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61화 (61/114)

혈귀라 불리다

'방주는 절정고수라 했으니 처음부터 전력을 쏟아야겠군. 그러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뭐.. 죽으면 그것도 제 팔자고.'

나는 처음부터 양손에 빙백신공과 열화신공의 공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사자방 방주 또한 나의 손에 모이는 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도갑에서 도를 빼 들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자도법 사자포효

그의 도기가 얼마나 강맹한지 양손에 모으던 진기가 다 모이기도 전인데 멈추고 도기부터 막아야 할지 고민이 들 정도였다.

그의 도기에서 한마리 사자가 포효하며 달려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강맹함만으로는 전에 상대했던 호이파의 도법보다 더 우위에 있는 것 같군.'

그의 도기가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때쯤 나는 취선보로 미끄러지듯 옆으로 피하며 양손에 모아둔 진기로 반격을 했다.

열화신공 화기충천

열화신공이 8성 경지에 도달하면서 쓸 수 있게 된 초식으로 그동안의 열화신공에 비해 위력이 배 이상 증가했다.

열화신공은 대성하기 어려운 무공이라 대뢰음사에서도 천축장왕 이후 대성한 자가 없었지만 내가 8성 경지에 오르고 나니 10성 경지까지도 그리 오래 남지 않은 듯했다.

천축장왕 이후 없었던 열화신공을 대성한 자가 내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빙신공 한빙지옥

한빙신공을 8성 경지에 도달하며 쓸 수 있게 된 초식으로 8성 경지 이전의 한빙신공은 차갑고 매서운 북풍한설 정도였다면 한빙지옥은 주변은 물론 몸속의 뼈까지 전부 얼릴 만큼 강력한 위력의 한기 그 자체였다.

한빙신공 역시 한빙마제 이후로는 대성한 자가 없었고 북해빙궁의 현 궁주가 한빙신공을 8성까지 익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만약 북해빙궁 궁주가 대성하지 못하고 내가 10성에 도달한다면 한빙마제 이후로 한빙신장을 대성한 유일한 자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열화신공 하나만 하더라도 막기 쉽지 않은 무공인데 거기에 한빙신공이 더해지자 사자방 방주 사마헌도 충격을 받았는지 긴장감이 얼굴에 역력하게 드러났다.

사마헌의 사자도법과 맞부딪히는 순간 그의 도기와 나의 열화신공의 진기 사이에 불꽃이 일어나며 끊임없이 충돌했다.

나의 진기가 그의 사자도를 뜨겁게 달구자 사마헌은 도를 내던지듯 손을 놔버리고 사자권으로 나에게 반격을 해왔다.

사자권 사자혈투

나의 무공을 막아내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사마헌은 자신의 가슴으로 들어오는 나의 한빙신공을 방어하기보다는 나를 공격하는 것을 선택했다.

나의 한빙신공이 사마헌의 가슴에 들어가고 사마헌은 사자권을 나의 가슴에 꽂아 넣었다.

"우웩.."

"욱.."

나와 사마헌 모두 내상을 입고 상체를 숙이며 한 움큼의 피를 입 밖으로 게워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다시 공격 자세를 잡았지만 사마헌은 몸의 중심을 잃고 주저앉은 채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음한의 최고봉인 무공과 극양의 최고봉인 무공을 함께 쓰다니.. 하늘이 내린 천고의 기재라도 된단 말인가!"

"내가 그 천고의 기재인가 보지. 이제 얼른 빚부터 청산하자고."

"하오문에 이런 인재가 있는 줄 몰랐군."

"난 하오문 사람 아닌데?"

"그런 넌 대체 누구지?"

'난 하오문 사람은 아니지만 어쨌든 하오문의 일을 돕고 있으니 뭐라고 해야 하나.. 용병인가?'

"글쎄. 하오문의 용병쯤 되려나? 아무튼 금화 30냥부터 내놔."

"금화 30냥? 내가 의뢰할 때 약속한 금액은 금화 10냥이었다고. 갑자기 30냥이라니.."

"그때가 언제였는데.. 네가 원래 잔금을 치러야 할 때 말이야."

"3년 전 이기는 하지만.."

'하오문의 이자가 좀 세긴 하네. 뭐 그건 저놈 사정이고 난 모르겠다. 근데 내 빚도 이자가 붙고 있는 거 아냐? 난 200냥인데..'

"3년이나 미뤘으면 이자가 그만큼 붙은 거지. 빨리 내놔. 아니면 네 목숨값으로 퉁치든지. 네가 죽으면 그냥 장례비로 30냥 안 받아갈게."

나의 말에 사마헌은 몸을 덜덜 떨면서 말했다.

"..아니요. 30냥.. 지금 드리겠소."

사마헌이 몸을 일으키려다가 몸에 남아있는 한빙신공의 한기에 얼어붙은 듯 몸이 굳은 채 움직이지를 못하였다.

"하..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고만."

사마헌의 등 뒤로 열화신공의 장력을 일부 넣어주었더니 잠시 후 그의 굳었던 몸이 펴지며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서랍장 속에서 금화 30냥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이제 하오문의 빚은 없는 거죠? 대협께서 또다시 찾아오시진 않겠죠?"

"또 외상을 달지 않는다면야 다신 볼일 없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말로 할 때 순순히 줬으면 얼마나 좋아. 말을 안 들으니까 서로 피곤해지잖아."

"저기.. 대협께서 아까 하오문의 용병이라 하셨는데.."

"어, 용병 맞아. 왜?"

"용병이면 저희도 대협께 돈을 드리면 용병으로 쓸 수 있을까요?"

"푸핫. 뭐라고? 너 아직 정신을 덜 차렸구나. 몇 대 더 맞을래?"

"아..아닙니다! 어서 가 보시죠."

내가 사자방을 나올 때까지 사자방의 문도들은 여전히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너무 세게 때렸나? 아 몰라. 죽진 않았으니까. 간만에 몸을 풀었더니 개운하긴 하네. 이렇게 막사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사자방 밖으로 나왔더니 초아 소저가 날 보고 기겁을 하며 말했다.

"무영 소협, 몰골이 왜 그 모양이에요? 온몸에 피 칠갑을 하고 입가에도 피가 묻었는데.. 많이 다친 거예요?"

"몸에 묻은 피는 사자방 문도들 피고 입가에 묻은 건 내상을 조금 입었어요. 뭐 움직이는 데는 별 무리 없으니 내일도 일할 수 있어요."

나의 말에 초아 소저가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일도요? 그냥 며칠 쉬어요. 그리 급한 것도 아닌데.."

"여기 30냥, 방주에게 받은 거요. 이자가 좀 고리던데.. 그보다 내 일당은 얼마요?"

"음.. 일당은 금화 1냥으로 칠게요."

'매일 일해도 200일이고 이자까지 붙는다면 적어도 일 년은 하오문의 용병 일을 해야겠군. 최대한 빨리 빚을 갚고 떠나야겠어.'

"알겠어요. 소저. 일은 매일 했으면 좋겠어요."

"매일요? 정말 괜찮겠어요?"

"네, 괜찮아요. 내 빚도 하루빨리 갚아야 하니까."

그날부터 나는 매일같이 하오문을 대신하며 빚을 청산하고 다녔다.

처음이 어렵지 점점 손속에 사정없이 상대를 다루다 보니 한 건을 처리하는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니 제법 이 일이 익숙해지고 나름 재미도 있었다.

"무영 소협,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에요?"

"딴생각도 안 들고 일도 재미도 있어요."

"재미요? 무영 소협은 정파보다는 사파 체질인가보네요. 호호호."

"그런가요. 하하하."

"오랜만에 무영 소협 웃는 모습을 봐서 좋네요."

'내가 웃다니.. 이제 조금은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난 걸까..'

"오늘은 또 어디를 갈까요?"

"무영 소협, 오늘 하루 쉬어요."

"쉬라고요? 빨리 빚을 갚아야죠. 매일 이자가 붙는데.."

초아 소저는 웃음을 참으면서 내게 말했다.

"풉! 제가 설마 소협에게 고리 이자를 붙일까봐.. 그래요?

"아니에요?"

"향주님께서 성실하게 일하는 무영 소협에게는 이자 안 붙인다고 하셨으니 걱정 마요."

"진짜요? 다행이네요."

"오늘은 나와 함께 바람이나 쐬러 가요."

"초아 소저랑 저랑 둘이서 만요?"

의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그녀가 말했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진 빚도 갚아야 하잖아요."

"아.. 정보료. 그건 얼마죠?"

"제가 놀고 싶은 날 함께 있어 주면 그걸로 정보료를 공제해 줄게요."

"그냥 같이 있어만 주면 된다고요?"

"네.. 제가 친구가 없어서 주로 혼자 지내서요. 가끔은 누구랑 함께 있으면 위안이 될 때가 있어요. 그때 함께 있어 주면 되는 거예요. 쉽죠? 호호호."

"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네요. 그렇게 하죠."

나의 말에 초아 소저가 방긋 미소를 지어주었다.

'음.. 처음 보는 미소군. 그런데 이상하다. 저 미소가 자꾸 보고 싶어지네.'

"소협, 그런데 왜 제 얼굴을 그렇게 빤히 봐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니에요, 소저. 그럼 가 볼까요. 어디부터 모시면 될까요?"

초아 소저는 기분이 좋은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행사가 있는 날인데 그거나 구경하러 갈까요?"

"행사요? 무슨 행사가 있죠?"

"오늘 광동성 지역 사자춤 행사가 있는데 꽤 볼만해요."

"네, 그럼 가 보시죠."

초아 소저와 함께 사자춤 행사가 열리고 있는 광장으로 향했다.

지역의 큰 행사답게 상당히 많은 광동성 사람들이 광장에 몰려 있었다.

인파를 뚫고 들어가 사자춤을 추는 모습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초아 소저의 외모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다.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여러 무리가 나와서 사자춤을 추는 것을 구경했다.

여러 무리 중 사자춤을 가장 잘 춘 자들을 뽑아 상품을 수여하는데 1등을 한 무리가 사자탈을 벗고 걸어 나왔다.

우리는 앞쪽에 위치하였기에 그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 사람들이 갑자기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으악! 하오문.. 용병.. 혈귀다."

"으으악.. 도망가자. 혈귀다!"

그들이 소리를 지르며 기겁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광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저, 혈귀가 대체 누구길래 저들이 저리 놀라는 겁니까?"

"..소협, 정말 몰라요?"

"네. 전 요즘 하오문 일만 바쁘게 해서 통 주변 소식을 듣지 못했네요."

"저들이 말하는 그 혈귀가 소협이에요."

"네? 제가..요?"

"워낙 일처리를 잘하셔서.. 그리고 항상 온몸에 피갑을 칠하셔서 혈귀란 별명이 붙었어요."

'선행은 쉽게 안 알려져도 악행은 순식간에 퍼진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무림에서 얻은 첫 별호가 혈귀라니...'

"겨우 한 달 밖에 안 지났는데 꽤나 소문이 빠르군요."

"광동성 지역에서는 소협 얼굴이 저승사자보다 무섭게 보일걸요."

"음.. 이 얼굴이 알려지는 건 좋지 않는데.. 아무래도 쫓기는 몸이니까요."

"안 그래도 소협에게 맞는 인피면구를 하나 제작하려고요. 그 얼굴로 악명이 너무 쌓이면 안 좋으니까 이참에 새로운 얼굴을 하나 만들자고요. 지금 갈까요?"

초아 소저와 함께 광동성에서 제일 실력이 뛰어난 인피면구를 제작하는 장인을 찾아갔다.

원래는 사람들 만나는 걸 싫어해서 숨어지내지만 하오문과는 주기적으로 거래를 하는 사이라 초아 소저가 찾아가자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분은 주통 어르신이에요. 아마 중원에서 인피면구를 제작하는 사람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실 거에요."

"세 손가락은 무슨! 내가 첫 번째지."

"그래요, 제가 실수했네요. 주 어르신이 중원에서 제일로 뛰어난 장인이세요."

"안녕하세요. 주 어르신. 신무영이라고 합니다."

"허허. 요놈 참 잘 생겼다. 소싯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주통 어르신의 말에 초아 소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어르신, 젊으실 적 모습을 저희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었는데.. 무영 소협과는 전혀 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크흠! 그 친구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구먼. 근데 두 사람은 여기 무슨 일로 온 거냐?"

주통 어르신의 말에 초아 소저가 대답했다.

"주 어르신, 소협에게 맞는 인피면구를 하나 제작해 주세요."

"에잉. 잘생긴 얼굴 아깝게.. 왜 가리고 다니려 하느냐?"

"그럴 사정이 좀 있어요."

"쫓기고 있는 것이냐?"

"어떻게 아셨어요?"

"잘 생기고 예쁘고 이런 멀쩡한 얘들이 인피면구를 원할 때야 뻔하지. 누군가에게 쫓길 때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용도 아니겠냐."

"해 주실 수 있죠?"

"음.. 난 비싼 몸인데.. 저 녀석 돈은 많이 있냐?"

"돈은 제가 낼 테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세요."

초아 소저의 말에 주통 어르신이 나와 초아 소저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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