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11화 (11/114)

< 비사굴 >

대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훈련생들에게 말했다.

"내일부터는 그림자 무사 선발전이다."

"네?"

"벌써요?"

대장의 말에 다들 놀랐는지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그래, 내일부터라는 말은 내일이 시작일이라는 것이다. 기간은 이년이다."

"네? 이 년 동안 선발전을 치른다고요?"

생각지도 못한 대장의 발언에 훈련생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전혀 놀랍지 않았다.

7호가 내 얼굴을 보더니 말을 하였다.

"18호, 넌 이번에도 전혀 놀라지 않네. 담이 큰 거니? 아니면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거니?"

"음.. 난 조금 예상했던 일이라서. 넌 많이 놀랐어?"

"이걸 예상했다고? 난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내일부터 선발전을 치른다고 하고 그것도 이 년 동안이나.."

"너무 걱정하지 마. 넌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7호의 걱정하는 표정을 보고 안심하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해주었다.

'전생에서도 넌 그림자 무사가 되었으니까 이번에도 무난하게 될 거야.'

7호가 갑자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수줍게 말했다.

"고마워. 너도 잘 될 거야."

'아니, 난 안 될 거야. 그림자 무사는 절대로..'

"그래."

대장의 말이 이어졌다.

"그림자 무사를 선발전을 통해 다섯 명을 선발하겠다. 이 년 동안 너희는 무경원의 비사굴에서 생활할 것이다."

"비사굴이라고 또 동굴에서 생활하는 겁니까?"

"그런데 비사굴이 어디지?"

나와 대장을 제외한 나머지는 비사굴에 대해 아는 자가 없었다.

비사굴은 무경원 외곽에 위치한 굴이지만 황궁 바깥쪽과도 연결되어있었고, 백 명이 나뉘어 생활해도 전혀 불편하지 않을 만큼 매우 넓었다.

대장이 훈련생들을 둘러보더니 그들의 의중을 파악하고 말했다.

"비사굴이 어딘지 모르니 걱정되나 보군. 비사굴은 무경원 끝쪽에 있어서 너희들은 가 본 적이 없을 것이다. 비사굴은 동굴이기는 하지만 내부가 굉장히 넓고 반대편으로 동굴 바깥과 연결되어있다. 하여 바깥으로 나가면 폭포도 있고 과실도 있으니 생활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5호가 손을 들어 대장에게 질문했다.

"하면 삼 년 간 동굴 수련이 이번 선발전을 대비한 것입니까?"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실전을 대비한 훈련이었고 내일부터가 진짜 실전이다."

대장의 실전이란 말에 훈련생들의 눈빛이 빛나며 긴장감이 감돌았다.

다음날 필수 생존 도구를 챙겨 나를 포함한 훈련생 사십오 명은 대장을 따라서 비사굴로 향했다.

비사굴에 도착하자 훈련생들이 비사굴의 커다란 입구에 모두 놀랐다.

'다들 그럴 만하지. 무경원에 이렇게 큰 동굴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테니까. 나도 처음 비사굴을 봤을 땐 정말 깜짝 놀랐었는데.'

비사굴 안에 들어가자 커다란 공터가 나왔고 그 안에 수많은 작은 굴들이 있었다.

"이곳이 너희들이 생활할 비사굴이다. 이 광장에서 생활해도 되고 작은 굴들 중 아무 곳이나 들어가서 자도 된다."

다시 대장이 훈련생들을 데리고 비사굴의 또 다른 입구로 갔다.

"이곳은 바깥과 연결되어있는 곳이다. 저기 보이는 폭포와 웅덩이에서 씻거나 먹을 물을 받으면 된다."

훈련생들이 폭포와 물이 가득 차 있는 웅덩이를 반색하며 말하였다.

"와! 생각보다 할 만하겠는데? 저번 동굴에서의 삼 년보다는 훨씬 편할 것 같아."

"이따 수영부터 하자."

5호가 대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년 동안 먹는 건 또 벽곡단을 먹고 살아야 하나요?"

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그래. 주로 벽곡단을 먹어야겠지만 그것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릴 수가 있으니 특별 보양식도 준비해 두었다."

덩치가 크고 먹성 좋은 훈련생 6호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특별 보양식이요? 그게 뭔가요?"

"그건 곧 알게 될 테니 너무 궁금해하진 말거라."

5호가 다시 대장에게 물었다.

"그림자 무사 다섯 명은 어떻게 선발하는 겁니까?"

대장이 광장의 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곧 광장의 벽에 다섯 개의 옥패를 걸릴 것이다. 그것을 2년 후 선발전 날에 소유하고 있는 다섯 명이 그림자 무사로 선발될 것이다."

"옥패를 다른 사람이 소유하면 뺏어도 된다는 거죠?"

"그래. 다만 옥패를 뺏는 과정에서 다른 훈련생을 죽이면 실격으로 바로 탈락이다."

대장의 말에 5호가 다시 물었다.

"그건 누가 감시하나요?"

"너희들의 전 기수였던 그림자 무사 다섯 명이 이 년 동안 밤낮없이 너희들을 감시할 것이다."

대장의 말에 모든 훈련생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이지는 않는데.. 설마 선배님들이 지금 이곳에 와 있는 건가요?"

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들은 이미 이곳에 와 있다. 그림자 무사로써 훈련을 마쳤기에 은신해 있으면 너희들은 그들을 볼 수가 없지."

대장의 말의 들은 훈련생들이 그제야 이미 선발전이 시작했다는 걸 실감하는 것 같았다.

대장이 가슴 속에서 다섯 개의 옥패를 꺼내더니 광장의 벽을 향해 가볍게 뿌렸다.

대장 손을 빠져나간 옥패가 처음에는 모두의 눈에 보일 듯 느리게 움직이다가 조금씩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광장의 벽에 박혀 있었다.

"자, 이 년 후 저 옥패 5개를 차지한 다섯 사람을 그림자 무사로 선발할 것이니 다들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란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대장의 시작이란 말과 함께 훈련생 사십오 명 중 나와 열 명 정도를 제외한 삼십오 명이 광장의 벽을 향해 뛰어갔다.

움직이지 않고 남아있던 열 명 중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있었다.

1호와 5호 그리고 7호가 뛰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5호는 그들을 어리석다는 듯 코웃음 치며 말했다.

"아직 2년이나 남았는데 왜 벌써부터 저리 힘을 쓰는지. 다들 벽곡단만 먹어도 힘이 넘치는군."

1호가 맞장구치며 말했다.

"그러게. 지금 옥패를 차지하면 이 년 동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은 원래 어리석지. 당장 눈앞의 것에 현혹되면 뒷일은 잘 생각나지 않는 법이니까."

5호는 열세 살이지만 가끔은 삼십일 년을 살아온 나보다도 더 어른스러웠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세상 다 살아본 노인처럼 말하는 게 애늙은이 같다니까.'

5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더니 말을 하였다.

"18호, 넌 그림자 무사에 관심 없다고 했지?"

"그래. 난 관심 없으니 옥패는 너희들끼리 잘 나눠 가져."

내 말을 듣더니 5호의 눈빛이 반짝이고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그럼 제안 하나만 하자."

"제안?"

"부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얘기해봐. 일단 들어 보고 결정할게."

나는 5호의 부탁이 무엇인지는 전생에 겪었기에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림자 무사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그때와 상황이 모두 같을 수는 없었다.

5호가 1호와 한차례 눈빛 교환을 한 후 나에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너에게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그림자 무사로 선발되도록 도와달라는 거야."

"너희 두 사람 실력이면 다섯 명 안에 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굳이 내가 너희를 도울 필요가 있을까?"

나의 말의 5호가 광장의 옥패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볼 때는 이번 선발전은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저 옥패를 소유한 후 훈련생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그걸 지키는 싸움이 될 것 같아. 지금 상황만 봐도 저기 광장에 있는 훈련생들 중 15호를 주축으로 이미 열 명 정도가 한 조처럼 움직이잖아."

5호의 말에 나는 놀라며 말했다.

"벌써 파벌이 형성되었다는 거야?"

'이럴 수가! 전생에도 결국 이렇게 흘러가기는 했지만 벌써 15호를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되었다니. 전생에서는 며칠 지나고 나서야 일어난 일이었는데 15호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나는 전생에 이 상황을 경험했기에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조금씩 전생과 오차가 발생하는 것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선발전을 미리 예상하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15호가 전부터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훈련생들을 규합했어."

5호의 말에 1호가 덧붙여 이야기했다.

"맞아. 어제 우리에게도 살짝 의사를 물어봤지만 우리는 15호와는 성향이 맞지 않아서 거절했지."

5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우리도 옥패를 원하는 입장에서 저들의 움직임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서.. 1호와 함께 또 하나의 파벌을 만들기로 했어."

나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살짝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그 파벌에 첫 번째 영입하려는 게 나란 거야?"

'전생에도 5호가 나에게 가장 먼저 자기와 함께 하자고 제의를 했지.'

5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말했다.

"어제 너의 실력도 확인했고, 무엇보다 옥패에 욕심이 없다는 게 마음에 들어."

"하지만 나에게는 옥패가 필요 없으니 너희를 굳이 도와줘야 할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데."

나의 말을 들은 5호는 이미 예상한 듯 1호와 눈빛을 주고받더니 다시 말을 했다.

"우리를 도와준다면 네가 원하는 일을 나와 1호가 각각 한 번씩 해 줄게."

'오! 나로서는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이런 고급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일이지. 어차피 도와주려 했는데. 큭큭.'

15호를 견제하기 위해 1호와 5호 편에 서서 도와줄 생각을 이미 하고 있던 터라 5호의 제안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무슨 일이든 상관없이?"

"그래. 도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라도."

5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졌지만 약속을 확실히 해두고 싶은 마음에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음.. 그 약속의 유효기간은?"

5호는 진실된 눈빛으로 말했다.

"그 약속은 내가 죽을 때까지 유효해."

1호도 주먹을 쥐고 자신의 가슴을 두 번 치며 호기롭게 말했다.

"맞아. 나 1호도 18호에게 진 한 번의 빚은 평생 유효하다."

"그렇다면 좋아. 너희들이 그림자 무사가 되도록 내 모든 힘을 다해서 도와줄게."

나의 말에 1호와 5호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18호가 우리 편이 되니 든든한걸?"

"맞아. 18호의 무공실력은 훈련생 중에서도 충분히 상위권에 들 테니까."

1호가 내 옆에 있던 7호를 보며 말했다.

"7호야. 너도 당연히 우리 쪽에 들어올 거지?"

1호의 말에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7호가 말했다.

"18호는 그렇게 저자세로 어떻게든 영입하려 하더니. 왜 나는 당연히 너희 쪽으로 들어갈거라고 생각해?"

7호가 정색하며 말하자 1호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18호 옆에 항상 붙어있잖아. 그래서 18호 영입할 때 너도 당연히 함께 올 거라 생각했는데.. 너.. 15호쪽으로 갈 거야?"

7호는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흠,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에게도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지. 기분 나빠서 너희 쪽에 가기 싫은데?"

5호가 둘 사이에 급히 끼어들어 말했다.

"7호야. 너도 우리 쪽에 꼭 필요한 사람이야. 1호가 말실수를 했네. 대신 사과할게. 다만 18호와 차이를 둔 건 넌 옥패가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걸 너에게 하나 주면 된다고 생각했어.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길 바래."

5호의 말에 7호의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정색하던 얼굴을 풀고 입술을 살짝 내밀며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

"뭐, 그런 거라면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해 줄게. 나도 너희와 함께할게."

< 비사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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