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장과의 대련 >
"나의 기운을 느낀다는 건 너도 초일류 경지에 도달했다는 건데.. 대단해. 1호 말고는 내 경쟁자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도 추가해야겠군."
5호의 말을 듣고 1호도 내게 말했다.
"그래. 이제부터 우리들의 경쟁자로 널 지켜보겠어."
난 손사래를 치며 그들에게 말하였다.
"아냐, 난 너희들과 경쟁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 그림자 무사로 뽑히는 데에 관심 없거든."
나의 대답에 5호의 얼굴에 어이없다는 표정이 드러났다.
"뭐? 그림자 무사에 관심이 없다고? 그러면 무공은 왜 그리 열심히 익혔는데?"
1호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아. 여기에 있는 훈련생들 중 초일류 경지에 오른 자는 아무리 많게 잡아도 열이 채 안 될 텐데."
난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
"난 그림자 무사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어."
나의 진지한 표정과 말투에 5호는 그제야 믿는 듯했다.
"전에도 좀 이상한 놈이라 생각은 했지만 18호 넌 정말 특이한 놈이군."
1호도 5호 말에 동조하며 웃으며 말했다.
"맞아. 동굴에서 삼 년을 살다 나오더니 더 이상해졌어. 큭큭"
"7호도 조금 이상한 편이고 두 사람 아주 잘 어울려. 크크"
두 사람은 나와 7호를 놀리며 빠르게 사라져갔다.
그들이 사라졌는데도 7호는 분한지 내게 화를 내며 말했다.
"넌 저 녀석들이 놀리는데 분하지도 않아?"
난 저런 꼬맹이들과 상대하는 건 유치하다는 식으로 말하였다.
"내가 어린애들도 아니고 저런 녀석들을 상대해야겠냐."
"그럼 네가 무슨 어른이니? 아직 열세 살짜리 어린애지."
7호의 말을 들으니 그녀의 말이 전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난 전생에 이십팔 년을 살았고 여기서 삼 년을 더 살았으니 서른 하나라고..'
"모든 훈련생들은 무경원 중앙으로 모여라."
대장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무경원에 울려 퍼지자 훈련생들이 일사분란하게 무경원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나도 무경원 중앙에 서서 그곳에 모여있는 훈련생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니 눈빛이 빛나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다들 삼 년간 동굴에서 큰 성과가 있었나 보군.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고 눈빛이 달라졌다.'
대장도 훈련생들을 둘러보더니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들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구나. 모두 삼 년 동안 고생 많았다. 오늘은 숙소에 들어가서 푹 쉬면서 따뜻한 물에 몸도 담그도록 해라."
대장의 말에 모두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대장님."
훈련생들은 각자 흩어져 자신들의 숙소로 향했다.
"18호, 너는 잠시 나 좀 보자."
나도 움직이려는 찰나에 대장이 나를 불러세웠다.
"네? 저만요?"
"그래. 넌 나를 따라와라."
대장이 갑자기 나를 불러 당황하긴 했지만 일단 그의 뒤를 따라갔다.
대장의 숙소에 도착한 나는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 의자에 앉거라."
대장이 가리킨 의자에 앉았더니 그가 따뜻한 차를 가져왔다.
"자, 마시거라. 삼 년 동안 수련은 할 만했느냐?"
"네, 수련할 시간이 부족한 것 빼고는 괜찮았습니다."
나의 답변에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대장이 말했다.
"수련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삼 년이 짧았단 말이더냐?"
"네. 무공 수련에 빠져 살다 보니 금세 시간이 가더군요."
대장은 의심의 눈초리로 내 전신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그런데 너의 행색을 보면 수련은커녕 동굴에서 빈둥거리다가 나온 것 같단 말이다."
"대장님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시면 안 되죠. 전 누구보다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내가 살짝 정색한 표정으로 진중하게 말하자 대장이 당황한 얼굴로 말을 하였다.
"흠.. 네 행색이 그렇잖아. 다른 훈련생에 비해 의복도 너무 깔끔하고 그래서 그렇게 보인다는 거지."
"깨끗하게 의복을 빨아 입고 나온 것도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나의 말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하는 대장이었다.
"그건 아니지. 내가 너에게 실수를 했구나. 내 사과하마. 미안하다."
"괜찮습니다."
"그럼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삼 년간 너의 성취를 직접 확인해볼까? 밖으로 나가자."
그 말과 함께 대장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대장이 양손을 펼치고 가슴을 열며 말하였다.
"자, 십 초를 양보할 테니 마음껏 공격해 보거라."
난 이미 대장의 실력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장이 백 초를 양보해도 이길 수가 없는데. 쪼잔하게 십초 밖에 양보를 안 하네.'
스릉
난 검을 뽑으며 대장에게 말했다.
"적수공권으로 괜찮으시겠어요? 검에는 눈이 없습니다."
대장은 살짝 웃으며 답했다.
"괜찮으니 마음껏 들어오거라. 내가 다쳐도 너에게 뭐라 안 하마."
'다치면 내가 다치지, 대장이 왜 다치겠수.'
전생에서 그림자 무사로 선발된 후에는 대장과 실전훈련을 하면서 자주 비무를 했었다.
'단 한 번도 이긴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마지막 즈음엔 꽤 대장을 몰아붙였었는데.'
대장과의 비무는 오랜만이지만 워낙 자주 겨루었기에 그다지 긴장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긴장감이 없으면 대장이 의심할 수 있으니 일부러 떨리는 척을 해야 했다.
'수련한 것을 다 보여줄 필요는 없지. 이번에는 남궁세가의 검법만 써야겠다.'
창궁무애검법 자체가 하늘 나는 독수리와 같이 자유롭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검법이었다.
정파의 검법답게 정도를 벗어나지는 않지만 검술에 유연함이 더해져 있었다.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을 익힌 뒤로 처음 상대에게 써 보는 거라 손에 살짝 땀이 났다.
창궁무애검법 제1초 창궁약연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대장에게 빠르고 날카로운 일검을 내질렀다.
"오! 창궁무애검법이라.. 넌 실리를 쫓아 사파의 검술을 익힐 줄 알았더니 의외구나."
그 말과 함께 몸을 흔들며 가볍게 나의 일 초를 피해버렸다.
"하지만 그 정도가 전부라면 약간 실망인데.."
대장의 말투에서 내 삼 년간의 노력이 무시당하는 거 같아서 조금 울컥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실망하십니까?"
"그래, 그럼 좀 더 실력 발휘를 해 보거라."
대장에게 본 실력은 드러내지 않고 적당한 선까지만 보이려 했는데, 그의 도발에 넘어가 나도 모르게 내공을 최대로 끌어모았다.
"오호! 이번 건 뭔가 달라 보이는군."
창궁무애검법 제2초 창궁무한
창구무애검법 중반부인 창궁무한은 독수리 떼가 하늘 날다가 들소처럼 큰 먹이를 발견했을 때 무리가 번갈아 가며 공격하듯 강력한 연환 공격이 특징이었다.
완벽한 검기를 쓰려면 절정의 경지에 올라야 가능하지만 검기를 검면에 살짝 덮씌우는 건 초일류 경지에서도 가능하였다.
나의 검에 살짝 검기가 덮인 상태로 공력까지 들어가자 제법 묵직한 공격이 대장에게 향했다.
대장은 나의 강력한 연환 공격에 처음에는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은 듯 무심한 표정으로 나의 여덟 번의 연환 공격을 큰 움직임 없이 다 피해버렸다.
"헥헥.. 대장님, 그만해요. 전력을 다했는데 스치지도 못했으니.. 더는 무의미 할 거 같아요."
나의 말에 대장이 자세를 풀며 대답하였다.
"그래. 충분히 너의 실력을 보았다. 성취를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으니 그만하도록 하자."
'쳇.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전력을 다했는데도 옷깃 하나 못 스치다니. 좀 억울하네.'
대장은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삼 년 만에 창궁무애검법을 중반부까지 익하다니.. 그리고 벌써 검기를 검에 씌우다니. 날 놀라게 하는구나. 훌륭해."
'대장한테 칭찬을 들으니.. 나쁘진 않군.'
"아직 많이 멀었죠. 이 정도로 어디 무림에 나가 이름이나 내밀겠어요?"
대장에게 살짝 겸양을 떨며 말했다.
"이놈아, 내가 네 성격을 뻔히 아는데 내 앞에서 겸양 떨 것 없다. 네 나이 또래의 후지 기수 중에서도 네 실력 정도면 능히 열 손가락 안에는 들 수 있다."
대장의 실력이 무림에서는 어느 정도 통할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럼 대장님이 무림에 나가면 어느 정도 일까요?"
대장이 망설임 없이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나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겠지."
대장의 강함은 전생에서부터 이미 알기에 의아해하며 말했다.
"대장님 또래에 그렇게 강자가 많아요?"
대장님은 본인 입으로 말하기 살짝 민망하단 얼굴로 말하였다.
"아니, 무림 전체를 통틀어서.."
대장의 말에 내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대장님이 그럼 무림 십대고수 반열이라고요?"
대장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으며 나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이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숙소로 가서 쉬거라."
"네. 가보겠습니다."
대장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다가 생각에 잠겼다.
'대장이 십대고수 급이었다니.. 하긴 예전에 내가 느꼈던 그 강함이라면 십대고수라해도 믿을 수 있지.'
'전생에 내 목표가 대장을 한 번이라도 이겨보는 거였는데.. 알고 보니까 그건 처음부터 거의 불가능한 목표였던 거였어.'
이런저런 딴생각을 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숙소에 도착했다.
삼 년 만에 돌아온 숙소에 들어가자 방안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고 아늑했다.
'집이라는 게 이런 거지. 언제 돌아와도 아늑하고 포근한 곳.'
나는 아늑한 느낌 때문인지 침상에 눕자마자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삼 년 만에 딱딱한 간이침상이 아닌 푹신한 침상에서 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몸의 기운이 넘쳐났다.
'침상이 바뀌니 몸이 가뿐하고 이보다 상쾌할 수가 없구나.'
동굴 안은 아무래도 기본적으로 좁고 습한 곳이었기에 숙소와 비교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삼 년을 버텼기에 그 어디에서든 빨리 적응할 수 있었지.'
전생에 겪은 일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다시 사는 삶이기에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소한 일도 새롭게 보였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이제 이 년밖에 남지 않았다. 황궁을 떠나는 날도 이 년 남았군.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르는구나.'
감상에 젖으니 그녀가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이제 여덟 살이 되었겠구나.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어릴 때도 아주 귀여웠을 거 같은데.. 가까이 있는데도 볼 수 없으니 더 아쉽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이런 나의 상념을 깨뜨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18호, 얼른 나와!"
7호가 다급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7호구나. 왜 그래?"
"대장님이 집합시켰는데 너만 빼고 다 모였어."
난 집합명령을 들은 적이 없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 언제 불렀지?"
"아까 대장님 명으로 15호가 다 깨우고 다녔다는데."
'아 씨.. 15호. 또 네 놈 짓이군.'
"이런.. 금방 준비하고 나갈게."
난 허둥지둥 옷을 갈아입고 훈련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내가 도착하자 모든 훈련생들이 날 쳐다봤다.
대장도 날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
"실전 생존 훈련이 끝났다고 긴장이 다 풀렸구나. 18호,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려라. 알겠냐?"
"네."
난 15호를 찾았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15호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날 보며 비웃고 있었다.
'넌 사람 잘못 건드렸어. 실컷 웃어둬라. 두고 보자. 후회하게 해주지.'
< 대장과의 대련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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