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 점령 >
북쪽 성문 근처 숲속에 도착한 후 그곳에 숨어서 북쪽 성문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횃불의 숫자와 움직이면서 경비하는 인원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몇몇 인원을 추려서 성벽을 넘어간 뒤 그들을 제압하고 성문을 열어 주는 게 좋을 듯합니다."
"좋은 생각이군. 그럼 몇 명 정도가 적당할 것 같나?"
"각 중대에 속해 있는 조장들이 무공도 뛰어나고 하니 그들로 보내시지요."
"그래, 그렇게 하게나."
북쪽 성문을 살피고 온 송겸 단주의 의견에 따라 각 조의 조장들이 성문을 넘어가기로 결정되었다.
"성벽 위에는 그렇게 많은 인원이 없으니 너희 조장들 90여 명이면 금방 정리할 것이다. 제압하고 성문만 열면 된다."
"네, 깔끔히 정리하겠습니다. 그럼 성안에서 뵙겠습니다."
조장들은 성벽을 오를 수 있는 갈고리가 걸려있는 밧줄을 어깨에 하나씩 매고 모였다.
"너희들이 이번 한성 점령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너희를 믿는다. 잘 해내고 오거라."
"네, 알겠습니다."
안휘 부장의 말이 끝나고 조장들은 은신술과 신법을 쓰며 신속히 성벽으로 붙어섰다.
그때까지도 북쪽 성벽 위에 있는 여진족 병사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조장들끼리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후 94명이 동시에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성벽 위로 보내고 잡아당기자 갈고리가 성벽 끝에 걸렸다.
"가자."
그 말과 함께 모든 조장들이 밧줄을 타고 순식간에 한성 북문의 성벽 위로 올라섰다.
그제야 우리를 발견한 여진족 군사들은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조장들의 검이 그들의 목을 갈랐다.
"적들이.. 윽"
"북문에 적.. 윽"
최정예만 모였다는 3대대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들인 94명의 조장들이 움직이자 성벽 위는 순식간에 정리가 끝나버렸다.
가볍게 횃불을 흔들어 정리가 끝났음을 알리고 내려가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도 제거했다.
잠시 후 북문이 열리고 3대대 인원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왔다.
"첫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했구나."
"감사합니다."
"다친 사람은 없느냐?"
"없습니다."
안휘 부장이 조장들이 가볍게 치하한 후 곧바로 성안 정리를 들어갔다.
성안의 군사 대부분은 남문 방어를 위해 그곳에 가 있었기에 남문 쪽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친 적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 3대대가 천 명 정도 되고 적은 5천이니 너희는 각자 5명을 없애면 전투가 끝난다. 쉽지 않으냐?"
"그렇습니다."
3대대는 중대별로 흩어져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차근차근 적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적들을 많이 만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제거한 여진족 병사만 벌써 천 명이 넘어갔다.
"여진족 놈들 생각보다 약한데.. 이건 전투가 아니라 거의 학살 수준 아냐?"
"그래도 아직 남은 적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고."
"그래. 방심하지 말고 이대로 승기를 굳혀야 해."
우리 3조 조원들도 꽤 많은 여진족 군사들을 제거한 후 자신감이 붙어있었다.
그렇게 가다 보니 3대대는 어느새 남문을 방어하기 위해 모여 있는 적들이 멀리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다.
"가서 남은 여진족을 다 쓸어 버리자!"
안휘 부장의 말에 3대대가 신속히 여진족의 뒤를 쳤다.
뒤쪽에서 적이 나타날지 몰랐던 수 많은 여진족들은 영문도 모른 채 쓰러졌다.
"적이 성안에 침입했다!"
그 소리를 들은 여진족들은 그제야 3대대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급히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수 많은 여진족 병사들이 쓰러진 후였다.
남문에 있는 여진족들이 3대대의 기습으로 꽤 많은 병사를 잃었지만 아직까지는 숫자의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장수에 의해 상황이 뒤집혔다.
대도를 쓰는 두 명의 장수가 나타난 곳에서는 3대대의 병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도에 베여 쓰러지는 3대대원이 보이자 안휘 부장이 직접 그 두 명의 장수 중 한 명에게 달려들었다.
"실력이 제법 출중하군. 나와 겨루어보자."
안휘 부장은 3대대에서 유일한 절정의 고수로써 그는 자신의 검에 검기가 담아 여진족의 장수를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그 장수는 안휘의 검에 실린 검기가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고 급히 몸을 피한 후 반격하려는 듯 대도를 양손으로 꽉 쥐고 자세를 취했다.
"검술이 제법 날카롭군. 이번에는 내 것도 한번 받아봐라."
그 장수 역시 절정 고수였는지 대도에 도기가 실렸다.
안휘의 검기와 여진 장수의 도기가 부딪치며 어우러지자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주변에 전투 중인 모든 병사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그쪽으로 쏠릴 만큼 큰 굉음이었다.
서로 검과 칼을 십여 수 주고받았지만 승부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두 사람은 다시 한번 강하게 검기와 도기를 충돌한 후 물러서서 내기를 다스렸다.
안휘가 먼저 말했다.
"여진족 군사들 중에도 절정 고수가 있을 줄이야. 무식한 야만인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제법 쓸만한 고수도 있었군."
"나야말로 명나라 군대에는 순 약골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래도 싸울만한 상대가 있군."
"난 명나라 북방토벌군의 천인장 안휘다. 그대 이름이 무엇인가?"
"난 한성의 성주 완안홍열이다."
"완안부의 장수였군. 이곳의 성주라.."
"절정 고수가 겨우 천인장에 불과하다니.. 여진으로 투항하면 더 높은 지위를 주마."
"훗. 헛소리 말아라. 난 성주인 네 목을 가져가서 공을 세우겠다."
두 사람은 잠시 숨을 돌리며 내기를 채운 후에도 몇 차례나 더 격렬하게 부딪쳤다.
주변의 그 누구도 그들의 싸움에 감히 끼어들어 방해할 수 없었다.
그 두 사람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을 때 또 다른 여진의 장수는 성안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그자의 대도에도 도기가 실린 것을 보면 그자 역시 절정고수였다.
3대대에는 안휘를 제외하고는 절정 고수가 전무한 상태라 초일류고수인 백인장들 세 명이 붙어야 겨우 상대가 되었다.
하지만 그자는 영리하게 싸울 줄 아는 자였다.
"오늘따라 날파리들이 내게 자꾸 엉겨 붙는구나."
그자가 대도에 도기를 실어 세 명의 백인장들에게 강력한 한 방을 날리고 그들이 겨우 막아내면 어느새 그자는 다른 곳으로 움직여 3대대원들을 제거하고 다녔다.
그자가 자주 자리를 옮길수록 3대대의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자를 쫓던 세 명의 백인장 중 한 명이었던 송겸 단주가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무영, 우리들만으로 저자를 붙잡아 두기 어려우니 너희도 저자를 상대해라. 너희 조에 초일류 고수가 셋이니 세 명이 함께하면 상대할 만할 것이다."
"네, 단주님."
나는 즉시 3조에 나와 같은 초일류 고수인 석견과 예현에게 송겸 단주의 명령을 전했다.
나한권을 능숙하게 쓰는 석견과 살막의 검을 익힌 예현 그리고 내가 함께 한다면 저자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송겸 단주와 1중대, 2중대의 단주들 세 사람이 또다시 여진 장수를 뒤쫓아갔다.
이번에도 도기를 날리며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그자를 우리가 쫓았다.
우리는 그자가 이동할 것을 알고 미리 움직였기에 3대대원들이 그자의 대도에 피해를 입기 전에 막을 수 있었다.
"날파리가 왜 이리 꼬여. 겨우 너희 세 놈이 날 막을 수 있을 거 같으냐?"
"네 놈한테 똥내가 나니까 모여드는 거지. 크크"
"뭐라고? 쳐 죽일 놈들! 내 대도를 상대하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보자."
나의 도발에 넘어갔는지 아니면 우리를 정말 우습게 본 건지, 그는 단주들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피하지 않고 우리를 상대했다.
'내가 그림자 무사일 때는 절정고수 세 명은 모여야 내 상대가 되었었는데.. 지금은 절정고수 한 명을 상대로 세 명이서 합공을 하는데도 밀리다니.. 슬프네.'
전투에서 절정고수 한 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차츰 손발이 맞으면서 협공의 효과가 나타나 여진 장수가 뒤로 밀리자 당황해하며 말했다.
"생각보다 제법이구나. 세상 물정 모르고 나대는 풋내기인 줄 알았더니 싸움은 할 줄 아는군."
"당신도 우리 셋을 상대로 크게 밀리지 않다니 대단해."
"하하. 정말 어이가 없구나. 이놈들아, 요동에서는 나 호이파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며 우는 아이도 울음을 그친단 말이다."
"호이파? 난 당신 이름을 처음 들어보는데?"
호이파는 우리가 자신을 농락한다고 여겼는지 도기에 위력이 조금 더 강해졌다.
하지만 우리 세 명을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고 또한 호이파의 반복되는 도초를 파악하면서부터는 대도를 막아내는데 여유가 생겼다.
우리가 호이파를 붙잡고 있으면서 여진족들의 기세가 한풀 꺾이는 효과가 나타났다.
호이파도 그것을 느끼고 우리에게 맹공을 펼치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자가 이동한 곳에는 우리 조원들이 여진족을 상대하고 있었다.
우리 조원 중에도 상대적으로 약한 여자 조원들은 호이파가 근처까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여진족을 상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호이파를 향해 달려갔지만 그자의 공격을 막기에는 너무 멀리 있었다.
잠시 후 호이파의 대도가 올라가는 게 보이고 곧 그의 대도가 우리 조원인 선화의 등을 가를 것만 같았다.
"선화야, 위험해! 피해!!"
나의 소리를 들은 선화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난 이미 호이파의 대도가 선화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쾅!
선화의 몸을 반으로 가를 듯 내려오던 호이파의 대도를 막아선 건 송겸 단주였다.
"빨리 다른 곳으로 피해라!"
송겸 단주의 외침에 3조의 여자 조원들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호이파의 도기가 실린 대도를 막아선 송겸 단주의 검은 이미 금이 가 있었다.
다시 한번 전력을 다해 대도로 내리치자 송겸 단주의 검을 부러져버렸고 호이파의 대도는 송겸 단주의 가슴을 가르고 지나갔다.
잠시 후 송겸 단주의 가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지며 그대로 고꾸라졌다.
"단주님!!"
3중대원들은 모두 단주를 외치며 송겸 단주가 쓰러진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의 맹렬한 기세에 호이파는 놀라며 조금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몸을 피했다.
3중대원들은 피투성이 상태로 쓰러져 있는 단주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특히 우리 조원들은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송겸 단주가 호이파의 도를 막아서다가 이렇게 되었기에 더욱 큰 슬픔에 잠겼다.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진 않았지만 정말 좋은 분이셨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실 줄이야. 혼자 쓸쓸히 가게 하진 않을게요. 호이파 저놈을 반드시 단주님의 길동무로 보내드릴겠습니다.'
"석견아, 예현아 호이파 저놈은 반드시 우리가 죽여서 단주님을 편히 보내드리자."
나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 석견과 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로 돌아오고 단 한 번도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써 본 적이 없었다.
다음을 대비하기 위해 한 줌의 내공과 힘은 남겨두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내 몸 안에 남은 내공과 힘을 모두 쏟아부으리라 마음먹었다.
'호이파,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 나 지금 눈에 뵈는 게 없거든.'
< 한성 점령 > 끝
ⓒ 청운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