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절정 고수와의 비무
어르신을 따라 전각 밖으로 나와 옆쪽에 있는 공터로 이동을 했다.
"이곳은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으니 우리가 몸풀기에는 이만한 장소가 없네. 자, 준비하게나."
'이곳 지리를 잘 알고 계시는구나. 난 이곳에 이런 장소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네, 그렇군요. 어르신 잘 부탁드립니다."
어르신이 자신의 겉옷을 풀어서 돌 위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내 무공은 크게 두 가지네. 비도술과 연검술 어떤 것으로 상대해 주길 원하나?"
'비도술은 왠지 일격필살의 느낌이 강하다. 연검술의 고수를 상대해 본 적이 적으니 이번 기회에 경험을 쌓아야겠다.'
"저에게 선택하라고 말씀하시면 전 연검술을 상대해 보고 싶습니다."
"연검술을 선택한 연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어르신께서 비도술을 쓰시면 제 피를 볼 것 같아서요. 연검술을 경험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요."
"젊은이가 제법 촉이 좋구만. 비도술에 조금 더 자신은 있다만 그렇다고 연검술이 비도술에 비해 많이 처지는 건 아니니 조심하게나."
"네, 어르신. 조금만 손속에 사정을 두어 주십시오."
"엄살떨지 말게나. 자네가 이 늙은이를 봐주면서 살살 해야지."
나와 어르신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마주 선 상태로 자세를 잡았다.
"뭐.. 무림 선배라고 삼초를 양보하거나 그런 허례허식은 안 하겠네. 바로 시작하지."
"네,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시지요."
어르신이 연검을 손에 들고 자세를 잡자 인자해 보이던 그분은 사라지고 커다란 벽 앞에서 선 것처럼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전에도 단 한 번,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지. 그림자 무사 시절 마지막으로 대장과 비무를 했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하다. 그 말은 이 어르신이 초절정 고수라는 거지. 그것도 초절정의 끝자락에 계시는 분.'
나는 전장에서 수천, 수만의 여진족들 앞에서도 기세에 눌리지 않았는데 싸우기도 전에 어르신의 압도적인 기세에 전의가 많이 상실되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보고 어르신은 상당히 놀라는 눈치였다.
"오호, 역시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직 죽지는 않았군. 내가 보낸 기세에 검을 들고 맞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네. 자네는 내 검을 받아볼 자격이 충분하네."
"전 이미 어르신의 기세에 오금이 저리고 있어요."
"엄살떨지 말게. 난 이것을 용린이라 부른다네. 내가 용린을 꺼낸 지 오래되어 검날이 무딜지도 모르니 이해하게나."
어르신이 연검을 흔드니 검에서 청아한 소리와 함께 연검이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처럼 자유롭게 나부끼듯 움직였다.
풍비연검 1장 연비려천
어르신이 연검술을 시전하자 연검에 비친 햇빛이 나의 시야를 가리고 연검은 하늘을 나는 듯 표홀하게 나에게 날아들었다.
나는 급히 뒤로 물러나며 나의 검으로 용린을 쳐냈다.
'이런.. 검에 이름이 붙어 있을 때부터 보통 검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용린이란 연검.. 대단한 명검이었구나. 쳐낼 때 내 검으로 전달된 진동이 아직까지도 울림이 있다.'
간신히 쳐내고 난 후 내 손에 느껴진 용린의 단단함과 묵직함은 중검을 상대할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연검이 중검의 묵직함보다 더하다니! 이건 어르신께서 나에게 사기를 치신 것 아닌가. 일합에 나의 사기를 꺾어버리는구나.'
하지만 나는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검을 바로 세우고 자신 있는 무공을 시전했다.
창궁무애검법 1장 창궁약연
나의 검은 독수리가 먹잇감을 발견하고 낚아채듯 표홀하고 빠르게 어르신을 향해 날아갔다.
거기에 검기를 실어 보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르신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어르신은 재빨리 자신의 연검에 검기를 불어넣은 후 용린을 흔들면서 나의 창궁무애검법을 막아내었다.
몇 차례 검기와 검기의 충돌이 있었지만 둘 다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잠시 거리를 벌리며 숨을 고를 때 어르신이 말했다.
"오호, 자네 보통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검기를 다루는 솜씨를 보니 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도 오래된 모양이군. 거기에 창궁무애검법이라.. 그러고 보니 내 자네 이름도 모르고 있었군. 남궁세가 사람인가?"
'황궁에서 구해 배웠다고 말할 수도 없고.. 곤란하군.'
"아닙니다. 어르신. 전 신무영이라 합니다. 남궁세가의 무공은 우연히 연이 닿아 익히게 되었습니다."
"하오문의 문도가 아니면서 하오문의 일을 하고 남궁세가의 직계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을 연이 닿아 익혔다니.. 자네의 정체가 점점 궁금해지는군."
"저는 어르신이 누구신지 궁금한데요. 용린이란 검도 보통 재질로 만들어진 검은 아닌 것 같고 무공도 초절정 경지이신 거 같은데.. 하오문과 어떤 관계신지.."
"허허.. 벌써 나에 대해 꽤 많이 알아낸 것 같구먼. 하지만 좀 더 알고 싶으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줘야지."
어르신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용린을 들고 자세를 잡으며 공격해 들어왔다.
풍비연검 2장 치격비환
어르신은 나에게 뛰어들며 용린을 나에게 날렸다.
그것은 초절정 고수만이 가능한 이기어검술이었다.
용린이 나에게 날아와 춤을 추듯 움직이며 나의 검을 두들겼다.
용린이 다시 어르신의 손으로 돌아가기까지 나는 막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르신은 나에게서 볼 건 다 보았다고 생각하셨는지 마무리를 지으시려는 듯 연검 주위로 검강이 둘러싸였다.
"이제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네. 나의 검강을 받아보게나."
검강은 오직 검강으로만 막아낼 수 있었다.
아직까지 초절정 경지에 오르지 못한 나는 검강을 막아낼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한다면 초절정 경지로 가는 길은 한참 더 걸릴 거 같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하여 막아내 보기로 마음먹었다.
창궁무애검법 2장 창궁무한
창궁약연보다 위력도 강하며 연환공격이 가능한 초식에 검기를 형성했다.
'검기로 검강을 막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검기가 한 겹이 아니라 여러 겹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이 생각에 검기를 중첩해서 계속 씌워나갔다.
한 겹, 두 겹 쌓여 내 내공의 한계치인 여섯 겹까지 내 검에 덧씌웠다.
그런 내 모습을 어르신은 흥미롭다는 듯 쳐다보았다.
어르신의 검강과 내 여러 겹이 쌓인 검기가 부딪칠 때 내 검기의 두 겹 정도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나머지 네 겹이 버티면서 어르신의 검강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차례 검을 부딪치면서 결국 6겹의 검기는 사라지고 검강에 제압당하고 말았다.
어르신께 패배를 선언하고 잠시 비무를 복기하며 생각에 잠겼다.
'지금보다 내공이 좀 더 쌓여 검기를 더 많이 겹칠 수 있다면 검강을 좀 더 오래 막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하다 보면 검강의 형태와 점점 비슷해지지 않을까?'
여러 가지 방법을 떠올리다 보니 그동안 막혀있던 초절정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초절정 고수이신 어르신과의 비무가 큰 도움이 되었어. 어르신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구나.'
내가 명상에서 깨어나니 몸이 가뿐해지고 내공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었구나. 이 또한 기연이다.'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어두컴컴한 밤이 되어 있었다.
'벌써 밤이라니.. 내가 꽤 오랜 시간 명상을 했구나. 어르신은 어디 계시지?'
주위를 살펴보니 앞쪽에서 어르신이 호법을 서고 계셨다.
나는 어르신께 다가가 말을 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제가 갑작스럽게 명상에 빠져서 어르신께 폐를 끼쳤네요."
"아닐세. 나도 오랜만에 가만히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보고 있었더니 소소한 깨달음이 있었네. 표정을 보아하니 자네도 명상 속에서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덕분에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젊은 나이에 성취가 그리 빠르다니.. 다음 번에 자네와 다시 겨루어보면 이기기가 쉽지 않겠어."
"아닙니다. 어르신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나도 자네 덕분에 작은 성취가 있었으니 자네에게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이번 기회에 초심으로 돌아가 수련에 정진해야겠어."
어르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멀리서 우리 쪽 방향으로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무영 소협, 거기 있어요?"
청아한 목소리로 초아 소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네. 초아 소저. 저 여기 있어요."
"얼른 와서 저녁 먹어요."
어르신은 초아 소저의 목소리를 듣더니 내게 조용히 말했다.
"초아에게는 나를 만났다고 말하지 말게나. 이따가 몰래 나타나 놀래켜 줄 거니 말이야."
"네. 어르신."
나도 조용히 어르신께 대답하고 초아 소저에게 걸어갔다.
"초아 소저, 벌써 저녁까지 차려 놓은 거예요?"
"벌써라뇨. 지금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어두워졌는데 소협께서는 이 밤중에 공터에서 뭐 하고 있던 거에요?"
"몸이 찌뿌둥해서 몸 좀 풀고 있었죠."
"그럴 거면 저도 부르지 그랬어요. 그럼 같이 비무나 수련을 했을 텐데."
"아.. 그건 생각 못 했네요. 다음 번에는 그렇게 할게요."
나는 초아 소저를 따라 하오문 숙소로 들어갔다.
어르신은 우리가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나타나지 않으셨다.
나는 밥을 다 먹고 그릇을 치우면서 초아 소저에게 물었다.
"초아 소저, 뭐 좀 물어봐도 될까요?"
"네. 아무거나 다 물어보세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방을 전에 쓰시던 분이 누구였는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나의 말에 초아 소저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그러시죠? 방에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니에요. 전혀요. 그냥 방에서 좋은 향기가 나서요. 혹시 전에 쓰시던 분이 여인인가 싶어서요."
"여인은 맞아요. 그런데 누구인지는 말해 줄 수가 없네요."
"아.. 그렇군요. 혹여, 저 때문에 그 여인이 방을 옮기게 된 거라면 너무 미안할 거 같네요."
"그런 거 아니에요. 소협께서는 그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갖지 않으셔도 돼요."
초아 소저와 대화를 나누는 중 어르신이 나타나셨다.
"초아야!"
"......"
"초아야, 잘 지냈니?"
"......"
초아 소저는 어르신이 말을 해도 대답이 없었다.
"초아야, 왜 말이 없어? 나에게 화가 많이 났구나."
"누구시죠? 하도 오랜만이라 기억이 나질 않네요."
"한 삼년만인가? 아닌가.. 사년만인가.. 초아야.. 미안하다."
어르신은 미안한 표정으로 초아 소저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초아 소저는 여전히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사이에 끼어서 나가지도 못하고 두 사람을 지켜보고만 있었는데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는데 내게 눈빛으로 도와달라고 청하셨다.
그래서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초아 소저에게 말을 건넸다.
"초아 소저, 이 어르신은 누구신가요? 저도 소개 좀 시켜주세요."
"소협, 이분은 아주 아주 무책임한 분이세요. 한번 밖에 나가시면 소식도 없고 삼, 사년에 한 번씩 이렇게 찾아와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씀하시는 분이에요."
아직도 화가 덜 풀린 초아 소저의 말투에 내가 어르신에게 말을 하였다.
"아.. 어르신이 크게 잘못하셨네요. 저도 어르신 편을 들어드릴 수가 없네요."
그런 나에게 어르신은 서운하다는 말투로 말하였다.
"자네, 정말.. 이러긴가? 내가 하루종일 호법까지 서 줬는데.."
우리 대화를 들은 초아 소저는 나에게 물었다.
"두 사람 이미 알고 있었어요? 소협 이분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요?"
"아까 낮에 어르신께서 방을 잘못 찾아오셔서 대화를 하다가 어찌어찌하여 비무까지 했어요."
"그런데 아까 저녁밥 먹을 때 만난 걸 왜 말을 안 했어요?"
"그건.. 어르신이 말하지 말라고 하셔서.."
"지금 당장.. 두 사람 다 밖으로 나가요."
초아 소저가 잔뜩 화난 얼굴로 나와 어르신 두 사람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말했다.
"초아 소저.."
"초아야."
"빨리 나가라고요!!"
우리는 줄행랑을 치듯 급히 밖으로 나왔다.
"초아 소저가 저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 봐요."
"성깔은 여전하네."
"어르신 때문에 저도 이 집에서 쫓겨날 거 같네요."
"그러게. 자네는 의리 없이.. 거기서 다 불고 그랬어."
"어르신이 먼저 말을 하셨어요."
"그랬나. 에휴.."
우리 두 사람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