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59화 (59/114)

< 그녀의 죽음 >

며칠 뒤 초일 형님의 말대로 화산파가 천하상단을 관리한다는 것을 공표했다.

무림에는 화산파와 천하상단이 밀접한 관계라는 소문이 나면서 무림 어느 문파도 천하상단을 쉽게 보지 못했다.

당가 역시 외팔이로 돌아온 당상으로 인해 분통은 터졌지만 당장은 일을 벌이지 못하게 되었다.

천하상단의 일이 마무리되면서 초일 형님은 화산파로 돌아가야 했지만, 천하상단이 좀 더 안정될 때까지 머문다는 핑계로 한 주간 천하상단에 머물기로 하였다.

초일 형님이 떠나기 하루 전날 초아 소저가 내 방으로 찾아왔다.

"무영 소협, 그자들을 찾았어요."

"그자들이라면 그때 남해 객잔에 나타났다던 그들 말입니까?"

"네, 맞아요. 그동안 그들이 객잔 아래쪽에 있는 마을들을 전부 뒤지고 다닌 모양이에요."

'진유한이 아직은 황녀님 찾지 못했나 보군.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를 만나봐야겠어.'

"그들이 지금 어디 즈음에 있는 거죠?"

"하오문 정보원들을 그들에게 붙여뒀으니 지금 가면 바로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네, 그럼 가시죠."

"둘이서만 가도 될까요? 저들은 다섯이나 되는데.."

"초일 형님에게도 부탁을 드릴까 합니다."

"그분이라면 큰 도움이 되겠군요."

나는 초일 형님에게 가서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는 흔쾌하게 승낙을 하고 나를 따라나섰다.

나와 수향 소저, 초일 형님 세 사람은 먼저 남해 객잔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하오문 정보원의 안내를 받아 그들이 머물고 있는 마을로 이동했다.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후 정보원을 먼저 돌려보낸 우리 세 사람은 그들에게 은밀히 다가갔다.

우리가 조심히 접근했을 때 한 사내가 집을 불태우고 있었다.

집은 이미 반 이상이 불에 타서 없어졌고 아직도 불길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저자는 진유한이군. 왜 집을 태우는 걸까?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어디에 있지?'

잠시 후, 진유한 앞에 네 명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지휘사님, 그분은 찾으셨습니까?"

"호위와 그분이 완강히 저항해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시체는 불타는 중이고.."

"상부에서 내려온 명은 웬만하면 산 채로 데려오고, 저항하면 죽이고 시체라도 가져오라 하지 않았습니까?"

진유한은 눈썹 옆 흉터 자국을 꿈틀거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상부라고 했나? 자네의 직속 상관은 나야. 똑똑히 기억하라고. 상부에는 조금 전 전서구를 보내 상황을 보고 했다. 너희는 그냥 내 명에 따르면 돼. 알겠나?"

진유한의 흉터 자국이 움직일 때는 그 누구도 그의 심기를 거슬리지 않는 게 금의위의 불문율이었기에 네 명의 북진 무사는 긴장한 채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휘사님."

'지금 저들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설마.. 황녀님을 저자가? 아니겠지.. 아닐 거야.'

나는 진유한의 말에 머리가 멍해지고 등줄기부터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설마설마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이미 진유한을 향해 걸어나가려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붙잡은 것은 초일 형님이었다.

[무작정 나가서 어쩌자는 거야? 일단 흥분을 가라앉히고.]

초일 형님의 전음에 정신을 차렸지만 진유한에게 직접 확인을 해보지 않고는 못 견딜 거 같았다.

[형님, 저자에게 물어야겠어요. 저 안에 불타고 있는 시체가 누구인지를요. 그렇지 않고는 못 견디겠어요.]

초일 형님도 나의 전음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붙잡았던 팔을 놔 주었다.

터벅터벅 걸어가자 네 명의 북진 무사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웬 놈이냐?"

"비켜. 너희랑은 볼일 없으니.."

"뭐라고? 이놈이 미쳤나."

"지금 너희들과 노닥거릴 기분이 아니라고. 진유한과 할 말 있으니 빨리 꺼져."

닌 극도로 흥분하여 날뛰는 심장과 달리 얼음처럼 차가워진 말투로 진유한을 알고 있노라 말했다.

네 사람은 내가 내뿜는 조용하면서도 흉악한 기세에 압도되어 어찌 못하고 진유한을 바라보았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길을 터 주었다.

진유한은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날 어떻게 알고 여기를 찾아왔지?"

"황궁 사람치고 북진 무사를 이끄는 지휘사 진유한을 모르는 자가 있나."

"너도 황궁에서 나온 건가? 상부에서 보냈나 보군. 여긴 무슨 볼일로 온 거지?"

"두 사람을 어찌 처리했나?"

"상부에서 내가 못 미더워 확인차 보낸 건가? 먼저 호위를 제거하고 황녀를 황궁으로 데려가려 했는데.. 생각보다 호위의 실력이 뛰어나 그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황녀가 도망가려 하기에 암기로 죽일 수밖에 없었다."

"황녀를.. 죽였다고? 두 사람 다 네가 죽였나?"

"황녀를 암기로 먼저 죽이고 나서 호위를 제압하여 목숨을 끊었다. 저 집과 함께 시체는 태워 버렸고.. 불이 꺼지면 두 여자의 사체가 나올 것이다."

'황녀님이.. 나의 황녀님이 진짜 죽었다고? 믿을 수 없어. 아니야. 7호가 옆에 있었는데.. 그녀도 지킬 수 없었단 말인가!'

그때 마침 집이 완전히 불에 타서 무너져 내렸다.

나는 불에 타 한 더미 재가 되어 버린 집을 향해 걸어갔다.

진유한은 그 집으로 걸어가는 나를 향해 말했다.

"꼭 그렇게 확인까지 해야겠나.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건가? 아직 잔불이 남아있으니 조심하게."

난 검으로 잔불을 쳐내며 그 잿더미에서 불에 그을려 형체를 알 수 없는 사체 두 구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한 구의 사체에서 낯익은 물건을 발견했다.

'저건 돌아가신 황후마마의 것이라며 황녀님이 가장 애지중지하셨던 목걸이다. 항상 목에 걸고 다니셨는데.. 정말.. 이렇게 허무하게 가신 겁니까? 전 이제 어찌하라는 겁니까?'

"황궁 사람이면 다 알고 있을 거야. 그 목걸이는 황녀가 항상 차고 다니던 거지. 이제 확인이 되었겠지. 가서 사정을 잘 말씀드리게."

"아직 열여덟 살밖에 안 된 소녀를 꼭 그렇게 죽여야만 했나?"

나의 말에 진유한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 넌 상부에서 보낸 자가 아니군. 누구지?"

"나 저승사자.. 너희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 죽어야겠다."

내 말이 끝나자 네 명의 북진 무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날 둘러싸고 대형을 짜기 시작했다.

때를 맞춰 초일 형님과 초아 소저가 앞으로 나섰다.

초아 소저와 초일 형님이 북진 무사를 두 명씩을 상대해주어 난 진유한과 마주 서게 되었다.

"일행이 있었군. 누가 보낸 거지?"

"그건 알 거 없고. 넌 그냥 죽으면 돼."

진유한은 전생에서도 절정 고수 반열에 오른 지 오래되어 초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지금의 나 또한 초절정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어서 서로 실력은 엇비슷하였기에 승부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동귀어진을 하더라도 진유한은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현재 내가 쓸 수 있는 무공 중 숙련도가 가장 높은 것은 사신검예와 열화신공, 한빙신공, 그리고 창궁무애검법이었다.

'살기를 담아 쓰기에 사신검예만한 무공이 없지.'

전생 이후로 오랜만에 사신검예를 쓰려 하니 감회가 남달랐다.

'전생은 황녀님을 무사히 지키기 위해 오로지 사신검예만 죽어라 익혔었지. 이제 그 사신검예로 황녀님의 복수를 해 주겠다.'

사신검예 1장 혈화난무

나의 무공이 시전되고 진유한도 내 검에 실린 검기가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이미 사신검예의 초식이 발동되고 실선처럼 가는 검기 가닥들이 진유한을 향해 쏟아져 나갔다.

그의 온몸을 나의 검기가 뒤덮으려 할 때,

금황신공 1장 황룡출해

진유한 역시 그대로 당하고 있지 않고 자신의 무공 절기인 금황신공을 펼치며 적극적으로 막아냈다.

진유한의 몸 주위로 황금빛 막이 형성되며 나에게 황룡이 달려들 것처럼 진기가 날아왔으나 나의 검기가 황룡을 뚫고 진유한의 몸으로 향했다.

나의 검기가 황금빛 막에 닿으면서 일부가 소멸되었지만 남은 검기들은 진유한의 몸을 스쳐 갔다.

스쳐 간 검기 가닥에 의해 진유한의 몸에 자잘한 혈선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금황신공을 깨고 들어오다니 놀라워. 이런 무공이 다 있었군."

진유한이 나의 사신검예에 놀란 듯했지만 나 역시 사신검예 중 혈화난무를 상대하고도 이렇게 멀쩡하게 서 있는 자는 전생에서 만난 사신회주 혈비 이후 처음이었다.

진유한은 너덜너덜해진 옷 사이로 핏물이 조금씩 흘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때가 떠오르는군. 전생에 진유한과 겨루었던 그 날.'

난 실제로 전생에서도 진유한과 한차례 무공을 겨루어 본 적이 있었다.

대장이 금의위의 무공을 견식 해보자며 일부로 시비를 걸어서 만든 비무의 기회였다.

그때는 상대를 죽이거나 해하려는 지금 상황과 달리 단순한 비무였기에 살수를 쓰기가 어려웠고 사신검예 대신 다른 무공을 썼었다.

진유한도 금황신공 대신 다른 무공을 쓰면서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다가 결국 비기고 끝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진유한은 반드시 죽여야 할 존재였기에 곧바로 사신검예를 준비했다.

사신검예 2장 사신멸겁

전생에서 사신회주 혈비를 상대할 때 썼던 초식으로 한번 초식이 발동하면 끊임없이 연환 공격이 이어져 상대의 숨통이 끊어져야 멈추는 필살의 초식이었다.

나의 검이 먼저 회전을 했고 검풍이 불기 시작했다.

진유한은 혈화난무에서부터 검의 위력을 인지하여서 나의 초식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자신도 금황신공으로 막을 준비를 했다.

금황신공 2장 금황파천무

진유한이 금황파천무를 펼치자 그의 주변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며 그의 모습을 사라져갔다.

순간 그의 움직임을 놓쳤는데 그가 어느새 내 앞으로 다가와 나에게 장력을 뻗으려 하였다.

하지만 그때 나의 몸이 검과 회전을 시작했고 그의 장력은 회전력에 의한 반발로 튕겨져나가 무위로 돌아갔다.

나의 몸과 검은 하나가 되어 그대로 진유한을 향해 쏘아져 갔다.

진유한은 금황신공으로 황금빛 기막을 만들어 막아보려 했으나 한번 회전이 걸린 나의 검과 몸은 그의 기막을 뚫고 그의 복부에까지 닿았다.

나의 검은 진유한의 복부 깊숙한 곳까지 헤집고 파고 들어가서야 멈추었다.

"으윽.. 욱!"

진유한은 극심한 고통에 신음 소리를 내며 피를 한 움큼 게워냈다.

"황궁에.. 그대 같은 자가.. 있었다면.. 내가 모를 리 없을 텐데.."

"황궁에는 남들에게 신분을 드러내지 못하는 자들도 있지."

진유한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그림자 무사! 설마.. 그림자 무사..였더냐?"

"그림자 무사를 알고 있었군. 나도 한때 그림자 무사인 적이 있었지."

"지금은... 아니라는.. 건가."

"그것까진 알 필요 없고. 넌 왜 황녀님을 죽였지? 넌 황제 폐하의 신임을 받는 금의위에 지휘사면서.. 왜 배신을 한 거지?"

"난.. 폐하를.. 배신한 적.. 없다."

"황녀님을 죽이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는 말이다."

"난.. 대..명나라의.. 금의위..란.. 말이다.."

'대 명나라 좋아하시네.'

더 이상 말 실랑이를 해봤자 진유한에게서 건질 건 없어 보였다.

난 그의 복부에 박혀있던 검을 단숨에 뽑아내었고 진유한은 피를 쏟아내며 쿵소리와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안 그래도 초아 소저와 초일 형님에게 밀리던 북진 무사들은 진유한의 죽음을 목도한 후 급격히 대형이 무너지며 얼마 더 버티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혈도를 짚이며 제압당했다.

"누가 시킨 일이지? 상부의 명이 누구의 명이냐고?"

내가 북진 무사 네 명을 향해 다그치듯 물었으나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후.. 대답을 듣는데 너희 네 사람이 다 필요하진 않아. 너부터 묻지. 누가 시켰나?"

"......"

첫 번째로 물은 북진 무사가 대답이 없자 나는 그대로 그자의 복부의 검을 쑤셔 넣었다.

"크억!"

첫 번째 무사가 피를 토하며 그대로 쓰러졌다.

초일 형님이 당황한 듯 내게 말했다.

"무영아, 네 심경은 알겠는데.. 흥분을 가라앉히거라. 불필요한 살생은 좋지 않다."

"초일 형님, 죄송한데 오늘은 살계를 지킬 수 없을 거 같네요."

"마음의 상심이 컸구나. 그렇다면 나도 말리지 않으마."

초일 형님도 더 이상 말릴 생각이 없는지 다른 곳으로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두 번째 무사도 대답을 하지 않고 버티다가 첫 번째 북진 무사처럼 목숨을 잃었다.

"두 사람에게도 딱 한 번씩만 묻겠어. 대답하지 않을 거면 그냥 죽어."

나의 차가운 표정과 나지막한 말에 남은 두 명은 극도로 긴장한 표정이었다.

"누가 시킨 거지?"

"상부에서 내려온 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상부가 누구냐고?"

내가 잔뜩 화가 난 음성으로 재촉하자 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동창의 수장인 정화 대인과 새롭게 신설된 금위대의 대장이 명을 내리고 있습니다."

"동창의 수장 정화라는 환관과 금위대라는 조직의 대장이란 자가 지금 반란군을 움직이고 있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금위대 대장은 누군지 모르고?"

"네.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무공이 지휘사님 못지않게 강하다는 건 들었습니다."

"그래. 너희는 반란군에 동조했으니 죽어 마땅하다. 하나 나에게 사실을 말했으니 고통 없이 보내주마."

나는 검기에 한빙신공의 기운을 실어 차갑게 얼어붙은 검으로 그자들의 목을 단숨에 베었다.

초아 소저는 오늘 차갑고 냉혹해진 나의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많이 놀란 듯 보였다.

< 그녀의 죽음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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