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51화 (51/114)

< 그녀의 첫 행적 >

우리는 하오문에서 건네받은 정보를 따라 광동성 남부 지역에 있는 남해 객잔에 들렀다.

"소향 소저, 이곳이 그 두 사람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곳이 맞습니까?"

"네. 이곳 점소이로 일하는 정보원이 준 정보니 확실할 거에요. 들어가 볼까요?"

우리는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를 발견한 점소이가 손님을 응대하기 위해 빠르게 다가왔다.

"어서옵쇼. 무엇을 드릴까요?"

"조용한 방에서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럼 별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점소이를 따라 별실로 이동했다.

별실에 들어가서 의자 앉자 점소이가 말했다.

"식사를 무얼로 드릴까요?"

"그 전에 당신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네? 저랑요? 갑자기 무슨 대화 나누자는 거죠?"

뜬금없이 대화 좀 하자는 나의 말에 점소이가 당황했는지 문 쪽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무영 소협, 제가 해결할게요. 그냥 앉아 계세요."

수향이 자신의 옆 주머니에서 작은 옥패를 꺼내 점소이에게 살짝 보여주었다.

그리고 점소이에게 다가가 그의 귓가에 무언가를 한참 이야기하자 점소이의 태도가 굉장히 고분고분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귀한 분들이 오셨군요. 두 사람을 발견한 그 날의 정보를 원하시는 거죠?"

"그렇습니다. 난 그날 당신이 이곳에서 그녀들을 발견하고 보고했던 두 사람의 정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싶어요."

"정확히 어떤 걸 알고 싶으신 거죠?"

"옷차림새, 두 사람의 표정, 그녀들이 나눈 대화, 먹은 음식까지 모두 빠짐없이 말해주세요."

"한 달 전 일이라 완벽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떠올려 볼게요."

그는 눈을 감고 미간을 찌푸리며 그날 일을 떠올리려 애썼다.

잠시 후 눈을 뜬 점소이가 말했다.

"거의 한 달쯤 되었네요. 그날은 비도 오고 날씨도 흐린 밤이었어요. 비가 와서인지 손님도 별로 없고 해서 객잔 안에서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객잔 문을 열고 두 여인이 들어왔어요."

점소이는 목이 마른지 잠시 탁자 놓인 물을 한잔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한 여인은 검은 야행복에 검은 죽립을 눌러쓰고 있었고 다른 여인은 흰옷에 흰 면사를 얼굴에 쓰고 있었어요. 두 사람이 아주 극명히 대비되어 인상 깊었기에 또렷하게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검은 야행복에 검은 죽립이라.. 7호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군. 황녀님은 흰옷을 입고 있었구나.'

"그리고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두 여인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면서 진한 피 냄새를 맡았어요. 그리고 옷 여기저기에 핏자국 같은 것도 묻어있었고요."

핏자국을 보았다는 그의 말에 나는 크게 놀라서 되물었다.

"핏자국을 보았다고요? 혹시 두 여인이 다쳤던가요?"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인지 아니면 그 두 여인이 다친 건지. 하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객잔을 들어올 때 그녀들의 걸음걸이나 거동이 불편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피가 묻은 듯합니다."

'두 사람이 황궁을 빠져나와 여기까지 오는 길이 험난했구나.'

"두 여인은 간단히 소면을 먹은 뒤 이각(30분)도 되지 않아서 객잔을 떠났습니다."

"그럼 두 사람의 얼굴은 전혀 보지 못한 겁니까?"

"검은 야행복을 입은 여인은 식사할 때 죽립을 벗어서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동지부에서 보낸 용모파기를 보고 정보를 드린 거고요. 하지만 면사를 쓴 여인은 소면을 먹을 때도 면사를 가볍게 들어 올리며 먹어서 완전히 얼굴을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또 다른 건 생각나는 게 없습니까?"

"두 여인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듯했고, 검은 야행복의 여인이 흰옷을 입은 여인을 호위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주변을 항상 경계했고 객잔을 나설 때도 검은 옷 입은 여인이 바깥을 살핀 후 흰옷을 입은 여인이 나갔습니다."

'황궁에서는 분명 반란군 모르게 빠져나갔다고 했는데.. 반란군 무리가 황궁을 점령한 후에 도망친 황녀님의 위치를 파악해서 이곳까지 쫓아왔다고 하기에는 시간상 맞지 않다. 도대체 누가 이곳까지 황녀님을 쫓아 온 걸까?'

"객잔을 나와 그들이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는 못 보았습니까?"

"네. 비 오는 밤중이라 그것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 두 여인이 떠나고 난 후 그들을 찾거나 수상한 자가 객잔에 방문한 적은 없었습니까?"

나의 말에 점소이는 다시 기억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음.. 그러고 보니 그 날은 아니고 이틀 뒤쯤에 두 여인의 행적을 묻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자들은 몇 명이었죠? 어떻게 생겼습니까? 옷차림은요?"

나의 연속되는 질문에 점소이가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차분하게 답변을 해주었다.

"총 다섯 명이었습니다. 옷차림은 평범했어요. 옆구리에 검을 차고 있었는데 말투나 절도 있는 몸동작으로 봤을 때 무림인이 아니라 군인이나 관병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섯 명 중 한 명이 나머지 네 명을 이끌고 다니는 듯했습니다."

'무림인이 아니라 관병이나 군인 같았다라.. 군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관병 같은 느낌의 무공 고수는.. 금의위. 그들일 가능성이 높겠군. 그들이 황녀를 찾는 이유가 지켜주기 위함일까? 아니면 죽이기 위함일까?'

"그럼 그들은 그때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네. 그 뒤로는 본 적이 없습니다."

"혹시 그 다섯 명 중 지시를 내리던 자의 얼굴 특징을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점소이는 다시 한번 자신의 기억을 쥐어짜서 그자의 생김새를 말해주었다.

"생김새는 옆에 계신 분처럼 부잣집 귀공자 같은 인상이었는데 첫인상은 좀 차가워 보였고 왼쪽 눈썹에서 시작하여 눈 옆쪽으로 작은 검상이 있었습니다."

'차가운 인상과 왼쪽 눈썹에 검상이라면 금의위에서 북진무사를 이끌고 있는 그자밖에 없지. 냉혈무사 진유한. 그자가 이곳까지 직접 움직이다니..'

금의위의 역할이 반역을 꾀하거나 각종 범죄를 저지른 관리들을 잡아다가 심문하고 죄를 토설하도록 해야 하기에 그들은 각종 고문 수법에 능했다.

그중에서도 진유한의 고문 능력은 탁월하여 그자에게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 냉혈무사였다.

"그렇군요. 혹시 그자가 다시 객잔에 나타나면 하오문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십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는 남해 객잔을 나와 객잔 주변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무영 소협, 찾고 있는 분이 한 분은 친우고 한 명은 연모하는 여인이라 했는데.. 호위하는 분이 친우고 흰옷을 입고 계신다는 분을 연모하시나요?"

"그렇습니다. 호위를 하던 여인은 내 어릴 적 친우고, 다른 여인이 내가 연모하는 여인입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은 언제부터 연모하였습니까?"

"아주.. 오래전부터요."

'전생 때부터니까 아주 오래전이지.'

"군부에 입대하기 전부터 입니까?"

"그렇지요."

"그럼 그 여인을 본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황녀님은 전생에서 본 게 마지막이었고 내가 10살로 돌아와 13년을 더 살았으니..'

"음..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13년 정도 된 거 같네요."

"네? 13년 전이면 10살 때 아닌가요? 10살 때 좋아한 여인을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는 거예요?"

'내 전생을 알지 못하니.. 달리 설명할 말도 없고 답답하네. 내가 황녀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저들에게는 고작 열 살짜리 꼬맹이 시절의 소꿉장난처럼 보이겠구나.'

"그게.. 그렇게 되는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좋아하고 있어요."

나의 담담한 대답에 나를 바라보는 수향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는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순수하시네요. 그 여인도 무영 소협을 좋아하나요?"

'그때는 날 좋아해서 죽음까지 함께 했지만, 이번 생은 황녀님은 내가 누군지 조차 모를 테지.'

"그 당시에는 같은 마음이었지만 아마도 지금은 나 혼자만의 연정일 것 같네요."

"연정을 품고 그 여인을 지켜주기 위해 목숨까지 걸다니.. 생각보다 더 멋진 분이셨네요."

"그것보다 두 여인이 쫓기고 있고 그녀들을 찾는 무리가 있다니 일단 그자들부터 찾는 게 어떨까요?"

나의 말에 수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아까 들은 인상착의만으로도 하오문에서는 그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소저가 하오문에 그자들을 찾아달라 연락 좀 해 주시겠습니까?"

"네, 그렇게 해 드리죠."

다시 객잔으로 돌아가 수향이 점소이에게 귓속말을 전하자 그가 객잔 밖으로 부리나케 달려나갔다.

"수향 소저는 하오문에서 지위가 어떻게 되길래 하오문 문도들이 저렇게 말을 잘 듣는 거죠?"

곁에 있던 하진이가 궁금했는지 묻자 수향 소저가 웃으며 대답했다.

"호호호. 유곽 기생이 높아봤자 얼마나 높겠어요. 그저 호가호위하는 거죠."

"소저께서 누구의 권세를 빌린다는 겁니까?"

하진이 다시 묻자 수향 소저가 옥패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건 향주님이 이번 일을 잘 처리하라고 제게 맡기신 옥패에요. 이 옥패를 가진 자의 명은 향주님의 명과 같죠. 하오문 문도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는 명이죠."

"와! 향주께서 엄청난 옥패를 수향 소저께 맡기셨네요. 신임이 크신가 봐요."

"호호호. 그러게요. 절 좋게 봐주셨나 봐요."

'아..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수향의 웃음소리는 언제나 내 심장을 요동치게 만드는군.'

"그 옥패 꽤나 탐나는 물건이군요. 하오문 문도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니.."

"나중에 향주를 만나면 옥패 하나 주실 수 없는지 물어봐요. 무영 소협이 마음에 들어서 하나 주실지도 모르니까.. 호호"

"언감생심. 향주께 괜히 엄한 소리 했다가 하오문을 적으로 돌리게 될까 두렵네요."

"어머, 무슨 말씀을. 향주님은 무영 소협을 마음에 들어 하세요."

"음.. 그게 무슨 얘기죠?"

"첫 만남 때 소협을 좋게 보셨다고요."

"아..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다니 다행이네요."

우리는 다시 객잔을 나와 주변을 살피는데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바다가 보였다.

"바다와 인접해 있었네. 저기 보이는 섬이 해남도인가?"

"네, 형님. 저기가 무림인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섬. 해남도예요."

"왜? 무림인들이 함부로 드나들 수 없지?"

하진이는 내가 정말 몰라서 묻는 건지 확인하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 후 말했다.

"이럴 때 보면 무림에 대해서 완전히 문외한인데 가끔 보면 무림 노고수 같기도 하고.. 형님은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종잡을 수가 없네요."

"강호초출이니 문외한일 수밖에."

"형님, 어디 가서 그런 말 마세요. 나니까 이해하지 다른데에 가서 그 실력으로 강호초출이라고 하면 욕먹어요."

"그래, 알겠다. 이유나 설명해 줘봐."

옆에서 듣고 있던 수향이 웃으며 대신 답했다.

"호호호. 두 분 대화를 들으니 정말 친형제 같네요. 제가 대신 설명해 줄게요. 저기 보이는 해남도는 꽤 큰 섬이지만 저 섬 전체를 구파일방의 한 곳인 해남파가 관리하고 있어요. 하여 저 섬에 해남파의 허락 없이 무림인이 들어가면 그건 해남파와 전쟁을 하겠다는 의미인 거죠."

"해남도 전체가 해남파의 구역이라는 거군요."

나의 말에 수향이 고개를 끄덕인 후 설명을 이어갔다.

"네, 그뿐만 아니라 해남도를 무림인이 함부로 못 가는 이유는 해남도의 또 다른 문파인 남해검녀문이 해남도 중앙에 있는 해남산에 위치하고 있어서에요."

"남해검녀문? 해남도는 해남파가 관리한다면서 어떻게 다른 문파가 자리 잡고 있는 거죠?"

이번에는 수향이 아까 전의 하진이와 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남해검녀문을 몰라요?"

"네, 유명한 문파인가 보죠? 거기도 구파일방인가요?"

"네? 호호. 어떤 의미로 정말 대단하네요. 남해검녀문은 당대 검후 있는 곳이에요."

"검후라면 여인들 중 최고수를 말하는 거 아닌가요?"

"그건 아시네요. 그 최고수가 저기 보이는 해남산에 있어요."

무림 여고수 중 검술의 최고수를 일컬어 검후라 부른다.

검후의 대부분이 아미파, 검각, 남해검녀문 중에서 돌아가며 나왔었고 당대에는 검후가 남해검녀문에서 나왔다.

남해검녀문 문주이자 당대 검후 은소향.

그녀가 여인으로는 유일하게 무림 십대고수에 들어 그녀가 사는 해남도는 더욱 무림인들에게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성역처럼 인식되었다.

< 그녀의 첫 행적 > 끝

ⓒ 청운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