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재영입 >
1호가 4호 영입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생에도 1호가 4호를 마음에 들어 했었지. 그래서 당했지만.."
1호가 말한 4호는 전생에서 15호가 우리 무리에 심어놓은 첩자였다. 우리에게 접근해서 2년동안 정보를 빼내가고 결국 마지막에 옥패까지 탈취해 간 훈련생이었다.
'나는 전생에 4호에게 배신을 당했으니 첩자라는 걸 알지만 이 아이들은 모르니.. 나 혼자 4호를 무작정 반대할 수도 없는데 어떡하지?'
다행히 5호는 신중한 편이라 조금 더 생각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일단은 6호와 4호는 조금 더 지켜보고 몇 명 더 눈에 들어오는 친구들을 보고 천천히 접근하자."
1호가 다시 적극적으로 4호의 영입을 주장했다.
"그전에 다른 파벌에서 데려가면? 우리도 지금 시간적 여유가 있는 건 아니잖아."
이대로 가면 전생과 똑같이 4호가 우리 무리에 합류하여 우리 쪽의 정보를 빼내 갈 수 있기에 내가 나서서 5호의 편을 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5호 말대로 아직 저 두 명에 대해서도 확실히 모르니까 좀 더 알아보는 게 맞을 거 같은데."
다행히 7호도 내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나도 18호와 같은 생각이야."
1호가 약간 서운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우리의 의견을 따랐다.
"뭐.. 너희들이 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조금 더 지켜보고 결정하자."
일단은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앞으로도 1호는 계속 4호를 영입하려 노력할 테니 나는 그것을 막을 명분을 찾아야만 했다.
첫날에 파벌에 속하지 못했던 훈련생들도 홀로 생존은 쉽지 않기에 삼삼오오 뭉치기 시작했다.
삼 일이 지나자 먼저 한두 명이 모이는 것부터 시작하여 다른 무리와 합치면서 비사굴에는 작은 규모의 무리들이 꽤 많이 생겨났다.
열 명인 15호의 파벌을 제외하면 대부분 4명에서 5명 사이의 파벌이었다.
새로 파벌을 만든 훈련생들의 목적은 그림자 무사로 뽑히기 위한 5개의 옥패였기에 그것을 나눠 가질 인원 이상은 뽑질 않았다.
우리가 모여서 새로 생긴 파벌들을 이야기할 때 1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15호는 왜 파벌을 열 명이나 모집한 걸까?"
우리 파벌의 지략을 담당하는 5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 옥패는 다섯 개인데 나중에 어떻게 분배하려고 그런 걸까?"
"나처럼 옥패 대신에 다른 약속을 받았을 수도 있고.."
나의 말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듯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5호는 15호의 파벌이 자리 잡고 있는 광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이유가 뭐든간에 많은 인원으로 초기에 옥패를 소유하고 비사굴을 장악하는데 성공했으니 훌륭한 전략이라 할 수 있지. 난 이번에 15호를 다시 봤어. 그저 남들에게 주목받기 좋아하고 나대는 녀석이라 생각했는데.. 그 이상이야."
1호도 5호의 말에 격하게 공감하며 말했다.
"맞아. 15호가 약삭빠른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주도면밀한 놈인지는 몰랐지."
"아무튼 우리 훈련생 전부가 그 녀석에게 한 방 먹은 건 맞아. 앞으로 녀석에게 그걸 갚아줄 방법을 찾아야지."
5호의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을 보아하니 이미 복수의 밑그림은 어느 정도 그린 듯했다.
'5호가 어떻게 복수할지 궁금해지군.'
"이제 파벌도 대부분 형성되고 이제 우리도 영입할 훈련생을 선택해야 할 거 같은데?"
5호도 나의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야겠지. 너무 늦어지면 괜찮은 친구들은 다른 파벌로 모두 들어가 버릴 테니까.."
7호가 비사굴에서 한 명씩 홀로 있는 훈련생들을 보며 말했다.
"아직까지 홀로 있는 훈련생 중에 4호와 11호 두 사람 빼고는 나머지는 별로인 거 같아."
'일단 4호를 의심하도록 만들어보자.'
"대부분 이미 파벌에 들어가 버려서 남은 훈련생이 별로 없지? 근데 4호는 영입하려는 훈련생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왜 혼자 있는 거지?"
나의 말에 5호도 뭔가 미심쩍은 듯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대답을 하였다.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기는 한데 잘 모르겠어. 그런데 11호는 실력이 뛰어나도 영입은 불가능한 한 거 아냐?"
5호의 말에 1호도 격하게 공감했다.
"맞아. 무경원에 들어와서 단 한 번도 11호가 누군가와 가깝게 지내는 걸 본 적이 없어. 너희 중에 11호랑 이야기해 본 사람 있어?"
"......"
우리 중에 11호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 전생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11호와 친하게 지내던 훈련생은 아예 없었지. 숨겨진 그의 진정한 실력도 마지막에 알 수 있었으니까.'
"내가 한번 대화를 해 볼까?"
나의 말에 다들 놀란 듯 눈을 뜨며 날 쳐다봤다.
"너, 정말 괜찮겠어?"
7호가 날 걱정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설마.. 내가 말 걸었다고 날 죽이려 들기야 하겠어?"
"전에도 다른 훈련생이 11호에게 말을 걸어보려 다가갔지만 낯을 많이 가려서 바로 피해버렸다는 얘기도 있던데."
"잘 안 되더라도 일단은 부딪쳐 봐야지."
7호의 말을 들으니 11호가 쉬운 상대가 아닌 게 확실했다.
'그래도 전생에 보여준 실력이라면 11호는 결코 우리들의 아래가 아니다. 영입만 성공한다면 반드시 큰 도움이 될 거야.'
나는 11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11호는 나의 기척을 느끼고는 다른 곳으로 피하려 하였다.
나는 그와 대화를 하기 위해 급하게 11호를 불렀다.
"11호, 너와 대화를 좀 하고 싶은데."
11호는 나의 말에 관심이 없는지 대꾸도 없이 나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 버렸다.
[11호, 네 무공의 부작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싶지 않나?]
나의 전음에 놀란 듯 11호가 움직이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의 얼굴을 한번 확인하더니 그도 내게 전음으로 말했다.
[전음을 할 줄 알다니.. 초일류 고수였구나. 헌데 그 말은 내게 무슨 뜻으로 한 말이지?]
부작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란 말이 그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전생에 네가 나랑 같은 무공을 익히고 경지도 비슷한 수준이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 네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살막의 무공을 익히고 있고 그 무공의 부작용 때문에 계속 수련해도 되는지 고민 중이지 않나?]
[아니, 내가 살막의 무공을 익힌 것을 네가 어떻게 아는 거지?]
11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걸 보니 대외적으로 살막의 무공을 한 번도 펼친 적이 없는데 내가 그의 무공과 부작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게 몹시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도 그 무공을 익혔고 네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도 잘 알고 있지. 살막의 무공은 살수로서의 능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해 감정을 철저히 통제하는 무공이라, 수련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점점 냉정해지고 감정이 사라져서 사람과 어울리기 쉽지 않은 거겠지.]
같은 무공을 익혔다는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11호가 잠시 멈칫한 후에 다시 전음을 보냈다.
[..너도 나와 같은 무공을 익히고 있다고? 그런데 넌 어떻게 살막의 무공을 익히고도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거지?]
[난 살막의 무공을 4성까지만 익히고 다른 무공을 익혔어.]
'지금이 아니라 전생에 그랬지만 말이야.'
[4성에서 수련을 멈췄다고? 그런데 어떻게 살막 무공의 부작용으로 벗어나는 방법을 안다는 거야?]
[살막의 무공을 익히면서 동반되는 부작용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고 있어.]
내 대답에 11호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정말.. 알고 있다는 말이야?]
[그래. 방법은 확실히 알고 있어. 다만..]
11호는 내가 머뭇거리자 답답한지 먼저 전음을 보내왔다.
[그럼 내게 그 방법을 알려줘.]
[그냥은 알려줄 수 없고 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면 알려줄게.]
[무슨.. 부탁인데?]
나는 11호에게 전음으로 내 부탁을 말하고 뒤돌아 무리로 돌아왔다.
7호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무 낙담하지 마. 다들 실패를 예상했던 일이니까."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내 말에 7호가 너무 애쓰지 말하는 투로 말하였다.
"11호가 너랑 마주치려고도 안 하는데 다시 시도해 보려고?"
"그와 대화는 끝냈어. 다만 선택은 그에게 맡겨야지."
내 말에 7호가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자 5호가 나서며 말했다.
"11호와는 전음으로 대화를 했나 보네."
"맞아. 11호가 부끄러움이 많은지 직접 만나주지는 않더라고."
나의 말에 5호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전음을 하더라도 11호가 상대를 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을 텐데, 상당히 흥미로운 제안을 했나 보네."
'5호, 이 녀석은 확실히 머리가 비상하고 예리해. 적이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야. 같은 편으로는 이만큼 든든한 자가 없는데 적이라면 가장 위험한 녀석이다.'
"일단 우리와 함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봤으니 조만간 답을 주겠지."
나의 말에 5호는 기대감이 표정에 드러났다.
"11호가 우리 쪽에 합류한다면 정말 큰 전력이 될 수 있을 텐데.."
5호의 말을 듣고 있던 1호가 나서며 말했다.
"11호는 조금 기다려봐야 하니까 이제 4호도 접촉해 봐야지."
'전생에도 1호가 4호에게 관심이 많았었지. 동료로서도 이성으로서도. 그래서 마지막 4호의 배신에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이번에도 4호에게 너무 빠져들어 버리면 어쩌나 걱정이네. 결국엔 또 충격과 상처만 남을 텐데..'
하지만 아직 4호의 영입을 막을만한 명분이나 증거가 없었기에 1호를 말릴 수도 없었다.
5호가 그의 마음을 읽은 듯 1호에게 말했다.
"그럼 네가 4호를 만나서 합류할 생각이 있는지 물어봐."
1호는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내가? 그럴까?"
1호가 4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려는데,
"으악! 이건 뭐야."
"다들 발밑을 조심해."
비사굴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5호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대장이 말한 특식이 나타난 거 같군."
나의 말에 7호와 5호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나를 쳐다보았다.
동굴 앞쪽에 자리 잡은 훈련생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뱀 떼가 나타났으니 다들 조심해!"
그 소리를 들은 7호가 말했다.
"뭐? 뱀 떼라고?"
"7호, 뱀을 무서워하는 거야?"
"넌 뱀이 안 무서워?"
7호 말에 내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장이 말한 특식이라니까. 맛있게 먹어줘야지. 큭큭“
나는 전생에 같은 일을 한번 경험을 했기에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전생에는 나도 발밑에서 꿈틀거리는 뱀 떼에 얼마나 놀랐던지. 대장이 말한 특식이 뱀이란 걸 알았을 때도 정말 당혹스러웠지.'
하지만 이미 한번 겪어본 일인지라 새삼 놀라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인재영입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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