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오문에 의뢰하다 >
다음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간단히 세안 후 천하진을 찾았다.
"하진아, 생각났어."
"형님, 아침 일찍부터 뭐가 생각났다는 거에요?
"너의 아버지의 독을 해독할 방법을 말이야."
"정말로요?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하진이 나의 말을 듣고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재촉했다.
"너의 아버지께서 중독 되신 독은 무형독이라는 건데.. 무색, 무취에 진행속도도 느려서 언제 중독된 지도 모를 정도야. 상대방이 마음먹고 하독하면 중독되기 쉬운 아주 위험한 독이야."
천하진은 나의 말에 귀기울여 듣다가 무형독이란 말에 의아해하였다.
"저는 무형독이란 건 처음 들어봐요."
"그럴 수 밖에.. 무형독은 당가에서 만들고나서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폐기했다는 독이니까.. 그런데 왜 너의 아버지가 그 무형독에 중독되었는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독의 명가인 사천당가를 말하자 천하진은 놀라며 물었다.
"사천당가를 말하는거에요? 무형독을 당가에서 만들었다고요?"
"내가 알기론 그래.. 너희 상단과 당가가 사이가 안 좋거나 그러진 않니?"
"당가와 우리는 사이가 나쁠 일이 없어요. 사천성과 광동성은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서 부딪칠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둘째가 사천성 지역에서 유학을 할 때 당가 자제들과 친분을 쌓아서 사이가 좋은 편이죠."
"그래.. 그냥 당가 고유의 독이 외부로 유출 되었으니 한번 의심해 본 것이지.. 당가가 직접 나섰다는 의미는 아니야. 당가의 독을 누군가 훔쳐서 하독했을 수도 있고.."
"형님은 일단 아버지의 몸에 있는 독은 무형독이라 확신 하시는 거에요?"
"내가 직접 겪어본 중독 증세와 너희 아버지 몸에 나타난 증상과 같아서..거의 확신하고 있다."
직접 겪어봤다는 나의 말에 하진이 밝은 표정으로 물었다.
"형님이 직접 겪어봤다는 건 중독 되었다가 해독 했다는 의미네요. 그렇죠?"
"그래. 내가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건 해독이 잘 되었다는 거지."
'무형독에 중독된 것도 전생이고 해독도 전생에 했지만..뭐 한번 무형독을 겪어 본 건 사실이니까..'
"그럼 빨리 아버지께 가서 말씀 드리고 해독해 주세요."
나는 흥분해 있는 하진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하진아, 일단은 이 일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한다."
"네? 아무에게도 왜요?"
"너의 아버지를 중독시킨 사람은 상단 내부의 사람이다. 그 자를 못 찾았는데 상단주가 해독되었다고 알리면 그자가 도망쳐 버리거나 극단적으로 네 아버지께 더 위험한 방법을 써서 해하려 할 수도 있다."
그제서야 하진은 나의 말이 이해가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고보니 형님 말씀이 맞네요. 그런데 아버지께도 말씀 드리면 안되요?"
"아직 해독약도 준비가 되지 않았고, 미리 말씀드렸다가 만의 하나라도 중독된 독이 무형독이 아닐 경우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수도 있으니 일단 해독약부터 만들고 그 다음에 말씀 드리도록 하자."
"네, 형님. 그렇게 할께요. 해독약을 만드려면 뭘 준비하면 되죠?"
"해독약의 재료는 상사화의 꽃과 잎, 그리고 대극의 뿌리가 필요해."
하진은 상사화라는 꽃에 대해 처음 들어봤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상사화요? 그거는 처음 들어봤는데요.. 그런데 대극은 눈을 멀게 한다는 독초 아니에요?"
"그래. 대극은 독초다. 상사화도 마찬가지로 독초다."
"독초를 해독약으로 쓴다고요?"
"대극과 상사화는 무형독과 상극인 독초라서 중독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대극과 상사화의 독에 증독되면 어떡해요.."
"말려서 아주 소량씩 섭취하실 거니 이상이 없을거다. 나도 그렇게 해서 나았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하진은 나를 신뢰하는지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형님을 믿어요. 그럼 제가 약방에 가서 구해올까요?"
"약방에 나와 같이 가 보자구나."
나는 하진을 따라 광주에서 규모가 제일 큰 약방에 들렸다.
약방 안에 들어서자 각종 약재의 냄새와 탕약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예전에 가 본 황실의 약재 창고 중 가장 작은 곳에도 비할 바가 못 되기는 하나 여기도 나름 약방에 있을 건 다 있는 듯한데.. 오..이쪽에는 오만가지 약재가 다 있네.'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이는 곳이 다 인줄 알았는데 옆 건물도 약재로 가득 차 있었다.
"형님, 이 정도 약재가 있다면 우리가 찾는 것도 있겠죠?"
"그렇지 않을까? 이 많은 약재 중에 하나는 있겠지."
우리를 발견한 약방 주인이 나와 인사를 하며 말했다.
"어서오세요. 저희 광동약방에는 무슨 약재를 찾으러 오셨습니까?"
"말린 상사화 꽃과 잎을 찾습니다. 그리고 말린 대극의 뿌리도 찾고요."
"네? 상사화를 찾는다고요? 대극의 뿌리도요?"
"네. 이곳에 없습니까?"
"상사화는 이 지역에서 나는 풀도 아니고요. 그리고 대극과 마찬가지로 상사화도 독초입니다. 여기는 약초를 말려서 약재로 파는 곳이지. 독초를 파는 곳이 아닙니다."
"독초 또한 상황에 맞게 쓰면 약초가 되는 법인데.."
나의 말에 약방 주인은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다.
"아무튼 저희 약방에는 그런 약재는 없습니다. 아마도 이 지역 그 어느 약방에도 상사화나 대극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약방 주인의 말에 천하진이 울먹이며 말했다.
"그럼 우리는 그 약재를 어디서 구하란 말이에요?"
"독초이니 독으로 유명한 사천당가나 독곡, 오독교에는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상사화 같은 경우에는 그들도 그리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아마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주진 않을 겁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이만 가볼게요."
광동 약방을 나온 하진이와 나는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형님 이제 어떻게 하죠. 해독법을 알아도 약재를 구할 수 없으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 약재가 있는 곳을 찾아서 손을 써 봐야지."
나의 말에 천하진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요? 오독교나 독곡은 사파라 우리를 만나주지도 않을 거고 설마 사천당가에 찾아 가려고요?"
"아니.. 일단은 그 약재들을 찾을 수 있는지부터 알아봐야지."
"어떻게 알아봐요?"
"지금 다시 어제 갔던 유곽으로 가자."
"아! 형님, 하오문에 의뢰하겠다는 거군요."
"그래. 그들이라면 그 어디보다 정보가 많이 있으니 상사화나 대극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을테니까."
"한데 유곽은 밤에만 열어요. 지금은 아침이라 가봐도 아무도 없고 문은 닫혀 있을 거에요."
"그래? 밤에만 여는구나. 음.. 그럼 밤에 다시 오는 수 밖에 없겠네."
"네. 그럼 이따가 밤이 다시 와요."
밤이 되고 나와 천하진은 어제 방문했던 유곽에 하루 만에 다시 오게 되었다.
선녀유곽
'어제는 당황하여 저 간판도 눈에 안 들어오더니 두번라고 이제는 조금은 덜 긴장이 되는군.'
선녀 유곽에는 휘양찬란한 불빛들로 대낮처럼 밝았다.
오늘 역시 속옷만 입은 여인들이 밖에 나와 사내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사내인지라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음.. 수향이라는 기녀는 보이지 않는구나. 그녀는 저렇게 입지 않았던데.. 단아하고 고왔지.. 내 앞에서 춤을 출 때는 딱 선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순간 수향의 춤추던 모습이 떠오르며 몸이 뜨거워지며 상념에 빠져들었다.
"형님, 저 여인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하고 계세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하진이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음.. 저 여인들을 보면서.. 생각한 게 아니라.. 그냥 다른 아는 여인이 떠올라서... 아니다.."
"형님, 여자를 많이 안 만나봤죠? 형님처럼 경험 없는 사람은
한번 여자 잘못 만나면 인생 제대로 꼬이는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들어가자. 총관을 만나봐야지."
'수향의 춤을 떠올리면서 몸이 뜨거워지고 상념에 빠지다니.. 내 수양이 이 정도 밖에 안되었나.. 양의심법을 좀 더 수련이 필요하겠어.'
나는 황급히 하진이를 데리고 유곽 안으로 들어갔다.
유곽 안에도 많은 여인이 있었지만 나를 하진이 데리고 그 사이를 헤집고 나와 총관이 있는 곳으로 내실로 이동했다.
내실 문 앞에서 하진이 말을 했다.
"상관보 총관님, 저 하진입니다."
"하진 소협이구만.. 며칠 기다리라 했는데 하루만에 무슨 일로 왔는가?"
"다른 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어제 말씀드린 형님과 같이 왔습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게."
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상관보 총관이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반갑소이다. 난 이곳 선녀유곽의 총관을 맡고 있는 상관보라 하오."
"전 신무영이라 합니다."
"사람을 찾는다 했지요?"
"네. 두 명의 여인입니다."
상관보가 나의 전신을 훑어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헌데 직접 안 찾고 굳이 하오문에 의뢰를 맡기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군요."
"빠른 시일내에 찾기를 원하는데.. 저 혼자서는 무리라서요."
"음.. 하오문에서 이 일을 맡을지 말지는 잘 모르겠어서 확답은 못 주겠소."
"그렇군요. 하오문은 돈이면 뭐든 받아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였군요."
"돈의 액수에 따라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달라지기는 하오."
"선수금 얼마면 의뢰를 맡길 수 있을까요?"
"내가 볼 때 10냥 정도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소."
내가 금화 10냥을 꺼내 탁자에 턱하니 올려놓자 천하진과 상관보 두 사람 모두 놀라 말했다.
"형님, 총관께서 말한 10냥은 은자 10냥입니다. 금화 10냥은 은자 100냥입니다. 집 한채 값이라고요."
"하진 소협 말이 맞소. 은자 10냥을 말한 것인데 금화 10냥을 꺼내다니.. 무영 소협이 알고 장난친 것이요? 아니면 강호초출이라더니 정말 세상 물정을 몰라서 이러는 것이요?"
"돈의 액수에 따라 움직이신다고 하니 이왕이면 큰 금액을 드리면 무조건 의뢰를 받아 들일 것 아닙니까.. 어차피 두 여인을 찾아낸다면 그보다 훨씬 많은 금액을 드릴테니.. 그 정도는 얼마든지 맡길 수 있지요."
"이제보니 내가 강호초출이 아니라 산전수전 다 겪은 노고수를 상대했구려. 실례했소이다. 잠시 기다리면 하오문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해드리겠소."
상관보가 하오문 사람을 데리러가고 잠시 후 상관보가 다시 들어오고 뒤이어서 면사를 쓴 여인이 들어왔다.
"이분은 하오문에서 오셨소. 이 분과 직접 대화를 나눠보시오."
"총관께 이미 이야기는 들었어요. 반가워요. 무영 소협."
"목소리가 낯익은데.. 혹시 저를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여인의 목소리가 다 비슷비슷하니 그리 착각 하실 수도 있죠."
'목소리가 낯익는데.. 아닌가.. 하긴 내가 광동성에 아는 여인이 어디 있다고..'
"아..그런가요. 실례했습니다."
"찾는 분이 두 여인이라던데.. 어떤 관계이십니까?"
"한명은 저의 친우이고 한명은 연모하는 여인입니다."
"그럼 그 두 여인은 무슨 연유로 사라졌고 찾는 이유는요?"
"두 여인은 나쁜 자들에게 쫓기고 있고 저는 그 두 여인을 지켜주고 싶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그 여인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호호.. 나쁜 자들이라... 정보를 다 말할 수 없다는 건가요? 그럼 찾기가 쉽지 않는데.. 그래도 괜찮아요?"
"일단은 저도 하오문의 정보력을 믿어도 되는지 보고요. 두 여인의 인상착의를 말씀드릴테니 최대한 근접한 정보를 가져다 주시면 믿고 나머지 정보도 드리지요."
"아.. 의뢰를 맡을 수 있는지 먼저 우리의 능력을 먼저 보여달라는 거군요. 재미있는 분이군요. 좋아요. 일단 인상착의를 말해봐요. 나이도 같이요."
내가 간단히 두 여인의 나이와 인상착의 등을 설명해 주자 그 여인은 금세 용모파기를 만들었다.
< 하오문에 의뢰하다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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