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회 회주
다음날도 어김없이 초아 소저가 날 깨워주었다.
그녀와 함께 아침밥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저번에 말했던 새로운 일거리가 오늘 밤에 생겼어요."
"잠입해서 정보를 가져다주기만 하면 되는 거죠?"
"네, 맞아요. 소협은 잘 하실 거 같아요. 딱 우리 하오문에 어울리는 인재에요. 진짜 하오문에 정식으로 들어올 생각 없어요? 호호호."
'나도 사실 하오문과 잘 맞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난 꼭 해야만 하는 다른 일이 있으니까.'
"소저, 미안해요. 난 다른 할 일이 있어서.. 전 어디로 가서 대기를 하면 될까요?"
"그건 지금 대답 말고 천천히 생각해 봐요. 오늘 남부지역 사파 문파들의 회합이 호남성에서 있다고 하네요."
"남부지역 사파라면 어디를 말하는 거죠?
"호남성, 강서성, 복건성, 광동성, 광서성 이렇게 5개 지역을 말해요."
"그곳에 있는 사파 문파들이 전부 모인다는 말이에요?"
나의 물음에 초아 소저가 미소를 지으며 설명해 주었다.
"그건 아니고요. 사파의 유명한 문파들은 사도련으로 뭉쳐있는데 그 곳은 아무나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사파들끼리 흑사회라는 단체를 따로 만들었죠. 남부 지역의 흑사회에 속한 사파 문파의 모임이에요."
"사도련이 상위 단체고 흑사회는 하위 단체 개념이군요."
나의 말에 초아 소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했다.
"네. 간단히 놓고 보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그때 무영 소협이 다녀왔던 오독교는 사도련의 문파이고 사자방이나 금오문 같은 곳이 흑사회 소속이고요."
"흠흠.. 그럼 흑사회에 속한 문파들과 많이 부딪혔는데 하오문이나 저에게 적대심을 품지 않을까요?"
"그건 오늘 회합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겠죠."
'사자방이나 금오문을 괜히 너무 험하게 다루었나.. 그들 하나하나는 별거 아니지만 뭉쳐서 공격해 온다면, 나 하나야 피할 수 있지만 하오문은 피해가 클 텐데..'
나의 표정을 읽었는지 초아 소저가 말했다.
"무영 소협, 저번에 사자방이랑 금오문 등 사파 문파를 초토화시켰던 게 걱정되세요? 혹시나 그 일 때문에 우리 하오문에 피해가 있을까 봐서요."
"네. 그때는 이런 상황은 예상치도 못했으니까요. 너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거 같아서 좀 후회가 되네요."
"다른 사람 눈치 안 보고 문도부터 방주까지 닥치는 대로 패시고는 그제야 몸이 좀 풀린다고 좋아하실 땐 언제고.. 혈귀님 답지 않은 걱정이네요. 호호호."
"크흠. 좋아하다니요. 오랜만에 생각 없이 싸우다 보니 복잡하던 머릿속이 시원해졌다는 거죠."
초아 소저는 야행복을 가져와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오늘은 이걸 입고 가면 돼요. 이번에는 제가 동행할 테니까 잘 배우시고, 다음부터는 혼자 임무를 수행하면 돼요."
"알겠어요. 오늘 확실하게 배우겠습니다."
초아 소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사성까지는 빨리 가도 3시진(6시간)은 걸릴 테니 바로 옷 갈아입고 채비해서 나와요."
"알겠어요. 소저."
우리는 바로 환복을 한 뒤 장사성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눴다.
"소저, 장사성에는 무슨 문파들이 있습니까?"
"일단 가장 큰 세력으로는 사도련 소속의 장강수로채가 있고요. 십대세가 중에 위지세가가 있는데 전보다 세가 약해져서 큰 힘을 쓰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럼 장사성 쪽은 사파가 득세를 하고 있겠군요."
초아 소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네. 남부지역은 정파의 대문파들이 없는 편이라 사파의 힘이 더 강한 편이죠."
"흑사회와 사도련의 관계는 좋은 편인가요?"
"같은 사파고 힘의 차이가 있으니 사도련 소속 문파와 흑사회 소속 문파간의 충돌은 거의 없다고 봐야죠. 오히려 대부분 흑사회 문파들은 사도련으로 들어가고 싶어해요."
'반란군과 함께 명나라를 무너뜨리려 한 무림 세력이 누굴까? 사도련일까? 일단 흑사회는 아니겠구나. 반란을 도모하기엔 세력이 너무 약한 것 같아.'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나요?"
"사도련은 20개의 문파만 속해있는데 5년에 한 번씩 20대 문파를 다시 지정하거든요. 기존 문파들이 힘을 유지하면 그대로 가지만 힘이 약해졌다고 판단되면 수뇌부가 투표를 해서 약해진 문파를 퇴출하고 새로운 문파를 받아들이죠."
"흑사회에 속한 문파들은 호시탐탐 사도련의 빈자리를 노리고 있겠군요."
"네. 흑사회가 만들어진 이유는 그저 세력이 작은 사파 문파들이 다른 문파에 치이는 걸 막기 위해서 하나의 큰 단체를 만들어 다른 문파가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하자는 취지여서.. 실제로는 큰 영향력이나 힘은 없어요. 사파의 진정한 힘은 사도련이니까. 흑사회는 모래성이나 다름없죠. 언제든 허물어질 수 있는.."
'그래서 초아 소저가 내가 흑사회에 속한 문파들을 많이 다치게 했는데도 그 당시에 말리지도 않고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구나.'
"그럼 오늘 회합은 무슨 이유로 모이는 거죠?"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올해 있을 사도련의 20대 문파 재지정 때문에 흑사회에서도 준비를 하려는 거겠죠."
"사도련에서 수뇌부 투표로 선정한다고 했는데 흑사회가 회합을 통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 있나요?"
"사도련에 빈자리가 생겼을 때 새로운 문파로 선정하는 곳은 흑사회에 속한 문파들 중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곳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 자기네끼리 미리 정해놓고 밀어주자는 거죠."
"설마 흑사회 문파들이 서로 밀어주고 사도련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세력을 형성하려고요?"
"오호! 정확히 봤어요. 어차피 흑사회에 있던 문파는 사도련에 들어가도 말석이나 차지할 뿐이죠. 그러면 혼자서는 사도련에서 아무 힘도 못 쓰니 흑사회 소속이었던 문파들을 사도련에 지속적으로 넣어서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려고 계획 중일 거예요."
'무림도 황궁과 다를 게 없구나. 계략과 음모, 권력싸움.. 사람이 모인 곳은 다 이런 것일까?'
초아 소저에게 무림정세에 대해 묻고 대답을 들으며 한참을 걸었더니 어느새 장사성과 광동성 경계 지역에 도착했다.
두시진 가까이 지나 배도 고프고 하여 장사객잔에 들렸다.
우리가 들어가자 점소이가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어서 오세요, 손님. 이쪽으로 앉으세요."
객잔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초아 소저는 점소이에게 말을 걸었다.
"사람이 별로 없네요. 장사가 잘 안되나 봐요."
"오늘따라 유독 손님이 없네요. 잘 되는 날도 있겠죠. 무엇으로 드릴까요?"
"북경오리 한 마리와 이화주 하나 가져다주세요."
"그런 건 안쪽에서 드시는 게 나을 거 같네요.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우리는 점소이를 따라 객잔 안의 별실로 이동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광동지부에서 왔어요."
초아 소저가 점소이에게 향주의 옥패를 꺼내 보여주자 그는 무릎을 꿇고 부복했다.
"일어나세요. 요 며칠 사이 사파 고수들이 이곳을 많이 지나가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장사성에서 회합이 있어서 모인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혹시 회합장소는 어디인지 알고 있나요?"
"저는 모르지요. 하지만 악양루에 가시면 그곳에는 아마 정보가 있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고마워요. 간단한 요기할 거나 가져다주세요."
점소이가 간단한 음식을 가져다주어 먹고 출발하였다.
"초아 소저, 그럼 우리는 악양루로 가서 알아봐야 하나요?"
"아니요. 바로 회합이 있는 장소로 갈 거예요."
"네? 아까 점소이에게 어디에서 회합이 있는지 물어보았잖아요."
"네. 그 점소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아는 것을 정말 나에게 말해주는지도."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악양루는 보통 기루가 아니라 장사성 지부 향주가 머무는 곳이에요. 각 향주끼리는 경쟁 관계라 서로 정보를 쉽게 주려 하지 않아요. 제가 광동에서 왔다고 말하고 향주 옥패를 보여줬는데도 그자는 모른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아마도 장사성 향주가 시켰겠죠."
나는 초아 소저의 말에 놀라며 물었다.
"같은 문파 사람끼리도 그 정도로 반목한다는 말입니까?"
"향주끼리는 문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사이니까요."
"문주 자리를 놓고요? 몰랐네요. 향주 자리가 그 정도로 대단한 자리였군요."
"하오문에는 열 명의 향주가 있는데 각 지역 지부를 맡고 있어요. 십 년에 한번 문주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이고요."
'하오문은 십 년에 한 번씩 문주를 다시 뽑는다고?'
"십 년에 한 번요? 하오문의 문주는 십 년만 하는 거예요?"
"네. 하오문 문주는 십 년만 하고 떠나요."
"어디로요?"
"어디로든 자유에요. 하오문에 남을 수도 있지만 역대 문주님들은 거의 다 떠났어요."
"대결은 무공 대결인가요?"
나의 말에 초아 소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정보 대결이에요."
"정보 대결이요?"
"이용가치는 크지만 각자만 알고 있는 정보를 그때 공개해서 더 대단한 정보를 가져온 향주를 표결로 뽑아서 문주로 추대하는 거예요."
"정보로 먹고 사는 하오문이라서 그런가, 문주를 선발하는 방법도 독특하군요."
"그런 경쟁 방식이 세가 약한 하오문을 험한 무림에서 지금까지 살아남게 했죠."
'무림의 방파들은 각자 다른 생존 방식으로 살아가는구나. 나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자, 이제 회합 전에 미리 숨어야 하니 서둘러가요."
"네, 소저."
나와 초아 소저는 흑사회의 회합 장소인 신비문으로 향했다.
초아 소저 말에 의하면 신비문은 외부 활동이 거의 없고 정사지간에서도 중도 성향의 문파였는데, 최근 문주가 바뀌고 대외 활동을 넓히면서 사파 성향을 띄고 흑사회에도 들어갔다고 하였다.
우리는 신비문 근처에 도착하여 기회를 엿보다가 날이 좀 더 어두워졌을 때 잠입해 들어갔다.
신비문 내에서 경비가 가장 삼엄하고 불빛도 환하게 밝혀져 있어 누가 봐도 그곳이 회합 장소라는 걸 알 수 있는 전각이 있었다.
"바로 들어가죠.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자리 잡고 있어야 하니까요."
"네, 그래요."
우리는 야행복에 얼굴도 복면으로 가린 채 지붕 위로 올라가 은신술을 펼치며 회합이 있는
전각 위로 이동했다.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삼엄한 바깥 경비에 비해 안쪽은 아직까지 경계가 심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한 층씩 아래로 내려가며 그들이 회합하는 방을 찾아갔다.
2층의 어느 방 앞에 경비들이 한데 모여 있는 걸 보니 그 방이 회합 장소인 것 같았다.
초아 소저의 전음이 내게 들렸다.
[어떻게 들어갈까요?]
[일단 옆방으로 들어가서 창문을 통해 들어가는 걸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요?]
[네, 그렇게 해 보죠.]
나와 초아 소저는 경비들 몰래 옆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나와 초아 소저는 창문을 열고 옆방의 창문 위치를 확인했다.
내가 먼저 밖으로 나간 후 회합이 있는 방 창문을 열어보니 다행히도 열렸다.
나는 살며시 방안을 살핀 후 초아 소저에게 신호를 줘 넘어오게 했다.
초아 소저도 그 방으로 들어오고 우리는 숨을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방은 상당히 넓은데 몸을 숨길 만한 장소는 마땅치 않았다.
초아 소저가 숨을만한 빈 공간을 찾기는 찾았는데 너무 좁아서 두 사람이 포개져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곳 말고는 선택지가 없기에 그곳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들어가려고 준비 중일 때 문밖에서 경비들이 인사하며 문을 열려고 하는 게 들렸다.
[서둘러요. 누가 들어오는 거 같아요.]
우리는 급하게 빈 공간으로 들어가며 거의 서로를 감싸 안은 자세로 있게 되었다.-
"생각보다 회합 장소가 깔끔하고 좋구먼. 신비문 문주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구려."
"그러게 말이야. 신비문 문주께서 흑사회 회주를 맡으면서 흑사회도 많이 달라졌잖아."
"그래. 이제 흑사회가 사도련을 흡수하기만 하면 되지. 회주가 계획한 대로만 진행되면 불가능할 거 같지는 않아."
'신비문 문주가 흑사회 회주라고? 누군지 궁금하군.'
살짝 초아 소저를 쳐다보니 나와 감싸 안고 있는 자세가 민망한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초아 소저 괜찮아요? 한참을 이렇게 있어야 할 텐데..]
[괜찮아요. 제 신경은 안 써도 돼요. 그것보다 신비문 문주가 흑사회 회주라니.. 신비문은 흑사회에 가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자가 보통 인물은 아닌 것 같네요.]
[나도 소저와 같은 생각이에요.]
그때 여러 사람이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남부 지역 사파의 문주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내가 말을 하였다.
"누추한 저희 문파에 남부 지역 사파의 수장님들을 초대하게 되어 송구스럽소."
"아닙니다, 회주님. 생각보다 더 훌륭한데요."
"맞습니다. 이 정도면 회합 장소로 부족함이 없죠."
"고맙소. 그럼 지금부터 회합을 시작하겠소."
'뭐지? 낯익은 이 목소리는... 분명히 그분인데.. 그분이 어찌 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