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반 무예 >
교관의 말에 시합이 중지되었을 때 원 안에는 두 명의 2조 조원이 땀을 뻘뻘 흘리며 남아있었다.
그들이 열심히 고군분투했던 건 맞지만 내가 보기에 그 두 사람의 실력으로 버텼다기보다는 조교들이 그들의 투지를 높이 사 살짝 봐 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1조보다는 결과가 조금 낫구나. 조교 한 명은 탈락시켰으니 말이다."
2조 조원들은 최선을 다한 만큼 후회는 없었는데 거기에 교관의 칭찬까지 더해지자 비록 졌지만 뿌듯한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이어서 4조도 원 안으로 들어간 후 준비를 하고 곧바로 다음 대결이 시작되었다.
조교들은 연달아 두 번의 대결을 펼친 뒤에 다시 펼치는 대결이라서 그런지 조금 지친 표정이었고, 부상으로 다리를 치료받았던 조교도 가볍게 상처 치료만 하고 다시 들어갔기에 1조나 2조를 상대할 때 보다는 전체적으로 민첩함과 예리함이 떨어졌다.
4조의 조장을 맡은 수호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충분히 해 볼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조원들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수호의 눈빛 신호를 받은 조원들은 미리 준비해 온 전술이 있는 듯 순식간에 대형을 갖추었다.
4조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조교들이 그들이 대형을 갖추자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세적인 움직임으로 시작했다가 공격으로 전환했던 그 전의 대결과는 달리 처음부터 공격적인 움직임을 가져갔다.
"24반 무예 쌍검"
이번 대결에서 조교들이 아까와 가장 다른 점은 작은 방패를 버리고 쌍검을 쓴다는 것이었다.
조교들은 본인들이 지친만큼 승부를 길게 끌 생각이 없었다.
자신들이 익힌 24반 무예 중 가장 공격적인 쌍검을 꺼내 들었다는 건 초반에 강력한 공격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그들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만큼 쌍검으로 자세를 잡고 있는 조교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두 번째 대결의 공격도 상당히 매서워 보였지만 쌍검은 쉽게 막아내기 힘들어 보이는데..'
4조는 조교들의 기세가 달라졌다는 걸 인지했지만 자신들도 공격적인 전술을 준비해 왔기에 강 대 강으로 맞붙었다.
조교들이 지친만큼 정면승부를 해도 밀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이들은 맞부딪쳐보자마자 자신들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조와 조교들의 충돌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우리에게도 엄청난 기의 파동이 느껴질 정도로 강력했다.
단 한 번의 충돌로 인해 검을 놓칠 뻔했던 4조 조원들은 쉬지 않고 이어지는 쌍검의 공격에 두려움이 생겨서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등 뒤로 선이 보이고 원 밖으로 밀려 나갈 상황에 처하자 4조의 조장 수호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질 순 없어. 공격."
4조는 조장 수호의 지시에 두려움을 이겨내고 원을 등 뒤에 두고 배수의 진을 쳤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그들은 조교들이 펼치는 쌍검술에도 두려움을 억누르고 전진하며 검을 휘둘렀다.
쌍검술은 공격적인 무예라 위력은 강하지만 방어적인 부분에서는 다른 것들에 비해 약했다.
4조가 쌍검술의 충격을 받아내고 부상을 입으면서도 전진하며 검을 휘두르자 조교들도 그들의 검을 완벽히 막아내지 못하고 작은 상처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한참을 주고받으면서 피해가 누적되어 한 명씩 탈락자가 생겨났다.
대결을 시작한 지 일각이 지났을 때 4조의 조원 모두가 원 밖으로 나가 대결이 끝이 났다.
그런데 놀라운 결과는 조교들 역시 원 안에 4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결을 지켜본 교관도 그 결과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곳에 온 역대 기수 중에 조교들과 상대해서 너희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훌륭해."
"감사합니다."
"잘 싸웠지만 진 건 진 거니까. 1조, 2조, 4조는 오늘 밥은 없다."
교관의 말에 우리 조를 제외한 3개 조의 조원들은 대답 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3조는 밥 먹으러 가고 나머지 3개 조는 다친 곳을 치료하고 쉬고 있다가 오후 수련에 참가하도록 해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대결에 패한 3개 조는 다친 조원도 있고 다들 전체적으로 기력을 크게 소진해서인지 흡사 패잔병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식사하기 위해 식도관으로 가는 우리 조를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난 괜히 부담스러우면서도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식도관에 도착한 우리 조는 식사를 맛있게 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역시 대결에 참가하지 않은 건 현명한 선택이었어. 안 그랬으면 이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을 뻔했잖아."
"그래. 석견아 많이 먹어라. 한데 만약 우리도 대결에 참가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 거 같아?"
나의 물음에 조원들이 잠시 밥 먹는 걸 멈추고 생각한 후에 대답을 했다.
"조교들 실력이 생각보다 훨씬 강했잖아. 대결을 했더라도 이기기는 어려웠을 거 같은데.."
"맞아. 이기기는 어려웠겠지. 하지만 우리가 3조니까 세 번째로 대결을 펼쳤다면 4조보다는 더 나은 성적을 거두었을 거 같은데."
"나도 우리가 세 번째로 대결에 나섰다면 조교들도 원 안에 거의 남아있지 못했을 거 같아. 아마 승패를 쉽게 가늠할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해."
"내 생각도 같아. 조장들 중에서도 무공 실력은 우리 조장이 가장 뛰어나니까."
"아까 예현이 널 지켜봤더니 대결을 처음부터 상당히 집중해서 보던데 어땠어?"
나의 질문에 예현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군부의 기본 무공이라 약할 거라 생각했던 24반 무예인데.. 보면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지. 오랜 시간 연마하여 숙련된 조교들이 사용하면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야."
"나도 예현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봤어.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24반 무예를 조교들보다 더 숙달해야만 나중에 전쟁터에 가서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고 생각해."
나의 말을 수긍하는지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조는 식사를 마치고 막사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였다.
한 시진 후 교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연병장으로 뛰어나갔다.
연병장에 4개 조 전원이 금세 모였는데 활력이 넘치는 우리 조와 달리 나머지 3개 조원들은 밥을 못 먹어서인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오전에 이어서 24반 무예를 배우는데 오후에는 직접 수련하도록 하겠다. 먼저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 잘 보거라. 딱 한 번만 보여줄 테니."
교관님이 직접 24반 무예를 우리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
오전에 조교들의 시범을 보았기에 대부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교관님의 시범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미리 병기고에서 가지고 나온 창을 거치대에서 뽑아 들고 교관님이 창술을 펼치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두들 압도되는듯한 전율을 느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데도 저 창의 끝이 내게 닿을 것 같은 느낌이 들다니.. 교관님의 무공경지가 최소 절정 이상이시구나.'
변초나 화려한 초식이 없이 간결한 동작인데도 창에 실린 기운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조교들과 상대해봤던 조원들은 24반 무예가 자신들의 생각보다 뛰어난 무공이라고 여겼지만, 교관님의 무공을 본 후에는 자신들이 겪은 24반 무예가 반쪽짜리 무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과연 지금의 상태에서 교관의 저 창술을 막아낼 수 있을까?'
머릿속으로 교관님의 대결을 상상해 보았지만 저 간단한 일초의 창술을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교관님은 창술 시범을 가볍게 끝내고 이번에는 도를 집어 들고 도법을 보여주었다.
교관님이 도를 들고 시범을 보이자 창술보다 도법이 더욱 날카롭고 현묘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 병장기를 차례대로 시범을 보이고 마무리하자 모두 크게 박수를 치며 진심으로 존경을 표했다.
"그만. 뭐 대단한 것을 봤다고 박수까지 치느냐."
교관의 말에 박수 소리가 멈추었다.
"자, 내가 시범을 보였으니 이제 너희들이 본 24반 무예를 직접 펼쳐 보거라."
우리는 모두 병기고로 가서 창을 들고나와서 창술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분명히 보기는 제대로 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병장기를 다루다 보니 대부분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창술 수련이 끝나고 다시 도를 집어 들고 반복하여 동작을 습득했다.
다들 일류 이상의 고수였지만 새로운 무공을 집중해서 배우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정도였다.
교관님의 24반 무예와 비교하자면 형편없었지만 다들 집중해서 수련하니 교관님도 별말 없이 우리들을 지켜보기만 하셨다.
반복되는 동작을 한 시진 정도 수련을 하고 오후 수련을 마쳤다.
매일 오전 오후 각각 한 시진씩 수련을 하다 보니 점점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을 때 24반 무예를 펼치는 조원들의 움직임이 대결 때 보여준 조교들의 24반 무예 못지않았다.
"두 달 만에 많이 좋아졌구나. 가르친 보람이 있군. 이제는 너희들 스스로 수련해도 될 것 같으니 24반 무예는 그만 가르치겠다."
교관님도 우리의 동작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으셨다.
"보통은 세 달 동안 24반 무예만 수련하다 가는데 너희는 두 달 만에 완벽히 익혔으니 남은 한 달 동안은 실전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가르쳐 주마."
'이곳에는 세 달 동안만 머무는구나. 아마도 한 달 후에는 전쟁터로 배치를 받겠군.'
그동안 교관님이 전체 훈련 기간이나 체류 기간을 따로 말씀해주지 않아서 모두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는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
"너희들 말은 탈 줄 아느냐?"
"모릅니다."
"어차피 너희들은 기병대가 아니기에 말을 탈 일은 많지 않겠지만 배워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
교관님은 조교에게 네 마리의 말을 가져오게 한 후 각 조당 한 마리씩 주며 열 명이 차례대로 말에 올라타는 연습을 시켰다.
다들 말을 처음 타봐서 그런지 처음에는 중심도 못 잡고 말 고삐 잡는 것도 어색해했지만, 몇 번 타 보고는 재미를 느껴서 승마 훈련시간을 가장 즐거워했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말 타는 법을 배우니 제법 말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말 타는 게 제법 익숙해졌구나.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전쟁터에 나가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마."
교관님이 진중한 목소리로 전쟁터에 대해 언급하자 모두가 그를 숨을 죽이며 귀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너희 중에 사람을 죽여본 사람 있나? 있으면 손을 들어 보거라."
'전생에서 그림자 무사로 지내면서 황궁을 찾아온 수많은 살수들을 죽였었지만.. 지금 손들면 이상한 놈이 되겠지?'
교관님의 말에 손드는 조원이 아무도 없었다.
"너희가 한 달 뒤 전쟁터로 배치받으면 그곳에서는 주변 동료들이 죽는 모습을 흔하게 보게 된다. 또한 전쟁터에서 맞닥뜨린 적군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너희들이 죽게 될 것이다. 그게 전쟁터다."
교관님의 말에 모든 조원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지고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 24반 무예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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