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33화 (33/114)

< 북방군 배치 >

옆에 있던 조원들도 전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조장, 우리도 끼워줘."

"그래. 무영 조장이 장군이 되면 우리 조원들도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닐 수 있겠지. 힘껏 도울게."

"조장이 장군 될 때 즈음이면 우리도 최소한 백인장은 되는 거 아냐?"

"꿈은 크게 가지라고 했다. 백인장이 뭐냐. 천인장은 되야지."

"하하. 그래, 전장에서 우리 조 사고 한번 크게 쳐보자."

"고맙다. 너희들은 내가 어떻게든 지켜줄게."

'석견이와 예현이 말고도 3개월 동안 어느새 이 녀석들과 정이 많이 들었네. 지켜야 할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녀석들이 옆에 있어서 든든하다.'

3개월 동안 조원들이 키도 많이 컸고 앳된 모습에서 제법 군인의 태가 났다.

군부에서의 3개월은 우리에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한 시간이었다.

다음날 우리는 마지막으로 식도관에서 만찬을 즐기고 군부의 정문을 걸어 나왔다.

'3개월 전 이곳으로 처음 왔던 때가 생각나는군.'

비사굴을 나와 낯선 곳으로 간다는 것에 긴장하던 그때,

햇살에 눈이 부셔서 얇은 천으로 가리며 걸었던 그 날,

그 날과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햇살을 바라봐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과 모두가 자신감이 넘치는 군인이 되었다는 것.

우리를 비사굴에서 데려왔던 조환을 따라 전쟁이 발발 중인 북방으로 향했다.

일주일가량을 아침부터 밤까지 쉼 없이 달리다가 끼니는 겨우 보리빵으로 때우고, 늦은 밤이 되면 동굴이나 아침 이슬을 피할만한 곳을 찾아 비박을 하며 고생한 끝에 북방 지역에 도착하였다.

'조환 대인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하셨지. 교관님이 마지막까지 우리를 훈련 시키기 위해 특별히 지시하신 거라고.'

3개월의 훈련보다 그 일주일의 시간이 더 힘들었다.

'어찌 됐건 정신력과 생존 능력은 모두가 더 강해진 건 확실하다.'

우리는 날이 살짝 어두워지기 시작할 때쯤 북방 군영에 들어섰다.

군영 입구의 문부터가 엄청나게 커서 군영의 규모 또한 엄청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군영의 입구를 지키는 무사가 우리를 처음 발견하고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웬 거지 떼가 잔뜩 몰려왔어. 구걸하려면 다른 곳에 가 보거라."

땅바닥에 누워 자서 옷도 더럽고 씻지도 못하여 때꾸중이 잔뜩 낀 얼굴이라, 개방 거지들이 우리를 보면 자기네 방파 사람인 줄 착각할 만큼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봐도 우리들 모습이 영락없는 거지꼴이니.. 저런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지.'

그때 조환이 무사에게 다가가 서찰을 꺼내며 말했다.

"여기에 서 있는 장병들은 거지가 아니라 군부에서 이곳으로 새롭게 배치받은 병사들이네."

서찰을 건네받은 무사는 서찰을 읽고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떨며 말했다.

"조 대인님,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진 장군님께서 병사들을 이곳으로 보내셨군요."

"우리 꼴이 엉망이라 그럴 수도 있지. 얼른 안으로 안내하게."

입구를 지키던 무사는 신속히 커다란 문을 열고 우리를 군영 안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이민족의 침략을 격퇴하고 북방의 방어를 책임지는 20만의 북방 방위군이 머무는 군영이었다.

20만의 장병이 머무는 곳답게 군영이지만 조그마한 성보다 많은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전각은 없었지만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막사가 초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전시 상황은 어떤가?"

조환의 물음에 무사가 이곳 상황을 상세히 대답하였다.

"몇 달 전에 여진족이 이곳을 급습해 와서 피해가 컸었는데, 대장군님께서 직접 오셔서 군을 정비하신 뒤로는 큰 피해 없이 적들을 소탕해 나가고 있습니다."

"대장군님이 직접 군을 정비하셨다면 그럴만하지."

'대장군님이라면 장군 중에서도 제일 높으신 분일 텐데 이곳 북방 군영에 계시는구나.'

우리는 한참을 걸어 군영 중심부의 커다란 막사에 도착했다.

우리를 데리고 온 무사가 서찰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 후 잠시 후 호탕하게 생긴 사내가 걸어 나왔다.

"진 대인이 또 오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제가 맡을 테니 막사에 가서 쉬시지요. 막사로 안내해 드리게."

"감사합니다. 안 부장님. 아, 그리고 진 장군님께서 이번 신병들은 특별히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진 장군님께도 안부 전해 주십시오."

"네, 꼭 전하겠습니다."

무사를 따라 조환이 사라지고 안 부장이라는 사내가 말했다.

"자네들이 진 장군님께서 보내신 신병들이군. 반갑다. 난 이곳 북방 방위군 소속 1사군에서 3대대를 맡고 있는 천인장 안휘라고 한다. 그냥 안 부장님이라 부르면 되고, 너희는 모두 우리 부대로 배치되었으니 앞으로 잘해보자."

"네,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소리가 우렁차서 좋네. 그런데 몰골이 말이 아니군. 먼저 막사로 안내해 줄 테니 씻고 나와라. 한 사병, 막사로 안내해주게."

안휘의 말에 사병 한 명이 뛰어나와 우리를 데리고 막사로 갔다.

막사는 임시 막사였지만 겉보기에 깨끗하고 넓었다.

'여기는 몇 달 동안 아무도 안 쓴 것처럼 먼지가 쌓여있네. 그리고 주변이 너무 조용하네. 우리들 말고 다른 중대원들은 없나?'

이곳 역시 군부에서처럼 10명이 한 막사를 썼는데 군부에서의 막사보다 크기는 넓었다.

"자, 차례대로 씻고 나오도록 해. 여자들부터 씻으렴."

나의 말에 여자 조원들부터 차례대로 씻으러 들어갔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막사도 괜찮고 밥만 맛있었으면 좋겠다."

"석견이 너는 항상 먹을 것 생각밖에 안 하냐. 여진족이 주변에서 언제 튀어나올 줄 모르는데."

예현이의 핀잔에 석견이 입을 비쭉 내밀며 볼멘소리를 했다.

"넌 맨날 나만 뭐라고 하더라. 이왕이면 이곳에서도 군부에서처럼 맛있는 밥이 나오면 얼마나 힘이 나고 좋겠어. 안 그래, 싸부?"

"그래, 석견이 네 말이 맞다. 그런데 이제는 진짜 전장이니까 예현이랑 석견이 너희 둘은 그만 좀 아웅 거리고. 알았지?"

나의 말에 예현과 석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영아, 아까 대장군님이 오신 뒤로 여진족을 소탕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럼 지금은 전시 상황이 우리 쪽으로 많이 유리해진 걸까?"

"현재는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여진족도 워낙 전투에 능한 자들이라고 알려져 있으니까 언제 위기가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입구에서 이곳으로 지나오면서 보니까 전투식량이랑 병장기들을 모으고 있더라고. 아마 조만간 토벌군이 조직될 것 같은데.."

토벌군이라는 나의 말에 예현이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지며 말했다.

"토벌군? 여진족을 격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쪽 나라로 쳐들어간다는 거야?"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니까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다면 굉장히 위험하겠군.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이미 방어가 되어있는 곳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거라면.."

"그래. 많은 희생이 따르겠지."

"여진족은 상대해 본 적이 없어서 좀 긴장이 되네."

"너뿐 아니라 다들 그렇지. 우리는 전쟁에 직접 참전한 적은 없으니."

"그것도 그렇고 북방민족은 말도 잘 타고 용맹하기로 유명하잖아."

"그래도 우리는 무공을 익혔잖아. 그들은 무공은 잘 모르지 않을까?"

"세외에도 강한 무공이 있는데 그들이 무공을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건 잘못된 추측 아닐까?"

"네 말을 들어보니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

대화하는 동안 조원들이 차례로 씻고 나오고 내 차례가 되어 씻고 나왔다.

씻고 나와 새 옷으로 갈아입으니 거지꼴은 사라지고 다들 말끔해져 있었다.

"고된 일주일이었다.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은 이대로 푹 쉬고 싶다."

"나도 한휘랑 같은 생각이다. 오늘은 일찍 쉬고 싶다."

다들 일주일간 강행군에 지쳤는지 너나 할 거 없이 모든 조원이 그대로 침상에 쓰러지듯 누웠다.

한참을 졸다가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깼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보는 사내와 눈이 마주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이제 일어났나?"

"네, 누구십니까?"

낯선 사내의 목소리와 나의 대답 소리에 모든 조원이 잠에서 깼다.

굵고 낮은 목소리로 사내가 다시 한번 말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네, 그렇습니다."

"난 너희들이 속한 1사군 3대대 3중대를 맡고 있는 백인장 송겸이다. 앞으로 날 부를 때는 송 단주님이라 부르면 된다. 여기 조장은 누구지?"

내가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이곳 조장을 맡고 있는 무영입니다."

"너희는 군부에서 훈련을 받을 때 3조였다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대로 너희는 이곳에서도 3조다."

"알겠습니다."

"너는 조장이자 십인장이야. 이 10명의 목숨은 네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네가 잘해야 이 녀석들이 오래 살 수 있어. 그리고 특이사항 보고는 항상 네가 나에게 직접 하도록 해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피곤할 텐데 좀 더 쉬고 있어. 식사 시간이 되면 내가 각 조 조장들을 소집할 테니까."

송겸이 나가자 다들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침상에 기대며 말했다.

"백인장이란 분 조금 깐깐해 보이고 무서워 보이던데. 첫날부터 우리가 자고 있어서 저분에게 밉보인 거 아닌가?"

"어쩔 수 없지. 다음부턴 잘해야지. 너무 긴장을 놓고 있었어. 송단주님이 바로 앞에서 보고 있었는데도 전혀 모르고 졸다니.."

하지만 식사 시간에 알게 되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함께 온 모든 조가 잠들었다는 것을.

그걸 알게 되고 우리 조원들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전장에 있는 군영이라서 음식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잘 나왔다.

자연스레 조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 그분이 백인장이라고 했는데 그럼 군부에서 함께 훈련받은 우리 4개 조는 다 같은 소속인 걸까?"

"아마도 그런 거 같은데.. 내가 물어볼게."

예현이의 물음은 나 또한 궁금한 부분이었기에 숟가락을 내려놓고 평소 친분이 있는 4조 조장 수호에게 다가가 물었다.

"수호야, 너희도 3중대에 소속된 거야?"

"응. 송겸 단주님이 계신 3중대로 소속되고 4조도 그대로 간다고 하더라고."

"그럼 이번 기수 훈련생들 모두가 같은 소속으로 배치되었나 보네."

"그런 거 같아. 몇 년 동안 함께 생활했으니 손발이 잘 맞을 거라 생각해서 함께 배치한 게 아닐까 싶어."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밥 맛있게 먹어."

"그래, 너도."

수호와 대화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다시 식사를 했다.

"수호에게 물어보니 4개 조 다 3중대에 배치된 거 같아."

"그렇다면 나머지 6개 조가 더 궁금해지는데."

"조만간 만나게 되겠지. 당장 내일일 수도?"

"그런데 우리가 3중대로 들어왔는데 그 전에 3중대 사람들은 어디로 간 거지?"

"다른 곳으로 배치받았나 보지. 일단 밥부터 먹자."

군부로 온 뒤부터 부쩍 말이 많아진 예현과 대화를 계속하다가는 밥을 못 먹을 것 같아서 말을 끊고 식사를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간 우리는 송겸 단주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 북방군 배치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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