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형호제 >
당류가 떠나고 초일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난 초일이라 하네. 자네 이름은 뭔가?"
"신무영이라고 합니다."
"대단한 배짱이더군. 당류 공자 앞에서 그리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말이야. 자네의 실력이 뛰어난 건가? 아니면 그저 겁이 없는 건가?"
"전 그저 해야 할 말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나 그렇게 못하지. 당류 공자를 상대하는 건 나도 약간 찜찜하거든. 독을 쓰는 자들은 항상 조심해야 해서."
초일이 나의 전신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몸의 균형이 잘 잡힌 게 무공실력도 상당히 뛰어날 것 같군. 자네 사문이 어딘가?"
'무경원에서 무공을 배웠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군부에서 익혔다고 해야겠구나.'
"전 사문이 없습니다. 무공은 군부에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자네 말투가 좀 딱딱하군. 군부에서는 이제 나온 건가?"
"네, 최근에 나왔습니다."
나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군부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당가에 대해 겁을 먹지 않은 게로군.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군부에서 무공을 제대로 배운 모양이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도 남는데 자네 나랑 비무 한 번 해보는 게 어떤가?"
'음.. 화산파의 고수와 대결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대신 24반 무예로 어디까지 상대할 수 있는지 시험해 봐야겠다.'
"화산파 고수분과 비무를 할 수 있다면 저야 영광이죠."
"그럼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서 하도록 하지."
"하진이도 같이 가도 될까요?"
"그리 하도록 하게나."
나와 초일, 그리고 하진이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매화검수시면 이십사수매화검법으로 상대해 주시는 겁니까?"
"이번에 내가 쓸 무공은 탈명연환검이네. 내 주 무공은 이십사수매화 검법이긴 하지만 탈명연환검도 그에 못지않게 오래 익혔으니 자네를 상대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을 걸세."
"탈명연환검이라.. 이름부터 강력한 느낌이 드는군요."
"화산파 무공 중에서도 꽤나 강맹한 검법이지. 자네는 무슨 무공으로 날 상대해 줄 건가?"
"전 24반 무예로 상대하겠습니다."
나의 말을 듣고 초일이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그건 군부의 기본 무공이라 들었는데 자네는 상급 무공을 익히지 못했나? 군부에도 분명히 있을 텐데."
"24반 무예도 완벽하게 익히지 못해 다른 걸 배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진짜인지, 아니면 겸양을 떤 것인지는 직접 확인해보면 알겠지."
나와 초일은 검을 들어 자세를 잡고 비무에 들어갔다.
먼저 공격에 들어간 것은 나였다.
초일이 3초식을 양보한다고 하였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24반 무예 중 예검을 펼쳤다.
힘을 빼고 쾌속함을 위주로 베는 기본 동작이지만 막아내기가 쉽지 않은 검술이었다.
군부에서 배우고 나서 전장을 돌며 적들을 상대할 때 가장 많이 썼던 무공으로 오랜 시간 실전에서 사용했기에 매우 숙련되어 있었고 군부에서 교관님이 시범을 보여줬던 그 위력에 못지않았다.
나의 검이 쾌속하게 들어오자 초일은 뒤로 물러서며 자신의 검으로 막아냈다.
막아내면서 나의 검에 실린 내력을 느낀 건지 그의 눈에 감탄이 서렸다.
"놀랍군. 그 단순한 공격이 이리 빠르고 막기 힘들 줄 몰랐네. 그리고 그 검에 실린 내력은 보통이 아닌데.."
"과찬이십니다. 그럼 다시 갑니다."
2초식은 24반 무예 중 중검이었다.
중검은 검에 내공을 많이 실어서 검으로 상대를 가른다는 느낌보다는 몽둥이로 내려친다는 느낌으로 묵직한 타격을 주는 검술이었다.
초일은 나의 검술이 처음과 다르다는 건 눈치챘지만 예검과 정반대인 중검일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는지 묵직한 중검을 막아내면서 놀란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자네가 나를 자꾸 놀라게 하는군. 3초식을 양보한다고 해놓고 순간적으로 반격을 할 뻔했네."
"3초식을 양보하신다 했으니 마지막은 조금 더 강한 공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지금보다 더 강한 공격이라.. 이거 긴장되는데? 들어오게."
3초식은 그동안 전장에서 24반 무예를 쓰며 내 나름대로 실전에 맞게 개량하여 만든 24반 연환 검무였다.
예검부터 중검, 제독검, 본국검 등 24반 무예에 있는 모든 검술이 하나로 녹아있는 것으로 실전에서 초식을 쓰면서 불필요한 동작은 과감히 없애고 좀 더 잘 이어지도록 연환 동작을 구성했다.
하여 전장에서 이 무공이 쓰면 항상 상대의 피를 보고서 멈추었다.
하지만 초일은 보통 고수가 아니기에 그에게 이 무공이 통할지 궁금하여 쓰게 되었다.
"자, 갑니다."
24반 연환 검무.
나의 검이 춤추듯 날아와 초일의 검을 때리자 초일은 순간적으로 나의 검에 맞추어 반동으로 내 검을 튕겨내었고 또다시 이어진 검술에 맞춰 자신의 검술도 변화를 시켰다.
'초일이란 자, 내 생각보다 실력이 더 뛰어난 자였군. 아직 다 보여주지 않았는데 충분히 강함을 알 수 있다. 적어도 현재 보여준 실력만으로도 절정 경지 이상이다.'
내 연환 검무가 거의 끝나갈 무렵 초일의 탈명연환검이 시작되었다.
나도 연환 검무를 다시 펼쳤는데 탈명연환검이 계속해서 부딪치며 그때마다 두 검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수십 초를 맞붙고도 승부가 나지 않자 초일이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이것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네. 그렇다고 우린 서로 적대적인 관계도 아닌데 살수를 쓸 수는 없지 않나. 이만 비무를 마무리하세."
"네, 그러시지요.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아닐세. 오히려 내가 자네에게 많이 배웠네."
"대협께서 봐주신 덕에 다치지 않고 비무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일이 나의 전신을 다시 한번 바라보고는 말했다.
"봐주기는 누가 봐주었다고 그러는가. 오히려 자네가 본연의 진력을 드러내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군."
"그건 초일 대협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군부에서 대단한 인재를 길러냈는데.. 군에서 나와 무림으로 가버렸으니 많이 아쉬워하겠군."
"제가 무슨.. 대단한 인재겠습니까. 대협께서 절 너무 높게 평가해 주시네요."
초일은 고개를 돌려 천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진아, 굳이 내가 없었어도 이 정도의 일은 무영 소협이 충분히 해결해 줬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난 그냥 와서 상단 밥만 축내다 갈 거 같은 느낌이야."
"아닙니다. 초일 사숙님. 사숙님이 이곳에 계셔서 너무 든든합니다. 무영 형님의 실력이 이 정도까지 대단한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초일은 속가제자들을 가르친 한윤의 사형이었다.
하여 한윤의 제자인 하진에게 초일은 항렬상 사숙이었다.
"무영 소협, 나와도 형 동생하며 지내는 게 어떻겠소?"
초일은 원래부터 허례허식 따위는 없었다.
하여 마음에 들면 나이 차이가 얼마든 상관없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형 동생처럼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하였다.
"정말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말은 주저하는 말로 들리는데.. 내 배경 때문에 불편한가?"
"솔직히 화산파의 차기 장문인으로까지 거론되신다 들었는데..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자와 가깝게 지내면 주변에서 안 좋게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아.. 자네 말은 격에 맞는 사람들끼리 놀아야 한다. 이건가?"
"아무래도 주위의 평판에도 신경을 쓰셔야 하지 않습니까?"
"난 그런 걸 제일 싫어하네. 나의 별호가 매화검객이지만 그보다 이전에 널리 알려진 것은 자유검객이라네. 난 틀에 얽매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지."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진심이 묻어나왔다.
"무영 형님, 초일 사숙님 말은 사실이에요. 여기에 오신 것도 초일 사숙께서 자원하셔서 오신 거예요. 보통 그 정도 지위에 오르면 이런 일을 맡지 않으려 하시는데 사숙님은 본산에 계시는 걸 극도로 싫어하셔서 도망 나오신 거죠."
"흠흠. 사숙에게 도망이라니. 그냥 본산보다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나온 것이지. 그래서 이렇게 무영 아우를 만나지 않았나."
이미 초일은 나를 아우라고 부르고 있었다.
"저도 그럼 초일 형님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무영 아우. 말도 편하게 하고. 말투가 너무 딱딱해."
"네, 형님."
두 사람이 형 동생이 되자 자기 일처럼 기뻐하던 하진이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
"그럼 전 이제 초일 사숙님을 어떻게 불러야 합니까?"
"무슨 소리냐?"
"무영 형님이 초일 사숙님을 형님이라 부르는데.. 전 사숙이라 부르고 항렬이 안 맞지 않습니까?"
"너도 나에게 형님이라 부르고 싶어서 그러느냐?"
"그게 아니라.."
"넌 한윤의 제자니 내 사질이 맞고 무영이와 네 관계는 형 아우 관계니 그렇게 부르는 게 맞다. 그러니 전처럼 부르면 된다."
"네, 사숙님."
초일이 날 바라보더니 말을 했다.
"오늘 아우가 생겼는데 술 한잔해야지. 한잔하러 가세."
"당가에서 다시 오진 않을까요?"
"당가도 오늘 망신을 당하고 돌아갔으니 당장 손을 쓰지는 않을 거다. 오늘은 한잔하고 푹 쉬자고."
"네, 형님."
나와 하진, 그리고 초일 형님 세 사람은 술을 마시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하며 조금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다음날 상단주가 나와 초일을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무영아, 왔느냐."
"네, 아저씨."
먼저 들어온 나와 상단주가 인사를 나누고 뒤이어 들어온 초일에게도 인사를 나눴다.
"초일 대협도 오셨군요."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상단주님."
"당상의 일을 처리하는데 의견을 듣고자 모셨습니다."
'아무래도 당가의 직계를 이곳에 오래 가둬두는 건 부담이 크겠지.'
"당상이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어 처벌은 해야 하는데, 당상을 처벌하면 반드시 당가에서는 복수를 하려 할 테고 어려운 일이군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단주가 말했다.
"맞아.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이대로 아무 조치도 없이 풀어준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솔직히 당가를 정면으로 상대할 자신도 없고.."
잠시 말없이 생각하던 초일 형님이 입을 열었다.
"그냥 순리대로 하시죠. 아드님과 같은 죄를 지었으니 처벌도 똑같이 한쪽 팔을 자르고 돌려보내시죠."
"그런데 당가 직계의 팔을 잘랐다가 당가의 분노는 우리가 어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제가 이곳을 화산파에서 관리하는 상단으로 공표할 테니 뒷일은 저에게 맡기시고 상단주는 이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세요."
초일 형님의 말에 상단주는 밝아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초일 대협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이제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순리대로 공정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상단주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나는 초일 형님에게 물었다.
"형님, 정말 괜찮을까요? 전 여전히 뒷일이 걱정되는데요."
"당상 그 녀석이 먼저 일을 벌였는데 당가에서도 명분이 없는데 어찌하겠느냐."
"그래도 자기 자식이 외팔이로 돌아오면 당가 가주가 가만히 있진 않을 거 같아서요."
"그래서 화산에 연통을 넣어 천하상단을 화산파가 관리하는 상단으로 공표할 거야. 천하상단을 건드리는 건 우리 화산파를 치는 것과 같아지는 것이지."
"그래도 당가에서 복수를 하겠다면요."
"날 아직 못 믿는구나. 내가 혼자서 당가를 박살 내는 건 어렵겠지만 화산의 힘을 동원하면 충분히 당가를 박살 낼 수 있다. 그건 당가도 알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다."
다음날 천하상단에서는 당상의 처벌이 진행되었고 그는 천하문과 마찬가지로 왼팔이 잘린 채 간단한 처치를 받고 천하상단 밖으로 쫓겨났다.
당상은 천하상단을 나가면서 온갖 욕과 저주를 퍼붓고 떠나갔다.
< 호형호제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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