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초아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초아 주변으로 많은 이들이 몰려오더니 초아에게 말을 걸었다.
"소저, 이름 좀 알려주세요. 이렇게 아리따운 분이 계신지 몰랐어요."
"제가 세상에서 본 여인 중에 소저가 가장 아름다우십니다. 제게도 이름을 가르쳐주세요."
"전.. 한 눈에 소저에게 반했습니다. 제게도 이름을.."
"전 신초아라고 해요. 절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해요."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초아를 보면서 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초아가 이쁘긴하지. 그렇다고 처음 본 여인에게 반했다고 말하다는 건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초아는 그냥 귀찮다고 돌려보내면 되지. 저들을 상대해 주는 건 뭐람..'
나는 괜히 빈정이 상하여 초아를 그곳에 그냥 두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는 아민, 영경, 연화 소저 세 사람이 사내들의 둘러싸야 질문 공세를 받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도 썩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에휴..사내들이란..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군.'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나의 시선은 연화 소저에게 고정이 되어 있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내네..초아보다 더 예쁜 건 아닌데 황녀님의 모습을 닮아서 자꾸 시선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가 연화 소저와 내 눈이 마주쳤다.
연화 소저가 주변의 사내들에게 무슨 말을 한 뒤 나에게 걸어왔다.
"무영 소협, 제게 할 말이 있다고 했죠? 저쪽으로 옮겨서 대화를 할까요?"
'연화 소저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거지? 날 보며 한쪽 눈까지 찡긋하는 게 무슨 신호를 보내는건가? 아.. 저 사람들에게 자신을 구해 달라는 거구나.'
"네. 연화 소저. 저쪽으로 옮기죠."
나는 연화 소저를 데리고 본부 옆쪽에 있는 호수로 이동했다.
다행히 호수 주변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연화 소저는 나를 보며 방긋 웃으며 말했다.
"호호. 고마워요. 소협 덕분에 살았어요."
"제가 뭐 한 게 있다고요. 소저를 보니 너무 인기가 많은 것도 힘든 일이네요."
"제 인기가 아니라 저의 사부님 때문에 그런거죠. 십대고수인 검후의 제자라는 것 때문에 친분을 쌓으려고.."
"아닌데.. 잘못 알고 계신 거 같아요. 그런 사람도 약간은 있겠지만 대부분은 연화 소저의 미모에 반해서 그러는 걸 거에요."
나의 말에 연화 소저가 빤히 보더니 물었다.
"제가 예쁜가요? 소협도 제가 예쁘다고 생각해요?"
"네. 예쁘세요."
"초아 소저랑 저랑 비교하면 누가 더 예뻐요?"
"......"
연화 소저의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고 있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 농으로 한 말인데.. 왜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고 계세요.. 제 앞인데도 대답을 바로 안했다는 건 소협께서 초아 소저가 더 예쁘다고 생각하고 계신거에요. 초아 소저를 좋아하고 계시죠?"
"잘 모르겠어요. 제가 정말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지..아니면 그냥 오래 함께 지내서 정이들어 그런 생각이 드는건지.."
"소협 혹시 마음에 둔 다른 여인이 있어요?"
"네..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에 둔 사람이 있었어요."
"그 분은 어디에 계시나요?"
"......"
연화 소저의 물음에 바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2년 전쯤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 죄송해요.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네요."
"아니에요. 이제는 조금씩 그녀를 지우려고 노력중이니까 괜찮아요."
"아직 잊지 못하시는 걸 보면 소협께서 그 분을 많이 연모하셨나보네요."
"그런 줄 알았는데.. 그녀가 죽고 난 후 시간이 2년쯤 지나니 초아에게 조금씩 마음이 향하는 걸 보면 그녀를 정말 연모했는지도 이제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녀도 날 정말 좋아했는지도 이제는 확신이 없고.."
그러자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연화 소저가 말했다.
"옛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요. 분명 그 분도 소협을 좋아했을 거에요. 그리고 초아 소저와의 관계도 그 분 때문에 밀어내려고 하지 말고 본인의 마음이 가는대로 하시면 될 거 같아요."
"고마워요. 소저의 말을 듣고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진 거 같아요."
"소협께서도 저에게 용기를 주셨잖아요. 그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해 주었으니 비길 걸로 해요."
"그래요. 연화 소저만 괜찮다면 가끔 조언을 청해도 될까요?"
"뭐.. 소협이라면 얼마든지요."
"고마워요. 소저."
그때 연화 소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연화 사저! 어디 있어요?"
"영경 사매, 나 여기 있어요."
우리를 발견한 영경 사매가 다짜고짜 날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서며 피하고 나서 말했다.
"영경 소저 왜 이러세요?"
"우리 연화 사저를 왜 이리로 데리고 나왔어요? 무슨 짓을 하려고."
"무슨 짓을 하려 하다니요.."
내가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자 연화 소저가 영경 소저에게 말했다.
"영경 사매, 무슨 소리에요. 내가 무영 소협께 이곳으로 데려가 달라고 해서 온 건데.."
"네? 사저가 이리로 데려가 달라고 했다고요? 이 사람에게요?"
"그래. 내가 여러사람들에게 둘러쌓여서 정신 없을 때 무영 소협이 보여 도움을 청한 거라고.. 빨리 무례한 행동 사과드려요."
연화 소저의 말에 영경 소저가 쭈삣거리며 나에게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무영 소협. 그런지 몰랐어요."
"아니에요. 오해 할 수도 있죠..그런데 사저를 많이 아끼시니봐요. 주먹부터 날리시는 걸 보면.."
"연화 소저와는 오래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서..그런데 제 주먹을 너무 쉽게 피하시던데..나름 기습 공격이라 통할 줄 알았는데 능력이 대단하시네요."
"과찬이십니다. 운이 좋아 겨우 피했네요."
누군지 알 수 없지만 강력한 내력이 담긴 목소리가 우리들에게 들려왔다.
"모두 무림맹 본부로 모여주세요."
"다 본부로 모이나 보네요. 우리도 이만 가죠."
"네. 소저, 조언은 다음에 또 듣기로 하죠."
"그래요. 소협은 언제든지 환영이에요."
나와 연화 소저의 대화를 듣고 영경 소저가 말했다.
"두 사람 꽤 많이 친해졌나보네요. 연화 사저가 사내와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처음 봐요."
"영경 사매, 사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말고 얼른 본부나 가자구요."
우리 세 사람은 무림맹 본부로 이동했다.
걸어가는데 나의 눈에 한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아니.. 저 얼굴은..오랜만에 봤지만 확실히 그가 맞다...하지만 어떻게 이 곳에 있는거지?'
새로운 인연들
'그가 맞는 것 같은데..가까이에서 본 건 아니니 본부에 일단 모인 후 기회를 봐서 확인을 해봐야겠다.'
그의 얼굴을 본 순간부터 나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본부로 모이라는 명이 있었기에 다가가지 못하고 연화 소저, 영경 소저와 함께 본부로 이동하고 있었다.
본부에 정파 무림인들이 모두 모이자 아까 본부로 모이라고 말을 했던 그 사람의 음성이 다시 들렸다.
"저는 무림맹 소속 군사 제갈현입니다. 맹주님께 급한 용무로 출타 중이시라 대신하여 제가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나라가 이민족에 의해 위험에 처했을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까지 와 주신 무림맹 산하 무림인들께 무림맹 전체를 대신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이 곳에서 훈련 후 북방으로 가서 이민족의 침략을 막아낸다면 모든 백성들도 여러분의 그 용기와 희생을 칭송하며 잊지 않을 겁니다. 우리 무림맹도 선두에 서서 여러분과 함께 적들을 무찌르겠습니다."
"와! 무림맹 만세."
"무림맹과 함께 여진족을 섬멸하자."
'무림맹 군사라는 자가 제법 선동을 잘하는군. 이들의 사기가 금세 많이 올라갔다.'
여기에 모인 무림인들은 대체적으로 무공실력은 일류이상의 경지에 오른 자들 이었지만 군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기에 오합지졸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몇마디 말로써 사기를 높여 순간적으로 정예병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하려면 말하는 자에게 상당한 통솔력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남해부대의 지휘관인 전소욱이 물었다.
"부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다시 재편합니까?"
"일단은 4개 부대로 나눈 것은 그대로 가겠습니다."
군사의 말에 여기저기서 장탄식이 나왔다.
그것은 남해부대에 속해있는 4명의 미인들과 함께 훈련을 받고 싶은 다른 부대원들의 실망이 섞인 한숨소리였다.
"훈련이 끝날 때까지만 인가요? 아니면 이대로 전장에서도 쭉 가는 겁니까?"
"일단은 훈련 때까지 입니다. 훈련 강도가 좀 센 편이서 기간 중에 꽤 많은 탈락자가 생길 수 있어서.. 그때는 재편이 필요할 듯 합니다."
"그리 훈련 강도가 셉니까?"
군사의 말 중에 훈련 강도가 세다는 말에 다들 얼굴이 표정이 굳어졌다.
시작도 전에 군사의 입에서 훈련 강도가 세다는 말이 나왔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힘든 훈련이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했다.
'하긴 제대로 군사 훈련도 받지 않은 무림인들이 전장에서 큰 활약을 하기는 어렵지. 그렇다고 오래 훈련을 시킬 시간적 여유도 없으니.. 결국 방법은 하나, 최대한 실전과 같은 고강도 훈련뿐.'
나의 예상대로 군사의 입에서 실전 훈련이라는 말이 나왔다.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3개월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그 안에 정예병이 되려면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북방으로 갔다가 승전보를 가지고 돌아올 수 없습니다."
'무경원에서 수많은 훈련과 경험을 쌓았던 나였지만 3개월간 군부에서 받았던 군사 훈련이 전장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여기 있는 무림인들은 그보다 더 센 강도로 훈련을 해야만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군사의 말이 끝나자 모여있는 무림인들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달리 많이 침체되어 있었지만 대다수 무림인들의 눈빛에는 어떤 훈련도 이겨내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잠시 후 무림맹에 모인 무림인들의 숙소 배정이 시작이 되었다.
한 부대당 인원은 오백명이었고, 4개 부대 총 2천명의 무림인들이 잠을 자는 것부터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숙소 배정은 부대 별로 하지 않고 무작위로 남녀만 구분하여 무림맹에 있는 전각들에 배정되었다.
한 개 전각에는 한 개의 방에 4인이 쓸 수 있고 50개의 방이 있어서 총 200명 정도가 잘 수 있었다.
여자들은 인원이 4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두 개의 전각에 나누어 배정 되었다.
남자들은 1600명이라 8개의 전각에 나누어 배정 되었다.
자신들의 배정된 숙소를 보고 여러명이 불만을 호소하고 있었는데 영경 소저도 그 중에 한명이었다.
"저도 이쪽 방으로 배정해 달라고요. 왜 우리 문파 사람들이 같이 배정이 안 되었냐고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
"연화 사저와 아민 사저는 같은 전각에 방은 옆방으로 배정해주었는데 그게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요?"
"그저 무작위로 배정해서 이렇게 된 겁니다. 이번 기회에 다른 문파분들과 함께 방을 쓰며 친해져 보십시요."
영경 소저의 말에도 숙소 배정을 맡은 무림맹 관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결국 영경 소저는 포기하고 짐을 챙겨 자신의 숙소로 들어갔다.
내게 초아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왜? 무슨 일 있어?"
"네가 그렇게 관심을 보이는 연화 소저와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고.."
"아! 그래? 이번 기회에 검후님의 제자와 함께 방을 쓰면서 친해지면 좋지."
"내가 그 소저와 친해지길 바라는 거야? 내가 연화 소저와 너의 사이에 껴서 방해하면 어쩌려고?"
"난 연화 소저와는 그런 사이 아니야. 그리고 연화 소저는 내가 찾던 사람도 아니고.. 다른 정인이 있는 거 같아. "
"연화 소저가 그 분이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아 본 거야?"
"응..만나서 여러 가지를 물어봤는데 내가 아는 그 분과는 너무 많이 달라.."
나의 말을 들은 초아는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너에게는 안타깝지만 나에겐 다행이네.."
"응? 뭐라고?"
"아니야. 나 이제 숙소에 들어 가봐야겠다."
"그래. 들어가서 쉬고 이따가 훈련 때 보자."
나도 배치 받은 전각으로 들어가 나의 방을 찾아 들어갔다.
방에는 세 사람이 이미 들어와 있었다.
"우리 방에 마지막 사람인가 보네요. 반가워요."
"네. 반갑습니다."
"저도 반가워요. 세달동안 잘 지내봐요."
"우리 세 사람은 이미 인사했어요. 소협이 자기 소개하면 우리도 다시 소개할께요."
"네. 전 남부 지역 광동성 현무문에서 온 신무영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나의 소개에 세 사람의 반응은 동일했다.
현무문을 처음 들어 본 듯한 표정으로 갸우뚱거리다가 이내 밝운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남부 지역에서 오셨군요. 현무문은 처음 들어보는데.. 혹시 신생문파인가요?"
"네. 아주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워낙 작은 문파라서 못 들어보셨을 거에요."
"뭐.. 문파 크기가 중요 하나요. 정파 무림인으로 의와 협만 있으면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