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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무사의 귀환-32화 (32/114)

< 조기전역 계획 >

"사람의 목숨을 경시 여기고 쉽게 목숨을 거두는 자는 피에 굶주린 살인귀일 뿐이다. 군인은 살인귀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적군에게는 인정과 자비를 베풀면 돌아오는 건 너의 죽음이다. 그래서 이제부터 너희는 살예를 배울 것이다."

"너희들 중에는 살수의 무공을 배운 자도 있겠지. 여기서는 살수의 무공을 배운다기보다는 살수의 마음가짐을 배울 것이다."

'교관님의 말이 정말 공감이 되는군. 나는 살왕의 무공을 익히고 살수의 무공을 많이 익혔는데도 처음 상대의 목숨을 취했을 때는 겁도 나고 심적으로 힘들었는데.. 경험도 없는 이들이 전쟁터에서 수많은 적을 상대하고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겠지.'

"네 앞에 적군이 있다. 그런데 보니 여자다. 이런 경우에는 어찌하겠는가?"

"적군이기 때문에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 적군이면 남자든 여자든 싸워 이겨야 한다."

우리는 교관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무장을 하고 있었다.

"적군을 만났는데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자신들은 적군 아니라 타국의 일반 백성이라고 말을 한다."

"......"

교관님의 말에 아무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상관의 사살 명령이 떨어지면 죽여야 한다."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교관님의 말에 반박하며 물었다.

"그 어린아이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전쟁터에서는 그게 사실인지 아닌가 중요치 않다. 군인은 무조건 상관의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는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아라. 그냥 명령에 따르면 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교관님의 말을 들으니 앞으로 다가올 전쟁의 참혹한 현실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 뒤로도 교관님은 전쟁터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생존방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교관님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전쟁터에서 많은 경험을 하신 듯한데 왜 전장에 안 계시고 이곳에서 병사들을 가르치고 계시는 걸까?'

나는 잠시 쉬는 시간이 되었을 때 교관님에게 다가가 물었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교관님은 전장에서 경험이 많으신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곳에 계십니까?"

"그곳에서 나를 필요치 않았으니 내가 이곳에 있는 거겠지."

"그럼 다시 전장으로 나가실 수도 있습니까?"

"전장에서 날 필요로 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무 오래 쉬어서 그곳에 간다고 해도 예전만큼 실력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 같구나."

나에게 말하는 교관님의 얼굴을 보니 과거에 활약했던 전장을 떠난 그때를 떠올리며 회한에 젖은 듯 보였다.

"교관님은 전장에 계시는 게 더 잘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이느냐? 나도 가끔은 전장이 그립긴 하구나."

그렇게 우리는 매일 교관님에게 정신 교육과 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들을 배우고 남은 시간에는 24반 무예 수련과 전술훈련을 하며 남은 한 달의 시간을 보냈다.

군부에서 마지막 날, 교관님에게 배우는 마지막 교육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너희는 이곳을 떠나 전장으로 가겠구나.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기에 전장에 대한 두려움이 많겠지. 하지만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고 여기서 배운 것들을 충분히 활용한다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주마."

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며 집중했다.

"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먼저 나서지 말며 상관의 눈에 띄지 말아라."

대단한 것을 기대했다가 교관님의 말에 다들 실망한 표정이 얼굴에 나타났다.

"내 말을 못 믿는 거 같은데 그곳에 가면 알게 될 것이다. 내 말의 의미를 말이다. 남들보다 먼저 나서는 자가 선봉에 서서 가장 먼저 죽을 것이고 윗사람의 눈에 띄는 자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만 하거라. 그러면 너희는 무사히 전장에서 돌아올 것이다."

그동안 우리를 가르쳤던 교관님의 말과 마지막 날의 교관님의 말이 뭔가 다른 듯하여 다들 혼란스러워했다.

"너희는 그곳에서 10년간 복무를 할 것이다. 10년이다. 딱 10년 동안 죽지 말고 버텨라."

우리에게 마지막 말을 하는 교관님의 말투에서 진심이 묻어나 모두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10년이라.. 난 10년씩이나 전장에서 보낼 수 없다. 그 안에 황녀님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있어.'

나는 10년 안에 황녀님에게 일어날 안 좋은 일들을 미리 막아야 하기에 전장에서만 시간을 흘려보낼 순 없었다.

교관님의 교육이 끝나고 모두 막사로 돌아가 쉬려 할 때 나는 교관에게 다가가 말을 했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그래. 말하거라."

"저희 복무기간이 10년이라 하셨는데 좀 더 일찍 마칠 수는 없는 겁니까?"

"전장을 일찍 떠나고 싶은 게냐? 일반적으로는 10년을 채워야 하는데. 흠..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지."

"그게 무엇입니까?"

"하나는 전투을 수행할 없을 정도로 큰 부상을 당하거나."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그게 아니면 큰 공을 세워 장군으로 임명되면 가능하지."

"장군으로 임명되면 전역이 가능하다는 겁니까?"

"그래. 보통은 장군으로 임명되면 포상과 함께 높은 관직을 수여 받지만, 본인이 원할 경우 전역을 하고 군부를 떠날 수도 있다."

"의무 복무기간이 남아있어도 말입니까?"

"그래. 장군이 되는 순간 의무 복무기간은 사라지니까."

'다행이다. 방법을 찾았다. 전장에 나가서 공을 세우고 최대한 빨리 장군이 되어야겠다.'

교관님의 말을 나의 얼굴이 밝아진 것을 보고 교관님이 웃으며 말했다.

"껄껄. 네 표정을 보아하니, 빨리 공을 세워 장군이 될 생각인가 보구나."

"교관님 왜 웃으시는 겁니까? 제가 장군이 되려 하는 게 허황된 생각이라 보십니까?"

"그게 아니라 나도 입대 후 공을 많이 세워 15년 만에 장군에 올랐는데, 네가 10년 복무를 안 하려고 장군이 되려 한다기에 웃음이 나왔구나."

"교관님이 15년이나 걸렸단 말입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굉장히 빨리 오른 거란다."

"......"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황하고 말았다.

'다른 방법이 더 모색해봐야겠다. 정 안되면 탈영이라도 생각해봐야겠군.'

굳어있는 내 표정을 보고 교관님이 말을 했다.

"10년 안에 장군에 오르는 게 어렵긴 해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네? 정말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가 입대할 당시 무공 수준은 이류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너는 이미 초일류 경지이니 시기적절하게만 공을 세운다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시기적절하게 공을 세운다면 이란 말이 무슨 뜻입니까?"

"무조건 공을 세운다고 진급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간절한 표정으로 말하는 나를 보고 교관님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진지한 네 표정을 보니 조만간 무영 장군을 볼 수 있겠군. 군대는 계급이 있다. 알고 있나?"

"대충은 들었으나 정확히는 모릅니다."

"군에 처음 들어오면 일반 병사가 되고, 병사들 중 실력이 뛰어나거나 통솔력이 있으면 십인장으로 임명받는다. 네가 맡고 있는 조장이 십인장인 것이다."

'조장 임명할 때 십인장과 같다고 했었지.'

"네. 그것까지는 들었습니다. 제가 십인장의 역할로 조장을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 넌 이미 십인장이나 다름없으니 십인장은 어렵지 않게 될 수 있지. 하지만 백인장부터는 십인장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한다. 전장에서 조원들을 잘 지켜내고 어느 정도 공을 세워야 하기에 시간이 좀 걸릴 수 있다."

"처음부터 큰 공을 세우면 좀 더 빨리 올라갈 수 없습니까?"

"십인장에게 큰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령 세운다고 할지라도 군은 체계가 있기에 건너뛰어서 진급시키지는 않는다."

'군이라는 곳은 역시 생각대로 꽉 막혀있군. 능력이 있으면 빠르게 올려줘야지.'

"그렇다면 백인장에 최대한 빨리 올라야 그다음을 노려볼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 그래서 내가 시기적절이란 말을 썼다. 백인장은 단주라 부르는데 네가 운이 좋아서 백인장을 일찍 오르면 천인장에 오를 기회도 더 빨리 찾아오는 거란다."

'천인장까지만 오르면 되는 건가? 이미 난 십인장이니 공을 세워 백인장만 빨리 오르면 그렇게 어렵지 않겠는데.'

"그럼 장군은 천인장인가요?"

"아니다. 천인장은 부장이라 하고 장군은 만인장을 말한다. 한 부대를 뜻할 때 최소 만 명으로 보기 때문에 장군은 그 부대를 통솔하는 최고 지휘관을 뜻한다."

'만인장이 장군이었어? 이런! 언제 만인장까지 오르냐.'

"만인장이라니.. 장군이 그렇게 높은 지위인 줄 몰랐습니다."

"내가 볼 때 너라면 가능할 것도 같구나. 네 위의 기수 중에도 아직 장군은 아니지만 그것을 노리고 있는 천인장들이 꽤 있더구나."

'그림자 무사 훈련생 선배들을 말하는 건가?'

"입대한 그림자 무사 훈련생들 중에 천인장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전장에서는 일반 병사들보다 확실히 빠르게 진급하여 두각을 나타내는 그림자 무사 훈련생들이 많이 있다. 입대한 지 몇 년 안 됐는데 천인장이라면 그들 중에서도 10년 안에 장군이 나올 수 있지."

'오호, 그림자 무사 훈련생 중에 이미 천인장이 있다는 건 무공이 강할수록 빨리 장군이 될 수 있다는 거군. 가능성이 있어.'

"이미 도전하고 있는 선배 기수가 있다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교관님은 혀를 차며 말을 했다.

"쯧쯧. 그게 어찌 좋은 일이더냐. 네가 어찌어찌하여 천인장까지 간다면 만인장에 오르는데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가 네 선배 기수인 것을 모르고."

'아.. 젠장. 교관님 말씀이 맞다. 먼저 그림자 무사 훈련을 거쳤으니 나와 무공실력이 비슷하거나 더 위에 있을 텐데. 쉽지 않구나.'

"듣고 보니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꼭 10년 안에 만인장에 오르겠습니다."

"그래. 너의 그 호기로운 모습이 보기 좋군. 내 이곳에서 너의 그 소식을 기다리고 있으마."

그렇게 교관님과의 대화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왔다.

"무영아, 교관님과 무슨 대화를 그렇게 오래 하고 왔어?"

"빨리 전역하는 방법을 물어보고 왔어."

"10년 동안 복무하는 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고 하셔?"

"응. 큰 부상을 당하거나 장군이 되면 가능하대."

"팔다리가 잘리거나 적 장수의 목을 베거나 이런 거?"

"맞아. 둘 다 어렵긴 하지."

"넌 왜 일찍 전역하고 싶은 건데?"

"10년 안에 꼭 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어서.. 군에 오래 남을 수 없어."

"무슨 일인지는 말할 수 없나 보네."

"응. 지금은 말할 수 없고 나중에 말해줄게."

"그럼 나는 무영이 널 장군으로 만들어야겠다."

예현이의 말에 옆에서 듣고 있는 석견도 한마디 거들었다.

"나도 싸부가 장군이 될 수 있게 예현이보다 더 도울게."

"넌 전장에 가서 괜히 사고나 치지 말고 가만히 있는 게 무영이를 도와주는 거다."

"쳇. 예현이 너보다 내가 더 싸부에게 도움이 될 테니까 두고 봐."

"두 사람 다 고마워.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 조기전역 계획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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