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45화 (45/114)

< 군부를 떠나 무림으로 >

내 막사로 들어온 두 사람은 예현과 석견이었다.

예현은 내가 들고 있는 짐을 보더니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하.. 역시 아까 안휘 장군님께 갈 때 표정이 심상치 않더니만. 떠나려고 하는 거야?"

"그래, 미안하다. 너희만 두고 나 혼자 떠나게 돼서."

석견이 나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싸부, 나도 같이 갈까? 예현이나 나는 싸부가 같이 가자고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같이 갈 수 있어."

"너도 알잖아. 지금 나와 같이 나가면 탈영이라는 걸."

"그래도 난 따라갈 수 있어."

"지금 같은 전시상황에서 군영을 이탈하면 발견 즉시 사살하라는 명이 떨어질 거야."

"......"

예현은 나의 말에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걸 알면서도 지금 떠나겠다는 거야?"

"응. 난 가야만 해. 지금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며 살아가게 될 거야."

"지금 가면 넌 평생 중원에서 사는 한 군부에 쫓겨 다닐 거야. 그것까지 감수할 생각으로 떠난다는 거지?"

"그래, 나도 알지만 가야만 해."

"그렇다면 더 이상 붙잡지 않을게. 우리 전역할 때까지 무사하게만 지내라. 네가 어디에 있든 2년 후에 우리가 널 찾아갈 테니.."

"그래, 정말 고맙다. 너희도 항상 몸조심하고 그때 다시 만나자."

석견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한번 싸부는 영원한 싸부야. 첫 제자인 날 잊으면 안 돼. 어디에 있든 찾아낼 테니까.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잘 지내고 있어야 해."

"그래. 내가 첫 제자를 어떻게 잊겠니. 2년 동안 먼저 나가서 자리 잡고 있을 테니까 꼭 찾아와."

나는 두 사람을 한 명씩 꽉 부둥켜 안아주고 마지막으로 예현에게 서찰을 건네주었다.

"이건 안휘 장군님께 쓴 서찰인데, 네가 내일쯤 내 책상에서 발견했다고 전해 드려. 내가 맡고 있던 대대 부장 자리는 널 추천했어. 나 대신 대대원들에게 미안하다 전해주고 잘 부탁할게."

"알았으니까.. 넌 이곳을 벗어나면 즉시 군부에 대한 미련이나 추억 모두 다 버리고 네가 지금 탈영까지 하며 해야 하는 일 그것만 신경 써."

"고맙다, 예현아. 둘 다 건강하게 잘 있어라."

두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마친 나는 짐을 들고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은신술을 쓰는 데다가 야행복을 입고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군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는 일단 군부에서 나오자마자 그곳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을 정신없이 달렸다.

'황녀님과 7호가 남쪽으로 향했다고 했으니 일단은 무조건 남쪽으로 가자.'

목적지는 없었지만 가야 할 방향은 명확했기에 속도를 내며 남쪽을 향해 밤새도록 달렸다.

탈영병의 몸이니만큼 최대한 사람들을 덜 마주치기 위해 대로를 피하고 낮에는 주로 산길이나 외진 길로 다녔다.

배고플 때는 뱀이나 토끼 같은 야생 동물을 사냥하여 먹고 밤이 되면 동굴이나 아름드리나무 밑처럼 새벽이슬을 피할 곳이 있으면 어디든 누워 잠을 잤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니 내 모습은 겉으로 보면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

'군영으로부터는 이미 충분히 멀어진 것 같고 추적이 붙은 낌새도 없다. 신분은 철저히 숨겨야겠지만.. 일단 마을로 내려가서 여기가 어디쯤인지 확인하고 다시 움직여야겠어.'

산등성이 아래를 내려다보니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마을이 보였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니 마을 어귀에 자그마한 객잔이 있고 하호객잔이라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마을의 객잔이라 손님이 뜸 한지 객잔으로 들어서자마자 점소이가 나를 반기며 환대하였다.

"어서 오십쇼. 손님 숙식을 원하세요? 아니면 식사만 드릴까요?"

"숙식을 원합니다. 방이 있나요?"

"그럼요. 아주 깨끗하고 좋은 방으로 모시겠습니다. 가시죠."

나는 점소이를 따라 계단을 올라 2층에 있는 방으로 갔다.

"멀리서 오셨나 봐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 여기서 며칠 푹 쉬다 가시죠."

"아닙니다. 일이 있어서 내일 곧장 떠나야 합니다."

"그럼 오늘 밤이라도 푹 쉬세요. 식사는 어떻게 드릴까요? 방으로 올려드릴까요? 아니면 내려와서 드시겠어요?"

"씻고 내려가겠습니다."

"네, 천천히 씻고 내려오세요. 저희 객잔 음식이 정말 맛있어요."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내려가고 나는 오랜만에 열화신공으로 나무 욕조통에 담긴 물을 좀 더 따뜻하게 데운 후 뜨거운 물로 목욕하며 피로를 풀었다.

이각쯤(30분) 몸을 담그고 나온 후 묵은 때를 밀고 더러워진 의복까지 깨끗이 빨아서 열화신공으로 말렸다.

목욕 후 깔끔해진 의복을 입고 나오니 일주일간의 피로가 싹 가시고 몸도 가뿐해진 기분이었다.

방으로 올라간 지 반시진 만에 1층으로 내려오니 객잔 안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를 발견한 점소이가 놀란 표정으로 말을 했다.

"손님, 씻고 나오시니 부잣집 도련님 같으셔요."

"고맙습니다. 손님이 많아졌네요. 식사는 어디서 하면 될까요?"

"이쪽으로 오세요. 손님 자리를 미리 맡아뒀어요."

점소이가 나를 작은 문이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 안에는 두 사람 정도가 먹을만한 작은 식탁이 있었고 아무도 없어서 조용했다.

'조용하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어서 좋겠군.'

"밖은 조금 시끄러우니 이곳에서 조용히 드시면 좋을 거 같아 따로 자리를 맡아뒀습니다."

"자리가 마음에 듭니다. 고맙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 식사는 뭘로 드릴까요?"

"간단한 먹을 만한 게 뭐가 있습니까?"

"저희 객잔은 소면과 따끈한 국물 요리가 일품이죠."

"그럼 그걸로 주십시오."

"술은 필요 없으신가요?"

"죽엽청도 하나 가져다주십시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가져다 드릴게요."

점소이가 나갈 때 열린 문으로 들어온 음식 냄새만으로도 군침이 돌았다.

잠시 후 점소이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와 말을 했다.

"손님, 죄송한데.. 혹시 다른 손님과 합석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바깥쪽은 자리가 전혀 없어서요. 이 주변에는 다른 객잔도 없어서 그냥 가시라 말하기도 곤란하거든요."

"네, 전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앉으라 하시지요."

"감사해요, 손님. 복 받으실 거에요."

나의 말에 점소이의 표정이 밝아지며 꾸벅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하고 황급히 다른 손님을 데리러 나갔다.

잠시 후 점소이와 함께 나보다 어려 보이는 젊은 남자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부잣집 도련님처럼 곱상하게 생겼는데 옆구리에는 검을 차고 있었다.

'옆에 검을 차고 들어오는 걸 보니 무림인 같은데, 걸을 때 몸의 균형 감각이 맞지 않는 걸 보면 그다지 뛰어난 고수는 아닌 것 같다. 혹시 일부러 실력을 감추려고 저렇게 걷는 걸까?'

"이 손님께서 흔쾌히 합석하는 걸 허락해주셨어요. 같이 식사하시게 되었으니 서로 인사라도 나누세요. 전 음식 내오러 가겠습니다."

점소이가 음식을 가지러 밖으로 나가자 그 사내가 내게 말을 했다.

"덕분에 저녁을 굶지 않게 되었네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그쪽에 편히 앉으세요."

"이것도 인연인데 음식 나오기 전에 통성명이나 할까요?"

'군에 쫓기는 몸인데 내 이름을 말해도 되려나.. 조금 이름을 바꿔서 이야기할까?'

"그렇게 하시죠. 저부터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신무영이라고 합니다."

"전 천하진이라고 해요. 나이는 어떻게 되시죠? 전 스물두 살이에요."

"전 스물셋입니다."

"아.. 저보다 한 살 많으시군요. 그냥 형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천하진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나에게 넉살 좋게 형님이라 불러도 되냐고 물었다.

"편한 대로 하시죠. 전 괜찮습니다."

"제가 어리니 말 놓으셔도 돼요. 무영 형님은 이곳 출신은 아니신 거 같은데 어떻게 오신 거예요?"

'음.. 이 자가 어떻게 알았지? 내가 이곳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제가 이곳 사람이 아닌 걸 어찌 아셨습니까?"

"이곳은 하남성과 호북성 경계 지역이니까요. 보통은 하남성이나 호북성 말투가 섞여서 나오는데 형님은 황성 말투를 쓰셔서요. 황성 근처에 사신 것 아닌가요?"

'말투에서 티가 났구나. 겉보기와는 다르게 상당히 영민한 자인 것 같다.'

"맞습니다. 황성 부근에서 살았습니다. 형장께서는 어디서 분이신가요?"

"저는 본디 태생은 광동성이에요."

"광동성이면 남쪽 제일 아래 있는 지역이지 않습니까. 여기에서 한참 떨어진 곳인데 무슨 일로 예까지 오셨습니까?"

나의 물음에 천하진은 처음으로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대답했다.

"저희 아버지께서 광동성에서 상단을 운영하시는데 저는 장사보다는 무공을 익히기를 좋아합니다. 무림인이 되고 싶어서 아버지를 설득하여 화산파의 속가제가로 들어가 5년 동안 수련을 했어요. 얼마 전 수련이 끝나서 광동성에 있는 본가로 돌아가려고요."

"아, 화산파의 속가 제자 분이셨군요."

'책에서 읽기로 정파에서 검으로는 무당과 화산을 꼽는다고 하던데, 겉으로 보이는 근골은 나빠 보이지 않은데.. 5년 동안 수련했다는데 약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책에 적힌 게 거짓일까, 아니면 그사이 화산파가 많이 약해진 건가.'

"무영 형님은 어디를 가시는 거예요?"

"전 사람을 찾아서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남쪽 어디요?"

"정확한 위치는 모릅니다. 그저 남쪽으로 갔다는 것만 들었습니다."

나의 말을 듣고 천하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 정도로는 사람을 찾기 힘들 텐데요. 그런데 형님, 아까부터 느낀 건데 말투가 꼭 군인 같아요."

'내가 군에서 있다 나온 것도 들킨 건가. 이렇게 허술해서야.. 나 자신이 한심하구나.'

"아.. 얼마 전까지 군에 있다가 나온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가 봅니다."

"아, 그래서 그러시구나. 그럼 강호는 초행이세요?"

"그렇지요. 황성 말고는 군에만 쭉 있다가 나와서 강호는 처음입니다."

"남쪽으로 가시는 거면 같은 방향이니 같이 가시겠어요?"

'이 자와 동행이라..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강호에 대해서는 나보다 아는 것은 많은 것 같다. 남쪽 지방 출신이라 그쪽 지리도 잘 알 테니 도움이 되겠군.'

"형장께서 나와 동행해 준다면 저야 좋지만 저는 강호초출이라 큰 도움이 되지 못할 텐데 괜찮겠습니까?"

"수련을 마쳤으니 저도 엄연히 정의와 협을 따르는 정파 무림인인데 초행길이신 형님을 도와드려야죠."

"고맙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깎듯이 존대를 하시면 제가 오히려 불편해요.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럼 차츰 그렇게 하도록 하겠네."

"네, 형님."

잠시 후 점소이가 음식을 가져왔고 우리 두 사람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조금 더 편한 사이가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빈방이 없어 노숙하게 생긴 천하진을 내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재웠다.

다음날 나와 천하진은 아침 해가 뜨자마자 일찍 일어나 떠날 채비를 하여 남쪽 광동성을 목적지로 길을 떠났다.

그래도 하룻밤을 같은 방에서 자고 나서 그런지 천하진이 조금은 편한 동생처럼 느껴졌다.

"형님, 지금 찾고 계시는 분은 누구예요?"

"내가 평생을 지켜드려야 할 분이다."

"혹시 그분이 여인이에요?"

"그래. 그래서 더욱 빨리 찾아야 해. 여인의 몸으로 도망 다니며 사는 건 무척 고되고 힘들 거야."

"누구에게 쫓기고 있나요?"

'천하진. 이 녀석은 좋은 녀석인 거 같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히 신뢰할 순 없어. 모든 걸 다 말할 수는 없다.'

"나쁜 자들에게 쫓기고 있다. 그래서 하루빨리 내가 찾아서 지켜드려야 해."

"형님, 너무 염려 마세요. 남쪽 지역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찾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그래. 고맙다, 하진아."

"그럼 조금만 더 속도를 내 볼까요?"

"그래. 어서 달리자."

나와 천하진은 뛰는 속도를 높이며 남쪽을 향해 달렸다.

< 군부를 떠나 무림으로 > 끝

ⓒ 청운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