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의 시간 >
나를 비롯한 군부 내 선발대 인원들은 전국 각지에서 움직이고 있는 반란군의 동향 대해 알아보느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주일 후 후발대로 대장군이 이끌고 온 북방 토벌군 9만명이 군부에 도착했다.
최대한 빨리 황성으로 도착하려고 신속 행군을 해왔기에 그들은 많이 피곤해보였으나 눈빛은 날카롭게 빛이 났다.
군부 선발대 지휘소.
안휘 장군이 군부 입구에서부터 대장군을 지휘소로 모시고 왔다.
"대장군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선발대로 먼저 와서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자네가 고생했지."
"아닙니다. 전 지시만 내렸지. 실제로는 바삐 움직인 건 무영 부장입니다. 직접 황성과 황궁까지 들어가서 상황을 살피고 나왔습니다."
"또 무영 부장인가? 그렇치 않아도 그동안 공을 너무 세워서 부장으로 그대로 나둘 수도 없고해서 이번에 황제 폐하께 장군으로 임명해 달라고 청하려 했는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어버렸으니.."
"그랬었군요. 무영 부장은 그간의 공으로도 충분히 장군이 될 만하죠."
대장군이 목이 타는지 물을 마시며 안휘 장군에게 물었다.
"황성 상황은 어떠한가?"
"대장군님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황성은 반란군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그렇겠지. 요동에서 아무리 빨리 온다 한들 황성을 지키는 건 무리였겠지.. 황제 폐하와 태자마마 그리고 황손들은 어찌 되었는가? 모두 무사히 피하셨는가?"
안휘 장군이 무슨 말을 하려하다가 머뭇거렸다.
"그게.. 황제폐하께서.."
"어서 말하게. 황제폐하께서 어찌 되셨다는 건가?"
"폐하께서는 태자마마와 황손들을 궁 밖으로 피신시키고 황궁을 지키시다가 반란군이 황성을 점령하고 황궁으로 압박해오자 자결하셨습니다."
"폐하께서 승하하셨다니.. 어찌.. 그리 허망하게 가시면 저희는 어찌 합니까..제가 옆에서 지켜드렸어야 했는데.. 다 저의 탓입니다."
황제 승하 소식에 대장군이 무릎 꿇고 통곡을 하였다.
"대장군님 탓이 아닙니다. 갑자기 일어난 반란군을 요동에 적과 전쟁 중이신 대장군님이 어찌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요동을 함락하고 만주의 여진족을 모두 명나라로 복속 시키겠다고 전쟁을 8년동안이나 끌었으니 전쟁 물자를 보급하는데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모두 내 욕심이 지나쳤기 때문에 생긴 일이야."
반란이 일어난 것은 관리들이 부패하여 농민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물려 재물을 착취한 게 주 원인이었지만 여진 정벌을 위해 군사들의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농민들의 농작물을 착출한 것도 반란군이 일어난 계기 중 하나였다.
"대장군님, 자책은 나중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빨리 반란군을 제압하고 황위를 이을 태자마마나 황자님을 찾아야합니다."
안휘의 말을 들은 대장군이 정신이 번쩍 드는지 벌떡 일어났다.
"자네 말이 맞네. 황제 폐하의 승하소식에 내 잠시 정신을 못 차렸군. 상황 보고를 마저 하게나."
"무영 부장이 황성을 정찰한 결과 반란군의 수괴는 이자성이란 자고 주축은 농민들이지만 반란군에 무림 세력이 개입한 듯 하답니다."
"무림 세력? 어느세력인가? 헌데 그들이 왜? "
"그것까지는 아직 파악 되지 않았습니다. 반란군에서 무림인들이 자주 목격되었고 그들이 합류한 이후 중앙군을 제압할 만큼 반란군이 강해진 거로 보입니다."
"......"
대장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침묵 했다.
"관과 무림은 그동안 암묵적으로 불가침 영역이었는데.. 이게 깨진다면 중원 전체에 큰 혼란이 오겠군."
"맞습니다. 농민들이 주력인 반란군이야.. 어렵지않게 제압할 수 있지만 반란에 관여한 무림인들까지 제압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병력이 소모될 것입니다."
"그렇겠지. 무림인들은 군사들보다 숫자는 적지만 일당백인 자들이 많으니.. 피해가 클 것이고, 거기다 우리는 여진과의 전쟁 중이라 병력을 중원으로 다 돌릴 수도 없는데.. 큰일이군."
대장군이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더니 잠시 후 생각이 정리 된 듯 입을 열었다.
"일단 무림인 문제는 차후 생각하기로 하고 눈앞에 일부터 처리해야지. 황궁에 새 황제 폐하가 자리하고 있어야 나라가 안정이 될테니 일단 황성을 정리하고 태자마마나 황자님을 찾아서 서둘러 황위에 오르도록 해야하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바로 황성 공략 준비하겠습니다."
"그러게. 먼저 각 부대 장군들부터 소집하게."
대장군이 장군들을 모으고 지휘부 회의에서 황성 공략 하기로 정하자 각 부대에서 황성 점령 작전 계획이 수립되고 일사천리로 준비가 진행 되었다.
요동서 밤낮없이 행군하며 쌓인 피로도 풀지 못하고 전 장병은 바로 출전 준비에 들어갔다.
북방 토벌군은 출진 준비가 마치고 다음날 곧바로 황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황성 앞 북방 토벌군 진지.
안휘 장군과 대장군이 반란군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격할 지 세부 전략을 짜고 있었다.
"대장군님, 적은 30만이지만 대부분 군사훈련도 받지 못한 농민들이기 때문에 실제로 싸울 있는 능력을 갖춘 병사는 5만이 채 되지 않을 거라 예상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반란군이 정예병이 아니라도 성 안에서 수성만 하면 깨기가 쉽지는 않아서 문제지."
"피해가 좀 있더라도 성문을 부시고 들어가야겠지요."
"그래. 우리에게 있는 공성병기는 뭐가 있지?"
"군부에서 가져온 충차 4기와 정란 4기가 있습니다."
"공성병기가 너무 부족하군."
"네. 요동에서 신속히 오느라 공성병기는 하나도 가져올 수 없었으니까요."
"일단 시도해 봐야지. 적의 시선을 분산하기 위해 동서남북 4개 성문에 충차 1개씩 보내고 정란은 4개 모두 남문에 집중한다. 우리의 주력은 남문을 공격한다."
대장군의 명을 내리자 안휘 장군이 각 군에 명령 하달했다.
안휘 장군은 부장에서 장군으로 진급한 뒤 몇 년째 대장군의 참모장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대장군의 명이 각 군에 하달된 후 곧바로 각 군 장군들이 병사들을 이끌고 각기 맡은 성문을 공략하기 위해 출진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으로 흩어진 북방 토벌군이 대장군의 명이 떨어지면 바로 황성의 동서남북으로 동시에 공격을 시작하려 할 때,
"대장군님, 나와 보셔야겠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직 공격도 시작 안했는데 무슨 문제가 생겼단 말이냐"
급히 안휘 장군과 대장군님이 진지 밖으로 나와 황성을 바라보니 성곽 위에 빼곡하게 사람들이 서 있었다.
"저 성곽 위에 사람들은 병사가 아니지 않느냐?"
"아무래도 황성 백성들을 화살받이로 세운 듯 합니다."
"이런...쳐 죽일 놈들... 아무리 반란군이라지만 어찌 힘없는 백성을 전쟁에 동원해서 화살받이로 쓰려 한 단 말이냐.."
"대장군님, 이대로 공격했다가는 성곽 위에 백성들이 크게 다칠 것 같습니다. 딱히 그들을 살리면서 황성을 공략하는 방법 또한 지금으로써는 보이지 않습니다.. 대장군님께서 양단 간의 결정을 내려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 장군들에게 뒤로 물러나 잠시 대기하라 전하게."
"네. 대장군님."
대장군의 명에 따라 전군이 뒤로 물러선 채 황성 쪽을 바라보고 대기를 했다.
대장군이 홀로 고민에 빠져 숙고하고 있을 때,
황성 진지를 향해 파발병이 말을 타고 달려와 급히 내려 파발을 전했다. 파발을 전해 받은 안휘 장군은 대장군에게 급히 달려갔다.
"대장군님, 이거부터 보셔야겠습니다."
"파발이군. 어디서 온건가?"
"북방 군영에서 왔습니다."
파발을 건네 받은 대장군이 그것을 읽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하늘이 명나라를 버리신건가..이 일을 어이할꼬..."
"무슨 일 입니까?"
"우리 병력이 이곳으로 오는 틈을 타 여진족이 요동 4성에 쳐들어왔다는군."
"여진족이 쳐들어오는 건 늘상 있던 일 아닙니까.. 그리고 요동 4성은 철옹성이라 크게 걱정할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보통 때라면 그렇겠지. 헌데 여진족의 병력이 30만이라네."
대장군의 말에 안휘 장군이 크게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10만의 군사 잃은 지 얼마 안된 여진족이 어떻게 또 다시 단기간에 30만 대군을 만든단 말입니까?"
"여진족의 누르하치라는 자가 여진 부족을 통합하고 후금을 세웠다는군. 그 동안 여진은 여러부족으로 흩어져 있었기에 단기간에 대군을 만들지 못했을 뿐, 통합되었다면 30만 대군을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
대장군의 말을 듣고 안휘 장군도 큰 일이 터진 것임을 인지하고 어찌 대처할 지 고민에 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큰일이 아닙니까? 아무리 요동 4성이 철옹성이라해도 30만 대군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지. 그리고 요동 4성이 함락되면 곧바로 산해관 북방 군영을 쳐들어 올텐데.. 그 곳에는 현재 남아있는 병력도 거의 없어서 그들이 산해관을 넘으면 파죽지세로 중원으로 넘어들어온다는 게 더 큰 문제지."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졌군요. 대장군님 어찌 하실 생각이십니까?"
대장군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한 후 말을 했다.
"반란군이라 해도 같은 한족이고, 여진은 오랑캐니 북방이 먼저 아니겠는가..그리고 나라가 외세에 무너지면 반란을 제압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퇴각명령 내려서 병력을 군부로 돌리게. 군부에서 재정비하고 곧바로 북방 군영으로 가야하니 말일세."
"네. 대장군님. "
공격을 위해 대기하던 장군들은 갑작스런 퇴각 명령에 당황했지만, 대장군의 명이기에 순순히 따랐다.
북방 토벌군 10만명은 순식간에 황성을 빠져나와 군부로 이동했다.
군부로 돌아온 후 각 부대 지휘관에게 요동 상황이 전해졌고 모두 북방 군영으로 서둘러 돌아갈 짐을 쌌다.
'이대로 황녀님을 찾지 못한 채 요동으로 갈 순 없다.'
나는 이대로 떠날 수 없어서 안휘 장군에게 부탁을 해보자는 마음에 지휘소로 향했다.
군부 지휘소.
회군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이던 안휘 장군이 날 발견하고 말을 했다.
"자네 회군 준비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 나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서 온 건가?"
"네. 장군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회군 준비로 바쁘니 나중에 하면 안되겠나?"
"지금 꼭 말씀 드려야 할 거 같습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나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에 안휘 장군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서 편히 이야기하게. 잠깐은 들어 줄 수 있으니.."
"네. 감사합니다. 장군님."
"이야기 해 보게. 무슨 일인가?"
"지금 북방으로 돌아가면 이 곳으로 언제 돌아올 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렇지. 여진족이 통합되어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니 전에 여진이 중원을 통일하여 금나라를 세웠던 일을 다시 하려 들테니.. 그걸 막으려면 긴 싸움이 되겠지."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지금 태자마마나 황자님을 찾지 못하면 황위를 잇지 못해 명나라가 무너질 수 있잖습니까.."
안휘 장군이 내 말에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지. 안 그래도 요동으로 가기 전에 태자마마와 황자님을 찾기 위한 병력을 토벌군에서 차출해서 만들 생각이었네. 그들을 전국에 보내 속히 찾아야지."
"아..생각하고 계셨군요. 그럼 그 병력에 저도 포함 시켜주십시오."
"자네를 그 병력에 말인가? 자네는 천인장으로써 여진족과 싸움에 중요한 책무가 있어."
"이 일 또한 중요한 일 아닙니까.. 제가 맡아서 빠른 시일 내에 처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건 아니될 말일세. 자네는 요동에 무조건 가야하네. 대장군께서 자네를 곧 장군으로 세우려 생각중이신데 딴 생각말고 이번에도 전공을 세우고 장군이 되게나."
"..알겠습니다. 장군님. 이만 가서 짐을 싸겠습니다."
안휘 장군의 단호한 말에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막사로 돌아와 짐을 싸기 시작했다.
'난 요동으로 갈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황녀님을 찾아야해.'
안휘 장군에게 남기는 서찰을 써 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짐을 들고 나가려는데 막사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 선택의 시간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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