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그냥 여기 이야기해도 돼. 하오문 지부에 일이 생겼나봐..급한 일이라서 나는 지금 바로 광동성으로 떠나야 할 거 같아."
"지금 혼자서 광동성으로 간다고?"
혼자 간다는 초아가 걱정이 되서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같이 가줄까 하는 말이 나올 뻔 했다.
"응. 북방에는 같이 못 가서 미안해. 무사히 다녀오고 광동성으로 돌아오게 되면 들리던지해 아니면 내가 급한 일을 처리하고 널 찾아갈께."
"알겠어. 북방 일 마치고 꼭 광동성으로 널 찾아갈께. 조심해서 돌아가."
초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웃으며 나를 부탁하였다.
"모두들 북방에 가서도 무사히 돌아오시고요. 무영이가 생각보다 빈틈이 많으니까 저 대신 잘 부탁할께요. 호호"
초아는 작별 인사를 마치자마자 급히 짐을 들고 광동성으로 떠났다.
'초아가 떠나 가는구나. 연화 소저가 옆에 있는데도 이 허전한 느낌은 뭘까? 2년동안 함께 생활하고 지내서일까.. 옆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초아가 내게 차지하던 존재감이 컸었구나.'
초아가 옆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허전한 마음에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졌다.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지만 연화 소저는 나의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며 말했다.
"그간 정이 많이 들었을텐데.. 초아가 떠나서 많이 서운하죠? 그래도 일이 빨리 마무리 되면 같이 초아를 만나러 가요. 무영 소협, 그래도 옆에는 저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잖아요. 그래니 조금만 더 힘을 내요."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연화 소저 말대로 제 옆에는 연화 소저도 있고, 영경, 풍현, 적운처럼 좋은 친구들도 있으니까 든든하고 힘이 나네요."
대부분이 기력을 되찾자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변 정리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무당파와 소림파 사람들에 의해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영결식이 거행되었고 죽은 오독교 제자들과 그들로 인해 죽은 무림맹과 사도련의 사람들의 사체를 모아다가 쌓아놓고 불태웠다.
처음에는 묻어주려 했지만 당영 소저가 고독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몸에 독성이 남아있어서 위험하다고 태워서 없애야 한다고 말하여 화장을 치루게 되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도,
고독에 의해 당한 고통도,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중에 태산혈사라 불리게 되는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무림 부대의 해체
한차례 태산혈사라는 폭풍이 지나간 뒤로는 태산에서 합동 훈련이 더 이상 진행되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무림맹은 무림맹대로,
사도련은 사도련대로.
따로 훈련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 사건 이 후로는 서로에 대해 불신이 커져 같은 맹과 같은 문파에 속한 사람들끼리도 믿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큰일이군요. 실전같은 훈련 속에서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기를 바랬는데.. 생각지도 못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요."
"그러게 말일세. 오독교가 그런 일을 벌일 줄이야. 그리고 문제는 그들은 빙산에 일각일 뿐이라는 게 더 문제지. 이렇게 불신이 쌓인 상태에서 전장에 나가면 과연 서로를 믿고 적들과 싸울 수 있는지도 의문이 드는군."
진무 교관과 혈운무가 떨어져서 각자 훈련 중인 무림맹 부대와 사도련 부대를 바라 보면서 대화을 나누고 있었다.
"오독교는 정말 무슨 이유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아마 후금이나 반란군의 사주를 받았겠지. 이 일을 지켜보면 오독교는 실패했을 경우 멸문까지도 각오하고 이 일을 벌였다고 생각하네. 든든한 뒷배가 그들을 도와주고 있을테지..난 그게 더 걱정스럽네."
"무림에 한차례 거센 폭풍이 있겠군요."
"그동안 무림이 꽤나 평화로웠지. 이제부터는 격동의 시대가 찾아 오려나보네. 저 아이들이 잘 견뎌낼 지 걱정이 되는군."
혈운무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하자, 진무가 그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요. 새로운 시대가 오면 그에 맞춰 새로운 인물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신검협이라 불리는 신무영이란 아이처럼 말인가?"
"그도 그렇고 난세에는 영웅이 제법 많이 생겨나니까요."
"그럼 나 같은 늙은이는 이제 물러서야겠군."
"무슨 소리십니까..장왕님은 앞으로 최소 삼십년은 무림에서 더 활약하셔야죠."
진무의 말에 혈운무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허허..에끼..이 사람아..삼십년이라니..정도껏 놀려야지. 내 나이가 벌써 육십이 넘었는데, 나도 십년 안쪽으로 제자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무림을 떠날 생각이네."
"아직까지는 하실 일이 많으실텐데.. 벌써 무림을 떠나실 생각을 하십니까?"
"오십년 가까이를 강호에 몸담아 살아봤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지. 내 제자들도 혈비궁 궁주 자리는 한번 해봐야지 않겠나. 허허"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그 말도 맞군요. 하하하."
두 사람은 한바탕 웃은 후 혈운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만 그 자리를 물려 주기 전에 이번 일 같은 일은 안 벌어지도록 모두 정리하고 가고 싶은 마음인데..그 안에 될지는 모르겠네."
"마각을 드러냈으니 그들이 곧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겠지요. 그 때에 그 세력을 일망타진 해야겠죠."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들이 대놓고 행동을 시작한다면 그건 이미 우리를 충분히 상대할 만 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네."
혈운무의 말에 진무도 아차 싶었는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장왕님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경우라면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군요."
"그래서 난 오늘 중으로 사도련으로 떠날 생각이네. 련주와 직접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대책을 세워야 할 듯 해."
"그럼 전 맹주 사형에게 장왕께서 하신 말과 이 곳 사정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해 주게나. 부탁함세."
그날 진무는 무림맹으로 혈운무는 사도련으로 떠나고 일주일 뒤 각 문파에서 보낸 수십마리의 전서구가 태산으로 날아들었다.
추대운이 전서구를 읽고 말했다.
"최대한 빨리 문파로 복귀하라는데.."
강소하 역시 자신의 문파에서 날아온 전서구를 읽고 말했다.
"우리 문파에서도 최대한 빨리 돌아오라 하네."
모용욱 역시 자신에게 날아온 전서구를 읽고는 당황해하며 말했다.
"너도? 우리 세가에서도 빨리 돌아오라는데.."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이해가 안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림부대는 어찌하라고 다들 문파로 복귀 명령을 내린거지?"
모두들 문파에서 날아온 전서구의 내용을 읽고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때 진무와 무림맹 맹주 공손후가 함께 나타났다.
"다들 문파에서 온 전서구를 받고 많이 당황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전에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다. 오늘부로 무림 부대를 해체 하겠다."
갑자기 나타나 무림부대를 해체한다는 맹주님의 말에 모두들 혼란에 빠졌다.
"그럼 오늘부로 무림 부대를 해체하고 다들 자신들의 문파로 돌아가는 겁니까?"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다. 너희들이 해야할 일이 사라져버렸으니 본 문파로 돌아가야 한다."
"북방에서 후금이 물러난 것 입니까?"
그 질문에 맹주가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하였다.
"명나라 황실을 대리하고 있는 승상께서 북방을 후금에게 내어주고 그들과 화친을 맺어 전쟁을 멈추었다."
맹주의 말을 들은 무림맹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며 명나라 승상이 후금과 화친을 맺은 것에 대해 성토했다.
"그럼 이대로 후금에게 북방을 내어주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화친만 믿고 있으란 말입니까?"
그들에게 맹주 자신도 이번 결정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이번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네. 하지만 명나라 황실에서 결정한 일이니 우리가 어떻게 되돌릴 수가 없네."
맹주의 단호한 말에 더 이상 그 문제를 가지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문파들은 이 일을 언제 알았기에 이렇게 빨리 저희들에게 돌아오라고 전서구를 보낸 것 입니까?"
나의 물음에 맹주가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해 주었다.
"자네들의 문파에서는 그 일을 모르네. 문파에서 자네들을 돌아오라 하는 건 각 문파에 큰 일이 생겼기 때문이지."
맹주의 말에 모두 걱정스런 눈빛으로 물었다.
"큰일이라니요? 어떤 큰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각 문파에 고수들이 고독에 중독되었네."
"설마.. 태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각 문파에도 오독교가 고독으로 중독 시킨 것 입니까?"
"그게.. 태산 때와 비슷한 상황은 맞기는 한데.. 중독을 시킨 건 오독교가 아닐세."
"오독교가 아니라니요?"
"고독은 오독교에서 그들에게 전달해 줬겠지만 각 문파마다 몇몇 인원들이 적과 내통하여 문파 사람들을 중독 시켰다네."
모두들 각 문파 마다 내통자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입니까?"
"그런 문파도 있고 아닌 문파도 있겠지. 다만 누가 내통했는지,몇 명인지를 모르니 문파에서도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네."
"무림맹 문파들만 그런 상황인가요?"
"아니네. 사도련도 똑같은 상황일세."
사도련까지 같은 상황이란 말에 무림맹 사람들의 혼란이 가중 되었다.
차라리 마교든 사파든 확실한 적이 있으면 싸우기라도 할텐데..
같은 문파의 동료 중에 배신자가 있다니..
또한 배후의 진정한 적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한 채 당하고만 있으니 다들 답답한 상태였다.
무림 부대 해산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후금과 화친을 맺은 명나라 황실을 탓하며 분개하던 그들이 문파의 일을 듣고 나서는 서둘러 짐을 챙겨서 자신들의 문파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무림인들은 역시 자신들의 문파와 자신들의 가족이 우선이구나. 역시 나라는 군인이 지키지 못하면 무너질 수 밖에 없다. 예현과 석견아, 미안하다. 지금이라도 당장 북방으로 달려가서 너희들을 찾아야하는데.. 나도 무림인이 다 되었나보다.. 무림 문파들의 위기를 먼저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니..'
그렇게 태산에서 무림 부대가 해체되고 급하게 모두들 자신들의 문파로 되돌아갔다.
추대운과 강소하, 모용욱도 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문파 사람들과 함께 떠났고, 당영과 주소은도 연화 소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문파로 돌아갔다.
"무영아, 일단 나도 파천문으로 돌아가 봐야 할 거 같다."
"그래. 풍현아, 얼른 가 봐. 문파 일이 마무리되면 연락줘. "
"그래. 먼저 갈께. 둘 다 곧 다시 보자."
풍현이 나와 적운에게 인사를 한 후 영경에게 다가가 말했다.
"영경아, 일이 마무리되면 내가 해남파로 찾아갈테니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왜 널 기다려..난 그냥 있을거니까.. 오던지 말던지.."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영경이의 붉어진 얼굴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했다.
"빠른 시일 내로 찾아갈게. 그 때부터는 널 기다리게 안해."
풍현이 영경이에게도 작별 인사를 나누고 파천문 사람들과 자신의 문파로 떠났다.
적운도 무당파 사람들과 함께 돌아가야해서 우리와 작별 인사를 나눴다.
"좀 더 같이 있고 싶지만 무당파에도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해."
"그래. 조심히 가고 곧 다시 만나자."
"그래. 곧 다시 보자."
나와 작별 인사를 한 적운이 영경에게 말했다.
"7호야, 진짜로 네가 살아있어서 기쁘다. 우리 다시 볼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라."
"나도 너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되서 좋았어. 다시 만날 때까지 너도 잘 지내."
적운도 무당파 사람들과 떠나가고 어느덧 태산에는 남아있는 무림인이 그리 많지 않았다.
"영경아, 너와 연화 소저는 문파로 돌아오라는 전서구를 받지 않았어?"
"응, 전서구는 없었어. 아마 남해검녀문에는 별일 없을거야."
"응? 왜 그렇게 생각해?"
"남해검녀문은 문파원 자체가 많지 않고 그 소수의 인원들조차 외부와 접촉이 거의 차단 되어 있는 상태니 내부에서 내통자가 나오기도 어렵거니와 사부님과 함께 있으니 적들이 손쓰기 어려울 거야."
"그래서 다들 문파 걱정에 황급히 떠났는데 너와 연화 소저가 태연한 표정으로 남아 있었구나."
"현무문이라 했나? 너는 너희 문파에 문파원이라고는 너 혼자니 특별히 갈 필요는 없겠구나.호호."
"일인문파가 이럴 땐 좋은 것 같기도 하네. 신경 쓸 일이 없잖아. 하하"
나와 영경이 웃으며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눌 때 연화 소저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럼 이제 무영 소협은 어디로 갈 거에요?"
"저는 지금 특별히 가야 할 곳은 없는데.. 이 인피면구를 이제 벗고 싶어서요. 그 곳부터 가는 게 어떨까.. 생각중이에요."
나의 말에 영경도 자신도 같은 생각인 듯 끄덕이며 말했다.
"맞다. 이걸 쓰고 산 지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연화 사저, 우리도 더 이상 이 인피면구를 쓸 필요가 없지 않나요?"
영경의 말에 연화 소저가 대답했다.
"사매 말대로 이제 벗고 다녀도 될 거 같네요. 그럼 무영 소협, 함께 그 곳에 가실래요?"
"네. 좋습니다. 그 소저를 제가 모시고 가죠."
내 대답에 연화 소저는 나와 함께 간다는 것에 만족스러운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영경 사매와 얼른 짐 싸서 나올게요."
두 사람이 숙소로 짐을 가지러 가고 나도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왔다.
'황녀님을 다시 만나 함께 중원을 돌아다니는 건 전생부터 고대하던 순간인데..즐겁고 행복한 마음보다 왜 이렇게 불안하고 걱정된 마음이 큰 거지? 황녀님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계셨다는 걸 들어서일까? 아니면 막상 만나니 황녀님과 나 사이의 신분 차이를 느껴서 일까?'
생각의 정리를 하기 위해 태산을 바라보며 몇 걸음 걸으니 눈앞에 태산의 압도적인 절경에 빠져들어 모든 생각과 근심이 사라졌다.
'어차피 다시 사는 삶인데.. 왜 이리 복잡하게 살고 있는거지?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전생에 해 보지 못한 것을 다 해보고 살고 가야 후회가 없지.'
절경을 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마음과 생각을 비우니 맑은 공기가 폐부를 적시며 온 몸에 정화된 맑은 기가 가득 채워졌다.
'무공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너무 복잡하게 초식을 생각하기보다는 무념무상, 내 몸이 반응하는대로, 내 기가 원하는 대로.'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내 몸에 있는 기의 통제를 풀자 자유로운 움직임이 쏟아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