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35화 (35/114)

< 첫 출전 >

이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티베트 고원 둔황에서 시작하여 동쪽의 산해관까지 연결되어있는 장벽이 만리장성이었다.

북방 군영은 그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에 위치해있었고, 북부 토벌군이 군영을 빠져나와 목표를 삼고 북진한 곳은 요동이었다.

산해관에서 요동 지역의 첫 관문까지는 열흘이면 가는 아주 가까운 거리다.

요동의 가장 큰 성인 심양성까지도 빠르게 진군하면 한 달이면 족히 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도 금나라 때 외에는 여진족이 쉽게 중원으로 쳐들어오지 못한 것은 산해관이 만리장성에 둘러싸인 철옹성이라 이곳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본디 요동과 만주는 명나라의 영토였다. 여진족을 우리가 다스리다가 그들이 반란을 일으켜 지금은 만주와 요동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제 우리 토벌군이 그것을 되찾을 것이다."

"여진족들은 유목민들이라서 말을 타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그럼 그들은 대부분 거의 임시 막사 생활을 합니까?"

"그런 부족들이 많은 편이지. 하지만 요동은 다르다. 요동에는 우리가 지은 견고한 성들이 많은데 그 성을 여진족이 점령했다."

"견고한 성들이면 요새화되어 있을 테니 요동 정벌이 쉽지는 않겠군요."

"그렇지. 하지만 요동만 정벌하면 만주지역을 점령하는 건 쉬운 일이다."

군영을 나와 요동으로 출발하는 길에 내가 송겸 단주에게 물었더니 자세하게 답을 해 주었다.

"그럼 요동 정벌이 이 토벌군의 승패를 좌우하겠군요."

"그래. 그래서 대장군님께서 무엇인가를 준비하셨다는구나."

"무엇을 말입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대장군님이 아무에게도 말씀하시지 않고 요동에 가면 알게 될 거라 하셨다니 가보면 알겠지."

산해관을 나와 산 위의 만리장성을 바라보는데 능선마다 높이 쌓여있는 성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걸 사람들이 일일이 쌓아 만들었다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생했을까? 하지만 그 덕분에 누가 관문을 열어주지 않는 한 이민족들이 만리장성을 넘어오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겠구나.'

산해관을 넘어가는 것은 산길이라서 수많은 인원이 일렬로 줄을 지어갔는데 그 모습이 흡사 개미 떼가 지나가는 모습과 같았다.

산해관에서 요동의 첫 관문 한성까지는 열흘 남짓 걸리는 거리였는데, 10만 대군의 북방 토벌군은 그보다 5일이나 더 걸려 산해관을 나선 지 15일 만에 한성 근방에 도착했다.

북방 토벌군은 한성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진을 쳤다.

그곳에서 한성을 바라보니 견고해 보이기는 하나 생각보다 규모가 큰 성은 아니었다.

우리가 진을 친 뒤부터 한성의 성벽 위에 있는 여진족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니 우리 대군을 보고 놀란 것 같았다.

"이번 한성 공략은 우리 1사군이 맡기로 하였다. 1사군에서도 우리 3대대가 선봉에 서기로 했다."

3대대 지휘관인 안휘 부장의 말에 3대대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한성은 성은 견고하나 그곳을 방어하는 병력은 채 5천 명도 되지 않는다. 그래도 정공법으로 공격한다면 당연히 우리의 피해가 크겠지. 허나 우리 능력을 살려서 공격한다면 큰 피해 없이 한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

안휘 부장의 말을 듣는 3대대원들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끝까지 귀담아들었다.

"세부 작전 계획은 각 중대장인 단주들에게 전달할 테니 그들을 통해 듣도록 해라."

잠시 후, 백인장 단주들이 안휘 부장의 막사에 갔다가 자기 중대로 돌아온 후 각 조 조장들을 막사로 불러 모았다.

나 역시 4개 조장 중 한 명이었기에 송겸 단주의 막사로 갔다.

"지금부터 작전 계획을 알려주겠다. 기밀 사항이니 나에게 듣고 조원들에게 전파하고 다른 이에게 발설 시 엄벌에 처한다. 각 조 조원 이외에 다른 대대원에게도 말하면 안 된다.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비밀 엄수를 다짐받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송겸 단주의 작전 계획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한성 함락 작전은 오늘 밤에 바로 실행한다."

"오늘 밤 말입니까? 적들이 지금 한참 대비하고 있는데 괜찮습니까?"

"이번 토벌군은 신속함이 가장 중요하다. 한성을 공격했단 사실을 여진족도 곧 알게 될 테니 이곳에서 긴 시간을 보낼 수는 없다."

"그럼 오늘 밤에 1사군이 다 같이 총공격하는 겁니까?"

"이제부터 잘 들어라. 이번 작전의 핵심이니."

송겸 단주가 조장들에게 중요 작전 설명을 하려 하는지 진중한 목소리로 바꿔 말했다.

"오늘 밤 자시(23시~1시)에 1사군이 남문을 공격할 것이다. 개전 후 일각이 지나면 우리 3대대는 조용히 북문으로 향할 것이다."

'양동작전인가? 하지만 성 내부에 5천 명의 여진족 군사들이 있다는데 우리가 무사히 잠입해도 천여 명이 채 안 되는 3대대 만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단주에게 물었다.

"양동작전이군요. 들키지 않고 성안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5천 명을 저희 대대만으로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무영 조장, 상당히 똑똑하구먼. 양동작전에다가 이 작전의 현실적인 문제점까지 파악하고 말이야. 하지만 자네가 모르는 게 있어."

"그게 무엇입니까?"

"3대대의 능력."

'3대대의 능력이라니 무슨 말이지?'

나를 포함한 모든 조장들이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으며 단주를 바라보자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해가 잘 안 되나 보군. 우리 3대대는 1사군 내에서도 특별하네."

"3대대가 특별하다고요?"

"그래. 너희들이 이곳에 오기 전이라 모르겠지만 6개월 전 야심한 밤에 여진족이 산해관을 넘어 우리 군영을 쳐들어온 적이 있다. 그때 잠을 자고 있던 우리 군대는 제대로 싸울 수 없었지. 특히 가장 먼저 공격받은 곳이 3대대라서 거의 전투 불능에 빠질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지. 그중 3중대는 전원이 사망했고 말이다."

나와 4조 조장 수호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조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놀란 표정이었다.

"나도 그때는 다른 대대에 있었기에 3대대가 얼마나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지는 정확히 몰랐다. 최근에 3대대를 다시 정비하면서 나도 3대대 3중대 단주로 임명받아 온 것이고 말이지. 하지만 오고 나서도 3대대의 정비가 다 끝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3대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대장군님이 여진족 공격에 전투 불능이 된 3대대의 정비를 명하시면서 1사군 내에서 가장 뛰어난 무공을 실력을 지닌 중대원들을 3대대로 편입시키셨다. 하여 지금의 3대대는 1사군 내에서 무공이 제일 뛰어난 최정예 군사들로만 구성되어있다. 모든 사병이 일류 이상이다."

단주의 말을 듣고 보니 지나가면서 다른 중대의 사병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았을 때 예사롭지 않은 몸놀림을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대장군님이 왜 3대대에 그렇게 뛰어난 병사들을 모으라 지시하신 겁니까?"

"여진족에게 당한 복수를 3대대로 하시겠다는 의지이신 거지. 그래서 이번 작전도 3대대에게 맡기기로 대장군님이 직접 지시하신 것이다."

단주의 말을 듣고 나니 3대대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나머지 조장들의 표정을 보아하니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일류고수 이상 초일류도 상당수가 있는 천여 명의 병력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5천의 병력을 어찌할 거 같으냐?"

"단주님의 말을 듣고 나니 우리의 승리는 이미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서 우리 토벌군 내 수뇌부는 그 누구도 실패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 말은 우리는 무조건 이겨야 하고 최소한의 피해로 한성을 공략해야만 제대로 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다."

"승리는 당연한 거고 최소한의 피해가 중요하군요."

"난 너희들에게 기대가 크다. 3대대에서 3중대가 인원은 가장 적지만 너희 실력은 일당백이니 이번 작전에도 큰 공을 세울 거라 믿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단주의 말에 나를 포함한 4개 조의 조장들은 강한 결의를 내비쳤다.

"최선은 다하되 한성을 점령했을 때 우리 중대원은 단 한 명도 죽은 자는 없어야 한다. 이건 내 명령이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단주의 진심 어린 말에 조장들 모두 울컥한 표정이었다.

단주에게 작전 계획을 다 듣고 조원들에게 돌아가 마찬가지로 비밀 엄수를 다짐받고 들은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작전을 듣는 조원 모두가 처음에는 심각한 표정이었다가 설명이 덧붙을수록 시시각각 표정이 변했다.

우리가 단주에게 작전을 전달받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

모든 내용을 다 듣고 나서야 조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3대대가 그렇게 특별했단 말이야?"

"괜히 걱정했네. 처음엔 천대 오천으로 붙는다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이기는 건 당연히 이기는 거고 얼마나 피해를 줄이느냐의 싸움이라니.."

"단주님 말씀대로 우리가 가장 소수지만 가장 큰 공을 세우자고!"

작전 설명이 끝난 뒤에 분위기가 이미 승리한 것처럼 다들 들떠있었다.

"마지막으로 단주님 명이 있었어. 한성 점령 후 중대원 중에 죽은 자는 없어야 한다고."

나의 말을 듣고 울컥했는지 밝은 표정을 짓고 있던 조원들의 표정들이 미묘하게 변하고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그래. 우리 단 한 명도 죽지 말고 무사히 한성에서 보자고."

그렇게 작전 설명이 끝나고 모두 긴장한 채 검을 닦으며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밤이 되고 자시에 가까워지자 1사군의 병사들이 모여 자신들의 병기를 손에 들고 전의를 다진 후 출전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3대대는 따로 열외 되어 그들이 출전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1사군의 지휘관이자 만인장인 우근 장군이 말을 탄 채로 검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용맹한 1사군이여! 한성을 함락시키자. 가자!"

"와~~~~~"

우근 장군과 함께 1사군이 함성을 지르며 한성의 남문을 향해 돌진했다.

한성 성벽 위에서 보초를 서던 적들도 그들을 발견하고 호적을 불어 성 내부에 공격을 알렸다.

잠시 후 성벽에서 1사군을 향해 불화살을 날렸고 우리 군 역시 불화살을 성안으로 쏟아 보냈다.

양쪽에서 오가는 불화살 때문에 남문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휘 부장이 3대대원들에게 말을 했다.

"이번이 첫 전투인 병사들도 많이 있는 것을 안다. 그래서 두렵겠지. 하지만 두려워할 필요 없다. 너희 자신을 믿고, 나를 믿고, 우리 3대대를 믿어라! 우리는 최강이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안휘 부장의 말에 모든 3대대원들이 전의가 불타올랐다.

"오늘 3대대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자! 가자!"

대낮처럼 밝아진 남문으로 인해 반대로 북쪽으로 갈수록 칠흑같이 어두워졌다.

그 어두움을 이용하여 천명에 가까운 3대대 인원이 아무도 모르게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 첫 출전 > 끝

ⓒ 청운검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