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7화 (7/114)

< 양의심법 >

내공이 충분하다고 생각이 들자 그 날부터 검술 수련에 들어갔다.

창궁무애검법의 서책을 펼쳐 그림을 보면서 초식을 외우고 외운 초식을 떠올리며 검을 휘둘렀다.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초반부의 마지막 장까지 넘어가 있었다.

'어.. 이상하다. 창궁무애검법이 왜 이렇게 단순하게 구성되어있는 거지? 초반부라 그런 건가?'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알 수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의 몸이지만 머릿속은 초절정 고수였던 그때의 깨달음이 있었기에 이해하기가 쉬웠던 거였다.

'무공의 초식과 이론은 이해했으니 몸이 숙달되도록 반복하기만 하면 되겠구나. 한데 내공이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더디니 창궁무애검법 후반부는 한참 뒤에나 익힐 수 있겠군.'

'내공을 비약적으로 늘릴 방법이 없을까?'

전에는 사파의 내공심법을 익혔기에 내공도 빨리 모을 수 있었고 그림자 무사로 뽑힌 이 후에는 황궁의 각종 영약을 먹었기에 내공이 급진적으로 늘었지만 현재는 내공이 부족하여 무공을 익힐 수 없으니 방법을 찾아야했다.

'괜히 정파 무공을 익힌 건가? 지금 사파 무공을 익히면 두 내공이 상충하여 주화입마에 빠질텐데..'

'대장은 양의심법을 익혀서 각기 다른 성질의 내공심법도 쓸 수 있다고 했는데 대장이 황궁에서 무공을 배웠다면 이 책장 안에 양의심법도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이 들자 나는 곧바로 책장 안의 책을 한 개씩 꺼내어 제목을 살폈다.

백 권이 넘는 책들을 꺼내어 보던 중 양의심법을 찾을 수 있었다.

'역시 여기에 있었군. 도대체 황궁에서는 이 비급들을 다 어떻게 구할 걸까? 그 문파에 그냥 내어줬을 리가 만무한데..'

그 생각보다 당장 양의심법이 눈앞에 있기에 그 서책을 보기 바빴다.

양의심법

무당파의 양의심법은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게 해주어 음과 양, 서로 다른 성질의 무공도 익힐 수 있는 최상급 내공심법이었다.

그림자 무사 시절에는 초절정고수 반열에 올랐었지만, 과거로 돌아온 지금은 내공과 쓸 수 있는 무공은 일류고수의 실력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학의 이론은 이미 통달하였기에 다시 초절정 경지로 가는 건 내게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한번 가 본 길이니까 금방 가겠지.'

이런 나의 자만심이 양의심법 서책을 보는 순간 무너졌다.

'이게 뭐야... 하나도 머릿속이 들어오질 않는다.'

일평생 사파의 무공만 죽어라 팠던 나에게 도가의 계통인 무당의 무공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도가의 사상을 알아야 이것을 배울 수 있다는 건가?'

양의심법 서책을 본 후 나의 머릿속은 대단히 복잡해졌다.

'대장이 정파 무공은 단계별로 배워야 한다더니 역시 상승무공은 배우기가 쉽지 않군.'

한참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양의심법이 도가 계열의 심법중 너무 상승심법이라 도가 계통의 심법을 처음 접한 나에게 지금은 무리라는 것이었다.

'그럼 무당파의 기본 무공인 소청심법부터 배워야겠다.'

책장에서 소청심법을 찾아 꺼내어 열심히 읽다가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터졌다.

'그저 쉽게 생각하고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을 배우려다가 무당파의 무공에... 이러다가 정파의 무공을 다 익히게 생겼네. 큭큭'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살아남기 위해 죽어라 사파의 무공과 실전에 필요한 것들만 배웠는데, 지금은 제법 여유를 부리며 정파 무공을 이것저것 배우고 있으니 다시 살아난 삶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게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림자 무사에서 선발되지 않으면 군부로 간다 했는데 전역하고 나서 나중에 무당파나 남궁세가에 들어가 볼까? 크크'

불행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작될 삶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다.

곧바로 소청심법 서책을 펴고 수련에 들어갔다.

소청심법은 기본 심법답게 큰 어려움 없이 한 달 만에 육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이대로라면 삼 년 안에는 충분히 소청심법은 대성할 수 있겠다.

이제 소청심법의 수련은 잠시 접어두고 다시 양의심법에 도전해보자.'

소청심법의 대성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소청심법 수련을 멈추고 양의심법의 서책을 꺼냈다.

'이럴 수가. 확실히 한 달 전과는 다르다. 이제 서책의 내용이 조금씩 이해가 되는구나."

양의심법을 자세히 보는데 서책에 적힌 구결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가부좌 자세를 취하고 천천히 구결을 암송하며 심법수련을 하자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한참 후에 깨어났는데 배가 고픈 걸 보니 꽤 시간이 지난 듯했다.

하지만 심법에 빠져 들어있었기에 몇 시진이 지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확실히 도가 계통의 무공은 신묘하구나. 그 짧은 시간에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만들다니.. 사파 무공을 익힐 때는 이런 건 전혀 느껴보지 못했는데..'

사파 무공만 익혔다가 처음 접하는 도가 계통 무공의 신묘함에 놀라움을 느꼈다.

'대장이 초일류 경지까지는 사파의 무공이 빠르지만, 절정 경지부터는 정파의 무공이 더 유리하다고 하더니 그 말이 이제 확실히 이해가 되는군.'

그날부터 양의심법에 심취하여 밤낮없이 심법 수련에 정진했다.

양의심법 수련을 삼 개월 동안 정진한 결과 사성에 도달했다.

십성까지 대성하기는 까마득히 멀었지만 양의심법을 사성 경지에 도달하자 몸 안의 기운들이 합쳐지는 게 느껴졌다.

'이 느낌은.. 이제 사파의 내공심법을 수련해도 될 것 같다.'

'살왕의 무공을 익힐까? 이미 구결과 자세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 있으니 서책 없이도 충분히 가능할 거 같기는 한데.. 지금의 내 몸이 버텨줄 수 있을까?'

내가 살왕의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때는 초일류 경지에 도달한 지 한참이 지난 후 절정의 벽에 가로막혀 무공의 진전이 없을 때였다.

대장이 절정의 벽을 넘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서책을 하나 던져주었다.

'그때도 꽤 어렵게 익혔으니까 지금의 몸 상태로는 아무래도 어렵겠지? 결국 다시 사파 무공 중 기본 무공부터 익혀야 한다는 건데...'

머릿속에 있는 사파의 무공들을 다시 끄집어내어 익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익힌 사파 무공들은 대부분 자객술이라서 살왕의 사신검예 말고는 다시 익히고 싶지 않은데..'

자객술은 정말 지겨울 만큼 평생을 익히고 쓰던 것이라 더이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신검예는 워낙 강력하고 쓸모가 많아서 예외지만 나머지는 그다지 필요가 없을 듯했다.

'그럼 다른 사파 무공 중에는 뭐가 좋을까? 사파니까 역시 패도적이고 강맹한 무공이면 좋겠는데..'

책장의 서책을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온 서책이 하나 있었다.

한빙신공

사파 십강 중 한 곳인 북해빙궁의 무공으로 중원 무림에 자주 나타나지는 않지만 한번 나타나면 전 무림이 요동칠 만큼 위력적이고 패도적인 무공.

극성으로 익히면 얼리지 못할 것이 없다.

음한지체가 아닌 자는 책을 덮어라.

한빙신공 서책을 펼치니 첫 장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북해빙궁의 무공이라는 게 마음에 들긴 하지만 난 음한지체가 아닌데.. 익혀도 되려나. 양의심법이 있으니 제어는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한빙신공의 서책을 펼치고 구결을 따라 무공을 수련했다.

다행히 내 예상대로 양의심법의 효능으로 음기가 몸 전체로 파고드는 걸 억제하며 수련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배웠던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무공에 재미를 느껴 벽곡단을 먹는 것을 잊고 수련에 매달릴 만큼 빠져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 한빙신공의 경지가 일성을 넘기고 이성으로 들어서면서부터 몸에서 냉기가 흘러나오며 몸이 떨려왔다.

'이런.. 양의심법만으로는 제어가 안 되잖아. 이러다가 심장이 얼어붙겠다.'

나는 급히 다시 책장으로 가서 극양의 무공을 찾기 시작했다.

'극양의 무공을 못 찾으면 죽는다. 극음의 무공서적이 있다면 극양도 있겠지.'

한참을 찾다가 열화신공이란 책을 찾았다.

'열화신공! 이거다. 이름부터 극양의 느낌이 나는군.'

열화신공

사파 십강 중 한 곳인 대뢰음사의 무공으로써 대뢰음사가 서장을 일통하고 맹주로 군림하는데 가장 공이 큰 무공이다.

극성으로 익히면 녹이지 못할 것이 없다.

다만 극양지체가 아닌 자는 책을 덮어라.

한빙신공과 마찬가지로 첫 장에 무공에 대한 설명과 경고가 적혀 있었다.

'난 지금 더운물 찬물 가릴 때 아니라서..'

경고를 무시하고 바로 열화신공 수련에 들어갔다.

열화신공을 익히자 차갑게 얼어 붙어가던 몸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내 생각대로 됐구나.

이제 안심하고 두 무공을 같이 수련하면 되겠다.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지만 덕분에 극양과 극음의 무공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익히게 됐네.'

열화신공도 이성까지 수련하고 한빙신공도 이성까지 수련을 마치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또 한 달을 수련에 매진했다.

다시 한빙신공을 삼성으로 수련하고 열화신공을 삼성으로 수련하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무공을 수련하며 내공을 쌓아갔다.

하지만 한빙신공이 사성에 도달하고 열화신공 또한 사성에 도달하던 순간 문제가 터져버렸다.

갑자기 단전에서 강력한 음기가 꿈틀하더니 얼음장같이 차가운 음기가 빠르게 왼쪽 팔과 다리의 혈맥을 장악했다.

그러자 왼쪽 팔과 다리에서 냉기가 나오며 혈맥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사성에 불과한데 단전에 한빙신공의 음기가 이렇게 많이 쌓여 있었다니.. 과연 양의심법으로 통제가 가능할까?'

급하게 가부좌를 취하고 양의심법으로 음기를 달래며 가라앉히려 하는데 다시 단전에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강력한 양기가 꿈틀하더니 단전에서부터 타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뜨거운 양기가 오른쪽 팔과 다리로 뻗어 나갔다.

'으악! 한쪽 팔과 다리는 이미 감각이 사라지며 얼어 붙어있는 느낌이고, 다른 한쪽은 팔과 다리가 녹아내릴 듯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전생에도 너무 무리하게 무공 수련을 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질 뻔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는 날 도와줄 대장이 옆에 있었기에 큰 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고민이 깊어졌다.

'위기다. 지금의 몸은 이 상태를 오래 버티지 못할 텐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지난 날이 후회가 되었다.

그나마 아직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양의심법의 효능 덕분이었다.

'아직까지 두 힘이 충돌하지 않고 한쪽씩 차지하고 있는 건 양의심법의 기운이 중간에서 중재를 하고 있어서인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양의심법을 육성 이상 수련했다면 충분히 두 힘을 제압해 융화시킬 수 있었을텐데... 사성의 힘으로는 두 힘을 견제하는 정도가 한계다.'

갑자기 또다시 죽음의 위기가 오자 황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번 생은 꼭 행복한 삶을 살아요. 황녀님.'

황녀의 얼굴이 떠오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위험 부담은 크지만 음기와 양기를 제어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면?'

두 힘을 충돌시켜 한쪽이 몸을 완벽히 장악할 때까지 내버려 두기로 마음먹었다.

'이대로 죽는다면 좀 아쉽기는 하지만 어차피 한번 죽은 목숨... 모험을 해 보자.'

양의심법으로 두 힘을 제어하던 기를 거두어들이자 두 힘이 미친 듯이 날뛰며 중앙에 위치한 단전으로 모이더니 폭발하듯 부딪쳤다.

'으악! 단전이 터질 것 같다. 과연 내 몸이 버텨줄까?'

단전에서 여러 차례 강력한 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네 번째 충돌에서 나는 혼절하고 말았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온몸이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는 것을 느꼈다.

'하.. 다행이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하지만 결국 음기가 내 몸을 장악해버렸어.'

비록 음기로 몸이 굳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죽지 않을 걸 보면 음기의 기운이 확실히 약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급히 양의심법의 기운을 다시금 불러내었다.

'음기의 힘이 약해졌다지만 양의심법의 기운만으로 제압 가능할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양의심법에 모든 것을 거는 것 외에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양의심법의 기운이 단전을 장악해나가자 즉시 잠잠하던 음기가 다시 날뛰며 냉기가 더욱 강해졌다.

단전이 다시 냉기로 가득 차려는데 세맥이 숨어있던 양기가 음기를 공격하며 양의심법의 기운이 음기를 맞서는데 도움을 주었다.

두 기운의 협공에 음기의 기세가 약해지자 양기와 양의심법의 기운이 단전을 장악할 수 있었다.

단전에 모인 양의심법의 기운과 열화신공의 기운이 하나로 합쳐지고 몸 전체로 따뜻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사지에 퍼져있는 음기가 반항을 하기는 했지만 결국 융합된 양의심법의 기운에 제압을 당했다.

'휴.. 이제야 살겠군.'

< 양의심법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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