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9화 (9/114)

< 보법과 경신술 >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

'아! 보법과 경신술을 빼 먹었구나.'

전생에는 자객술을 익히면서 자연스레 보법과 은신술을 익혔는데 이번 생에는 심법과 검법 또 장법에 빠져서 잊고 있었다.

'하마터면 보법도 익히지 않고 동굴을 나갈 뻔 했군.

무공에서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인 보법을 빼먹다니.. 허허'

스스로도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보법은 어떤 걸 익히는 게 좋을까?'

일단은 뭐가 있는지부터 알아야 했기에 책장 안에 있는 서책들을 다시 살펴보았다.

보법으로 보는 서책은 세 권이 있었다.

유령무흔보, 매화보, 취선보

한 권씩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마음먹고 먼저 유령무흔보부터 읽기 시작했다.

유령무흔보

유령무흔보는 사파에서 고급 정보를 사고파는 문파인 유령문의 초대문주였던 유령신마의 절기로, 유령문의 문주를 제외한 문파원들의 무공은 약하나 보법과 경공, 은신술은 무림일절로 손꼽힌다.

유령무흔보를 대성한 상태에서 보법을 펼치면 상대의 눈앞에서 사라진 듯 잔상만 보이게 만드는 최상위 보법이다.

'오! 이거 대단한 보법인걸. 하지만 그만큼 익히기 어렵겠지?'

그 서책은 일단 옆에 놔두고 매화보 서책을 펼쳐보았다.

매화보

매화보는 정파에서 수위를 달리며 무림맹주를 배출한 화산파의 초대 장문이었던 화산일검이 만든 매화검법과 함께 만든 무공으로, 이십사수 매화검법과 함께 펼치면 매화꽃이 휘날리는 환영이 보일 정도로 눈으로 좇기 힘든 화려하고 변화무쌍한 보법이었다.

'매화꽃이 휘날리는 환영이 보일 정도라.. 화산파의 보법도 유령무흔보 못지않게 대단한 것 같은데, 한눈에 봐도 익히는 게 어려워 보이는군.'

취선보 서책까지 읽어 보고 나서 무엇을 익힐지 결정하기로 마음먹고 서책을 펼쳤다.

취선보

취선보는 개방의 4대 방주이자 괴협으로 유명했던 취선신개가 만든 보법으로, 술에 취한 사람처럼 넘어질 듯 휘청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어디로 움직일지 종잡을 수 없는 변화무쌍한 보법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보이는 보법이라.. 보기에는 조금 우스워 보일 것 같지만 개방의 방주이자 무림 고수가 만든 보법이니 효능은 뛰어나겠지. 그리고 세 가지 보법 중에는 그나마 익히기가 쉬워 보인다.'

당장은 유령무흔보나 매화보를 익힐 수 없을 거 같아서 취선보 수련을 먼저 하기로 마음먹었다.

취선보는 개방의 괴협이라 불렸던 취선선개의 무공이라서 그런지 익히는 방식도 매우 특이했다.

보통 다른 무공은 구결을 익히고 그다음 서책에 나온 자세를 잡고 수련했는데 취선보는 구결보다 신체의 균형감각을 먼저 키워야 했다.

취선보의 수련은 처음에는 물구나무를 서서 백 보를 왔다 갔다 반복하고, 그다음은 한 발로 서서 중심을 잡고 앞으로 숙이고 다시 몸을 세웠다가 뒤로 젖히고 그다음에는 다른 발로 서서 똑같이 반복하였다.

처음에는 물구나무도 오랫동안 서 있지 못하여 백 보를 왔다 갔다 반복하는 건 불가능한 일 같았는데 어느 정도 하다 보니 백 보는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워졌다.

그다음 단계 한발로 앞뒤로 움직이는 것도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나중에는 한 발로 걷거나 뛰는 것도 가능해졌다.

다음 단계의 수련은 눈을 가리고 한쪽의 힘만 쓰는 것이었다.

눈을 가린 상태에서 한쪽의 발의 힘을 빼니 다른 한쪽으로 몸의 무게 중심이 쏠렸다.

중심이 한쪽에 쏠리자 상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한쪽 발의 힘만으로 중심을 잡아내었다.

'그동안 수련했던 것이 효과가 있구나.'

한쪽 발만으로 수련했던 것이 성과가 나타나 여전히 흔들리기는 하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반대쪽으로도 같은 방식으로 수련하고 그렇게 두 달이 지날 무렵에는 좌우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더라도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다.

두 달 동안 충분히 균형감각을 키웠기에 이제는 서책에 나온 보법 자세를 무리 없이 수련할 수 있었다.

취선보가 사성에 경지에 도달했을 때 취선보를 펼치자 휘청거리며 갈지자로 움직였다.

'지금 날 보면 만취한 사람으로 보겠군. 크크'

취선보를 좀 더 익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굴에서 나가야 할 날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기에, 취선보의 후반부와 아직 익히지 못한 유령무흔보와 매화보 등은 서책의 내용만 일단 머릿속에 암기하고 동굴에서 나간 후에 시간이 될 때마다 틈틈이 익히기로 결정했다.

'이제 경신술만 익히면 이곳에서의 해야 할 일은 대충 마친 것 같은데..'

전생에 처음 이 동굴에 들어왔을 때는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각종 자객술과 필요한 무공을 익히느라 정신없이 삼 년이란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이번 생에서는 한번 경험했던 일이라 여유를 부리며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무공 수련을 하다 보니 점점 더 욕심이 생겨서 계획에 없던 여러 가지 무공을 익히느라 더 빠듯한 시간을 보냈다.

'경신술에 관한 서책도 세 개가 있었지.'

보법 서책을 찾을 때 책장 속에서 봐 두었던 경신술에 관한 서책을 꺼냈다.

운룡대팔식, 천마행공, 천진무영신법

운룡대팔식은 곤륜파가 자랑하는 최상위 경신법으로 대성하면 구름 위에 노는 용과 같이 보인다고 한다.

또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달리다가 날아오르면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여덞 번까지 몸을 뒤집을 수 있다.

'곤륜산이 높아서 곤륜파 사람들은 대부분 경공이 뛰어나다더니..운룡대팔식은 가히 최고의 경신법이라 할 수 있군.'

전생에 익힌 경신법은 그림자 무사가 된 후 대장에게 받은 살왕의 무공 중 하나인 사신질풍행이였다.

'사신질풍행을 다시 익힐까? 구름 위에 뛰노는 용이라.. 운룡대팔식. 마음에 들어.'

사신질풍행도 어느 경신법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최상위 경신법이였지만 운룡대팔식의 서책에 더 눈길이 갔다.

두 번째 서책은 천마신교의 초대교주이자 그 당시 천하제일인에 올랐던 일대천마가 말년에 만든 무공으로, 대성하면 진기로 부양 후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최상위 경신술이기에 초절정 고수 이상만 익힐 수 있다.

'아무리 천하제일인이었던 천마의 무공이라지만 진기로 하늘을 계속 날아다닌다니 말이 되나? 천마는 내공이 무한했다는 말인가.'

서책에 적힌 전부를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으나 천하제일인이었던 천마의 무공이라면 아예 거짓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하지만 초절정 경지에서 익힐 수 있다니 지금 내 경지로는 배울 수 없는 무공이다.'

마지막으로 천진무영신법은 사파 십대문파 중 하나인 천진방의 방주 천진무제의 무공으로, 극성으로 익히면 달리는 자가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을 만큼 극쾌의 경신술이었다.

'그나마 세 개의 경신술 중에는 이 경신법은 지금 바로 익힐 수 있을 것 같군.'

천진무영신법의 서책을 펼치고 구결을 암송하면서 자세를 잡았는데, 구결을 암송할 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천진방은 사파의 십대문파인데 어째서 천진무영신법의 구결을 암송하니 양의심법이 반응을 보이는 거지?'

'혹여 천진방의 방주가 도가 계통의 출신이었던가?'

의문이 들었지만 양의심법과 호응하는 덕분에 천진무영신법을 익히는 시간이 훨씬 줄었다.

매일 천진무영신법을 수련한 결과 사성까지 익히는데 겨우 세달 밖에 걸리지 않았고, 동굴을 나갈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에 남은 시간 동안은 채 익히지 못한 천마행공과 운룡대팔식의 구결을 암기했다.

'서책은 못 들고 나가게 하니 머릿속에 다 넣어두어야지.'

이제 동굴에서 나에게 주어진 삼 년이란 생존훈련 기간 중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열화신장으로 물을 뜨겁게 덥히고 몸을 담궈 목욕 재계를 하고 옷도 깨끗이 빨아서 말리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드디어 삼 년 만에 동굴의 입구를 막고 있던 거대한 암석이 사라졌다.

"이제 훈련생들은 모두 동굴에서 나오거라."

동굴 전체를 울리는 사자후가 들렸다.

나는 미리 전날 나갈 준비를 해 놓았기에 빨아놓은 단정한 의복을 입고 나갔다.

'삼 년이란 시간이 금세 지나버렸네. 무공 수련에 흥미를 느끼니 혼자 수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어.'

우리는 개인 동굴에서 밖으로 나와 생존훈련에 들어가기 전 모였던 장소에 다시 집결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처음 들어갔던 오십 명에서 다섯 명 정도가 줄어있었다.

'다섯 명 정도가 중도에 포기한 모양이군.'

7호가 날 발견하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너 18호 맞아?"

"삼 년 동안 시력이 많이 안 좋아졌네? 바로 앞에 있는데 날 못 알아보냐."

나의 말에 7호가 당황했는지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하였다.

"네가 삼 년 동안 키도 많이 크고 얼굴도 너무 많이 달라졌는걸. 그리고 넌 동굴에서 생활 안 한 거 같이 너무 말끔해."

7호의 말을 듣고 돌아보니 나를 제외한 모든 훈련생들의 모습이 개방 거지들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꾀죄죄했다.

"그렇지. 삼 년 동안 내 키가 좀 많이 컸지. 그리고 난 어제 옷도 빨아 입고 목욕도 하고 나와서 네가 못 알아볼 만해."

"난 물이 너무 차가워서 세수 밖에 못 했어. 18호 너 대단하다. 그 물로 목욕까지 하다니.."

자신의 꼬질꼬질한 모습이 부끄러운 듯 날 쳐다보지 못하고 딴 곳을 보며 말하는 7호가 귀여워 보였다.

'이때 까지만 해도 천상 여자였는데.. 아무튼 귀엽네.'

"난 추위를 별로 안 타서.. 넌 이따가 숙소에 가서 따뜻한 물로 씻으면 되지."

내 옆 동굴에서 나온 훈련생 두 명이 날 보며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공의 경지가 올라가고 감각이 더욱 예민해졌기 때문에 상당한 거리가 있었지만 그들의 대화를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18호는 동굴에서 수련 안 했나? 왜 저렇게 옷도 깨끗해?"

"그러게. 그리고 18호가 원래 저렇게 잘 생겼었나?"

"그러네. 원래도 얼굴이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귀공자 같은 외모로 변하고 키까지 많이 커서 삼 년 만에 다른 사람처럼 변했어."

그 두 명이 7호와 나에게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7호, 넌 18호랑 자주 붙어있네? 둘이 무슨 사이냐?"

1호의 말에 7호가 정색하며 대답하였다.

"무슨 사이긴 그냥 훈련생 동기지."

1호가 계속 7호를 놀리며 말하였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희 둘만 너무 자주 붙어있는데? 크크"

7호가 화가 났는지 검을 뽑는 시늉을 하며 말한다.

"너 자꾸 놀리면 죽는다."

1호가 손을 번갈아 저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뒤로 물러섰다.

"농담이야. 아휴, 무서워라."

두 사람은 나중에 그림자 무사로 뽑히는 5인에 들어있는 훈련생들이었다.

"18호, 동굴에서 잘 지낸 모양이네? 신수가 더 훤해졌어."

"5호, 너도 동굴에서 성과가 있었나 본데?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은걸."

5호의 몸으로부터 초일류 경지에 도달하여만 나타나는 기의 파동이 나에게 전달되어왔다.

< 보법과 경신술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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