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16화 (16/114)

< 첫 제자 >

11호는 당장이라도 검을 들고 날 공격할 것 같은 기세로 말했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날 속였군."

'조금 더 말장난 좀 쳤다가는 목숨 걸고 싸우게 생겼네.'

"아니, 그런 방법도 있지만 지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다른 방법이 또 있지. 끝까지 좀 들어봐."

"다른 방법? 그럼 빨리 말해줘."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해 봐서 11호의 간절함을 누구보다 알기에 더는 뜸 들이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살막의 무공을 계속 익히다 보면 부작용으로 인해 살심이 강해지는데 도가 계통의 무공을 익히면 그걸 제어하는데 도움이 될 거야."

11호는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도가 계통의 무공을 익히라고? 살막의 무공은 사파의 무공이고 도가의 무공과는 상극이라, 두 가지를 같이 익히면 충돌이 생겨서 기혈이 역류하고 주화입마에 빠질 텐데."

"나에게 그것 또한 해결할 방법이 있지."

'양의심법을 익히면 정파와 사파 상극의 무공도 함께 익힐 수 있고, 도가 계통에서도 최상급의 무공이라 양의심법 자체로 살막 무공의 부작용을 억제할 수 있지. 하지만 양의심법을 바로 배울 수는 없으니 소청심법부터 가르쳐야겠군. 소청심법은 무당파의 무공이긴 하지만 기본심법과 다름없으니, 살막의 내공심법과 충돌이 그리 크진 않겠지?'

11호가 궁금한지 나를 재촉하며 말했다.

"해결방법이 뭐지?"

"내가 도가 계통의 심법을 가르쳐줄게. 양의심법이라고 들어봤지?"

11호가 양의심법에 대해 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책장에서 읽어봤어. 도가 계통의 무공 중에 최상급 내공심법이라고 하던데.. 내가 익힐 수 있을까?"

"지금은 불가능하지. 하지만 먼저 소청심법을 익히고 배우면 가능할 거야."

11호가 약간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난 이미 사파의 내공심법을 익혔는데 소청심법을 익혀도 괜찮을까?"

"내 생각에는 소청심법 자체가 그렇게 강한 심법은 아니라서 네가 익힌 심법과 크게 충돌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만약 그런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옆에서 제어해주면 괜찮을 거야."

나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이었다.

"네가 나의 내공을 제어해주겠다고?"

"난 이미 양의심법을 익히고 있어서 네 내공도 충분히 제어해 줄 수 있어."

나의 말을 들은 11호가 날 신뢰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믿음이 생기는군. 한번 해보자. 그럼 소청심법부터 가르쳐줘."

'전생에도 제자를 받아 본 적이 없는데.. 11호를 가르치려니 낯설군.'

"내가 남을 가르쳐 본 적은 없어서 좀 서툴 거야."

"그래, 좀 서툴더라도 이해할 테니 얼른 가르쳐 줘."

내가 먼저 가부좌 자세로 앉은 상태에서 소청심법의 구결을 읊조렸다.

11호도 바로 나와 같은 자세로 앉은 다음 내가 읊조린 구결을 따라 되뇌었다.

한참을 되뇌던 11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바라보니 깊은 명상에 들어간 듯했다.

'11호가 생각보다 도가 계통의 무공에 상성이 잘 맞나보네. 첫 수련에서 명상에 들어가다니.. 11호는 처음부터 사파보다 도가 무공을 익혔으면 더 나았을 수도.'

11호가 명상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기에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도 조용히 양의심법을 운기하며 명상에 들어갔다.

우웩!

'이게 무슨 소리지?'

무언가를 게워내는 소리에 명상에서 깨어났다.

11호가 검은 피를 한 움큼 게워내고 입가에 묻은 피를 닦고 있었다.

"11호 괜찮아?"

"나도 모르겠어. 잠시 명상에 빠졌다가 깨어났더니 목으로 피가 넘어와 게워냈어."

나는 급히 그의 손목을 잡고 혈맥을 짚어보았다.

'혈맥은 전혀 이상이 없고 오히려 더 좋아진 걸 보면..'

"혈맥을 짚어보니 전혀 이상이 없어. 오히려 몸 상태가 좋아진 것 같은데? 혈맥에 쌓여있던 독소와 어혈이 빠져나온 걸 거야."

11호 몸을 움직여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몸이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어."

"소청심법으로 수련만으로 깨달음을 얻다니 대단한데.."

11호는 나에게 고마워하는 눈빛이었다.

"도가 계통의 무공은 확실히 신묘한 무언가가 있는 느낌이야. 나랑도 잘 맞는 거 같고 나에게 가르침을 줘서 고맙다."

"흠.. 고마우면 말로만 하지 말고."

나의 말에 11호가 당황하며 말을 했다.

"내가 가진 게 없는데.."

"나중에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너에게 부탁하면 되지."

나의 말을 들은 후 11호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너에 진 빚 네가 원할 때 갚겠다."

'11호 같이 뛰어난 무공실력을 지닌 녀석들은 언젠가 내가 요긴하게 쓸 수 있는 패가 될 거야.'

"그래. 그 약속 믿을게."

11호는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했다.

"남아일언중천금.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그래.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그만 쉬어. 내일 다시 올게."

"고맙다. 너도 가서 쉬어라."

11호의 동굴을 나와 휴식처로 돌아간 나는 그의 깨달음에 자극을 받아 양의심법을 운기하며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다음날도 11호의 심법 수련을 도와주기 위해 그의 동굴에 방문했다.

"18호, 왔어?"

'11호 말투가 원래 이렇게 상냥했었나?'

하루 사이에 11호가 나를 대하는 말투가 달라져 버렸다.

"그래. 넌 어제 수련 이후로 별다른 증상은 없었어?"

"응, 어제 소청심법을 수련한 뒤로 잠도 잘 오고 부작용도 조금 줄어든 느낌이야. 이대로 꾸준히 수련하면 부작용이 사라질 것 같아."

"그래, 그럼 오늘도 제대로 수련을 해볼까?"

첫날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처음이라서 11호 앞에서 자세 잡는 것부터 어색했는데 두 번째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생각지 않게 남을 가르치게 되었지만, 가르침을 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깨우치는 게 많이 있구나.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제자를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곧바로 나를 따라서 자세를 잡는 11호.

내가 읊조리는 구결을 한참 따라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명상에 빠져들었다.

'오늘도 벌써 명상에 빠지다니.. 11호는 정말 집중력이 좋구나. 모든 신경을 차단하고 무아경에 들어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엄청난 재능을 타고났어.'

11호가 첫날과는 달리 일찍 명상에서 깨어났다.

"오늘은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네?"

나의 말에 11호는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래? 난 한숨 자고 일어난 듯 개운한데."

'아직 열세 살 밖에 안 먹은 애인데 재능이 탐나네. 그냥 내 제자로 키울까?'

"넌 앞으로 사파무공보다는 도가 계통의 무공을 쭉 익히는 게 더 나을 거 같다."

나의 말에 11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도 그동안 몰랐었는데 이번에 너에게 소청심법을 배우면서 정파무공이 잘 맞는다는 걸 느꼈어."

우리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다가 동굴로 다가오는 기척을 느끼고 대화를 멈추고 동굴 입구를 바라보며 전음으로 말했다.

[11호, 누군가 오고 있는데?]

[이곳에 올 사람은 없는데.. 누구지?]

'누굴까? 11호의 동굴에 찾아올만한 사람이 없는데.'

잠시 후 익숙한 몸매와 낯익은 얼굴의 훈련생이 나타났다.

"6호? 네가 여기는 웬일이야?"

11호의 말에 6호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11호야, 불쑥 찾아와서 미안해. 18호가 여기 있다고 해서.."

"나를 찾아온 거야? 왜, 무슨 일 있어?"

나의 말에 6호가 살짝 모자라 보이는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헷. 아니 그게 아니고, 11호의 동굴에 18호가 어제도 오늘도 가길래.. 여기에 뭐가 있나 궁금해서.."

"너 설마.. 내가 11호랑 맛있는 거 너희 몰래 먹을까 봐 확인하러 온 거야?"

나의 말에 정곡을 찔린 듯 6호가 어색한 미소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음.. 맞아. 혹시 이곳에 다른 음식이 있나 궁금해서. 헤헤"

11호가 약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는 벽곡단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11호의 말에 6호가 시무룩해졌다.

'와, 알고는 있었지만 먹을 것에 이리도 집착하다니. 다루기는 이 녀석이 훨씬 쉬울 거 같은데.. 6호를 제자로 삼을까?'

"11호와 무공 수련을 하고 있었는데, 너도 같이할래?"

나의 말에 6호가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무공수련? 내게도 무공을 가르쳐 주는 거야?"

'의외네. 먹을 것 이외에도 관심을 보이는 게 있을 줄이야.'

"뭐, 네가 원한다면. 6호, 너 무공 수련에도 관심이 있구나?"

6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먹는 거 다음으로 무공 수련이 좋아."

'그래서 전생에도 무공은 강했구나. 좀 어리버리한 게 흠이긴 하지만 순박하니 말은 잘 듣겠지.'

"그래. 그럼 네가 내 첫 제자 할래? 그럼 내가 무공 이것저것 다 가르쳐줄게."

나의 말에 6호가 당황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자? 그럼 네가 너에게 스승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이미 절반은 넘어온 것 같은데.. 조금만 더 꼬셔볼까?'

"굳이 사부라고 안 해도 돼. 그냥 비공식으로 내 제자라는 걸 네가 인정하면 되니까. 그리고 내 제자가 되면 저번 뱀구이처럼 맛있는 거 많이 줄게."

6호는 뱀구이라는 말에 눈이 반짝이더니 마음의 결정을 한 듯 내게 말했다.

"그럼 18호, 너의 제자가 될게. 잘 부탁해. 싸부."

"그래. 나도 잘 부탁해. 나의 첫 제자."

그렇게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나의 첫 제자가 생겼다.

"6호, 넌 그동안 무슨 무공을 주로 익혔어?"

나의 말에 6호가 망설임 없이 자신의 무공에 대해 이야기했다.

"싸부, 난 주로 소림사의 무공을 배웠어."

'싸부라고는 말이 듣기에 나쁘지 않군.'

"정파 무림의 태산북두 소림사 무공을 익히고 있다니 대단한데."

6호가 다시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소림사 무공이 마음에 들어서. 헤헤"

'어리버리하지만 순박한 저 행동거지를 보면 스님을 해도 어울릴 거 같네.'

"소림사 무공에도 종류가 많잖아. 넌 그중에 어느 걸 익힌 거야?"

6호가 갑자기 웃옷을 벗어젖히며 자신의 단단하고 우람한 몸을 자랑하며 말했다.

'뭐, 뭐야. 갑자기 웃옷은 왜 벗고 난리야.'

"싸부, 난 나한기공과 나한권을 익혔어. 그랬더니 몸이 이렇게 좋아졌어."

나한기공은 소림사의 대표적인 심법으로 기로써 몸의 장기와 신체를 보호하는 기공이다.

그 무공을 대성하면 신체가 금강불괴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도검으로 맞아도 큰 부상은 입지 않을 정도로 몸이 단단해진다.

나한기공을 익히는 자가 외공까지 같이 수련하게 되면 점점 더 금강불괴의 신체에 가까워진다.

나한권은 소림의 기본 무공으로 입문하여 거쳐 가는 무공이지만 대성하면 소림이 자랑하는 백보신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대단한 무공이었다.

다만 중반부 이후로 극악의 난이도로 인해 대성하기가 어려운 무공이었다.

역대로 나한권을 대성한 자는 무공을 만든 나한선사를 제외하면 다섯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소림사에서는 처음에는 나한권을 익히다 중반부 이후에는 나한권을 변형시킨 나한18권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너에게 잘 맞는 무공을 고른 거 같다. 다만 나한권은 대성하기 정말 어렵다고 들었는데 계속 익혀도 괜찮겠어? 다른 무공 가르쳐줄까?"

6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 첫 제자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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