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79화 (79/114)

[절대 눈 뜨면 안되요. 소협을 죽일지도 몰라요.]

[네. 절대 안 뜰게요.]

영경 소저도 통 안으로 들어가더니 연화 소저에게 말했다.

"아. 너무 따뜻하고 좋네요. 아까의 긴장이 확 풀리네요. 잘못하면 걸릴 뻔 했어요. 밖에서는 아직까지 절 찾고 다니나봐요 ."

'걸릴 뻔? 설마..아까 회의실에서 수뇌부에 쫓겨 도주한 사람이 영경 소저였던거야?'

연화 소저는 내가 의식이 되었던 건지 영경 소저에게 말을 했다.

"얼른 씻고 나가고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해요."

"아무도 없는데 그냥 이곳에서 이야기 할께요. 일단 무림맹이 그들을 도운 흔적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내일 훈련은 보통 훈련은 아닌 듯 해요."

연화 소저도 체념한 듯 날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건 좀 더 알아보도록 하죠. 보통 훈련이 아닌거 같다니요?"

"훈련이라는데 사상자가 꽤 발생할 수도 있다고도 하고 위험한 자들을 무림맹에 들였다고도 하고.."

"위험한 자들이요? 그게 무슨 소리일까요..또 다른 이야기는요?"

"그게.. 마지막에 제가 실수를 해서 숨어있는 게 들켜서 도망쳐 나오느라.. 그 정보가 다에요. 죄송해요."

"아니에요. 고생 했어요. 영경 사매."

영경 소저는 이각정도 씻고는 통을 나와 천을 두른 후 연화 소저에게 말했다.

"이제 가죠. 연화 사매."

"영경 사매, 먼저 나가서 옷 입고 있어요. 난 조금만 더 씻고 갈께요."

"아까는 저에게 거의 다 끝났다고 하시더니..따뜻한 물 속에 있다보니 나가기가 싫어신가보구나. 호호."

"네..통 안에 있다보니 그러네요. 호호."

영경 소저가 먼저 나가 옷을 다 입을 때쯤 연화 소저가 일어나며 내게 전음을 보냈다.

[저희가 나가면 조금 이따가 바로 나가세요. 걸리지 말구요. 소협의 나머지 자세한 사정은 다음에 듣겠어요. 그리고 오늘 나와 사매가 나눈 대화도 당연히 혼자만 알고 계셔야하고요. 알겠죠.]

[네. 소저. 감사해요.]

연화 소저는 큰 통을 덮고 있던 천을 거두어 자신의 몸을 두른 후 주렴을 열고 탈의실로 걸어나갔다.

그때서야 눈을 떴는데..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주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연화 소저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그녀들이 문을 열고 나가고 나도 급히 통 안에서 나와 몸에 물기를 털고 급히 그곳을 빠져나와 여자 숙소를 벗어났다.

나는 주변을 살펴가며 남자 숙소에 있는 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세 사람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그 꼴은 뭐지? 밖에 폭우라도 내리나?"

"폭우는 무슨.. 좀 전까지 별도 선명하게 보였는데.."

"그럼 오늘도 혼자 호수를 돌다가 발이 미끄러져 호수에라도 빠졌나? 하하."

'그래. 그나마 그게 제일 말이 되는군.'

"대운아 네 말이 맞아. 호수를 돌다가 발을 삐끗해서 호수에 빠졌어."

"어이가 없고만. 물에 빠진 생쥐 꼴로 들어와서 무림인이 발을 삐끗해서 호수에 빠졌다고 하면 그걸 우리가 믿을 줄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거야?"

그 때 우리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시죠?"

"무영이를 찾아왔습니다."

'저 목소리는..적운이구나. 걱정되서 찾아왔나?'

"무영이 너를 찾아왔다는데.. 네가 문을 열어줘야지."

"응. 알겠어."

내가 문을 열자 적운이 문 앞에 서 있다.

방 동기들은 적운을 알아보고 놀라고 있었다.

'적운이를 이용해야겠어.'

[적운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당황하지 말고 맞다고만 해줘.]

[알겠어.]

"왠일이야? 아까 일 때문에 사과하러 온거야?"

"어.. 아까 일 때문에 미안해."

"괜찮다고 했잖아. 네가 일부러 민 것도 아니고 지나가다 부딪쳐서 그런거니까.."

"그렇기는 한데.. 내가 미안해서.."

"뭐. 옷이랑 몸이 젖은 거 말고는 다친데는 없으니까. 괜찮아."

"사과도 하고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래. 나도 너랑 친하게 지내면 좋지. 여기는 내 방 동기들이야."

나는 내 방 동기들을 적운에게 소개시켜주고 그들과 안면을 터 주었다.

그래야 내가 적운을 만나는 게 더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적운과 방 동기들도 성격이 잘 맞아서 쉽게 친해졌다.

나는 적운에게 전음으로 아까 무림맹 회의실에서 들었던 것들을 이야기 해 주었다.

적운은 나의 이야기를 듣고 수뇌부들이 말한 그들이 누군지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너무 애쓰지마. 내일되면 알텐데.. 우리는 일단 내일 훈련이 일반적인 훈련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으니 조금은 덜 당황하겠지. 그리고 무림맹이 반란군에 개입했다는 흔적은 아직까지는 발견 못했으니.. 일단은 믿어봐야지.]

[그래. 고생했다. 물에 빠져 온몸이 다 젖기까지 하고 내가 그 일을 했어야했는데.. 널 시켜서 미안하네.]

[아니야. 괜찮아. 나도 나름 재미있었어.]

'고생도 했지만, 오랜만에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아 제법 재미도 있었고, 또 통 안에서 그녀 때문에 심장이 두근두근 거려 죽는 줄 알았지. 그러고보니 연화 소저의 그 향기.. 전생에 맡아본 향기인데.. 아 맞다..죽기 전 황녀님이 날 끌어안고 입맞춤 했을 때 맡아 본..세상에서 제일 향기로웠던 그 향이다..'

그런데 왜 그녀에게서 그 향기가 났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오래 전 기억이라 그 향을 착각한 건가? 아니면 연화 소저가 황녀님과 같은 향낭을 쓰나? 그게 가능성이 높겠군.. 그런 거였어. 나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는 향이니..나중에 연화 소저에게 무슨 향낭을 쓰는지 물어봐야지.'

적운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고 나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 침상에 누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꾸 연화 소저의 얼굴이 떠오르고 실제로는 보지도 못한 나신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야릇한 생각이 들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가는 길에 초아를 만났는데 날 보며 물었다.

"눈이 많이 퀭하네. 어제 잠 못 잤어?"

"어.. 어제 잠이 잘 안 와서 밤새 뒤척이다가 한숨도 못 잤어."

"무슨 생각을 하느라 잠을 못 잔거야? 설마.. 내 생각 하느라 잠을 못 잔거야?"

그 때 마침 연화 소저와 주소은소저, 당영 소저도 걸어오고 있었다.

초아와 함께 있는 날 보고 당영 소저가 놀리듯 말하였다.

"무영 소협은 아침부터 초아가 보고 싶어서 여기서 기다린거에요? 호호"

"우연히 만난 거에요."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연화 소저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그녀의 얼굴을 보니 연화 소저의 눈도 퀭한 게 잠을 잘 못 잔 듯 했다.

"그러고보니 오늘 연화도 잠을 잘 못 잤는지 눈이 퀭한데 누가보면 두 사람이 잠 안 자고 만나서 밤새 논 줄 알겠어. 호호"

"영아!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당영 소저.. 농이 지나치십니다."

당영 소저의 말에 연화 소저와 내가 버럭 화를 냈다.

그러자 그녀도 살짝 당황하며 사과를 했다.

"미안. 농으로 한 말인데 지나쳤다면 사과할께."

우리들의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려하자 초아가 나서서 말했다.

"영아도 사과하고 했으니 얼른 밥이나 먹으러가자. 나 배고파."

그녀를 따라 식당으로 가는데 나와 연화 소저가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듯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태산에 오르다.

아침 식사를 하는데 연화 소저가 내게 전음을 보냈다.

[앞으로 계속 볼텐데.. 이렇게 어색한 사이로 지내는 건 서로 불편하니.. 왜 거기에 있었는지만 말해주고 어제 일은 잊기로 해요.]

[네. 그렇게 하시죠. 제가 그곳에 들어가게 되었냐면...]

무림맹 수뇌부 회의실을 갔던 것부터 영경 소저가 실수하여 도주한 것 등 어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솔직하게 그녀에게 전음으로 털어놓았다.

그녀는 내 말을 다 듣고서 그제서야 이해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소협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생겼네요. 첩자도 아닌데 왜 무림맹 수뇌부의 정보를 몰래 들으려 한거죠?]

[그건 영경 소저와 연화 소저도 저와 같은 경우 아닌가요?]

[우리의 이유부터 말하자면 무림맹을 완벽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저도 같은 이유 입니다. 무림맹을 믿어도 되는지 확인하려 했던 겁니다.]

[초아도 이 일을 알고 있나요?]

[초아는 어제 일은 아직 모르지만 제가 무림맹을 조사하는 건 알고 있어요.

나의 말에 연화 소저가 날 한번 쳐다본 후 다시 전음을 보냈다.

[그렇군요. 그럼 이걸로 서로에 대한 오해는 해결된 거 같네요. 소협에게 한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라도 무림맹이 정도를 벗어난 행동을 했다는 흔적을 발견하면 제게도 알려달라고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건 어렵지 않죠. 반대로 소저가 먼저 알아낸다면 제게도 말해주세요.]

마지막 나의 부탁은 그녀가 미소지으며 자신의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훈련복으로 간단하게 복장을 환복하고 다시 모였다.

부대원들을 모두 모은 자리에서 맹주가 진무 교관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무 교관, 자 무림부대원들을 데리고 이동하게나."

"네 맹주님. 다녀오겠습니다."

진무 교관님은 우리를 전체를 보면서 말을 했다.

"오늘부터 우리의 훈련 장소는 이곳 무림맹이 아니다."

"네? 그럼 어딥니까?"

"가보면 안다. 자, 모두 나를 따라오거라."

진무 교관의 말에 2천명의 무림부대원들은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바뀐 훈련장소가 어디일지 궁금해하며 따라갔다.

가까운 곳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하남성 경계를 넘어 산동성 지역으로 들어가면서부터 다들 꽤 먼 곳으로 이동한다는 걸 눈치를 챘다.

반나절 가량 경신술로 달려 도착한 곳은..오악독존 태산.

중원 오대 명산 중에서도 으뜸이라 불리는 태산이었다.

태산은 역대 황제들이 봉선식을 거행했던 곳으로 무림인 뿐만 아니라 중원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신성시 여기는 산이었다.

"교관님, 이곳이 저희가 훈련할 장소 입니까?"

"그렇다. 이제부터 너희는 두달간 태산에서 살아야한다."

"네? 이곳에서 두달을 지낸다고요?"

"그래. 태산에도 무림맹 지부의 숙소가 있으니 오늘부터 그곳에 머물면서 훈련을 시작하겠다."

"숙소는 무림맹에서 쓰던 사람들끼리 그대로 쓰는 겁니까?"

"그렇다. 이곳 숙소도 무림맹에 있는 전각과 크기가 같으니 너희들이 무림맹에서 쓰던 방 번호 그대로 쓰면 된다."

숙소 배정까지 끝나자 진무 교관이 무림부대원을 이끌고 태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너희들에게 말을 해 줄 때가 왔구나. 이번 훈련은 너희들이 그 동안 해온 훈련과는 완전히 다른 훈련이다."

"교관님 이번 훈련은 어떻게 다른 겁니까?"

"이번 훈련은 실전과 같은 경쟁을 통해 너희들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들어 줄 것이다."

"경쟁이요? 저희 4개 지역부대끼리 대결하는 건가요?"

"우리들끼리 대결하면 경쟁심이 생기겠나?"

그 때 우리를 향해 대규모의 인원이 걸어오고 있었다.

대충봐도 훈련이 잘된 정예들이고 그들이 우리의 상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혈운무 군사님."

그는 무림 십대고수이자 사도련의 2인자인 혈비궁의 궁주 장왕 혈운무였다.

사도련의 련주는 파천문의 문주 도제 선용우였고, 그에 비해 무공이나 세력이 아주 조금 뒤쳐진다고 평가받는 이가 혈운무였다.

그는 무공도 뛰어나지만 계략이 뛰어난 백전노장이라 사도련의 군사직을 맡고 있고 있었다.

진무 교관을 보고 혈운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니 자네는.. 무극검제님의 제자가 아닌가.. 정말 오랜만이군. 무극검제님이 생존하셨을 때 함께 본 이후로 처음이구만."

"사부님과 함께 저를 만난 그 때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당연하지. 그 당시 십대고수셨던 무극검제님의 두 제자가 뛰어난 기재라 소문이 나 있었기에 자네와의 만남이 기억에 남아있지. 그 두 제자 중 하나는 무림맹 맹주가 되었고 한 명은 군부의 장군이 되었으니 말일세. 그런 자네를 이곳에서 볼 줄은 생각지도 못했네. 그려."

"어찌하다보니 군부가 무림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되어 이곳에 와 있습니다."

"그말은.. 자네는 아예 무림으로 돌아온 게 아닌가보군. 군부에 돌아갈 생각인가?"

"군부에 제가 필요 없다고 생각이 들기 전까지는 남아있을 생각입니다."

"공손후 맹주는 자네를 옆에 두고 싶어할텐데.. 맹주가 많이 아쉬워하겠구먼. 우리 사도련에는 잘된 일인가.. 허허허."

두 사람은 정답게 안부를 묻고 하며 분위기가 좋았지만 대치하고 있는 무림맹 사람들과 사도련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그들 사이에는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