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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무사의 귀환-53화 (53/114)

< 오독교, 위기의 시간 >

오독교는 묘족 출신이 세운 문파로 여성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은 남만 지역과 가까운 운남과 광서의 경계지역에 위치해 있어 주로 세외 남만 지역의 독충과 독물을 가져다가 독공을 연마하였다.

또한 사파의 연합체인 사도련의 일원으로 무공실력은 사도련 내 다른 문파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었지만 독공과 미혼공만큼은 나름 실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었다.

오독교 입구의 담을 막 넘은 후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전각을 보고 나는 수향 소저에게 말을 했다.

"저 많은 전각을 일일이 다 뒤져볼 수도 없고.. 혹시 소저는 오독교 내부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당연히 있죠. 저희는 의뢰자가 원하는 정보를 대부분 가지고 있어요. 정보료가 비싸다는 게 흠이지만요."

"음.. 얼마면 될까요?"

"일단은 외상으로 달아놓을게요. 나중에 제가 원할 때 청구하겠어요."

"그리하시지요, 소저."

수향 소저가 품 안에서 작은 서찰 하나를 꺼내어 내게 건네주었다.

'오독교 내부 전각의 위치와 각 전각의 세세한 정보가 담겨 있구나. 이거 하나면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겠다.'

"아주 세밀하게 적혀 있군요. 도대체 언제 이런 걸 준비한 겁니까?"

"하오문은 원래 그런 정보로 살아가는 문파에요. 지금도 수많은 문파에서 하오문의 정보원들이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있을 거예요."

"혹시 하오문에서 무림 정복이라도 꿈꾸는 거 아닙니까?"

나의 말에 수향 소저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호. 설마 하오문이 그런 대담한 생각을 하겠어요? 만약 진짜로 하오문이 마음먹는다면.. 혼자서는 어렵겠지만 무림의 다른 세력과 힘을 합치면 아주 불가능할 거 같지는 않은데요. 하오문의 정보력에 무력이 합쳐진다면.."

'하오문의 진정한 힘을 아직 모르는 자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을 적으로 만들면 위험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군.'

"앞으로 하오문과 소저에게 더 잘 보여야겠군요."

"무영 소협, 그동안 진중한 모습만 봐서 이런 분인 줄 몰랐네요. 생각보다 재미있는 분이군요. 호호호."

난 그녀의 웃는 모습을 힐끔 쳐다보고는 또 묘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자, 이제 위치도 알았으니 찾아볼까요?"

"그래요. 지도에 표시된 곳이 독물과 독충을 모아놓은 곳이니 그곳부터 가보면 될 거 같아요."

수향 소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지도에 표시된 전각으로 이동했다.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지독한 악취에 난 코를 막았다.

"소저, 이곳에 독충과 독물이 많아서 혹여 중독될지 모르니 조심하세요."

"제 걱정은 마세요. 전 피독주를 지니고 있어서 중독되지 않아요."

'뭐야, 자기 것만 챙긴 거야? 기왕이면 나도 하나 주지.'

"그랬군요. 준비성이 철저하네요."

"제 것만 준비해서 괜히 미안해지네요. 소협 것도 하나 가져올걸."

"아닙니다. 괜찮아요. 저도 웬만한 독은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글거리는 독충과 악취가 나는 독물 사이에서 상사화를 찾아보았지만 비슷한 것조차 찾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이곳에는 없는 것 같군요. 어떡하죠?"

"이곳에 없다면 그게 있을 곳은 하나밖에 없네요."

"그곳이 어디를 말하는 겁니까?"

"교주의 방에 있다는 비밀 공간에 있을 거예요."

"교주의 방에 비밀공간이 있다는 겁니까?"

"네. 하오문에서 심어놓은 정보원의 말에 의하면 희귀 독충과 독물은 교주가 자신의 방 어딘가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용히 상사화를 찾아 나가려 했는데, 교주의 방에 그것도 어딘지 모르는 비밀 공간에 있다니 쉽지 않겠군.'

"일단 교주의 방으로 가야겠군요. 초아 소저는 밖에서 기다리세요. 교주의 방은 제가 혼자 갈게요."

"소협, 혼자서 괜찮겠어요?"

"교주의 방에서 두 사람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저 혼자 조용히 비밀 공간을 찾는 게 걸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그럼 빨리 다녀오세요."

"밖에서 반 시진만 기다리고 만약 그때까지 제가 안 오면 그냥 돌아가세요."

"......“

아무 대답이 없는 그녀를 뒤로하고 오독교 교주가 기거하는 전각으로 향했다.

전각 입구에서 경비를 서는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은신술을 극성으로 펼치며 들어갔는데 항상 은신술을 쓰며 살던 그림자 무사 시절 때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경비를 서고 있는 오독교 교도들을 지나쳐 곧장 교주의 방으로 향했다.

교주가 있는 곳이라 조금 더 긴장감을 높이며 교주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이상하다. 교주의 방문 앞이 비어있다니.. 생각보다 경비가 너무 허술한데..'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펼치는 은신술은 이미 그림자 무사 시절만큼, 아니 그보다 더 나아졌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신중하게 이곳저곳을 살피다가 애매한 위치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드는 책장에서 시선이 멈추었다.

'저 책장이 어색하고 애매한 곳에 있다. 뭔가를 숨기려고 그런 걸까?'

조용히 책장으로 다가가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기막을 펼치고 옆으로 밀어보았더니 부드럽게 밀렸다.

'역시 책장 뒤편에 비밀 장소를 숨겨두었군.'

비밀 장소로 들어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 안에는 처음 보는 독충과 독물이 모여 있었다.

'이 많은 걸 교주가 자신의 공력을 향상시키려고 모은 거겠지? 욕심도 많군. 그나저나 상사화는 어디에 있으려나.'

미리 수향 소저에게 상사화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두었기에 나는 독물 사이를 헤집으며 상사화를 찾고 있었다.

한참을 찾다가 수향 소저에게 들었던 상사화와 비슷한 모양의 꽃과 잎 말린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이거군. 드디어 찾았다!'

나는 상사화를 어렵게 얻은 기쁨에 소리를 지를 뻔했다.

상사화 꽃과 잎 말린 것을 집어 들어 품 안에 넣고 일어서려는 순간 날 향해 달려드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검으로 목을 베었다.

죽이고 나서 살펴보니 그것은 백사였는데 피에서 고소한 향이 나는 걸 보니 꽤나 귀한 영물인 듯싶었다.

'이런 영물의 피는 몸에 좋다고 하던데.. 아까우니 먹어야지.'

나는 망설임 없이 백사의 흐르는 피를 꿀꺽꿀꺽 삼켰다.

백사의 피를 한참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몸에 기운도 충만해졌다.

'오! 내공도 제법 증진된 거 같고 이 백사가 진짜 영물이었구나. 나중에 교주가 알면 피눈물이 나겠는걸.'

혹시 대극의 뿌리도 있으려나 싶어 독물을 뒤져보니 그것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얻을 것은 다 얻었기에 비밀 장소를 빠져나와 문을 닫고 책장을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았다.

교주의 방을 나가려는 그때 나를 향해 날라오는 철편 소리에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웬 놈이냐? 혈향을 풍기며 내 방에 들어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로구나."

"......"

연이어 나에게 철편을 정신없이 쏘아 보내는 이는 오독교의 교주 채홍이었다.

대대로 오독교의 교주는 독공과 채찍술에 능통했고 당대에 이르러 철편을 쓰는 채홍으로 인해 채찍술이 좀 더 위력적으로 변했다.

"여기 올 때 나에게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했겠지. 어떤 대범한 도둑놈인지 얼굴 좀 보자."

"살살 하시지요. 저 철편에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리겠소."

"하! 어이가 없구나. 이놈이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내가 괜히 그녀의 화를 돋우었는지 철편의 속도가 더 빨라지고 변화의 폭도 커졌다.

'최소한 채찍술로 절정 경지에 이른 듯하군. 이런 류의 고수를 별로 상대해 보지 않아서 굉장히 까다롭구나. 독공도 조심해야 하고.. 적당히 상대하다가 틈을 봐서 도망쳐야겠군.'

나는 검으로 철편을 막았는데 그 순간 채홍은 나의 검을 철편으로 감싸 검을 빼내지 못하게 하며 다른 손으로 장력을 발출했다.

장력에 검은빛이 어린 것을 보니 독공인 것 같았다.

'독공이라면 불로 태워버려야지.'

나도 급히 내기를 끌어올려 열화신장을 발출했다.

쾅!

두 장력이 만나자 폭발하듯 강력한 소리가 났다.

다행히 공력은 내가 앞섰는지 먼저 장력을 내보낸 채홍이 뒤로 더 많이 밀려났다.

"이건.. 열화신장? 대뢰음사에서 왜 날 노리고 왔지?"

채홍이 나의 장력에 데인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조용히 가려 했는데 교주께서 날 붙잡으니 조금 상대해 주고 가야겠군요. 안 그래도 저 안에 있는 백사의 피를 먹었더니 몸이 뜨거워져서 몸을 풀 필요가 있었는데.."

"백사? 설마 나의 백 년 묵은 영린 백사를 죽여 그 피를 마셨단 말이냐?"

"표정을 보니 꽤나 아끼던 거 같군요. 이거 미안하게 됐소."

"이 새끼가!"

장력 충돌 후 잠시 멈추었던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철편의 끝에 달린 날카로운 칼날이 나의 심장과 중요 혈도를 노리고 날아 들어왔지만 창궁무애검법의 검망에 가로막혀 피해를 주진 못했다.

"아니! 이제는 창궁무애검법? 남궁세가 사람인가?"

"......"

빈틈이 안 보일 정도로 정신없이 날아오던 철편도 한참 피하다 보니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졌고, 한 번씩 날아오는 독공도 어려움 없이 피하자 오독교 교주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무공 경지가 나보다 뛰어난 것 같은데.. 날 죽이러 온 것 같지는 않고 굳이 밤중에 몰래 찾아온 이유가 뭐지?"

"내가 필요한 게 이곳이 있었소. 조용히 가져가려 했는데 이렇게 됐군요."

"당신은 누구지? 대뢰음사에서 왔나? 아니면 남궁세가?"

"그것까지는 알려 줄 수가 없소."

"그렇군. 그런데 내 방에 들어올 때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나?"

갑자기 채홍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게 말하자 몸에서 뜨거워지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설마.. 중독된 걸까? 나는 웬만한 독은 이겨낼 수 있는데 어떻게 된 거지?'

"안 그래도 명색이 교주의 방인데 방문 앞을 지키는 경비나 호위가 하나도 없길래.. 이상하기는 했지요."

"지금 몸이 뜨거워지고 호흡이 빨라지며 진기가 흩어지지 않는가?"

"난 아까 뱀피를 마셔 그런 줄 알았는데.. 중독되어서 그런 거였군요."

"그래. 들어올 때부터 중독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한참 지났으니 이미 온몸에 퍼졌겠지."

"대체 무슨 독을 하독한거요?"

'그녀의 말대로 온몸에 독이 퍼진 모양이군. 몸은 달아오르고 진기가 흩어지고 있다. 낭패로군.'

나의 물음에 채홍은 말없이 자신의 외부를 벗었다.

"가.. 갑자기 뭐 하는 짓이요?"

"인내심이 대단하구나. 하지만 이건 못 참을걸?"

채홍이 서슴없이 속옷까지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앞에 서 있자 내 몸이 통제되지 않았다.

'이럴 수가! 춘약에 당했구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안돼!'

나는 채홍을 안고 싶은 욕망을 양의심법의 구결을 외우면서 억누르고 검으로 왼쪽 손목을 그어 피를 흐르게 하며 춘약의 기운을 잠시나마 잠재웠다.

"아직까지 참고 있는 네 의지는 대단하다만. 중독된 이상 앞으로 이 각 안에 여인과 합궁하지 않으면 넌 죽거나 산다 해도 혈맥이 막힌 폐인이 될 거다. 이리 오거라."

"아직 경험이 없는 숫총각인데.. 당신과 같은 여인에게 첫정을 줄 수는 없죠."

그 말과 함께 혹시 몰라 챙겨왔던 연막탄을 품 안에서 꺼내 채홍에게 던졌다.

연막탄이 터지고 나는 흩어지는 진기를 양의심법으로 억지로 붙잡으며 정신없이 오독교를 빠져나갔다.

'여기서 쓰러지면 안 된다.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해.'

나는 다행히 오독교 담을 넘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 뒤 진기가 모두 흩어져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춘약의 기운도 이기지 못한 채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정말.. 이대로 끝인가? 이번 생도 춘약 따위에 중독되어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는단 말인가..'

< 오독교, 위기의 시간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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