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패 쟁탈전 >
나와 11호는 7호에게 신호를 주고 무당검진을 만들었다.
이것은 내가 준비한 비장의 한수로 무당파의 내공심법과 검법을 익힌 나와 11호, 그리고 7호가 같이 무당검진을 펼치는 방법을 만들어냈다.
칠성검진만큼의 큰 위력은 없지만 7호가 앞에서 활약할 때 우리가 그녀를 지켜주는데 적절한 검진이었다.
7호가 이리저리 옮겨가며 빈틈을 찔러대자 칠성검진에서 한 축을 맡고 있던 36호가 한쪽 다리를 베이면서 자리를 이탈했다.
그러자 칠성검진의 균형이 한꺼번에 깨지면서 검진을 구성하던 나머지 여섯 명까지 우리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15호가 대표로 나와 패배를 선언했다.
"너희가 검진까지 익혔을 줄은 미처 몰랐다. 그리고 7호의 능력을 제대로 알지 못한 게 패착이었어. 우리의 패배를 인정할게."
5호가 15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결에는 언제든 변수가 존재하지. 그럼 이제 약속한 것을 지킬 차례인 것 같은데."
5호의 말에 15호의 얼굴빛 잿빛이 되며 굳어졌지만 담담하게 말했다.
"약속한 건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마. 애들아, 미안하다. 내가 너희를 지켜주지 못해서.. 모든 훈련생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자."
15호의 말에 싸움에 참가하지 않은 자들까지 포함하여 그의 무리 전체가 나와 무릎을 꿇고 그곳에 모인 모든 훈련생들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동안 너희들에게 함부로 대했던 모든 행동에 대해 사과할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절대 없을 거야. 정말 미안해."
처음에는 훈련생들 대부분이 그들을 쉽게 용서해 줄 생각이 없었으나, 진정성 있게 반복하여 사과하자 마음이 열린 듯 그들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훈련생들도 생겼다.
5호는 그 정도 사과면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지 15호를 일으키면서 말했다.
"앞으로 또다시 그런 행동을 한다면 훈련생들 전부가 너희를 절대 용서 안 할 거다. 이제 그만 일어나."
그 때, 연합의 소속되어 있는 훈련생이 나서며 말했다.
"그래, 사과는 했으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만 옥패는 다시 내놓아야지. 언제까지 너희가 다 소유하고 있을 건데."
그의 말에 15호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미 우리 손을 떠났어. 옥패의 행방은 5호 무리에게 물어봐."
그의 말에 모든 훈련생의 시선이 우리 무리로 향했다.
'역시 15호 녀석 우리에게 시선을 돌리려고 했구나.'
5호가 훈련생들을 둘러보더니 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무래도 지금 없다고 부정한다고 해도 안 믿을 거 같지?]
[아마도. 어제 우리가 15호 무리를 제압했었으니, 이미 가져왔다고 생각하는 훈련생들이 더 많을 거야.]
[그럼 어떻게 할까?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가 소유하겠다고 하면 우리를 적대시하는 애들도 생겨날 텐데.]
[아직 기간이 일 년이나 남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건 큰 의미가 없으니 광장에 다시 걸어놓자. 그리고 최종 선발전 날로부터 오일 전쯤 무공 대결로 옥패의 소유를 정하자고 하는 게 어떨까? 무공 대결은 우리가 훨씬 유리하니까.]
[그래. 그게 가장 좋은 방법 같다. 지금 가지고 있어 봐야 지키느라 수련에만 방해가 될 뿐이니. 이번에 우리의 능력은 모두에게 보여줬으니 그거로 충분해.]
나와 전음으로 대화를 마친 5호는 광장에 모여 있는 훈련생들에게 말을 했다.
"맞아. 옥패는 우리가 가지고 있어. 하지만 우리는 옥패를 광장에 다시 걸어 놓을 거야."
5호의 말에 우리 무리의 동료들은 옥패를 구경한 적도 없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다른 훈련생들은 옥패를 광장에 걸어놓는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15호가 도저히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서 가져간 옥패를 광장에 다시 걸어 놓겠다고?"
"그래. 최종 선발전까지는 아직 일 년이 남아있고, 우리는 일 년 후 공정하게 무공 대결을 해서 이긴 무리가 옥패를 차지하는 걸 제안하려 해."
5호의 제안에 생각지 못한 기회가 생겼기에 모든 훈련생들이 반색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내 생각대로 반응하는군. 일 년이란 시간을 벌었으니 그사이 무공을 증진 시키면 충분히 다시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폭포에 숨겨 놓았던 옥패를 가져와 광장에 다시 걸어놓고, 최종 선발전 날로부터 5일 전에 무공 대결로 옥패의 소유를 정하기로 하고 모두 자신들의 동굴로 돌아갔다.
15호는 자신의 동굴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멈추고는 나를 부른 다음 물었다.
"18호, 이번에 옥패를 뺏어간 게 너였냐?"
'그 날 들킨 건가? 그럼 왜 그때 날 그냥 내버려 둔 거지?'
"왜 나라고 생각하지?"
"내가 이틀 전에 동굴에서 검진 수련 중에 무언가를 본 것 같은데, 지금 널 마주하고 보니 왠지 그게 너였던 것 같아서."
'그날 나를 확실히 본 건 아니었군.'
"네가 확실히 본 게 아니라면 내가 너에게 그걸 확인해줘야 할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
"그거면 충분히 대답이 되었다. 그럼 전에 옥패 도난 사건도 네가 했던 일이냐?"
'이미 나라고 확신하고 있네. 그냥 있으면 옥패 도난 사건까지 내가 한 게 되겠는걸.'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하면 네가 믿으려나? 우리 무리의 동료들 역시 아니고."
"넌 누구의 소행인지 안다는 말투군. 누구지?"
"설사 내가 알고 있어도 너에게는 알려줄 생각이 없다는 건 내 말투에서 못 읽었나 보네."
15호는 얼굴이 살짝 굳힌 채로 더이상 나에게 말을 하지 않고 돌아갔다.
우리의 동굴로 돌아간 나를 보자마자 동료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먼저 1호가 나에게 물었다.
"5호 말로는 네가 15호의 무리에 잠입해서 옥패를 가져오고 검진 수련 중인 정보를 빼 왔다던데. 사실이야?"
내가 5호를 쳐다보니 얼굴에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어, 그렇게 됐어."
"그런데 옥패는 어디에 두었던 거야? 그리고 왜 우리에게 말 안 했어?"
"혹시 15호 무리가 우리를 의심하고 우리의 동굴로 찾아올까봐 옥패는 다른 곳에 보관해 두었어. 그리고 너희에게 미리 말 못 한 건, 정보를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질 거 같아서."
나의 말에 동료들 중 몇몇은 서운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지만, 대부분은 4호의 일이 있었기에 이해한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네 덕분에 우리가 15호 무리를 제압할 수 있었어. 고생했어."
1호의 말에 모두 수긍하며 나에게 고생했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나에게 동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민망해서인지 멋쩍은 웃음이 자꾸 나왔다.
'5호 녀석. 일은 자기가 주도적으로 벌여놓고 내가 이런 상황을 싫어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나에게 다 떠넘기다니. 당했다. 믿을 놈이 없네.'
다음날부터 비사굴은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가 되어 전체적으로 훈련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훈련생들이 우리 무리를 보는 시선 또한 15호 무리를 두려움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뛰어난 실력에 대한 존중과 함께 호감이 담겨 있었다.
우리의 무리를 비롯한 모든 훈련생들이 일 년 동안 별다른 분쟁없이 무공 수련에만 매진하였더니 괄목할 성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옥패를 소유권을 정하기로 약속한 그 날이 왔다.
일 년 동안 이날만을 위해 칼을 갈았던 훈련생들이 비장한 눈빛으로 광장에 모여들었다.
훈련생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은 게 그들이 일 년 동안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일년 전 15호 무리와 우리 무리와의 정면 승부 때 심판을 맡았던 2호가 이번에도 나서서 대결을 진행했다.
"일 년 전 모두가 정한대로 각 무리당 5명씩 나와서 대결을 펼치고 최종까지 남아있는 무리가 다섯 개의 옥패를 모두 차지할 거야."
"빨리 시작하자"
사십오 명의 훈련생들은 각기 6개의 무리에 나누어 속해있었기 때문에, 각 무리의 대표가 나와서 숫자를 뽑아 대진 순서를 정했다.
우리의 첫 번째 상대는 우리와 같은 연합에 속해있던 22호의 무리였다.
"너희와의 대결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첫번째 대결에서 만나게 되었네."
22호의 말에 5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도 너희와 대결은 원치 않았는데 어쩔 수 없네. 서로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하자."
우리 무리는 출전한 선수는 1호, 5호, 7호, 27호, 나였다.
6호와 11호도 출전한 선수들 못지않게 빼어난 무공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러 명이 연계하는 공격보다는 개개인으로 싸우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그에 비해 27호는 동료들과 연계 공격에 더 뛰어난 능력을 보였기에 그를 출전시켰다.
22호 무리는 우리들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긴장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두 무리의 대결이 시작되고 22호 무리가 선공을 취했다.
일 년 전 15호의 무리와 우리 무리와의 대결을 보고 느낀 게 있었던지 그들 역시 일 년 사이 검진을 익히고 출전했다.
그들은 화산파의 매화검진을 익혀서 자연스레 매화검진 대 파천검진의 대결이 되었다.
매화검진은 정파에서 검으로 유명한 무당, 화산, 아미 삼대 검문 중 하나인 화산파가 자랑하는 매화검법에 맞춰 검진을 펼치는 것으로, 매화검법을 대성한 자들이 검진을 펼치면 매화꽃이 휘날리는 환상과 매화향에 취해 정신이 혼미하여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검진이었다.
다만 22호 무리의 훈련생들이 일 년 동안 매화검법만 익히며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기에 제대로 된 위력은 끌어낼 수 없었지만 전보다 실력이 훨씬 향상된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의 매화검진을 보면서도 우리들은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그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일 년 동안 파천검법과 파천검진에 대한 성취가 스스로가 생각해도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우리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넘쳤다.
매화검진은 매화검법의 특징이 담겨져 있기에 화려하고 변화가 커서 상대가 검진의 움직임에 현혹되기 쉽지만, 파천검진은 오히려 강맹한 힘으로 변화를 눌러버리기에 상성상 매화검진보다 파천검진이 유리했다.
비슷한 실력이라도 파천검진이 유리했을 판에 우리 무리가 개개인의 능력과 파천검법에 대한 성취가 높았기에 그리 오래되지 않아 22호 무리가 패배를 선언했다.
"우리가 졌어. 일 년 동안 우리도 전보다 꽤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너희는 그때보다 훨씬 많이 발전했구나. 인정해. 너희라면 옥패를 충분히 소유할 만해."
"고마워. 너희 매화검진도 훌륭했어. 상성상 우리가 조금 유리했을 뿐. 일년동안 무공 수련을 위해 노력한 게 다 보였어. 고생했어."
이렇게 두 무리 간의 대결은 훈훈하게 마무리되고 다른 무리의 대결을 지켜보기 위해 22호 무리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우리가 다른 무리의 대결을 보려고 발길을 옮기는데 한 곳에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대결을 마치고 다른 무리를 보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것이 보였다.
'이쪽도 벌써 끝난 거야? 15호의 무리인가?'
그 무리는 예상대로 15호 무리였다.
15호가 우리를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너희도 일찍 끝났네. 어차피 저쪽에서 누가 이기든 우리가 마지막에 대결하게 된다는 건 알고 있지?"
5호는 15호의 말에 별반 흥미가 없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어. 너희도 마찬가지고."
"저번에 이겼다고 대단한 자신감이군. 일 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이날을 기다렸는지 모를 거다."
"그래. 그때보다 너희 실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겨룰 때 확인해보지."
15호의 무리와 우리는 42호 무리와 다른 무리가 대결을 하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대결이 꽤 진행되어 있었다.
< 옥패 쟁탈전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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