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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무사의 귀환-56화 (56/114)

< 사천당가 >

천하문을 압박하며 겁을 주던 홍희관의 앞에 선 사내는 나지막하게 말을 했다.

"지금 감히 누구를 겁박하는 거요? 얼마나 대단한 문파에서 왔길래 남의 상단에 와서 주인 행세까지 하시오?"

"버릇없는 후배를 선배가 훈계하는 게 어찌 주인 행세요. 그리고 그대는 누구길래 이리 겁없이 나서지? 상단 사람은 아닌 듯한데."

"왜.. 내가 이곳 사람은 아니라 생각하시오?"

"천하상단 사람이라면 몇몇을 제외하고는 내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내 앞에 당당히 서서 말하기 힘들 텐데 당신은.."

홍희관의 말을 끊으며 사내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꽤나 자신의 실력과 배경에 자부심을 느끼나 봅니다."

"내가 홍가장의 장주라 말했을 텐데. 정말 못 들었소?"

"홍가장이 뭐하는 곳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다지 감흥이 없소."

사내가 자신의 문파와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말을 하자 홍희관이 노기를 참지 못해 자신의 문파의 절기인 홍가권을 펼칠 준비를 했다.

"나의 홍가권을 상대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보자."

"내게 그렇게 말하고 우스운 꼴 당한 자들이 꽤 많았지."

홍가권은 소림사의 속가제자였던 홍희관이 소림사에서 배운 무공인 십팔나한복호권을 개량하여 만든 것으로 십팔나한복호권보다 더 강맹하고 쾌속한 권법이었다.

홍희관의 홍가권 자체만으로도 유명했지만 아무래도 그가 소림사의 속가제자 신분이었기에 소림사의 비호를 받는 홍가장을 쉽게 보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눈앞의 사내가 자신을 우습게 보자 홍희관은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홍희관이 먼저 홍가권으로 그 사내의 몸을 노리고 들어갔다.

그의 주먹이 어찌나 빠른지 지켜보는 이들은 사내가 곧 곤죽이 될 거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내는 홍희관의 공격을 여유롭게 받아내었고 오히려 반격에 나섰다.

사내가 품 안에서 암기를 꺼내서 홍희관에게 던지자 아슬아슬하게 그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뒤로 수차례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둘의 거리가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깝게 근접전을 펼치던 중 그 사내의 주먹이 빈틈 사이를 비집고 홍희관의 몸에 그대로 적중되었다.

'이미 승부는 갈렸다. 저 사내의 실력이 한 수 위다.'

그 사내는 자신의 주먹에 맞아 균형을 잃고 넘어가는 홍희관을 그대로 두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일격을 가하려고 할 때 내가 전광석화처럼 나서 그의 팔을 쳐 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당상 공자, 이미 승부가 났는데 굳이 살수를 쓰려 하십니까. 그만하시지요."

"아니, 네놈은 누구냐? 날 어떻게 알고 있지?"

"당상 공자께서 워낙 유명인이라 모르는 이가 없죠. 광동성에 처음 오신 그날부터 지금까지 하신 일도 다 알고 있죠."

"내 뒷조사라도 하고 다닌 것이냐? 어이가 없군."

"그동안 하신 일이 떳떳하지 못하셨나 봅니다."

당상은 갑자기 내가 나타나 자신의 행적을 알고 있다고 하니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그럼 사천당가 둘째 공자께서는 사천성에서 꽤나 떨어진 이곳 상단에는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사천당가의 둘째 공자라는 소리에 모든 상단원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곳 둘째 공자가 사천에서 유학할 때 우리 당가의 도움을 받았던 건 여기 상단 사람이면 모두가 알 거다. 내가 사천에서 그와 친하게 지내 오랜만에 그의 얼굴도 보고 광동성도 유람하고자 온 것이네."

"아.. 하문 공자를 만나러 오신 거군요. 그것도 하문 공자가 돌아온 2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말입니다."

"흠흠. 무슨 소린지.. 2년 전부터라니.."

"하문 공자가 돌아온 2년 전부터 매일 같이 당상 공자를 만나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상단원들은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었다.

"나는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설사 내가 하문 공자와 2년 전부터 매일 만난 것이 사실이래도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는가?"

"당연히 두 공자께서 만난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하지만 두 분이 만나서 작당 모의를 했다면 다른 문제 아니겠습니까."

"작당 모의라니! 생사람을 잡는군. 자네는 나중에 뒷감당을 어찌하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는가!"

"제가 헛소리를 지껄이는 건지, 아니면 공자께서 거짓말을 하는 건지는 조금 지나면 알게 되겠지요."

나는 천하문에게 다가가 그에게 물었다.

"하문 공자, 당상 공자와는 언제부터 만나왔습니까?"

"무영 소협, 제가 그걸 답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으니 묻는 거겠지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문 공자가 상단주께 드리는 탕약 속에 독이 들어 있었습니다."

독이라는 말에 모든 상단 사람들이 놀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아버지께 드리는 탕약 속에 독이 들어 있었다니.."

"매일 하문 공자가 상단주께 가져다드린 탕약에서 독이 나왔단 말입니다."

나의 말에 이공자를 지지하는 상단 사람들이 말을 했다.

"그게 확실하오? 그럼 상단주께서 독에 중독되셨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독에 중독되셨지요. 둘째 공자가 가져다준 탕약을 매일 드시고서요."

"그런데 어찌 둘째 공자가 가져온 탕약이라 단정하십니까?"

"상단주께서 쓰러지신 게 이상하여 조사하던 중 둘째 공자의 행동이 의심스러워 며칠 동안 공자의 행적을 좇다 보니 당상공자와 연결되었고 사천당가하면 독이지 않습니까.. 하여 유명한 의원 불러서 상단주의 몸을 살펴보니 독에 중독되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고 그 독이 탕약에서 나왔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말에 일공자를 지지하는 자들은 모두 천하문을 노려보며 한마디씩 했다.

"둘째 공자 어찌 상단주께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러게 말이요. 대방께서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이에 이공자를 지지하는 쪽이 그들에게 맞대응하며 말했다.

"아직 확실히 밝혀진 사실도 아닌데 이공자를 너무 몰아붙이지 마시오."

"맞소. 하진 공자의 친우인 사람이 주장하는 말일 뿐 증거가 없잖소."

"이공자, 저들이 말하는 게 사실은 아니지요?"

천하문은 당상의 얼굴을 살짝 바라본 후 자신감을 얻었는지 당당하며 허리를 펴며 말했다.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당상 공자와는 천하상단과 당가의 교류를 위한 친교 모임이었지. 작당 모의 같은 건 없었습니다."

"하문 공자는 나의 말을 모두 부정한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전 떳떳합니다. 날 후계자 자리에서 밀어내기 위해 이렇게 모함하기로 하진 형님과 계획한 거 아닙니까?"

나는 수향 소저가 가져다준 하문 공자의 행적이 적힌 서찰을 내보이며 말했다.

"여기에 하문 공자의 행적이 낱낱이 적혀 있습니다. 이건 제가 하오문에 의뢰하여 얻은 자료이니 다들 한번 보시지요."

하오문이 알려진 무공도 별로 없고 수뇌부의 정체도 비밀로 하고 있어서 문파의 형태를 갖춘 일반 문파로 보는 이들은 별로 없었지만, 그들의 정보력이 최고라는 것만큼은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하오문에서 이공자를 조사했다는 겁니까? 어디 봅시다."

내가 건네 준 서찰을 상단 사람들을 돌려서 읽어보자 천하문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이 하문 공자를 향해 걸어 나왔다.

"하문 공자, 이제 공자가 상단주께 가져다준 탕약에서 나온 독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을 해 줘야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공자가 준 탕약에서 독이 나온 걸 직접 목격했습니다."

키가 크지만 체격은 왜소해 보이는 자는 강염 행수였고, 반대로 키가 작지만 뚱뚱한 자는 소당 행수였다.

이 두 사람은 상단을 이끌어 가는 다섯 행수에 속하였다.

운선 행수는 일공자를 지지하고 두호 행수와 주강 행수는 이공자를 지지했지만 강염 행수와 소동 행수는 그간 중립을 지키며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았다.

나는 일부러 중립적인 두 사람을 미리 불러 상단주가 중독된 상태라는 것과 범인으로 의심되는 이공자의 행적을 이야기하고 이공자가 준 탕약에서 독을 발견하는 것까지 직접 보게 해 주었다.

중립을 지키던 두 행수까지 나서자 상단 내 분위기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하문의 범행을 기정사실로 굳혀가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전.. 아니에요."

천하문은 모두가 자신을 범인으로 의심하자 당황하며 당상 공자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당상 공자가 천하문을 대신하여 말을 하였다.

"지금 분위기가 하문 공자를 범인으로 몰아가고 나도 공범으로 만들려는 분위기인데.. 독이 나온 걸 목도했다고 하니 그 독이 무슨 독이었소?"

'당상.. 무형독이라 걸리지 않았을 거라 자신하고 있나 보구나.'

내가 앞으로 나서며 당상에게 말했다.

"독은 두 가지였습니다."

"두 가지? 그게 무엇이었나?"

"일반적으로 몸의 기운을 빼고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혼미독과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드는 마비독이 섞여 있었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당상은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당상 녀석, 많이 당황했구나. 무형독은 걸리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는데 다른 독 두 가지가 나왔다니.. 그 독은 누가 하독했는지 알아내려 머릿속이 복잡한 모양이군. 크크'

"그걸 어찌 하문 공자가 하독했다고 단정하시오?"

"하문 공자 이외에 아무도 그 탕약을 만진 자가 없으니까요."

"탕약에 하독하는 것 말고도 탕약을 담은 용기나 다른 것을 통해서 하독을 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하문 공자가 범인이라 단정할 수는 없소."

"그럼 당상 공자께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른 건 몰라도 독에 관한 건 우리 당가가 제일이라 자부하오. 하여 내가 상단주 몸에 어떤 독이 있는지 확인을 해 주겠소."

당상의 말에 하진이 나서며 말했다.

"그리 하시지요. 제가 아버지께로 모시겠습니다."

"그럼 지금 가 봅시다."

"강염 행수님과 소당 행수님은 하문이를 잘 감시해 주십시오."

하진이의 말에 강염 행수와 소당 행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하진이 그리고 당상 세 사람은 상단주의 방으로 이동했다.

상단주의 방안에는 상단주가 누워있고 수향 소저가 그의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저 여인은 누구기에 상단주의 방에 있습니까?"

"의술을 할 줄 아는 여인입니다. 아버지의 간호를 맡고 있지요."

"그렇군요. 그럼 진맥을 해봐도 되겠소?"

"그리하시지요."

당상이 누워있는 상단주 옆으로 가서 그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어보는데 그의 표정이 묘했다.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상단주 천하성이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당상의 혈도를 짚었다.

혈도가 막혀 움직일 수 없게 된 당상이 말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날 속였군. 빨리 혈도를 풀어라!"

"무형독을 2년간이나 상단주에게 먹였으니 네 놈도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지."

"무형독을 어찌 알고 있는 거지? 그리고 어떻게 그 독을 해독한 거냐?"

"당가에서도 금지한 독을 쓴 네 녀석을 당가에서는 어찌 처리할지 궁금하군."

"감히 당가 직계를 건들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줄 아느냐?"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당상을 보고 천하성이 노기가 차올라 외쳤다.

"네 놈은 2년 동안이나 나에게 독을 먹여서 내가 사경을 헤매었는데 미안한 마음이라곤 전혀 없구나. 천하의 몹쓸 놈 같으니라고."

"멍청하기는. 독을 먹인 건 네 아들놈인데 왜 내가 미안해야 하는 거지?"

"네 놈이 하문이를 대체 어떻게 했길래.. 하문이가 그리 행동을 한단 말이냐!"

"왜? 내가 당신 아들을 협박이라도 했을 거 같은가? 난 그저 당신에게 상처받은 아들을 위로해 준 것뿐이다."

"상처? 내 아들에게 내가 무슨 상처를 줬단 말이냐."

"상재가 뛰어난 둘째는 후계자로 생각하지도 않고 상단의 모든 것을 관심도 없는 첫째 아들에게 물려주려 애썼던 모든 것들이 둘째에게는 상처였단 말이다."

"......"

천하성은 당상의 마지막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있었다.

'당상의 마지막 말은 자신의 마음을 말하는 듯하구나. 당상 역시 당가의 둘째 아들이니 하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을 테고. 그걸 이용하여 천하상단을 접수하려 했겠지.'

"당상 공자 하나만 묻겠습니다. 이건 당가도 개입한 일입니까? 아니면 당상 공자 혼자 계획한 일인지요?"

< 사천당가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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