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화 소저의 말에 모두 물속으로 들어가서 숨을 참고 있었다.
눈을 뜨기도 어려워 눈을 감고 숨을 참고 있는데 연화 소저가 물 속으로 들어와 눈을 뜨라고 우리들의 눈에 가벼운 자극을 주었다.
눈을 떠보니 처음에는 따가웠지만 어느새 적응해서 눈을 뜨고 서로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들어온 지 오래 되지 않았는데 추대운과 강소하 그리고 모용욱까지 세 사람은 숨을 오래 참지 못하고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고개를 돌려 주소은 소저와 당영 소저를 보니 제법 숨을 잘 참고 있었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초아를 보니 이미 한계치에 도달 했는데 억지로 참고 있는 듯 했다.
얼마 안 지나서 초아가 올라가고 그녀를 이어 당영 소저와 주소은 소저도 숨을 참지 못하고 올라갔다.
나도 숨을 가빠와서 수면 위로 올라 가려했는데 갑자기 연화 소저가 내 손을 잡고 안 놓아 주는 것이었다.
'뭐지..갑자기 연화 소저가 내게 왜 이러지.. 나 숨 막히는데..'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데 연화 소저는 손짓으로 나에게 진정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숨이 부족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녀를 믿고 호흡을 가다듬고 버텼다.
그랬더니 잠시동안은 마음이 안정되며 숨이 차지 않았다.
다시 숨이 가빠지고 위기상황이 올 때 내 손을 잡고 있는 연화 소저의 손을 꽉 잡으며 버텼고 다시 안정이 찾아왔다.
그렇게 한번을 더 반복한 후 그녀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다.
"푸우욱"
수면으로 올라온 나는 입 속에 물과 함께 호흡을 뱉어내면서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먼저 물 위로 올라온 친구들이 나를 놀라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영아 대단한데, 진짜 처음 맞아? 어떻게 하면 처음부터 그렇게 물 속에서 오래 버틸 수 있어?"
"그냥 죽기 전까지 버텼어. 연화 소저가 안 내보내줘서.."
"호호. 무영 소협이 잠수에 소질이 있는 거 같아서.. 조금 더 붙잡아뒀어요."
"연화 소저, 저 확실히 소질 있는 거 맞아요?방금 저승사자가 눈 앞에 아른거렸는데."
"원래 그렇게 배우는 거에요. 다시 물 속에 들어가면 이제 물 속 안에 있는 게 조금 편하다고 느껴질 거에요."
다시 연화 소저의 말에 우리들은 물 속으로 들어갔다.
두번째에는 확실히 우리 모두 첫번째보다 훨씬 오랜 시간동안 물속에 머무르다가 올라갔다.
'연화 소저의 말대로 이제 물 안에서 조금은 안정하고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우리는 다섯 정도를 반복한 후,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내일 다시 해요."
연화 소저의 말에 제대로 수영을 배우는 건 내일로 미루었다.
호수 밖으로 나온 남자들은 윗옷을 벗어 물을 짜내기 시작했다.
나도 윗옷을 벗고 물을 짜내고 있었는데,
"무영아, 무슨 남자가 무슨 목걸이를 차고 있어. 그거 목걸이 네 거 맞아?"
강소하가 내 목에 걸린 목걸이를 보고 말하자 모두의 시선이 내 목에 걸린 목걸이로 향했다.
"어.. 이거?이 목걸이는 내 거는 아닌데.."
내가 그 목걸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망설이고 있을 때 초아가 나서며 말했다.
"그거 내 목걸이야. 내가 수영하면서 잊어버릴까봐. 무영이에게 맡겨놓은거야."
"아.. 그런거였어? 난 또 무영이가 이상한 취미가 있는 줄 알았지. 하하"
초아의 말에 모두들 목걸이에 대해 신경을 거두었다.
모두 물 속에서 꽤나 오래 있었기에 몸의 체온이 떨어진 듯 몸을 떠는 친구들도 있었다..
'난 괜찮지만 다들 추워보이는군.'
우리는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급히 불을 피우고 옷을 말렸다.
깨어난 기억
불길이 세지며 옷도 금방 마르고 주변이 따뜻해지자 다들 졸음이 오는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도 살짝 졸음이 와서 눈이 감기려 할 때 내게 전음으로 연화 소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영 소협, 잠깐 저랑 이야기 좀 해요. 다들 졸고 있으니 조용히 절 따라와요.]
[네. 연화 소저.]
'갑자기 무슨 할 말이 있는거지?'
그녀가 조심히 일어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걸어가자 나도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걷다가 멈춰선 뒤 연화 소저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나서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후 내게 말했다.
"소협, 그 목걸이 진짜 누구 거에요?"
'초아가 자신의 목걸이라고 했는데 그 말을 안 믿는 건가?'
"그게.. 초아가 자신의 목걸이라고.."
나의 말을 자르며 연화 소저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닌 거 알고 있어요. 소협이 대답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초아가 그냥 둘러댄 이야기잖아요."
'역시 여자들은 직감이 너무 좋아. 이미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한데..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그래요. 사실대로 이야기 할게요. 그 목걸이는 제 것도 초아 것도 아니에요. 전에 말씀 드렸던 2년 전 세상을 떠난 제가 연모했던 그 여인의 목걸이에요."
"그 목걸이가 소협이 연모했던 여인의 목걸이라고요?"
"네. 그녀를 잊지 못해 2년전부터 그녀의 유품인 목걸이를 계속 제 목에 걸고 다녔어요. 이제는 놓아줘야겠지요."
그 말과 함께 목걸이를 목에서 풀려고 하는데 갑자기 연화 소저가 내 손을 잡았다.
"그러지 말아요. 그대로 둬요."
그녀의 말에 목걸이를 잡았던 손을 내려놓았다.
"연화 소저, 괜찮아요? 안색이 안 좋은데.. 제가 아직까지 그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린 거 같아서 화난 거에요?"
연화 소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게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무영 소협.. 그 목걸이의 주인이었던 여인에 대해 말해 줄 수 있어요?"
"네? 그녀에 대해서요?"
"알고 싶어요. 무영 소협이 좋아했던 그 여인에 대해서요."
연화 소저가 너무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어서 말을 안 해주기도 힘들었다.
'연화 소저에게 황녀님을 좋아했던 것들을 다 말해도 되려나..'
"그녀는 지체 높은 신분을 가진 여인이었어요. 전 그의 호위에 불과했고요."
나의 말을 듣고 그녀가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나를 바라보았다.
"소협이 그녀의 호위였다고요?"
"네.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밤에만 지키는 호위요. 우리는 그림자 무사로 불렸죠."
내 말과 함께 연화 소저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소저, 왜 울어요?"
"아니에요. 그냥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어요."
"진짜 괜찮은거죠?"
"네. 소협이 그녀의 밤을 지키는 그림자 무사였다고요? 그녀의 신분이 정말 높았나봐요?"
"네. 그녀는 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신분이 높은 분이였죠."
"그 분을 정말 좋아했나요?"
"네. 많이 좋아했어요. 그래서 평생을 옆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켜주지 못했죠. 그것도 두 번씩이나.."
나의 말에 연화 소저가 멈칫하더니 내게 물었다.
"두 번이요? 언제였는데요?"
'전생의 일을 사실대로 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한번은 아주 오래 전이에요. 제가 그녀를 지키지 못하고 그녀 앞에서 먼저 쓰러져 버렸어요. 그리고 한번은 2년 전 너무 늦게 그녀를 발견해서 지킬 기회조차 없었어요."
"그 아주 오래 전이라는 게 어릴 적을 말하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고, 그 이전이라고 볼 수도 있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그 부분은 설명하기가 조금 복잡해요. 소저는 모르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나의 말에 연화 소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2년 전에 그녀를 늦게 발견했다는 건 그녀를 찾았을 때 이미 죽었다는 건가요?"
"네. 이미 그녀는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그럼 그녀의 시체를 직접 본 건가요?"
"어떤 이가 그녀를 죽이고 시체를 불태워 버려서..얼굴을 확인하지는 못 했어요. 하지만 불에 타버린 시체에 이 목걸이가 걸려 있었어요. 이건 그녀의 목걸이가 확실하거든요."
연화 소저는 나의 말을 다 듣더니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다가와 내 얼굴을 만졌다.
"이 얼굴, 정말 소협 맞아요? 전 자꾸 아닌 거 같아요."
'설마 내 인피면구가 걸린건가? 단 한명도 내가 인피면구를 쓰고 있다는 걸 몰랐는데.. 연화 소저는 이걸 알아차렸단 말인가?'
"소저..사실 난.."
그 때 누군가 우리쪽으로 다가오는게 느껴졌다.
"무영아, 어디 있어?"
초아가 나를 부르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 연화는 왜 울어?"
"그게.. 연화 소저가 슬픈 일이 있었나봐. 달래주고 있었어."
"네가 울린 거 아냐? 연화야, 무영이가 너에게 무슨 실수라도 했어?"
연화 소저가 눈물을 닦으며 초아에게 말했다.
"아니야. 그냥 내가 예전에 좋아하는 분이 생각나서 울컥한 마음에 눈물이 쏟아져서 무영 소협이 달래 주려고 그런거야."
"그래? 그런거지. 두 사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니지?"
나는 초아의 말에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연화 소저도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가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표정이 바뀌며 초아에게 말을 했다.
"초아, 네가 그렇게 말하니 더 이상 너에게 숨기지 못하겠다. 나 무영 소협을 좋아하고 있어."
"뭐? 연화, 네가 무영이를 좋아한다고? 너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잖아. 그 사람은 어쩌고 왜 무영이를.."
"처음에는 그 사람과 비슷한 느낌에 관심이 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무영 소협이 그 사람 같아 보였고. 이제는 그 사람보다 무영 소협이 더 좋아져버렸어."
연화 소저의 직설적인 고백에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초아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연화, 너 그렇게 안 봤는데..진짜 어이가 없네."
"초아야. 그만해. 연화 소저는 잘못 없어. 내가 먼저 좋아한 거야."
"무영이 너까지.. 네가 힘들어 할 때 항상 옆에 있어주고 그리고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 걸 알면서..넌 나에게 이러면 안되지."
"미안해. 초아야."
초아는 눈물을 흘리며 나의 앞을 스쳐가 버렸다.
'초아를 그냥 보내자니 너무 미안하고 그렇다고 연화 소저를 두고 초아를 붙잡으러 갈 수도 없고, 미치겠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는 나에게 연화 소저가 말했다.
"미안해요. 무영 소협. 내 마음대로 속마음을 말해서 초아에게 마음의 상처를 줬네요. 하지만 초아를 계속 속이기가 힘들었어요."
"아니에요. 어차피 한번은 초아에게 이야기를 했어야 했으니까요. 다만 제가 초아에게 미리 말했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텐데.. 제가 우유부단해서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네요. 미안해요. 초아에게는 제가 이따가 가서 잘 설명하고 소저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지 않게 할게요."
"무영 소협, 너무 애쓰지는 마요. 하루 이틀 지나면 초아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질테니.. 잠시 내 옆에 여기 앉아 봐요."
내가 연화 소저 말대로 그 옆에 앉아 있자 그녀가 자신의 품 안에 나를 감싸 안아주었다.
이 포근한 느낌.
'언젠가 느껴본 편안함인데..언제였더라..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한데..내가 이런 행복을 누려도 되는걸까?'
그녀 품에 안겨 있는 나는 문득 군부에 있던 그 시절 함께 했던 동료들과 예현, 석견 그리고 대장님을 비롯한 그림자 무사 동료들이 떠올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런 나를 토닥이며 편안하게 해 주었다.
너무나 편안했는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며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다.
눈을 떴는데 처음 눈앞에 보이는 것은 동굴 종유석에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일어나야 하는데..여긴 어디지..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잠시 후 멀리서 흐느껴 우는 여인의 소리가 들렸다.
"흐흑 흑흑흑..잘한거야. 흑흑.. 안 그랬으면 그가 죽었을테니까.. 흑흑.."
'이건 초아의 목소리인데.. 이게 무슨 소리지?'
"괜찮아..흑흑..내 첫 순결이 사라졌지만..무영 소협이였으니.."
'뭐라고? 내가 초아를?.. 설마 이게 오독교에서 중독되고 하루가 지나 깨어난 그 중간의 기억이라는 말인가?'
초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충격적이라 순간 꿈에서 깨어날 뻔 했다.
잠시 후 울음을 그친 초아는 옷을 입는 듯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정신은 멀쩡한데 갑자기 다시 눈이 감겼다.
그 때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초아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내 옆에 앉더니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혼잣말하듯 조용히 말을 했다.
"아까는 그렇게 짐승처럼 무섭게 달려들더니.. 지금은 순한 양처럼 잘도 자네요. 아까는 소협의 의지가 아니였으니 저도 잊을께요. 이건 수면향이라서 맡으면 하루는 푹 잘 거에요. 그 때는 모든 좋지 않은 기억은 다 지우고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일어나요."
그 말을 하고 초아는 내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올리고 향긋한 향을 내 콧속에 넣었다.
그 향에 취해 서서히 잠이 들어가는데 그 향과 함께 초아의 살냄새가 코 끝에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