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위복 >
몸 전체에 어렸던 냉기가 사라지고 단전에는 두 기운이 융화된 양의심법의 기운만 남았다.
'오! 단전에 내공이 가득 차 있다니.. 내공이 최소 일갑자를 넘어섰다.'
두 기운의 충돌이 전화위복이 되어 내공의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 전생에서 지금 이 시기가 비교해도 한참 앞서 나가게 되었다.
또한 세맥에 들어가 있던 양화신공의 기운들이 몸 안의 구석구석에 쌓여있는 불순물을 다 태워버려서 혈맥에 노폐물이 전혀 없는 상태가 버렸다.
환골탈태의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어려서 벌모세수를 받고 자란 몸 상태 이상의 효과가 나타났다.
죽을 고비를 넘겼더니 무림인으로서는 무공을 익히기 가장 좋은 몸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흠.. 이걸 기연이라고 해야 하나?'
전생에서는 기연이라고는 일생을 죽어라 수련해서 초절정의 벽을 넘을 때 환골탈태를 경험한 게 다였는데...
'실전 훈련에 들어간 지 채 일 년도 되기 전에 극음의 무공과 극양의 무공을 동시에 익히는 것도 모자라 일갑자의 내공도 생기고, 몸 안에 불순물까지 모두 사라져 벌모세수를 받은 몸처럼 한순간에 달라져 버리다니..'
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전생에 애쓰던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오늘 일을 복기했다.
'오늘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건 양의심법의 효능 덕분이야.'
책장에서 양의심법을 발견하고 익힌 건 행운이었다.
'양의심법은 태극혜검과 함께 무당파 최고의 보물이라더니. 정말 신묘해.'
양의심법의 효능을 확인하니 무당파의 또 다른 보물이라는 태극혜검의 효능도 궁금해졌다.
'혹시 책장에 태극혜검 서책도 있으려나?
양의심법도 이렇게 대단한데..
태극혜검도 분명 엄청날 거야.'
나는 마치 보물찾기 하듯 책장을 다 뒤져 보았지만 안타깝게도 태극혜검의 서책은 없었다.
'양의심법과 함께 태극혜검까지 익히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 태극혜검은 무당파 장문인과 그의 후계만 익힐 수 있는 무공이라고 했으니 이곳에 없는 것은 당연해. 그래도 아쉽긴 하네.'
불현듯 그림자 무사 때 대장이 했던 말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황궁무고에는 각종 서적이 즐비하다. 정파의 최상급 무공부터 사파, 마교에 이르기까지 없는 게 없이 천하의 존재하는 무공비급은 거의 있다고 봐야지."
"황궁무고에 자기네 무공비급이 있는 걸 다른 문파 사람들도 아나요?"
"아마도 모를 테지. 문파의 기본 무공이야 자신들이 황궁에 바친 것이지만 상급무공은 황궁의 고수들이 대부분 몰래 훔쳐서 필사한 것들이니까. 그 사실이 알려지면 전 무림이 황궁을 적대시하고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 질거야."
"황궁무고가 알려지면 위험하겠군요."
"그래. 그래서 황궁 사람들 중에서 극히 소수만 황궁무고에 들어갈 수 있지."
"그걸 알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중에 대장이 포함된다는 거고요."
나의 말에 대장은 살짝 우쭐대는 말투로 대답했다.
"18호 역시 똑똑하군. 내가 널 데리고는 들어가 줄 수 있는데 같이 가볼래?"
"됐어요. 전 사신검예만으로도 충분해요. 거기에도 사신검예 이상의 무공은 없을 거 같은데요."
나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대장이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사신검예가 최고의 무공 중에 하나라는 건 나도 인정하지만, 그것만이 최고의 무공은 아니다. 무당의 태극혜검도 있고 소림의 달마삼검, 사파에도 파천신공, 마교의 천마신공, 그 외에도 그와 비견되는 수많은 무공들이 있다."
"그 무공들이 다 황궁무고에 있다고요?"
"나도 황궁무고를 다 둘러보진 못해서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반 이상은 있을 거라 본다."
"반이라도 정말 엄청나네요. 하지만 전 새로운 무공은 필요 없어요."
나의 대답에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대장이 말하였다.
"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나중에 후회 말아라."
'아.. 그때 대장을 따라가서 서책들을 보고 외워두기라도 할걸. 설마 회귀까지 하고 나서 후회할 일이 생길 줄이야.'
생각해 보면 그때 황궁무고에 들어가지 않은 게 못내 아쉽고 후회가 되었다.
'지금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 의미 없지만..'
이 동굴에서 할 거라고는 먹고 자는 것 외에 무공수련 밖에 없었기에 매일 무공 수련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혹시라도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양의심법을 최소한 육성까지는 수련해놓고 한빙신공과 열화신공을 익혀야겠다.'
나는 다른 무공 수련은 잠시 접어두고 오로지 양의심법 수련에만 집중했다.
일갑자 이상의 내공 생기고 몸의 불순물이 빠져나가 혈맥이 열린 상태라 그런지 양의심법의 수련속도가 처음 수련할 때 훨씬 빨라졌다.
이 동굴에 들어온 지 일 년 만에 양의심법 육성을 달성했다.
'양의심법을 처음 배울 때는 삼 년은 되어야 육성을 달성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때의 위기가 복이 됐구나. 생각보다 빨리 도달했다.'
양의심법의 경지가 육성까지 도달하니 단전에 음과 양의 기운이 완벽하게 합쳐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도가 계통의 무공 중에서 최상급의 양의심법을 익히다 보니 저절로 도가 사상에 빠져드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이거 대성하면 신선이 되는 거 아닌가.. 큭큭'
양의심법은 육성 정도면 충분하다고 느꼈기에 처음에 익히다 내공이 부족하여 수련을 멈추었던 창궁무애검법의 서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창궁무애검법 중반부 수련에 들어가고 세 달 후쯤 중반부 수련을 마쳤을 때, 왜 남궁세가 검법이 무림일절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 수 있었다.
창궁무애검법 초반부만 익혔을 때는 단조로운 편이었던 검술이 중반부까지 더해지자 매우 날카롭고 빠르며 화려함을 갖춘 검술이 바뀌었다.
그리고 중반부까지 수련을 마치자 검에 검기를 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전생에서 초일류 경지에 도달한 때는 이 동굴을 나가기 전쯤이었으니 그때보다 일 년반은 더 빠르게 도달했군.'
'그러고 보니 전생에 내가 이렇게 무공 수련을 즐긴 적이 있었던가?'
전생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싫든 좋든 무공 수련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무공 수련에 즐거움을 느끼며 하다 보니 내 스스로도 점점 무공광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반부까지만 익혀도 이 정도인데 후반부의 검술까지 익히면 가히 위력이 대단하겠어. 하지만 후반부는 이갑자의 공력이 필요하니 수련은 나중에나 가능하겠다.'
빨리 후반부도 익히고 싶다는 생각은 강하게 들었으나 현 상태로는 불가능하기에 다시 한빙신공으로 넘어갔다.
한빙신공이 사성에서 오성으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양손에 냉기를 실어 내보낼 수 있었다.
그때부터 한빙신공에서 가장 위력적인 무공인 한빙신장을 쓸 수 있었다.
한빙신장
북해빙궁의 역대 궁주 중 가장 강하고 그 당시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가장 가까웠던 한빙마제의 무공으로 북해빙궁의 또 다른 무공인 빙백신장보다 위력이 훨씬 강한 무공이다.
하지만 빙백신장에 비해 대성하기가 어려워 북해빙궁에서는 극소수만 익히고 있다.
'왜 대성하기가 어려운지는 바로 알 수 있겠군.'
일성씩 올라갈 때마다 음기가 배로 세져서 음한지체나 구음절맥이 아니면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아무리 북해빙궁이라도 음한지체를 타고난 사람은 몇 없을 테니.. 다들 위력은 약해도 조금 더 안전한 빙백신장을 익히고 있는 거였구나.'
하지만 북해빙궁이 빙백신장만으로도 북부 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걸 보면 한빙신장을 대성하면 상대할 자가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나는 양의심법으로 인해 음양이 합쳐져서 음기의 위력이 약해졌으니 빙백신장을 배우는 데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본연의 위력은 나오기 힘들겠구나.'
한빙신장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왼손에 내공을 주입하고 동굴의 벽면을 내리쳤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동굴 옆면이 내 손자국이 남았다.
그뿐만 아니라 벽면의 손바닥 자국이 난 곳에서 계속 냉기가 흘러나왔다.
조금만 더 수련하면 벽면을 다 얼어붙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와! 엄청난데? 이제 막 익혔을 뿐인데 이 정도면 대성했을 땐... 상상이 안 되는구나.'
위력적인 한빙신장을 보고 매료되어 좀 더 수련하려다가 다시 음양의 조화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화신공의 서책을 펼쳤다.
열화신공도 한빙신공과 마찬가지로 사성에서 수련을 멈췄었기에 무공의 진정한 효능은 알지 못했다.
열화신공도 사성에서 오성으로 넘어가며 양손에 화기를 담아 내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열화신장
이백년전 대뢰음사가 서장을 통합할 때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천축장왕의 독문무공으로, 서장에서 대뢰음사 다음으로 강했던 천룡사의 고수인 천룡대제를 열화신장 일장으로 태워 죽인 것으로 천하에 널리 알려졌다.
열화신장은 천축장왕이 죽은 뒤로 아직까지 대뢰음사에서 대성한 자가 나오지 않았다.
'열화신장도 한빙신장과 마찬가지로 극양지체나 태양지체가 아니면 대성하기 어렵겠구나.
하필이면 내가 선택한 무공들은 다 대성하기 어려운 무공들이잖아?
이번 생도 역시 운은 지지리도 없는 건가.'
열화신장의 위력을 확인하기 위해 동굴 벽을 내려치려는 순간 동굴 안 물길을 따라 물이 흘러들어왔다.
'오늘도 마시고 씻을 물을 보내주는 시간이 되었나 보군. 저 물에 열화신장을 위력을 시험해보면 되겠다.'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에 열화신장을 내리쳤다.
푸우우웅!
물속에서 폭발음이 들렸다.
잠시 후 물에서 수증기가 올라왔다.
물에 손을 넣어보니 물이 따뜻하게 변해있었다.
'그동안 찬물로 씻느라 추워서 세수 이상은 힘들었는데 간만에 몸 좀 담가야지. 유후.'
오랜만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피로도 풀리고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목욕물 데우는데 아주 좋은 무공이군. 크크. 이 모습을 천축장왕이 봤으면 날 죽이려 들겠지?'
'지금은 딱 목욕하기 좋은 따뜻함인데 조금 더 수련하고 물을 데우면 내 몸이 못 견디고 녹아내리지 않을까? 아쉽지만 열화신공은 여기까지만 수련해야 하나. 고민스럽군.'
오랜만에 몸을 담근 상태에서 씻고 나오니 개운하고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이럴 수가. 언제 이렇게 내 몸이 좋아졌지?'
일 년 동안 열 살에서 열 한 살로 나이를 먹으면서 키가 큰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동굴에 들어온 뒤로 제대로 씻은 적이 없어서 스스로의 벗은 몸을 본 적이 없었다.
한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후 묵은 때를 벗겨내고 말끔한 상태로 밖으로 나오니 탄탄하고 균형 잡힌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 좋은 몸매가 묵은 때에 가려져 있었다니.. 역시 사람은 잘 씻어야 해.'
열화신공과 한빙신공은 대성하기 어려운 극악의 무공답게 오성 이후부터는 성취가 매우 느려졌다.
동굴에 들어온 지 이 년이 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겨우 육성의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일 년 동안 단조로운 일상이 매일같이 반복되었지만, 확연히 달라진 건 열화신공과 한빙신공을 계속 수련하다 보니 한서불침의 신체를 갖게 되어 더이상 춥거나 덥지 않게 된 것이었다.
열화신공과 한빙신공도 육성 이후부터는 이갑자의 내공이 필요했기에 수련을 중단하고 단전을 조금씩 넓히며 내공 수련을 하였다.
하지만 내공이란 것은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고 나면 열심히만 한다고 해서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깨달음을 얻어 한 단계 경지를 뛰어넘어야만 단전의 크기를 키울 수 있었다.
'일갑자의 내공에서 일 년 동안 겨우 반갑자 증가했구나. 이제 한계점이 온 거 같다.'
절정의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더이상 내공 수련이 무의미했다.
내공이 부족하여 다른 무공 수련도 진척이 없었기에 남은 일 년을 어떤 수련을 하며 보내는 게 나을지 고민에 빠졌다.
'검술과 장법은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고.. 지금 나에게 가장 부족한 건 무엇일까?'
< 전화위복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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