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전 실패 >
1호가 서찰을 읽고는 부들부들 손을 떨며 말했다.
"그럼 지금 이걸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누구야?"
"나와 5호, 그리고 이 서찰을 가져다준 11호. 이렇게 세 명에 방금 너희 두 사람도 알게 된 거야."
나의 말에 7호가 어두워진 낯빛으로 말했다.
"그럼 저 동굴에 있는 나머지는 4호 정체를 모르고 있다는 거네."
"그렇지. 오늘 지나면 말해줘야겠지."
"왜? 지금 바로 말해주지 않고?"
7호의 물음에 5호가 나서며 말했다.
"오늘 15호의 파벌을 치는데 그것까지 마무리하고 4호 문제를 처리할 때 말하는 게 나을 거 같아."
1호가 갑자기 뭔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5호에게 물었다.
"네가 이틀 동안 작전이 변경되었다고 한 것도 4호 때문이었어?"
"맞아. 4호를 이용해서 15호에게 거짓 정보가 들어가도록 했어."
1호는 화가 많이 난 듯 얼굴이 붉어지며 말했다.
"아주 나 몰래 너희들끼리 신나게 계략을 꾸몄구나."
"그건 미안하게 됐지만.. 우리 무리를 위해 어쩔 수 없었어."
1호가 여전히 냉랭한 목소리로 5호에게 말했다.
"그랬겠지. 그래서 4호는 어떻게 할 거야?"
5호가 1호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15호의 파벌을 처리한 다음 바로 4호도 내보내야지."
5호의 대답에 7호가 발끈하며 말했다.
"1년간 우리를 속이고 계속 첩자질을 했는데 그냥 내보낸다고?"
5호가 살짝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넌 4호를 어떻게 했으면 하는데?"
"그동안 우리를 속이고 나쁜 짓을 한 대가는 치르게 해야지. 4호가 여자라 너희들이 직접 하기 힘들면 정신 좀 차리도록 내가 손을 쓸게."
7호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하자 1호의 표정도 더욱 굳어졌다.
"일단 그건 오늘 작전을 마무리하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
급속히 얼어붙은 분위기에 5호의 중재안을 꺼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일단락 마무리했다.
대화를 마친 나와 5호는 동굴로 돌아갔지만 1호와 7호는 4호 앞에서 표정 관리를 할 수 없다며 작전 때까지 11호의 동굴에 머물기로 하였다.
자시가 되어 우리 다섯 명은 동굴 앞에 모여 은밀히 연합원들이 모이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그 장소에는 우리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총 열일곱 명이 모이기로 했지? 아직 아무도 안 왔네."
"이제 막 자시가 됐으니까 곧 오겠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 명이 나타났다.
"우리가 조금 늦었어. 5호가 제일 먼저 와 있었네."
"우리도 조금 전에 왔어."
두 명이 온 뒤로 연합에 속한 무리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가 처음 도착한 때로부터 반시진(1시간) 가량 지났을 무렵, 그 장소에는 열세 명이 모여있었다.
"네 명이 아직 안 왔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5호의 말에 연합원 중 한 명인 22호가 말했다.
"지금 33호랑 55호의 파벌이 안 보이는데.. 33호와는 내가 친하니까 데리러 갔다 올게."
22호의 말에 42호도 나서며 말했다.
"그럼 55호는 나와 친한 편이니까 내가 다녀올게."
"그럼 부탁할게."
두 사람이 두 파벌의 동굴로 사람들을 데리러 갔고, 우리는 긴장감을 가지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군. 전생에 없었던 일이라 예측이 불가능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15호가 손을 쓴 걸까?'
갑자기 5호의 전음이 내게로 들렸다.
[18호, 아무래도 네가 우려하던 문제가 생긴 것 같지?]
[아마도.. 반시진 동안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건 뭔가 문제가 생긴 거겠지.]
[15호 무리의 녀석들이 나선 걸까?]
[그렇다고 봐야겠지. 다만 그들이 어디까지 손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후 두 사람이 안색이 굳어진 채로 돌아왔다.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아무도 없어."
"맞아. 두 동굴이 다 비어있어. 전부 사라져버렸어."
두 사람의 말에 그곳에 모인 모두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들의 말을 들은 5호가 나서며 말했다.
"나머지 인원들도 없다는 거지?"
그의 물음에 33호가 대답하였다.
"응. 짐까지 사라진 것을 보면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긴 거 같아."
"그럼 그 두 파벌은 연합을 배신한 걸까?"
나의 말에 5호가 대답을 했다.
"그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15호가 우리보다 먼저 손을 쓴 것 같다. 그래서 지금 15호 파벌을 공격한다고 하더라도 성공할 것 같진 않아."
"그럼 오늘 작전은 취소야?"
"응. 오늘 작전은 실패라고 봐야 할 거 같아. 취소하고 처음부터 다시 계획 세워야 해."
5호의 말에 55호가 물었다.
"오늘 작전을 15호가 알고 있던 걸까?"
"지금으로 봐서는 오늘 작전은 15호에게 유출되었다고 봐야겠지."
"그 두 무리에서 정보가 새어 나간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지금 여기 모인 연합의 무리 안에도 첩자가 있을 수 있지."
5호의 말에 연합원들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뭐? 우리의 무리들 사이에 첩자가 있을 수 있다고?"
"그래. 우리도 한 명을 잡았거든."
5호가 담담히 이야기하는데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뭐? 너의 무리에도 첩자가 있었어?"
"우리는 그 첩자의 정체를 미리 알고 있어서 통제가 가능할거라 생각했는데, 그자 말고도 다른 무리에 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네."
'우리가 15호를 너무 얕잡아 봤다. 전생에 4호가 첩자인 게 드러났으니 첩자는 그녀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드러나지 않았을 뿐. 다른 무리에 더 많은 첩자를 심었을 수 있는데,전생의 기억만 믿고 방심해버렸다. 이건 내 실책이야. 젠장.. 15호에게 또 한 방 먹었네.'
전생에서도 15호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림자 무사가 된 후에도 성향이 맞지 않아 15호와는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기에 이렇게 치밀하고 대담한 녀석인지 몰랐다.
33호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5호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이 상태로는 15호의 무리를 응징하는 건 힘들 거 같아. 지금은 내부의 적부터 찾아내야 해."
5호의 말에 모인 인원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리에 숨어 있는 첩자들을 어떻게 찾아내지?"
55호의 물음에 5호가 대답했다.
"방법을 찾아볼게. 찾으면 알려 줄테니 일단 오늘은 돌아가도록 하자."
5호의 말에 15호의 파벌을 응징하려 모였던 연합원들이 뿔뿔이 흩어져 자신들의 동굴로 돌아갔다.
모두 돌아가고 그곳에는 우리 다섯 명만 남았다.
7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꺼냈다.
"큰일이네. 15호의 파벌 문제가 해결이 안 되었으니.. 그보다 이제 4호는 어떻게 하지?"
"계획이 빗겨나가기는 했지만, 어차피 4호는 우리 손에 있으니 그녀를 통해 15호의 생각을 읽어봐야지."
5호의 말에 내가 물었다.
"그녀가 우리의 의도대로 순순히 말할까?"
"난 가능하면 대화로 해결하고 싶지만 정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이 7호의 도움을 받아야겠지."
7호의 도움이란 게 무슨 말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자, 우리도 돌아가자."
5호의 말에 우리도 모두 동굴로 돌아갔다.
[11호야, 15호의 파벌 움직임 좀 확인해 줄래?]
나의 전음에 11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사라졌다.
동굴로 돌아온 우리는 5호의 전음에 맞춰 7호가 4호를 제압하려 움직이고 나는 그녀가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입구 쪽을 봉쇄했다.
7호의 무공 실력이 4호보다 한 수 위 인데다가 기습적인 공격이라 4호는 제대로 된 반격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손쉽게 제압당했다.
7호가 4호의 혈도를 점혈하자 그녀가 발버둥을 멈추었다.
4호는 당황스러운 눈빛과 함께 7호를 노려보며 말했다.
"7호, 이게 무슨 짓이야? 당장 점혈을 풀지 못해?"
"네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었나 보네."
7호가 오른손을 들어 그녀의 한쪽 뺨을 갈겼다.
짝!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한쪽으로 돌아갔다.
동굴 안에 있던 20호와 50호, 70호, 그리고 27호는 영문 모를 사태에 크게 놀란 눈치였다.
뺨에 7호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겨진 4호가 아픔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너 미쳤어?"
7호가 돌아간 4호의 얼굴을 돌려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한 대 더 맞자. 내가 네 면상을 보니 분이 차올라서 안 되겠다."
짜악!
다시 한번 요란한 마찰음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아까와 반대쪽으로 돌아갔다.
양 뺨에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4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흑흑. 애들아 나 좀 도와줘. 7호가 미친 거 같아."
"여전히 억울하단 표정이네. 아직도 네가 뭘 잘못한 건지 모르겠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돌아가는 상황만 지켜보던 20호와 50호가 나서며 말했다.
"7호야, 무슨 일이야? 일단 말로 해야지. 다짜고짜 손찌검을 하면 어떻게 해."
"그래, 무슨 사정인지도 우리에게 말해주고. 일단 때리는 건 멈추는 게 좋을 거 같아."
5호가 나서서 중재를 하며 말했다.
"7호야, 일단은 애들에게 4호의 정체부터 말해주고 그 후에 다시 심문하도록 하자."
5호의 말에 7호도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4호는 15호가 우리 무리에 심어놓은 첩자였어. 그동안 우리의 정보를 계속해서 15호에게 전달해왔어."
5호의 말에 4호의 정체를 새롭게 알게 된 동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 그게 정말이야? 믿을 수가 없네. 일 년을 함께 해왔는데 첩자라니."
"4호야, 말해봐. 너 첩자였어? 아니지?"
4호가 자신은 억울하다는 눈빛으로 동료들에게 말했다.
"난 아니야. 너희들이 어디서 무슨 헛소리를 듣고 왔는지 모르지만 난 절대 아니야."
5호가 4호에게 쪽지를 내밀며 말했다.
"우리가 증거도 없이 널 첩자로 몰겠니. 잘 봐. 이건 네가 그동안 15호에게 정보를 갖다 준 쪽지야."
"그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지! 누군가 날 모함하는 거야!"
4호가 끝까지 부인하자 5호가 말했다.
"후.. 증거가 있는데도 부인한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7호야, 미안하지만 네가 4호가 실토하도록 힘 좀 써 줘야겠다."
"알겠어. 좀 시끄러울 수 있으니 11호 동굴로 가서 처리할게."
7호가 그렇게 말한 후 4호를 어깨에 메고 11호의 동굴로 갔다.
1호는 아직도 4호가 걱정이 되는지 7호를 따라가려 했지만 내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놔 줘. 가서 조용히 보기만 할 거니까."
"네가 가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7호에게는 부담이 될거야. 7호도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그녀에게 맡겨보자."
나의 말에 1호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 작전 실패 > 끝
ⓒ 청운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