말이야?"
"어. 최근에 한빙신공을 대성한 뒤로 위력이 좀 더 강해졌어."
"무경원 때는 네가 더 강하다는 느낌은 있어도 따라잡지 못할 거란 느낌은 들지 않았는데...지금은 점점 너와 차이가 벌어져 내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있는 느낌이야."
"너의 뛰어난 무재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지. 넌 충분히 나와 비슷한 경지까지 올 수 있을거야."
"치.. 내가 가면 넌 또 더 먼 곳에 가 있겠지."
"하하. 그런가."
영경이와 대화를 하며 웃고 있는 나에게 연화 소저가 걱정수런 표정으로 말했다.
"무영 소협,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요?"
"네? 왜요?"
"여기는 장강수로채의 본거지이고, 소협께서 그 채주를 죽였는데.. 그들이 가만 있을까요? 그리고 그 채주 역시 누군가 사주를 받고 소협을 노렸는데.. 또 다시 노릴 수도 있고."
'생각해 보니 연화 소저 말이 맞다. 여기는 적진 한복판이나 다름 없는 곳인데.. 서둘러 빠져나가는게 두 사람에게도 안전하겠어.'
"생각해 보니 소저 말이 맞네요. 여기는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빨리 이동을 하죠."
우리는 즉시 객잔을 빠져나와 광동성 방향으로 향했는데, 가는 도중에 몇 차례 습격을 받았다.
다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이었는데 물 위에서도 아니고 평지에서는 우리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그들을 모두 제거하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내가 그들의 표적이 된 듯 하네요."
"장강수로채는 큰 위협이 되지 못하겠지만, 저들이 어디까지 손을 썼을 지 모르니 조심은 해야 할 거 같아요."
연화 소저의 말에 영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생각도 사저의 생각과 같아. 태산에서의 일로 널 노리는 자들 중에 엄청난 고수들도 많을 거야."
"그래. 조심해야지. 일단 최대한 빨리 인피면구를 벗어내고 함께 할 사람들을 규합해서 윗선을 제거해야지."
"금위대와 동창을 말하는 거야?"
"현재 밝혀진 바로는 그들이 윗선인 것 같은데.. 또 그 위에 누가 있을 지도 모르지."
어두운 밤이 되어 더 이상 광동성으로 가기에는 무리였기에 우리는 강서성 지역의 남쪽에 있는 객잔에 들어가 잠을 자고 다음날 광동성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 세 사람은 객잔에 들어가 간단히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올라갔다.
장강수로채의 채주와 싸움도 있었고, 오는 길에 습격이 여러번 있었기에 꽤나 피곤한 상태였다. 하여 나도 침상에 벌러덩 누워서 쉬고 있었다.
툭. 툭.
나의 방 창문을 때리는 돌멩이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누구지? 날 노린 자라면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았을텐데.'
난 급히 연화 소저와 영경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내가 올 때까지 두 사람이 함께 있으란 말을 하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나가자 멀리서 복면을 쓴 인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따라오라고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는군. 함정일까?'
함정일 수도 있지만 복면을 쓴 자가 누군지 궁금하였기에 급히 그를 따라 움직였다.
객잔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이동한 후 그 자가 멈추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왜 날 불러낸거지?"
"짝짝"
그 자는 대답없이 박수를 두 번 쳤다.
그러자 숨어있던 자들 십수명이 나타나며 포위하듯 나를 둘러쌌다.
'너희는 내가 당황할 거라 생각하겠지. 하지만 이미 이곳에 들어오기 전부터 너희들의 존재는 눈치챘지만 충분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모른척 했을 뿐이라구.'
"누군지도 밝히지 않고 싸우자는 건가?"
"......"
나를 불러낸 자가 엄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긋는 신호를 보내자 검진을 구성하여 나를 공격해왔다.
열여덞명 정도가 검진을 펼치는 오랜기간 함께 수련을 했는지 합이 잘 맞으며 검진이 꽤나 위협적이었다.
'다들 최소 초일류 경지 이상이군. 처음보는 검진인데 위력이 엄청나다. 다들 실전 경험이 아주 많은 자들이다.'
몇 차례 그자들과 검을 나눈 후 뒤로 물러서며 자세를 가다듬고 말했다.
"너희들은 살수인가?"
"큭큭."
그들은 나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웃어대고 있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화가 나 공격의 수위를 높였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보려고 가볍게 상대해줬더니 감히 날 무시해. 다 죽여주마.'
내가 강력한 공격을 퍼붓자 그들은 여럿이 협력하여 겨우겨우 막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검강을 만들어 공격에 들어가자, 날 유인했던 그자가 내게 외쳤다.
"그만하자. 애들 다치겠다. 무영아."
'무영아? 그리고 이 목소리는 예현?'
"진짜 예현이 너야?"
"오! 아직 내 목소리는 안 잊어먹었군."
예현이 그 말과 함께 쓰고 있던 복면을 벗었다.
"예현아! 살아 있었구나."
나는 예현의 얼굴을 본 순간 그에게 달려가 부둥켜 안았다.
"야. 숨 막힌다. 얘들도 보고 있는데 그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