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궁 정찰 >
급히 회군을 결정한 북방 토벌군은 평상시보다 진군의 속도를 높여서 최대한 빨리 황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다.
그중 하나로 요동 4성에 수비 병력을 남겨두고 회군한 10만명의 북부 토벌군 중 몸이 날랜 병사 만 명을 따로 선발대로 편성해서 먼저 황궁으로 보냈다.
나도 그 선발대의 부장으로 선발되어 나머지 토벌군보다 한발 앞서 돌아가고 있었다.
'반란이라니.. 황궁이 위험하다고? 전생에도 비슷한 시기에 반란은 있었지만.. 초기에 쉽게 제압당하고 끝난 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때는 실패한 반란이 어떻게 이번에는 황궁을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성공한 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아! 그 반란을 제압한 게 대장군이었구나. 그걸 잊고 있었다니.. 전생에서 이 시기쯤 군부에 있던 대장군이 지금 요동에 있으니 반란이 성공한 거였어.'
전생에는 대장군이 요동 정벌에 나섰다가 요동 4성 정벌에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요동 4성을 얻지 못하고 군부로 돌아갔었다.
하여 그 시기에 군부에 있던 대장군이 반란이 일어나자 주변 병력을 모아 반란군이 모이던 초기에 병력이 얼마 안 되는 약한 틈을 노려 가볍게 제압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설마 반란군에 의해 황궁이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이런 일로 인해 다시 돌아가게 되다니..마음이 안 좋군.'
"부장님, 무경원에서 16살에 군부로 간뒤 23살에 다시 돌아가니 햇수로 8년 만이네요. 기분이 묘해요."
내 옆으로 온 예현이 다른 사람이 있으니 내게 존대를 하며 말을 하였다.
"그래. 무경원을 나온 지 벌써 그렇게 되었네. 그 녀석들도 별일 없겠지?"
"그럼요. 그 녀석들은 그 당시에도 실력이 좋았는데 그림자 무사가 되면서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모르죠."
"너와 석견이도 8년 동안 많이 강해졌잖아. 나와 같은 절정 경지에도 오르고."
"부장님은 초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최근에 절정 경지에 겨우 오른 저희와 비교하면 안 되죠."
8년 동안 나와 함께 전장에서 적의 수뇌부들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위험을 많이 겪다 보니 예현이와 석견이도 많이 강해졌다.
예현과 석견은 아직 백인장이긴 하지만 천인장 급에도 절정의 경지에 오른 자는 많지 않았기에, 백인장 급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두 사람으로 북방 토벌군 내에 소문이 나 있었다.
'나 역시도 전장에서 얻은 게 적지 않긴 하지. 전생에 27살 때 올랐던 초절정의 경지를 23살인 지금 눈앞에 두고 있으니..'
그림자 무사 시절을 떠올리니 황녀님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황녀님도 벌써 열여덟 살의 꽃다운 나이가 되었겠군. 황궁에 가면 멀리서라도 뵐 수 있을까?'
"부장님 무슨 생각하세요? 얼굴이 붉어진 게 7호 생각하는 거 아니에요?"
황녀님을 생각을 하다가 예현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나서 언짢았다.
"7호랑 내가 무슨 사이라고.."
"진짜 아무 사이 아니에요? 7호가 부장님 좋아했잖아요."
"7호가 나를? 에이, 아니야. 7호는 그냥 날 편하게 생각하고 장난친 거지."
"그럼 왜 마지막 헤어질 때 10년 안에 꼭 찾아간다고 약속했어요?"
"그건 동료로써.. 그리고 그때 7호가 울고 그래서.. 아무튼 우리는 그런 사이 아니야."
'정말 예현의 말이 사실일까? 내가 황녀님에 대한 마음 때문에 7호의 감정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예현의 말을 듣고 나니 황궁에서 7호를 만나면 괜히 어색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력이 뛰어난 정예병들만 모아놓았기에 밤낮없이 달려왔더니 황궁 근처까지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
파발병의 소식을 듣고 18일 만에 황궁에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군부에 도착했다.
대장군이 이끌고 오는 북방 토벌군은 아마도 열흘은 더 걸릴 거 같았다.
내가 천인장으로 진급할 때 안휘 부장은 만인장으로 진급하여 장군이 되었는데 이번 선발대의 지휘관으로 함께 왔다.
군부 선발대 지휘소.
"황궁 근처인 군부까지 최선을 다해 왔지만 이곳에서 최신 소식을 전해 들으니 황성은 반란군에게 이미 점령당하고 황궁도 저들의 손아귀로 넘어갔다고 하였소."
안휘 장군의 말에 나를 비롯해 지휘소에 모인 모든 천인장들이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황제 폐하는 어찌 되셨답니까?"
"황제 폐하께서는 황자님들과 황녀님을 먼저 피신시키고 황궁을 지키시다가 황궁이 반란군에 손에 넘어가자 스스로 목숨을 끊으시고 승하..하셨다 하오."
"황제 폐하... 어찌 이리 허망하게 가십니까!"
지휘소에 모인 모든 장수들이 황제의 승하 소식에 모두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였다.
'황녀님은 무사하신가요? 제가 잘못 생각하여 또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 옆에 남아 황녀님을 지켜드려야 했는데..'
다시 과거로 돌아와 그림자 무사로 살지 않고 군부로 떠난 내 선택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슬픔은 잠시 가슴 속에 묻어두고 우리는 재빨리 황성과 황궁을 탈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황제 폐하께서도 하늘에서라도 마음 편히 계실 것이다."
"하지만 적의 정확한 숫자도 모르고 1만의 병력으로 황성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적에 대해 모르면 어렵지. 그래서 먼저 정찰조를 편성해서 황궁과 황성의 상황을 살피도록 할 것이다."
"정찰조는 몇 명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날렵하고 은신술이 뛰어난 자들과 황궁이나 황성의 지리를 좀 아는 자로 30명 정도 구성하려 한다."
나는 전생에 황궁에서 쭉 살았기에 그곳의 지리는 눈감고도 알 수 있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자네라면 믿을 만하지. 그리고 무경원 출신이니 황궁 지리도 조금은 알 것이고 말이야."
"그럼 정찰조를 제가 선정해도 되겠습니까?"
"그러게. 자네가 정찰조를 잘 지휘해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져오게."
"네. 장군님."
나는 속히 예현와 석현을 비롯해 무경원 출신 중에 초일류 이상인 자와 황성 지리를 아는 자를 포함하여 30명을 정찰조로 선정해서 불러 모았다.
"너희들은 나와 함께 황성으로 들어갈 것이다. 반란군은 아직 우리 군대를 눈치채지 못해 황성 안으로 들어가는 건 완벽히 통제하고 있지 않으니, 각 5명씩 6조를 구성하여 배정된 구역에서 적들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고 돌아오면 된다. 다시 만나는 건 해시(21시)에 동문쪽 객잔 근처로 모이도록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가자."
우리들은 모두 무기를 군영에 놓아두고 황성으로 이동했다. 성문 앞에서 반란군들이 통제하며 짐을 확인하고 황성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우리도 황성 안으로 들어가려 줄을 서 있는 행렬에 합류하여 자연스럽게 그들과 섞여 있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검문을 통과하여 황성 안으로 들어갔다.
황성에 돌아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돌고 돌아 다시 황성으로 돌아왔구나. 하지만 이곳에는 황녀님이 없구나. 어디에 계시나요?'
성문 안쪽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들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주자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흩어졌다.
나는 혼자서 황궁으로 향했다.
'황궁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으니 혼자 가는 게 편하지. 무경원이 황궁 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건 그림자 무사들만 알고 있지.'
무경원 입구는 황성 안에서 외곽,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은 후미진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나는 무경원에서 나와 군부로 이동할 때 나왔던 그 곳을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고 기억을 떠올려 무경원 입구를 찾고 있었다.
무경원 입구를 발견하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무경원은 8년 만에 왔는데 변한 게 없구나. 대장은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나 하고 무경원에 남아 있는 사람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무경원을 한참동안 둘러보다가 황궁으로 가는 비밀통로를 발견했다.
하지만 대낮에 돌아다는 건 너무 위험하기에 어두워 지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어 사방이 어둠이 깔렸을 때 나는 무경원의 비밀통로를 통해 황궁 안으로 잠입했다.
밤중이기는 했지만 황궁 안의 전각에 불도 거의 꺼져있고 사람들의 인기척도 거의 안 느껴지고 가끔 경비를 서고 있는 일부 병사들만 보였다.
'생각보다 황궁 안에 경비는 허술하군. 이 정도는 지금 병력으로도 쓸어버릴 수 있겠는걸.'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상당한 내공을 지닌 자들이 나타난 것을 기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일반 병사들이 아니다. 이 정도의 내공을 지닌 자는 무림인인데.. 반란군이 장악한 황궁 안에 무림인이라니.. 느낌이 좋지 않다.'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자들에게 가까이 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생각했다.
'저 정도 내공이면 초일류 고수 같은데 그 이상의 고수가 함께 있다면.. 가까이 가다가 들킬 수 있으니 지금은 돌아가는 게 맞는 거 같다.'
뒤돌아서서 황궁 내 전각들 사이 사이로 숨어서 빠져나가려 하는데 한 전각에 눈이 띠는 표식이 있었다.
'저 표식은 그림자 무사들만 아는건데.. 저게 왜 저기에 그려져 있지?'
그 표식이 있는 곳으로 가서 주변을 만져보니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손으로 글자를 만지며 읽어보니,
"황동객잔에서 술시까지 기다릴 테니, 이걸 본 사람 그곳으로 오시오."
'이건 분명 그림자 무사가 남긴 글인데, 이것을 언제 남겼고 누구에게 남긴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황녀님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으려면 이자를 만나야한다.'
마침 술시에 가까워졌기에 나는 즉시 황궁에서 무경원으로 이동한 다음 무경원 입구를 통해 황성 외곽으로 나왔다.
황동객잔에 들어갔더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황성에서 반란이 일어난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왁자지껄했다.
주변을 둘러보며 그 글을 남긴 자를 찾아보았다.
'저기 있군. 전생에 황궁에 있던 그림자 무사 중 한 명인 13호, 우리보다 한 기수 위의 그림자 무사였지.'
혼자 앉아 있는 그의 앞자리에 앉으며 말을 했다.
"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참석 좀 해도 될까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니, 다른 곳으로 가시오."
"누굴 기다리십니까?"
"그대는 아닌 듯하니 그만 일어나시오."
13호가 축객령을 내리며, 일어나지 않으면 검으로 베어버릴 것 같은 냉담한 표정이었다.
"형장께서 기다리는 사람이 내가 맞을 수도 있잖습니까?"
마지못해 13호가 나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오?"
"그림자가 이름은 있어서 무엇하겠습니까.."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여기는 시끄러우니 나와 잠깐 나가겠소?"
"그러시지요."
나는 13호와 함께 객잔 밖으로 나갔다.
13호는 나를 데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으로 가더니 내 목에 자신의 검을 겨누고 물었다.
"넌 누구냐? 어떻게 그림자 무사의 암호를 알고 있는 거지?"
"나도 그림자 무사요. 그러니 당신이 황궁에 남긴 표식을 보고 이곳에 온 것 아니겠소."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황궁에 있는 그림자 무사의 얼굴을 내가 다 아는데 너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당연하지. 전생에 그림자 무사였는데 내 얼굴을 네가 알면 그게 이상하지.'
"그대가 모든 그림자 무사를 다 아는 것 확실하오? 그림자 무사 13호."
나의 말을 들은 그의 얼굴이 귀신을 본 듯 창백해지며 크게 놀라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아니.. 나를 알고 있다고?"
"당신 말고도 1호, 15호, 5호, 7호, 27호, 78호, 89호 그 외에 전부 다 말해줘야 믿겠소?"
"어떻게 그 그림자 무사들을 다 알고 있는 거지? 당신이 정말 그림자 무사라면 난 왜 당신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건데?"
"난 당신들 같은 일반 그림자 무사가 아니라 특별 그림자 무사라 그렇소."
"특별 그림자 무사라고? 그런 게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데.."
'당연히 못 들어봤겠지. 내가 방금 만들었으니까. 큭큭.'
"기밀사항이라 대장님만 알고 있고 모두에게 비밀로 했나 봅니다. 난 당신들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당신의 말을 내가 어떻게 믿지?"
"그럼 물어보죠. 당신은 대장님의 이름을 압니까? 대장님의 가족관계는요?"
"그건.."
'당연히 모르겠지. 전생에 대장과 제일 친했던 난데도 모르는 걸 네가 알 리가 없지.'
"대장님은 군부의 원숭환 대장군님의 아들이십니다."
"그게 정말이요?"
"대장님께 나중에 확인해보면 알 겁니다."
"음.. 그럼 특별 그림자 무사는 무슨 일을 하는 겁니까?"
'내 말에 넘어왔군.'
< 황궁 정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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