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초아에게 안겼을 때 맡았던 익숙하고 좋았던 그 향이 이 때 느낀 초아의 살냄새였구나.'
그러면서 점차 아무 소리도 안 들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꿈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여전히 연화 소저의 품 안에 안겨 있었다.
난 그녀의 품 속에서 빠져나온 후 말했다.
"연화 소저, 미안해요. 나 지금 초아에게 가 봐야 할 거 같아요."
"무영 소협, 갑자기 왜 그래요? 자면서 꿈을 꾼 듯한데 무슨 일 있었어요? "
"꿈에서 제가 초아에게 잘못한 일이 생각났어요. 가서 그 일이 정말 있었던 일인지 확인해 봐야겠어요."
내가 일어서서 걸어가려고 하자, 그녀도 함께 일어나며 말을 했다.
"같이 가요. 나도 초아에게 사과를 해야하니까요."
"네. 그래요."
연화 소저와 함께 초아를 찾아 나섰다.
초아는 동료들과 아무 일 없는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초아에게 다가가 말을 했다.
"초아야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난 지금 너와 말을 하고 싶지 않아.."
그 때 연화 소저가 초아에게 말했다.
"그 일은 나와 풀고 무영 소협이 너에게 꼭 해야할 말이 있는 것 같으니 들어주라."
연화 소저의 말에 초아의 표정이 더 굳어졌다가 날 한번 보더니 말했다.
"따라와. 아주 잠깐만 들어줄테니..본론만 바로 이야기해."
"알겠어."
나와 초아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했다.
"연화 소저와의 사이를 미리 말하지 못한 것 미안해."
"지금 그 이야기 하자고 날 부른거야?"
"그게 아니고, 내가 널 부른 이유는 갑자기 오독교 때 동굴에서의 일이 생각이 난 거 같아서.. 그런데 내가 전에 너에게 들었던 것과 달라서.."
나의 말에 초아가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어떻게 다른데?"
"넌 그 때 아무 일 없었다고 했는데.. 내가 너에게 큰 실수를 범하지 않았어?"
"네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런 큰 일이 있었다면 너에게 말했겠지."
"정말 아니야? 그럼 왜 그런 기억이 떠오르거지.."
초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미 한참 전의 일일텐데 그걸 지금 사과하려고?"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사과하고 책임져야지."
"책임? 어떻게 책임 질건데? 사실이면 연화 소저를 좋아하면서 나와 혼인이라도 하려고?"
"......"
내가 아무 말 못하자 초아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 내가 혼인 하자고 할까봐 겁 먹기는.. 그런 일 없었어. 무영아, 그러니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얼른 연화에게 가 봐. 나와 네가 함께 있는 걸 알면서 기다리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나는 아니까..연화에게 잘 해줘."
"초아야, 진짜 미안해. 그리고 항상 너에게 고마웠어.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네가 행복해지길 바랄께."
나의 말에 초아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뭐야.. 아예 안 볼 사람처럼 작별 인사 하듯 그러기야.. 앞으로도 우리는 친구로 지내야지. 나와 이제 친구 안 할거야?"
나는 고개를 가로젖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지. 초아 넌 내게 가장 좋은 친구지. 네가 계속 날 친구로 생각해 준다면 난 너무 고맙지."
"나도 연화랑 감정 풀고 잘 지낼테니까 내 눈치 볼 필요없어.그리고 이제 앞으로 쓸데없는 소리해서 어색해지기 없기다. 이제 얼른 가봐."
"그래. 고마워. 이제 돌아가자."
"너 먼저 가. 나 잠시 바람 쐬고 들어갈께."
나는 초아 말대로 먼저 돌아갔다.
초아는 태산 전경을 바라보며 아무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그런 일로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널 붙잡고 싶지 않았어. 처음부터 혼자 시작한 이 마음.. 평생 혼자 간직하더라도 괜찮아..친구로라도 네 곁에 남으면 언제든 널 볼 수 있으니까.."
살인 사건
연화 소저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나를 본 연화 소저가 내게 다가가 와 조용히 물었다.
"초아랑 이야기는 잘 했어요? 초아는 어디 있어요?"
"네. 잘 이야기 하고 왔어요. 제가 착각했었나봐요. 초아는 태산을 보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올 건가 봐요."
"초아, 기분은 괜찮아요?"
"초아의 속마음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보기에는 나쁘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초아가 저와 연화 소저 사이를 인정해주고 연화 소저와도 풀고 잘 지낸다고 했어요."
내 말을 들은 연화 소저는 초아의 마음을 이해한 건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초아가 힘든 결정을 했네요. 우리 사이를 인정하기 쉽지 않았을텐데.. 제가 초아에게 더 잘해야겠네요."
나머지 동료들이 모여서 우리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이제 말해봐. 두 사람 무슨 사이야?"
"그러게. 무영이가 초아 소저랑 그렇고 그런 사이 인줄 알았더니 요즘 보면 연화 소저와 더 가까워보여."
"무영아, 이제 이실직고 하렴. 그동안 우리가 모르는 척 해 주느라 힘들었다."
그 말들을 듣고 나와 연화 소저는 짜기라도 한 듯 고개를 돌렸는데 서로의 눈이 마주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연화 소저, 이제는 우리 사이를 말해도 되겠죠?"
"그래요. 초아도 알았는데 나머지 친구들에게도 말해줘도 되겠죠."
우리 두 사람은 동료들에게 호감을 가지고 만나게 되었다는 걸 말해주었다.
남자 동기들을 비롯해 연화 소저 방 여자 동기들까지 부러운 눈빛으로 우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때 생각 정리를 한 초아가 돌아오고 있었다.
초아를 보자 모두들 죄라도 진 듯 갑자기 얼어 붙었다.
"왜? 나 몰래 맛있는 거라도 먹고 있었어? 아니면 내 흉을 봤나? 왜 이렇게 긴장들 하고 있을까.. 호호."
"무슨 소리야. 초아, 널 빼놓고 뭘 먹을리가.. 그냥 여기 두 사람 이야기 중이었어."
"아, 무영이와 연화가 둘이 사귀는 사이가 됐다는 거? 이제 연화는 고생문이 활짝 열렸지. 무영이가 얼마나 여자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는데.. 앞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을거야. 호호호."
초아가 환하게 웃으며 농담을 하자 우리 모두의 분위기가 풀렸다.
"정말이야? 무영 소협이 그 정도로 이해력이 떨어지나?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고, 조금 일찍 말해 주지 그랬어. 호호."
연화 소저도 초아의 농담을 같이 받아주며 즐거운 분위기가 되었다.
그 뒤로도 한참동안 초아와 연화 소저 그리고 여자 두명까지 나를 놀리며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어색함 없이 다시 편한 사이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다시 호수에서 무림맹 부대들과 사도련 부대들의 대결이 있었는데 첫날과 결과는 비슷했지만 압도적인 차이는 나지 않았다.
사도련 부대 사람들은 이 결과에 크게 당황한 분위기였다.
첫날은 압도적 차이라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던 무림맹 부대가 단 하루만에 수영을 익힌 자도 꽤 되고 수영을 못하더라도 대부분이 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놀라게 할 만 했다.
사도련 부대들은 숙소로 돌아가면서도 내일은 장담할 수 없는 압박감에 환하게 웃지 못했고 반대로 무림맹 부대들은 어제 대결 후에 연습했던 노력의 성과가 나타나자 더욱 열심히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들도 어제에 이어 2차로 연화 소저에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잠수 훈련을 하다가 그 다음부터 수영 할 때 몸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자세를 배웠다.
해보지 않았던 동작들이라 어색한 몸짓이 나왔지만 무림 고수들답게 단시간에 실력이 쑥쑥 늘었다.
한시진 이상 연습하고 나서는 몇몇은 물 속에서 어느정도 수영 실력을 발휘할 정도까지 되었다.
그렇게 그날도 지나가고 다음날 다시 대결이 진행되었을 때는 이 대결을 주관했던 관리자 또한 놀랄만한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2 대 2 , 완벽히 패배했던 첫날에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였다.
단 이틀만에 따라잡아서 승부의 균형을 맞춰버렸다.
무림맹에서 승리한 부대는 내가 속한 남해부대와 적운이 속한 동악 부대였고, 사도련에서는 장강수로채 등이 속한 남부 부대와 풍현이 속한 북부 부대가 승리를 거두었다.
또 다시 패배한 무림맹 두 부대는 그 곳에 남고, 사도련에서 패배한 두 부대 역시 그 곳에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가 다시 호수로 올라왔을 때는 사달이 나 있었다.
무림맹 두 부대와 사도련 두 부대가 양쪽으로 갈라져서 서로에게 검을 겨누고 서 있었다.
"이 정파 위선자들, 네 놈들이 우리 형제들을 죽였지?"
"무슨 헛소리냐.. 이 악독한 사파놈들아, 너희들이 오히려 우리 세가 사람들을 죽였잖아."
그들은 서로를 욕하며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양 쪽에 모두 죽은 사람이 있나... 정과 사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든 조합인데.. 결국 일이 터졌버렸군."
양쪽의 말을 들어보니 사건의 경위는 이러했다.
무림맹 두 부대와 사도련 두 부대는 대결이 끝난 후 서로 호수에서 연습을 마치고 호수를 경계로 완벽히 나뉘어 노숙을 했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사도련 쪽에는 대뢰음사의 두 사람이 주검으로 발견되었고 마찬가지로 남궁세가의 두 사람 역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양쪽 다 그들이 죽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은 없었고, 그들은 검상을 입었는데..
주검으로 발견된 대뢰음사 고수 두 사람은 사인의 원인으로 보이는 상처 부위에 점창파의 무공인 사일검법에 베였을 때 나타나는 특유의 검상이 남아있었고, 반대로 남궁세가의 두 고수는 사인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부위에 대뢰음사의 열화신장에 의한 화상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그렇게 양쪽 시신에 증좌가 명백히 남아있자 직접적인 얽혀있는 문파들은 사생결단을 내려하고 나머지 무림맹 문파와 사도련 문파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서로 검을 빼들고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여기에서 싸움이 일어나 커지면 정사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기에 어느 쪽도 쉽사리 먼저 공격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나는 풍현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번 사건 뭔가 이상하지 않아?]
[너도 그렇게 느꼈구나. 누군가 일부러 싸움을 만드려고 판을 짠 듯한 느낌이 들어.]
[그렇지. 여기서 누가 한번 기름만 끼얹은다면 정사대전이 발발하겠지.]
[맞아. 그래서 이상해. 무림맹과 사도련 모두 그걸 원치는 않을텐데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건.. 반란군..아니면 그들을 돕는 무림세력이 벌인 일이 아니겠어?]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이야. 그럼 이제 움직이겠군.]
[아마도, 숙소에서 쉬던 우리까지 왔을 때 일을 벌여야 판이 더 커질테니까.. 빨리 찾아내야해.]
이런 상황을 주변에 알려야했다.
그래서 일단은 믿을 수 있는 나의 방 동기와 초아의 방 동기들 그리고 적운에게 알렸다.
[지금 일이 잘못되면 정사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어.. 상황이 급박하니까 너희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사도련을 향해 공격을 한다거나 암기를 쓰려는 자가 있으면 즉시 제압해 줘. 또는 공격을 선동 하거나 하는 경우에도..]
풍현 역시 자신의 문파 사람들과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말을 하며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나서 무림맹 각 부대의 지휘관에게도 전음 보냈다.
전음으로 상황 설명을 하며 부대원들을 통제 시켜달라고 했다.
지휘관들도 검을 내리고 진정을 하며 자신의 부대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풍현이 나서서 사도련 각 부대의 지휘관들에게 통제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양쪽의 타오르던 열기가 사그라들고 소강상태로 가니 갑자기 몇몇 사람들이 소리를 높여 선동하기 시작했다.
[저들이로군. 일부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일이 커지기 전에 일단 모두 제압해야겠지? 무림맹 쪽은 내가 친구들과 막아볼께.]
내가 전음을 보내자 풍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사도련은 내가 맡을께. 한꺼번에 제압해야하니 열 세고 시작하자.]
적운과 내 방 동기들 그리고 남해검녀문의 세 명과 초아 방 일행들에게 전음을 보낸 후 움직일 준비를 했다.
무림맹에서는 내가 움직임을 시작하면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동료들이 움직이기로 하였다.
나는 제일 먼저 가장 선두에서 사도련에 욕설을 퍼부으며 선동을 하고 있는 개방의 사람부터 아혈을 짚어 말을 못하게 막고 마혈도 짚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갑자기 같은 편이라 생각한 내가 자신의 문파 사람을 공격을 하니 같은 문파원들이 화를 버럭내며 말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왜.. 우리 사형의 혈도를 짚은 겁니까?"
내가 행동을 시작하자 내 동료들이 마찬가지로 소리지르는 모든 이들을 잠잠하게 만들었다.
제압당한 이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주변 사람들 또한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몰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반대편 사도련에서도 무림맹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나와 동료들은 양쪽에서 제압한 자들을 각 부대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끌고 나왔다.
"이들 중에 남궁세가와 대뢰음사의 고수들을 죽인 범인이 있을 겁니다."
나의 말에 제압되어 있는 자들은 아혈이 막혀있어 말을 못해 억울해 하는 눈빛이었고 그들의 문파 사람들이 대신 항의를 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우리 문파의 사람이 죽였다는 증좌가 있어요? 그건 당신의 일방 주장이니 증거부터 내놓으시요."
"곧 증거가 드러날테니 걱정마세요. 이분들 모두가 범인은 아닐테니 범인 아닌 분들께 손을 쓴 것은 먼저 사죄드립니다."
제압한 자들 중 범인을 찾기위한 방법을 각 부대 지휘관들이 논의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할까요? 일단 큰 싸움이 될까 싶어서 소협의 말을 따랐는데.. 증거를 못 내놓으면 우리가 곤란해 집니다."
"걱정마세요.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나의 말에 그곳에 모인 지휘관 모두가 나에 시선이 쏠리며 나의 입만 바라보았다.
"저들 중에 대뢰음사에 소속된 분들이 있습니까?"
"소협, 없소이다."
"그럼 점창파에 소속되어 있는 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