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군 >
우리도 불을 지른 후 은신처로 돌아와 병장기를 챙긴 뒤 서문으로 향했다.
여진족 병사들이 대부분 불을 끄기 위해 빠져나가서 그런지 서문을 지키는 병사도 그리 많지 않았다.
"자, 시작해 볼까?"
그 말이 신호가 되어 오백명의 정예병사들이 서문에 있는 여진 병사들에게 달려들자 그곳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서문을 막고 있던 빗장을 제거하고 문을 열었더니 1군단의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적들이 쳐 들어왔다. 적이다."
남문 쪽에서 소리가 들려온 걸 보니 그 쪽에서도 1군단 병사들이 성 안으로 들어온 듯 했다.
1군단 소속 5만의 군사들이 건안성 안으로 들어와 불을 끄느라 무기도 없는 여진족 군사들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그들을 제거하자 여진족 3만의 군사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3대대원들도 그들에게 합류하여 여진족 병사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을 제거하고 다녔다.
어두운 밤이고 불을 끄느라 여진족 백성들과 여진족 병사들이 섞여있는 곳이 많았는데 1군단 병사들이 그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죽여버리는 경우도 생겼다.
'전쟁 중이라지만 성 안에 무고한 백성들까지 죽게 되다니.. 내가 불을 질러서 저들을 죽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아프네.'
뒤섞여 구분되지 않은 여진족 백성들이 우리 병사들에 의해 죽어나가자 여진족 병사들이 스스로 백성들과 떨어져 나와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1군단 병사들도 무고한 일반 백성을 죽일 이유는 없었으므로 여진족 병사들만 제거하고 따로 모여있는 백성들은 손 대지 않았다.
1군단 5만의 병사들이 건안성으로 들어온 지 불과 반시진도 안되서 3만의 여진족 군사는 죽거나 항복하여 사로잡히며 그대로 건안성은 함락되었다.
건안성 1군단 사령부 막사
"2군단과 3군단, 4군단은 아직 계획 수립도 다 안 끝났는데 우리 1군단은 이미 건안성을 점령했으니 이번에 1사군의 3대대가 정말 큰 공을 세웠습니다."
"맞습니다. 3대대가 건안성 내부에 불을 질러 혼란을 일으키고 남문과 서문을 열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거지. 아니면 이 철옹성을 깨기 위해 수많은 장병의 목숨이 사라졌을 겁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작전 계획을 세운 것부터 직접 작전을 수행한 1사군 3대대 공이 제일 크니 유현 장군께서 치하를 잘 해 주세요."
"그렇게 해야지요."
1군단에 소속된 1사군부터 5사군까지의 장군들이 모여 이번에 공을 세운 1사군 3대대에 대해 이야기하며 유현장군에 그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현 장군은 자신의 소속 부대원들이 큰 공을 세워 칭찬을 받자 자신의 어깨가 으쓱해지며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1사군 사령부 막사로 돌아온 유현 장군은 3대대 안휘 부장과 나를 사령부 막사로 불렀다.
"안휘 부장, 역시 그대는 날 실망시키지 않았어. 아주 완벽하게 작전을 수행했어."
"감사합니다. 장군님. 사령부에서 세부 작전을 잘 세워주셔서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허허. 계획이야 무영 단주가 세워온 거 우리는 그냥 주워 먹었는걸. 무영 단주 수고했네."
유현 장군이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장군님."
"자네는 한성 전투 때도 그렇고 매 전투마다 큰 공을 세우는군. 입대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정말 대단하군."
"과찬이십니다. 이번에도 운이 좋았습니다."
"한 번은 운 일 수도 있지만 두 번은 실력이지. 한데.. 백인장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또 진급을 시킬 수도 없고 어찌하지.."
유현 장군의 곤란한 표정을 본 안휘 부장이 말했다.
"공은 크지만 진급을 한 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포상금을 주시지요."
"그게 좋겠군. 무영 단주에게 금화 10냥을 포상으로 주겠네."
"감사합니다. 장군님."
금화 10냥이면 성 밖에 있는 작은 집 한 채는 살 수 있는 값이 었는데 나에게는 별로 중요치 않았다.
'난 금화보단 진급이 중요한데.. 하긴 내가 지금 진급하면 안휘 부장님과 같은 계급이 되는군. 아마도 2~3년 동안은 공을 계속 세운다고 해도 진급은 어렵겠지.'
유현 장군은 나와 안휘 부장의 공을 치하한 뒤 돌려보냈다.
다음날 1사군 사령부에서 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전체적으로 포상금을 내리고 또한 승전을 축하하며 음식을 거하게 차려 병사들이 먹고 마실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렇게 요동 정벌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계획대로 될 줄 알았다.
하지만 1군단을 제외한 나머지 군단들은 몇 달이 지나도록 승전보를 가져오지 못했다.
북방 토벌군의 존재를 알아차린 여진족이 요동의 풍성, 석성, 건흥성 등 3개의 성의 성문을 굳건히 닫은 채 수비만 하니 공격하는 북방 토벌군만 피해만 입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추운 겨울이 찾아와 북방 토벌군은 다시 산해관의 북부 군영으로 돌아 갈 수 밖에 없었다.
다음 해에도 풍성과 석성, 건흥성 등 요동 3성을 노렸지만 여진족들도 미리 북부 토벌군의 움직임을 살폈기에 기습이 실패로 돌아가고 큰 소득 없이 요동에서 한성과 비슷한 규모의 작은 성들만 몇 개 공략하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또 한 해가 흐르고 북방 토벌군 조직된 지 3년째가 되었다.
북부 군영내 북부 토벌군 사령부 막사.
"벌써 3년째네. 이곳으로 올 때 황제 폐하께 요동을 정벌하고 만주 지역까지 찾아오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나왔는데.. 건안성 하나 빼고는 작은 성 몇 개 차지한 개 다인데 무슨 낯으로 돌아가 황제폐하를 뵌단 말인가."
"죄송합니다. 대장군님."
대장군의 노기 어린 말을 북부 토벌군 내 장군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듣고 있었다.
"여기 북부 군영의 병력을 쏟아서라도 요동 3성은 점령해야 하네. 자네들도 알지 않는가. 요동만 넘으면 만주를 점령하는 건 어렵지 않아."
"이번에는 기필코 요동 3성을 공략하겠습니다."
"대장군님, 이번에는 조선에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현 장군의 말에 다른 장군들이 술렁였다.
"유현 장군, 조선에 도움을 청한다고 하셨소? 조선은 약소국인데 그들이 온다고 도움이 되겠소이까?"
"그건 당해 장군께서 조선을 모르시고 하는 말씀이십니다. 조선이 그동안 여진족을 여러 번 정벌하여 그들이 세력이 커지지 못하게 했기에 그동안 우리의 국경이 안전했던 겁니다."
유현 장군의 말에 대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유현 장군의 말이 맞네. 조선에서 우리 대신 여진족을 견제해 주었기에 여진족이 국경을 넘기 위해 공격해 온 빈도가 현저히 줄었지. 하지만 조선은 임진년에 왜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많이 약화 되었는데.. 요동에 지원 병력을 보내줄 상황이 될까?"
"많은 병력은 보내지 못하더라도 거절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수의 병력만 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그들에게 포병 전력을 보내달라고 부탁한다면 소수도 괜찮습니다."
유현의 말에 대장군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을 했다.
"포병이라.. 우리도 불랑기포를 써 봤지만 사정거리가 짧고 불발이나 폭발이 자주 일어나 큰 효과를 못 보지 않았잖는가."
"조선에는 우리 명나라의 불랑기포를 개량해 만든 불랑기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져와 달라고 한다면 소수라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게 있었던가? 하지만 그리 중요한 거라면 내 줄지 모르겠군."
"제가 조선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자네가 직접 말인가? 그럼 속히 다녀오게."
유현 장군은 조선에 요동 정벌 지원군을 청하러 떠났고 북부 정벌군은 군사 훈련을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유현장군이 조선으로 떠난지 세 달뒤,
조선의 지원병력과 함께 요동 건안성에 도착했다는 파발병의 소식에 대장군은 급히 장군들을 불러 모아 3차 요동 정벌에 나섰다.
"이번에는 가능할까?"
"조선에서 지원병력도 왔다고 하니, 이번에는 성과가 있겠지."
"우리가 입대한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나 지났네."
"그러게. 빨리 전쟁이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여진이 적국이라지만 그들을 죽이는 게 마음이 편하지는 않네."
"나도 그래. 내가 죽인 여진 병사가 꿈에 나오기도 하고.."
3중대 막사에서 조장들에게 3차 정벌을 위한 작전 설명을 하기전 먼저 온 예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조장들이 나의 막사로 모여 들었다.
19살이 된 나와 3중대 조장들은 전장에서 오래지내서인지 얼굴이 햇볕에 많이 그을려 까무잡잡한 피부에 탄탄한 균형잡힌 몸매로 장정들이 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이번 3차 요동 정벌 작전을 설명했다.
3년차가 된 그들은 내가 앞부분을 설명하자 이미 작전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를 해 버렸다.
전장에서 구른 시간만큼 그들은 엄청나게 성장을 했다.
작전을 설명하고 요동 정벌 준비를 마친 북부 정벌군은 곧바로 요동의 건안성으로 향했다.
'3년동안 몇 번을 왔었더니 요동 지역도 이제 낯설지가 않고 원래 살던 곳 같네.'
우리가 건안성에 도착하니 원래 이곳을 지키고 있던 5천명의 군사와 유현 장군이 조선에서 데려온 지원병 조선 군사 5천이 모여 있었다.
장군들이 조선에서 온 지원병들의 지휘관인 이성유 장군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적이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곧바로 요동 3성으로 병력을 나누어 출병했다.
우리는 1군단 소속으로 건흥성을 맡았고 3년동안 굳건히 닫친 채 열리지 않던 건흥성 성문이 조선에서 가져온 불랑기 화포의 반복된 공격에 부셔져 버리자 물밀 듯 밀려 들어가는 북방 토벌군에 의해 순식간에 건흥성이 함락되었다.
쉽게 함락된 이유는 성 안에 있는 군사의 숫자도 우리가 많았을 뿐더러 실력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3대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전쟁을 치루면서 적이면 상대의 희생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어 가장 적게 상대를 죽이는 방법을 고민해봤고 그 결과물이 이것이었다.
'적 수뇌부를 빨리 제거하면 더이상 병사들은 싸울 엄두가 안 날 거고 항복하는 병사가 늘어나겠지.'
그 생각으로 가장 앞장서서 적 수뇌부들을 제거하였고 그만큼 위험이 따랐지만 전공도 함께 따라왔다.
우리가 건흥성을 점령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요동의 다른 2성이 함락이 되었다.
그 뒤 논공행상이 이어졌고 나는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아 천인장으로 진급하며 최연소 대대장이자 부장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그렇게 쉽게 일이 술술 풀려 전쟁이 곧 끝이 날 줄 알았다.
하지만 요동의 제일 큰 성인 심양성을 공격하면서 이 전쟁의 끝이 어딘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심양성은 요동의 심장부답게 철옹성의 요새라 불랑기 화포를 동원하고 성벽을 넘어가는 작전을 쓰고 뭘 해도 병력의 손실만 커졌다.
하지만 대장군은 요동 4성을 점령하고 난 후로 더 미련을 못 버리고 어떻게 하든 심양성을 점령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렇게 심양성을 눈앞에 두고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한 채 또다시 4년이란 시간이 흘러버렸다.
심양성 인근 임시 군영.
"대장군님, 전장에 너무 오래 계셨습니다. 이제는 군부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곳을 너무 오래 비워두셨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지킬 테니 대장군님께서는 돌아가셔서 정무를 보시지요."
"내 황제 폐하를 뵐 면목이 없어서 그러지 않나."
"난공불락이었던 요동 4성을 점령했으니 그 또한 큰 성과가 아닙니까. 황제 폐하께서도 이해해 주실 겁니다."
"정말 그러시려나...고민 좀 해 보겠네."
대장군이 며칠동안 망설이다가 군부로 돌아가려 결정을 내리려할 때,
갑자기 파발병의 나팔 소리가 들리고 그가 군영 안으로 들어왔다.
"대장군님, 군부에서 파발이 왔습니다."
파발을 읽은 대장군은 크게 노하며 말했다.
"속히 북방 토벌군에 회군 준비를 하라 이르게."
"회군이라고요? 어디로 말입니까? 북부 군영으로 갑니까?"
"아니..황궁이 위험해..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네. 빨리 황궁으로 가야 해."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 북방 토벌군은 신속하게 회군 준비를 마치고 황궁으로 향했다.
< 회군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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