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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무사의 귀환-93화 (93/114)

내가 초아와 황녀님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던 것처럼.

그 사람을 선택하지 않고 나까지 좋아해주는 걸 감사해야 하는 걸까..

초아에 대한 나의 감정은 확실히 정리된 걸까?

영경이 내게 물었다.

"연화 사저의 말이 다 사실이야? 너와 사귀는 사이라는 게..그리고 언제부터 알았는지 왜 말을 못해?"

"그래. 연화 소저의 말은 다 사실이야. 그리고 황녀님을 언제부터 알았냐고 묻는다면 아주 오래 전부터라고 밖에 말해 줄 수 없어."

내 말에 영경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아주 오래 전이 언제인데? 네가 무경원에 오기 전에 황궁에 계신 황녀님을 어떻게 알 수가 있어?"

영경의 말에 연화 소저가 말했다.

"우리는 하늘에서 정한 인연이에요. 전생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는데, 영경은 황녀의 상태가 정상은 아니라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와의 하룻밤

"사저, 그 말을 제가 진짜로 믿을 거라고 생각 하신 건 아니죠?"

"사매가 믿든지 안 믿든지 어찌됐건 사실이에요. 나와 무영 소협은 아주 오래 전부터 서로 연모하는 사이였고, 어렵게 다시 만났으니 이제는 절대 헤어지지 않을 거에요."

연화 소저의 말에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정말 그녀는 우리 두 사람이 전생에 서로 연모했던 사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했던 말을 믿는건가?'

영경은 연화 소저의 말을 여전히 믿지 못하겠단 표정이었지만 그녀를 말릴 수 없다는 건 느낀건지 연화 소저에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영경이 나를 노려 보듯 보며 말했다.

"사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지. 무영이 너도 같은 마음이라면 사저가 마음을 다치지 않게 잘해. 안 그럼 내가 너 가만 안 둘거야."

"그래. 그건 걱정마.. 내가 잘 할게."

영경은 사저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내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녀가 나가기 전 눈가에 맺힌 눈물이 보았다.

그 눈물의 의미를 나는 알았지만 모른 척 할 수 밖에 없었다.

'7호야, 미안하다. 네 마음을 알지만 받아 줄 수가 없다. 처음부터 내 마음속에는 네가 들어올 빈자리가 없었어. 그래서 난 네 감정을 첫번째로 생각해 줄 수가 없어. 난 네가 널 좋아하며 기다리는 5호에게 마음을 열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영경이가 나가고 방 안에 남겨진 나와 연화 소저는 말없이 다른 곳을 보며 있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두 사람 모두 고개를 돌렸는데 우연찮게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서로의 두 눈이 마주치자 미친듯이 뛰어대는 심장소리.

발그레 달아오른 연화 소저의 두 볼.

점점 가까워지는 나와 그녀와의 거리.

그녀를 힘껏 껴안으며 부드럽게 포개지는 두 입술.

방 안을 가득 메우는 거친 숨소리.

그렇게 사랑을 확인하며 밤을 지새우다가 느지막하게 잠이 들고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다음날 아침 해가 떴다.

내가 햇살에 눈이 부셔 눈을 떴을 때 침상 내 옆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마.. 꿈이었나? 아니야..어젯밤 기억이 이렇게 생생한데.. 그녀는 어디로 간거지? 부끄러워서 먼저 일어난건가..'

세안 후 아침 식사를 위해 2층에 있는 방에서 나와 1층 객잔으로 내려가니 이미 영경과 연화 소저가 음식을 받아 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눈빛이 마주친 연화 소저는 부끄러운 듯 양볼에 홍조를 띄우며 시선을 피하였다.

"왜 이렇게 늦게 내려와? 나랑 연화 사저가 음식을 받아 놓고 먹지도 못하고 널 기다리고 있어야겠니?"

영경이 늦잠을 자고 내려온 나를 핀잔을 주며 말을 하였다.

"아, 미안.. 어제 밤에 잠을 설쳤더니 조금 피곤해서 늦잠을 잤네."

나의 말에 연화 소저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갛게 변했다.

"너만 피곤하냐? 다음부터 늦으면 안 기다려준다."

"알았다..미안..다음부터는 절대 안 늦을께."

"새로운 곳에서 자면 잠을 설칠 수도 있죠. 얼른 이리와서 아침부터 먹어요."

연화 소저가 내 편을 들며 말했다.

"연화 사저는 너무 마음이 착해서 큰일이에요. 무영이를 잘 길들여야 나중에 사저가 편해요."

"그래요? 그럼 나중에 그 방법 좀 제게 알려줘요. 호호."

우리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남궁 세가로 향했다.

남궁 세가 입구에 도착 하니 전날 객잔에서 들은 것처럼 봉문이라는 글씨가 정문에 붙여져 있고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주변에 개미 한 마리 안 보이는데..우리가 들어가도 될까?"

영경이 남궁 세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하였다.

"들어가면 환영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갑자기 봉문을 한 이유는 알아봐야지. 아침부터 남의 세가 담을 넘을 건 보기 좋지 못하니 뒤쪽 담벼락을 통해 넘어가자."

나의 의견에 연화 소저와 영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쪽으로 이동했다.

우리 주변을 살핀 후 재빨리 담벼락을 넘어 남궁 세가 안으로 들어왔다.

대외 활동을 멈춰서인지 세가 장원이 들어섰는데도 세가원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영경과 연화 소저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말하고 혼자 세가의 내원에 들어가 그 안을 훑어보았다.

'사람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곳은 비어있다. 남궁 세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나는 다시 영경과 연화 소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와 말했다.

"내원에도 아무도 없고, 장원 내에서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아..남궁 세가는 그냥 봉문에 들어간 정도가 아니라 남궁 세가 사람 전부가 사라진 것 같아."

"오대 세가 중 하나인 남궁 세가의 그 많은 인원들이 하루만에 전부 사라졌다고?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거지?"

"남궁 세가가 이렇게 되었다면 빨리 제갈 세가에도 가 봐야겠어요."

연화 소저의 말을 따라 우리들은 남궁 세가를 급히 빠져나와 제갈 세가로 이동했다.

제갈 세가 입구 역시 남궁 세가와 마찬가지로 봉문이라는 글자가 정문에 크게 붙여져 있었다.

"여기도 아무도 없을지 모르니 내가 먼저 들어가 볼테니까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래?"

나의 말에 영경과 연화 소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조심히 다녀와."

"무영소협, 조심해요."

"네. 알겠어요."

나는 조용히 세가 뒷편으로 이동해 차분히 담을 넘었다.

제갈 세가 역시 장원 내에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제갈 세가 사람들도 모두 사라졌군. 두 세가 사람들은 봉문 후 어디로 사라진 걸까?'

제갈 세가 내원으로 이동해서 살펴보다가 무언가 바닥에 흙이 자연스럽지 않고 인위적으로 흩어져 있는 느낌이 드는 곳이 있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집중해서 보니 글씨를 써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글씨를 써 놓은 건가? 하지만 뚜렷하게 보이지가 않아서 읽을 수가 없다.'

일단 다른 곳을 좀 더 둘러보다가 특별한 것을 찾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를 본 영경이 물었다.

"제갈 세가 사람들도 장원 안에 아무도 없어?"

"어..아무도 없어. 남궁 세가와 마찬가지로 깨끗히 비워져 있어."

"도대체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안에 단서가 될 만한 흔적도 없나요?"

연화 소저의 말에 내가 보았던 것을 대답해 주었다.

"한가지 흔적이 있기는 한데..정확히 무슨 말이 쓰여있는지는 몰라서 같이 가 보자고 하려 했어요."

나의 말에 영경과 연화 소저도 관심을 보였다.

"글자가 써 있는거야?"

"응. 글자인 것 같은데 희미하게 써져있고 일부로 흙을 살짝 흩어놓은 듯 해서 정확히 글자는 보이지 않아."

"무영 소협, 그럼 얼른 같이 가서 확인해 봐요."

세 사람은 함께 제갈 세가의 담을 넘어 내원에 있는 그 장소로 이동했다.

그 장소를 둘러보고는 영경이 말했다.

"누군가 확실히 글자를 남겨 놓은 듯 한데."

"하지만 언뜻 봐서는 글자인지 모르게 되어 있는데 이걸 어떻게 읽지?"

"음.. 소협, 물을 떠와 볼래요?"

"물이요? 네. 알겠어요."

연화 소저의 말에 제갈 세가 전각 안에 들어가 물을 떠올 수 있는 용기를 찾아 물을 담아왔다.

그녀에게 물을 담은 용기를 건네주자 그녀가 손끝에 물을 묻혀 흙 위로 뿌렸다.

주변이 젖을 정도로 한참동안 뿌리니 조금씩 흙 위에 쓴 글자가 선명해지고 있었다.

내가 그 글자를 읽고 말했다.

"첫 글자는 금이라고 선명히 보이네요."

"그러네요. 확실히 금이라고 써져 있네요."

잠시 후 두 번째 글자도 조금씩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영경이 두 번째 글자를 읽었다.

"두 번째 글자는 위라고 써져 있어요."

"금위? 설마..금위대?"

나의 말에 영경이 놀라며 말했다.

"반란군이 황궁을 장악한 후 새로 조직되었다는 금위대를 말하는 거야?"

"그 금위대의 대장이 동창의 정화와 함께 황손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지시했다고 했어. 그들이 이 일까지 개입한 건가?"

"아직까지 확실치는 않으니 마지막 글자도 확인해 보자."

연화 소저가 마지막 글자에도 물을 조금 더 뿌리니 마지막 글자가 드러났다.

연화 소저가 마지막 글자를 읽었다.

"소협이 예상한대로 마지막 글자는 대라고 써져 있네요."

"진짜로 금위대가 이 일을 벌였다면 반란군이 무림까지도 장악할 생각인가 보네요."

나의 말을 듣고 연화 소저가 말했다.

"그럼 금위대가 남궁 세가와 제갈 세가 사람들을 어디로 끌고 갔을까요?"

"황궁으로 데려갔을까요?"

영경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봉문을 시켜놓고 그들을 데려갔다는 건 몰래 무림을 장악하려는 거겠지. 무림인들과 전면전을 벌이자는 건 아닐테니..황궁으로 데려가는 건 보는 눈이 너무 많아서 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렇다면 이들을 찾기가 쉽지 않겠네요."

"네. 아마도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봐야 단서를 찾을 듯 싶네요."

나의 말에 연화 소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일단은 소협 말대로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해야겠네요. 오대 세가 중 두 곳이나 벌써 이렇게 일을 벌였다면 곧 다른 곳에서도 그들이 일을 벌일 테니까요."

"이미 시작 했을 지도 모르죠."

나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얼른 다른 문파에도 가봐야 하는 거 아냐?"

"그건 우리가 하지 않아도 무림맹에서도 이 일을 이미 조사를 하고 있을 거 같은데.. 만약 모르고 있더라도 상황을 전해주면 그들이 나설거야."

"네 말은 우리가 직접 하는 것보다 무림맹이 나서는 게 나을 거라는 거구나."

"응. 아무래도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무림 전체의 존망이 걸린 문제라서.. 무림 대 반란군의 대결이라고 보자면 우리의 능력만으로 해결하기에는 벅찬 일이니까."

두 사람도 나의 의견에 수긍을 하는 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무림맹에 금위대가 이 일을 벌였다는 걸 알려주고 추후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보고 대처하면 되겠네?"

"맞아. 내 생각은 그래."

"저도 소협의 생각이 맞는 거 같아요."

우리는 이곳 상황을 적어 무림맹에 전서구를 띄우고 다시 광동성으로 향했다.

안휘성을 빠져 나와 강서성 지역으로 들어섰다.

"무영 소협, 강소성에 와 본 적 있어요?"

"아니요. 강소성은 처음이네요."

"이 곳에 유명한 곳이 있는데 소협도 안 가 봤나보네요."

"유명한 곳이요?"

"네. 강서성에는 유명한 것이 두 개 있어요."

나와 연화 소저의 대화를 듣고 영경이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사저, 그 두 개가 뭐에요?"

"사매도 처음 듣나보군요. 하나는 장강수로채의 본거지라 수적들이 많기로 유명해요."

"수적이요? 도적들이요?"

나는 수적이라는 말에 반문하듯 물었다.

"네. 그들은 장강을 터전으로 삼고있고 지나가는 배들에게서 통행료를 받죠. 녹림십팔채와 형제 문파라고 보시면 되요."

"그렇군요. 나름 유명한 거보니 제법 세력을 갖추고 있나보군요."

"녹림십팔채와 장강수로채는 두 곳 다 사도련의 속하는 문파에요. 개개인은 약하지만 뭉치면 강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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