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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무사의 귀환-57화 (57/114)

< 당가의 소가주 >

"이 일에 당가가 관여했든 안 했든 내가 당가의 직계인데 나를 건든 그 순간부터 너희는 이미 당가의 적이 되었다."

당가의 적이 되었다는 당상의 말에 천하진과 천하성은 겁을 먹은 듯 안색이 창백해졌다.

'초아 소저의 말에 따르면 당가를 적으로 삼는 게 가장 무모한 행동이라 했는데, 그렇다고 당상 이 자를 그냥 놔둔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어쩔 수 없군. 필요하다면 당가와 전쟁이라도 하는 수밖에.'

"당가의 위세를 믿고 날뛰는 너 같은 천둥벌거숭이에게는 매가 답이다."

나는 그 말과 함께 주먹으로 당상의 얼굴을 몇 차례 갈겼다.

점혈이 되어 있어 나의 주먹을 피하지 못한 당상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무.. 무영 형님! 당가 직계를 그리 패시면 어떡해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지금 당상을 풀어준다고 그냥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차라리 이번 일을 키워 당가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게 나을 듯싶다."

"무영아, 네 말은 이번 무형독 사건을 외부에도 알려 당가가 우리에게 복수하는 걸 막자는 것이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단주에게 말을 했다.

"네, 확실한 명분이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그뿐만 아니라 외부의 다른 문파 사람들을 끌어들여야지요. 홍희관 장주처럼 소림사와 관계가 있는 분이라든지, 또 아저씨가 속해 있는 상단도 연합이 있지 않습니까?"

"상단 연합체는 평상시에는 잘 활동을 하지 않지만 이런 일이라면 도움을 줄 거다."

"그럼 그곳에서 우리를 돕도록 아저씨가 나서 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걱정 말거라."

나는 수향 소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향 소저, 혹여 당가와 적대적 관계에 있거나 사이가 좋지 않은 문파 중에 우리를 도울 만한 곳이 있을까요?"

"하오문에 요청해서 알아볼게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럼 그건 수향 소저에게 맡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진아, 넌 화산파의 속가제자니 화산파에 연통을 넣어 도움을 청하는 게 좋겠다."

"제가 속가제자라지만 화산파에서 당가와 맞서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그렇겠지. 하지만 화산의 본산 제자들 한두명이라도 이곳에 온다면 당가도 무턱대고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 거다."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바로 화산파에 연통을 넣어 도움을 청할게요."

나의 계획에 따라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자신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즉시 연통을 넣었다.

상단주가 깨어났다는 소식이 상단 전체에 퍼지면서 모두 천하성 대방의 얼굴을 보려고 몰려들었다.

"당가의 둘째 공자인 당상과 내 둘째 아들 천하문이 독으로 날 중독시켜 죽이려 했으나, 다행히 여기 있는 무영 소협과 수향 소저, 그리고 하진이가 해독제를 구해 날 살렸네."

상단주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천하문을 끌고 와서 천하성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게 했다.

"하문아, 대체 왜 그랬느냐?"

"아버지는 전부터 상단에는 관심도 없는 형님에게만 상단을 물려주시려고 하셨지요."

"그건 너에게는 없는 것을 네 형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엇입니까? 대체 저에게는 없고 형에게만 있는 게 무엇입니까?"

"어릴 적부터 넌 상재가 뛰어나서 이득이 되는 일만 했었다. 그리하다 보니 너는 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하려 하지, 남을 위한다는 걸 전혀 모르더구나."

하문은 아버지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반문했다.

"상재가 뛰어난 게 상단을 이끌어가는데 해가 된다는 말씀입니까?"

"상인이란 물건을 팔아서 이문을 남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대로 이득을 위해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되는 것이다. 그게 기본 상도이다. 한데 넌 그 경계선이 없었다."

"형님은 저와 다르다고 생각하십니까?"

"하진이는 어려서부터 정도를 따르기를 원했고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은 하려 하지 않았다. 하여 하진이게는 줄 수 있지만 하문이 너에게는 상단의 책임자 자리를 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의 말에 그제야 이해가 되는지 하문은 고개를 떨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천하성은 잠시 천하문을 바라보다가 결심했는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아비에게 독을 써서 인륜을 저버리고 또한 당가를 끌어드려 상단 전체를 위험에 빠뜨린 천하문을 당장 데려가서 죽이거라."

천하성의 명에 상단원들이 천하문의 양팔을 붙잡고 끌고 가려 했다.

그때 천하진이 그들을 멈추게 하고 천하성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버지, 하문이를 살려 주십시요. 제가 하문이 옆에서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줬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주세요."

"하진아, 물러서거라. 용서받을 수 있는 행동이 있고 받을 수 없는 행동이 있다. 하문이가 한 짓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니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상단 내에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는다."

천하성의 단호한 말에 하진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하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욱 안타까워 내가 나섰다.

"상단주님, 하문 공자를 살려주십시오."

"무영아,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잘 알면서 너까지 왜 그러는 것이냐."

"하문 공자가 큰 죄를 지은 것은 맞지만 조금은 그 죄를 경감받을 만한 행동을 한 것도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상단주께서 중독되신 독은 무형독이었습니다. 무색, 무취에 희귀한 독으로 당가에서만 만들어졌고 금지된 독이죠. 그 독을 2년이나 먹고도 사실 수 있었던 것은 하문 공자가 당상이 준 독의 양보다 더 적은 양을 넣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말에 천하성은 천하문을 보고 물었다.

"하문아, 그게 사실이냐?"

"그건 중요치 않습니다. 처음부터 아버지를 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 짓이니 전 죽어 마땅합니다."

"상단주님, 하문 공자 말대로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몸이 약해지는 모습을 보고 차마 원래 그대로의 독을 쓸 수 없어 양을 점점 줄여간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 목숨만은 살려주시기를 청합니다."

나의 말에 천하성은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한 후 말했다.

"무영이의 말대로 천하문이 죄를 짓기를 했으나 부자간의 정을 끊지는 못하여 후회한 듯하니, 목숨을 거두는 것 대신 천하문의 팔 하나를 자르고 천하상단에서 내치도록 하겠다."

천하문도 자신의 죄를 반성하는 듯 아무 말 없이 형이 집행되는 것을 받아들였고, 그는 왼쪽 팔이 잘린 채 간단한 처치를 받고 상단에서 쫓겨났다.

상단 내부의 일이 일단락되고 당가의 둘째 공자가 천하상단 둘째 아들과 모의하여 2년 동안 천하상단 상단주를 서서히 독살하려다가 실패하고 붙잡힌 사건이 전 무림에 퍼져나갔다.

이것은 수향 수저에게 내가 부탁한 일 중 하나였다.

하오문을 통해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고 2주도 채 되지 않아 무림의 웬만한 문파는 이 사건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사건으로부터 3주가 되었을 때 천하상단으로 당가의 사람이 찾아왔다.

다섯 사람이 왔는데 한 명이 당가를 대표하고 나머지 네 사람은 그의 호위 같아 보였다.

그만큼 당가에서 그의 지위가 높은 듯했다.

보통 체격에 얼굴도 갸름하고 눈매도 날카로워 잘 벼려 놓은 검 같은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나는 당가의 소가주 당류라 합니다."

그의 신분이 보통 신분이 아닌 만큼 상단주가 직접 마중을 나와 맞이했다.

"전 천하상단의 상단주 천하성입니다. 당가의 소가주께서 직접 오셨군요."

"제 아우가 천하상단에 큰 실수를 했다기에 사과드리고 아우를 데려가려고 직접 왔습니다."

"아우분이 저희 상단에 실수를 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당가에서는 실수라는 말의 뜻을 저희와 다르게 쓰시나 봅니다."

"그런 말이 아니라 저희 쪽에서 사과할 테니.. 서로 좋은 게 좋은 거니만큼 적당히 하고 넘어가자는 겁니다."

천하성이 굳은 표정으로 그에게 말을 했다.

"만약 제가 당상 공자의 독에 죽었다면 그때도 그냥 좋게 넘어가자 했을 겁니까?"

"아니, 왜 만약을 이야기하십니까. 지금 상단주께서 죽지 않았잖습니까. 그리고 댁의 아드님이 일을 벌이고 제 아우는 그에게 독을 건네준 것뿐이잖습니까."

"그럼 반대로 저희가 당가 가주님께 독을 써서 생사의 고비를 왔다 갔다 하시다가 깨어났다면 사과로 끝났을까요?"

천하성 상단주의 말에 당류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럴 일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있다면 당연히 멸문지화를 당하겠죠."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사과만 받고 끝내라니 너무 잣대가 다른 거 아닙니까?"

"상단주께서는 설마 천하상단이 당가와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의 목숨은 누구나 같지요. 더 큰 세력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의 목숨을 다르게 평가한단 말입니까?"

"하.. 지금까지는 좋은 말로 상단주를 대우해 주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천하상단을 상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류가 은근슬쩍 자신의 내공을 과시하며 천하성을 압박하고 있었다.

당류는 절정고수였고 천하성은 일류고수에 불과하여 그의 가벼운 압박도 오래 견디기는 힘들어 보였다.

천하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당가는 무조건 이렇게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합니까?"

"원래 무림은 약육강식 적자생존이요."

상단주가 낭패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행수를 비롯한 상단원들이 나서려 했는데 당류를 따라온 네 명의 호위가 검집에 손을 대면서 눈빛으로 막아섰다.

네 명 모두 보통 고수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때 내가 조용히 나서서 상단주 대신 당류의 내기를 막아섰다.

"오호라. 이런 작은 상단에 나의 내기를 막아서는 자가 있다니. 상단주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리 겁 없이 내게 말했군요."

"당상이 누굴 닮아 그리 싸가지가 없나 했더니 당가의 내력이 그러했군."

"뭐라? 이놈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당류가 얼굴이 붉어지고 손에 내력을 집중시키며 당장이라도 나를 향해 내려치려 할 때,

"당류 공자 멈추시지요."

당류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제지하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천하진이 화산파 본산에 연통을 보내자 화산에서 보내준 지원군이었다.

처음 그가 상단에 왔을 때 상단사람들은 화산파에서 도움을 주러 온다기에 기대했다가 겨우 혼자서 나타나 다들 크게 실망하였다.

하지만 그의 신분을 알고는 다들 깜짝 놀랐다.

그는 화산파의 자랑인 매화검수들 중 가장 유명하고 차기 장문인으로 손꼽히는 매화검객 초일이었다.

당류는 그의 검에 달린 매화 수실을 보고 매화검수라는 걸 알아차리고 나서 물었다.

"검에 달린 수실을 보니 매화검수인 듯한데.. 화산파에서 어찌 당가와 천하상단의 일에 관여를 하려 하십니까?"

"당류 공자께서는 모르셨나 보군요. 천하상단의 첫째 공자인 천하진이 우리 화산파의 속자제자라는 걸 말입니다."

"그랬나요? 몰랐군요. 속가제자라지만 화산파가 당가의 일에 이렇게 깊숙이 관여하면 안 좋을 텐데요."

당류의 협박이 담긴 말을 초일은 담담하게 받으며 말했다.

"당류 공자가 무리한 일만 벌이지 않는다면 저도 크게 관여할 생각은 없습니다."

"무리한 일이라.. 그 뜻은 화산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생각입니까?"

"나 초일은 화산파의 뜻에 따라 이곳에 왔습니다. 천하상단의 사람들이 다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게 우리 화산의 뜻입니다."

초일이란 말을 듣자 당류는 그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화산파의 신진고수이자 화산파 차기 장문인으로 손꼽히는 그를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당류는 나와 초일을 번갈아 보더니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천하상단이 제법 많은 준비를 했군요. 하지만 당가 직계의 몸에 손을 댄다면 후회할 일이 생길 겁니다. 제 아우를 무사히 당가로 돌려보내길 바라겠습니다. 전 이만 가보죠. 가자."

당류가 호위를 데리고 떠나자 천하상단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당가의 소가주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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