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기력이 빠져 쉬고 있는 나를 보고 신검협이라고 부르며 환호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초아는 내게 와서 웃으며 자신의 아버지 별호를 가져가서 아버지가 나를 찾아올 지 모른다고 조심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던 중 남궁세가의 외당 당주 남궁수혁이 나를 찾아왔다.
"여기서 또 뵙네요. 현무회 회주님."
남궁수혁은 비무행 때 보고 이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못 알아 볼 줄 알았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아신거죠? 그 때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아까 오독교 제자들을 상대하실 때 쓰시던 검법이 저와 비무할 때 쓰시던 검법과 비슷해서 알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랬군요. 남궁수혁님을 이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람 인연은 참 모르겠군요."
"저도요. 그리고 현무회 회주님께 두번이나 목숨을 빚지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그렇게 생각 안 하셔도 되는데.. "
풍현과 적운은 내가 자신들의 생각보다 유명 인사가 되어있는 걸 보고 신기한 지 계속 쳐다보았다.
"신검협님, 앞으로 더 유명해져도 우리를 모른 척 하지는 않겠죠?"
"신검협님, 십대고수가 되어도 우리를 잊으면 안되요."
"둘 다 장난 그만쳐. 내가 천하제일고수가 된다 하더라도 너희를 모르는 척 하겠냐.."
"와! 은근슬쩍 자기가 천하제일인이 되겠다고 하는 거 봐."
"원래, 무영이가 야망이 큰 남자야."
"농담이었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장난 좀 그만쳐."
우리 세 사람이 장난치며 놀고 있을 때 연화 소저와 영경 소저가 우리에게 걸어왔다.
영경 소저가 검을 뽑더니 갑자기 풍현의 목을 향해 찔러들어왔다.
그 검이 멈춘 곳은 풍현의 목에서 1장(30센티)떨어진 곳이었다.
'아니. 영경 소저가 왜 검을 풍현에게 겨눈거지?'
풍현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으나 영경 소저의 검이 바로 앞까지 들어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대관절 누구시길래 저에게 검을 겨누시죠? 그 이유나 한번 들어봅시다."
7호의 사연
"5호, 네가 배신자였어?"
영경 소저의 말에 나와 적운 그리고 풍현까지 모두 당황하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영경 소저가 어떻게 5호를 알고 있는거죠?"
"무영 소협도 풍현의 정체를 알고 있었나보군요. 그럼 소협도 이들과 한패인가요?"
"영경 소저,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거 같아요. 풍현이 배신자라니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풍현이 나가서 말했다.
"영경 소저를 난 알지도 못하는데 내가 5호인 건 어떻게 알고 있는거죠? 그리고 배신자라니.. 제가 누구를 배신했다는 겁니까?"
"그럼 네가 지켜야 할 3황자님은 어디에 두고 여기에 사도련 련주의 제자로 와 있는거지?"
'아니..영경 소저가 풍현의 정체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다니.'
풍현도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소저도 황궁에서 나왔습니까?"
"2년이 지났다고 벌써 내 목소리까지 잊는거냐?"
풍현은 그녀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보니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 목소리는 7호? 하지만 7호의 얼굴이 아닌데."
"인피면구를 쓰고 있으니 내 얼굴이 아닌 게 당연하지."
"인피면구? 그럼 너 정말 7호 너 맞는거야? 살아있었구나."
풍현이 그녀가 7호라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7호에게 다가가려하자 그녀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아직 해명하지 않았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7호가 쉽사리 경계를 풀지않자 5호가 2년전부터의 일을 쭉 설명했다.
그러자 7호가 그제서야 경계를 풀고 검을 내렸다.
"그럼 1호, 너는 어떻게 된거야? 2황자님은 어디 계시는거야?"
1호도 2년 전부터 이곳까지 온 이야기를 다 해 주었다.
그러자 7호는 5호와 1호를 한번씩 안아주며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연화 소저가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연화 소저, 왜 울어요?"
"기뻐서요. 다들 무사해서.."
그때까지는 그녀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5호가 7호의 얼굴을 만져보며 말했다.
"너도 인피면구가 너무나 자연스럽네..무영이와 같은 곳에서 만들었나?"
"무영이? 무영 소협도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던 거야?"
"몰랐구나. 그래서 7호를 옆에 두고도 몰라보고 무영이가 네가 2년전에 죽었다고 말했구나. 무영이 때문에 우리는 7호, 네가 죽은 줄만 알았어."
"설마.. 무영이가 18호야?"
"그래. 오랜만이다. 7호야."
7호는 눈물을 흘리며 나를 격하게 껴안았다.
"왜 말을 안했어. 널 옆에 두고도 몰랐잖아. 미리 말을 했어야지."
연화 소저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져 있었다.
나를 안고 흐느껴 우는 7호를 지켜보는 5호의 표정이 씁쓸해 보였다.
7호가 조금 진정이 되었을 때 그녀에게 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 2년 전에는 어떻게 된 거야?"
7호는 2년 전 일을 회상하며 살짝 눈시울이 붉어지며 말했다.
"2년 전 황궁에서 나와서.."
그녀가 2년 전 일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
2년 전 황궁이 반란군에게 점령 되기 하루 전날.
"내가 너에게 가장 미안하구나. 아비로써 널 끝까지 지켜줘야하는데 지금은 그럴 힘이 없구나. 일단 최대한 빨리 남쪽으로 피하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광동성 아래 남해에 맞다은 곳에 남해항이라는 항구가 있고 그 주위에 작은 집 한채가 있을 것이다. 내가 널 위해 안배해 놓은 사람이 있으니 그 곳에 가서 이걸 보여주면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황제는 품 안에서 황룡이 그려진 패를 황녀에게 주었다.
"아바마마, 저와 함께 가요. 황궁에 남아계시면 위험해요."
"아비는 이 나라의 황제다. 황제가 황궁을 떠나면 되겠느냐. 이미 나라의 국운이 기울었으니 너도 황녀의 신분을 버리고 다시는 황궁으로 돌아오지 말고 네가 살고 싶어했던 자유로운 삶을 살거라."
"아바마마..부디 강건하세요."
"그래. 얼른 가거라. 늦으면 이 아비가 널 지키기가 어렵단다."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황녀는 흰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변복을 하고 7호와 함께 황궁을 빠져나갔다.
며칠동안 남쪽으로 쉬지 않고 이동하면서 7호는 자신의 옆에 있는 황녀님이 그동안 황궁에서 자신이 지켰던 그 소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음식도 가리지 않고 황궁 바깥 생활에 잘 적응하며 자신을 잘 따라와 여러번 놀랬었다.
광동성 근처에 도착해 7호는 황녀님을 객잔에 모셔두고 길가에 그림자 무사 표식을 남겨두었다.
오는 내내 표식을 남겨두었지만 아무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1호와 5호, 27호는 무사히 빠져 나갔으려나.."
7호가 황녀님이 계신 객잔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자신을 따라오는 자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반대방향을 틀었다.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그자가 자신을 쫓도록 유인했다.
사람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공터에 도착 했을 때 7호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제 그만 나오시지. 누구의 사주로 쫓아오는 건가?"
7호의 말에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가 있었다.
"난 당신의 적이 아니에요. 금의위의 진유한이라 합니다. 당신은 황녀님의 그림자 무사가 맞죠? 황녀님은 어디 계시나요?"
"금의위의 지휘사 진유한?"
"맞습니다. 황제 폐하의 지시를 받고 황녀님을 도와주러 온 거에요."
7호는 여전히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물었다.
"혼자 온 건가요?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죠?"
"지금 금의위의 부하들도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제가 먼저 와서 빨리 피하시라고 알려주려 왔어요."
"네? 피하라니요. 금의위가 도와주러 온 게 아닌가요?"
"지금 황궁은 이미 반란군 손에 넘어 갔어요. 황제 폐하께서는 승하 하시기 전 저에게 거짓 투항을 하라고 하시며 황녀님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게 도우라 하셨습니다."
7호는 그의 말을 듣고 놀라며 다시 물었다.
"폐하께서 승하하셨다고요?"
"네. 반란군이 황성을 점령할 때 자진하셨습니다. 지금 시간이 없습니다. 곧 금의위 부하들이 들이닥칠텐데 제가 지금은 나설 수가 없습니다. 일단 빨리 남쪽으로 피하시고 앞으로는 표식을 남기지 마세요. 그걸 보고 계속 쫓고 있으니까요."
"표식을 어찌알고? 설마 배신자가? 그럼 저희는 어디서 다시 만나죠?"
"광동성 남부에 있는 남해항으로 가시잖아요. 그 근처에 객잔이 있으니 그 곳에서 뵙죠. 부하들을 따돌리고 저도 그 쪽으로 갈께요."
'황제 폐하와 황녀님만 알고 있는 장소인데 진유한도 아는 걸 보니 황제 폐하께서 보내신 게 맞구나. 헌데 그럼 이 자의 말이 다 사실이란 건데... 황녀님께 어찌 말씀드리지..'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그 곳에서 다시 뵈요."
"네. 서두르십시요. 제가 표식을 지워서 시간을 끌겠습니다."
7호는 그 즉시 황녀가 있는 객잔으로 갔다.
"어서와. 7호는 뭐 먹을꺼야?"
"황녀님. 지금 반란군에서 저희를 쫓고 있다고 합니다. 서둘러서 여기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반란군이 벌써 이곳까지 왔다고?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 어찌 알고."
"그림자 무사들 중에 배신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제가 남긴 표식을 쫓아 따라온 것 같습니다. 지금 금의위가 저희를 뒤쫓고 있습니다."
황녀는 굳은 표정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금의위는 아버지의 충복들인데.. 그 말은 이미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구나."
"네. 조금 전 진유한 지휘사가 나타나 피하라 알려 주었습니다."
"진유한? 그라면 아버지께 들은 적이 있어. 황궁에서 아버지가 우리 자녀들 빼고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자라 하셨어."
"얼른 가시지요."
7호와 황녀는 객잔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객잔을 나와 이동을 했다.
하지만 남쪽으로 가는 도중 변복한 일부 금의위 무사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변복을 하며 황녀를 발견한 금의위는 네 명이었다.
그들은 발견하자마자 곧바로 위로 신호탄을 쏘며 7호를 에워쌌다.
'역시 금의위는 훈련이 잘 된 황궁의 정예병이군. 넷이라.. 쉽지 않겠어. 어떻게 황녀님을 데리고 빠져나가지..'
7호는 빈틈을 찾기 위해 공격을 해 봤지만 절정고수 혼자서 초일류 경지의 네명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7호는 자신이 포기하면 황녀님의 목숨이 끝난다는 생각에 팔 하나쯤은 준다는 생각으로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 위주로 몰아붙이자 7호에게는 작은 상처들이 몸 이곳저곳에 생겨났지만 덕분에 제법 팽팽한 싸움이 이어졌다.
그 때 7호 뒤에 조용히 있던 황녀가 갑자기 검을 뽑아들고 금의위에게 달려들었다.
7호도 검을 뽑아들고 달려드는 황녀님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지만 금의위들은 그보다 더 당황하며 빈틈이 생겼고 7호가 그 틈을 타 금의위 한 명의 검을 들고 있는 팔을 잘라버렸다.
황녀님은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금의위 한명을 상대해주면서 7호는 초일류 경지의 금의위 두명만 상대하게 되면서 여유가 생겼다.
'황녀님 실력이 얼추 초일류급은 되는구나. 저렇게 뛰어난 실력을 숨기고 계셨다니.. 안정적으로 상대하시고 있구나. 그래도 빨리 이들을 제압하고 도와드려야지.'
7호는 진기를 더 끌어올려 두 명의 금의위를 압박하며 실수를 유발시키고 틈이 생기자 7호의 검이 그자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그 자가 목에서 피를 분수처럼 쏟아내며 쓰러지자 남은 한명의 금의위는 7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금세 남은 금의위를 제압하고 황녀님을 도와주려 발걸음을 옮기려 했는데 이미 황녀님이 그 자를 제압하기 직전이었다.
황녀님이 그 자를 제압하고 물었다.
"누가 너희를 보냈지?"
"......"
그 자는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할 생각이 없어보였다.
7호는 그자들이 대답하지 않을 걸 아는지 그자들에게 다가가 자신 검으로 금의위의 목을 스윽 긋고 황녀님에게 말했다.
"신호탄을 쐈으니 곧 또 다른 금의위가 올 거에요. 얼른 절 따라 오세요."
황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사람이 여럿 죽어나가자 놀란 듯 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7호를 따라나섰다.
그 뒤에도 금의위 네 명을 또 만났지만 한차례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었다.
어렵사리 남해 객잔에 도착한 두 사람은 간단히 소면을 시켜먹고 황녀는 잠시 객잔에 앉아있고 7호 밖에 나가서 진유한이 오는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7호가 서성거리고 있을 때 진유한의 전음이 들렸다.
[그림자 무사님, 황녀님을 모시고 나오세요. 자리를 옮겨서 만나지요. 함께 숲길로 들어오세요. 전 그 곳에 있습니다.]
7호는 그의 말대로 황녀를 데리고 숲길로 들어가자 진유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황녀님."
"지휘사님 객잔으로 들어 오시지. 왜 우리를 이곳에서 보자고 하신 겁니까?"
"그건 그 객잔 사람들이 제 얼굴을 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왜죠? 그 이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