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림자 무사의 귀환-6화 (6/114)

< 생존훈련 >

"18호! 빨리 안 일어나?"

‘이 익숙한 목소리는.. 대장인데! 어라? 내가 진짜 다시 살아난 건가?’

살며시 눈을 떠 보니 대장이 날 노려보고 있었다.

‘엥? 대장이 왜 이렇게 젊어졌지? 여기가 저승인가?’

"뭐야, 저 안 죽었어요? 아니면 대장님도 죽은 건가요?"

어리둥절한 내 반응에 대장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넌 곧 내 손에 죽을 거다."

딱! 대장의 커다란 주먹이 내 머리를 아프게 후려쳤다.

‘으악! 이렇게 아픈 걸 보면 살아있는 게 분명한데.’

"흐으. 대장님, 너무 아파요."

"나도 맨날 네 녀석 머리 쥐어박기도 지치니까 제발 한 번에 말 좀 들어라. 얼른 따라 나와! 오늘부터 제대로 수련 시작이다."

‘수련? 무슨 수련을 한다는 거지?’

대장을 따라가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는데,

‘어라? 내 몸이 작아졌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의 귓가로 대장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 안 와? 또 맞고 갈래?"

"아니에요. 지금 갑니다!"

대장의 뒤를 졸졸 따라 도착한 곳은 내가 그림자 무사가 되기 전 체력 훈련과 각종 무공을 수련했던 무경원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지? 이 지옥에 다시 오다니!’

"대장님, 설마 이곳에서 수련하려고요?"

"오 년 동안 매일 하던 걸 왜 묻냐? 다만 오늘부터 조금 더 강도가 세지고 생존훈련이 추가될 거다.“

대장의 대답에 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수련한지 오 년이라고? 설마 내가 과거로 돌아온 건가? 수련을 처음 시작한 게 다섯 살이니까.. 그럼 지금 내 나이가 열 살? 아 젠장, 이놈의 저승사자! 이왕 보내줄 거면 수련을 마쳤을 때로 돌려 보내주지!’

"그럼 지금 대장님 나이가 스물다섯 맞아요?"

자꾸 뚱딴지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내게 대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 어제 수련할 때 머리라도 다친 거냐? 오늘따라 상태가 영 안 좋은데?"

‘스물여덟에 죽었다 깨어나니 열 살로 돌아왔는데 대장 같으면 정신이 있겠냐 고요!’

"대장님, 제가 봐도 오늘 제 상태가 별로인 거 같은데 오늘 수련은 쉬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러면 이왕 쉬는 김에 맞고 푹 쉬자. 영원히."

대장이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주먹을 쥐었다.

난 얼굴에 경련이 날 정도로 미소를 띠고 말했다.

"아하하, 아니에요. 다 나은 거 같아요. 뭐부터 시작할까요?"

"오늘부터 생존훈련을 할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라. 다른 아이들이 올 때가 됐는데.“

생존훈련!

다섯 살 때 납치되어 이곳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 이곳에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백 명쯤 있었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그 아이들의 숫자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열 살 때쯤에는 반으로 줄었으니까 지금은 오십 명쯤 되겠구나!’

그림자 무사가 되기 위한 수련은 매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십 년 이상 어두운 동굴 속에서 생활해야 했고 훈련 도중 큰 부상을 당해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생존훈련이 끝난 후 그림자 무사 선발전까지 모든 과정을 마치고 정식으로 그림자 무사로 선발되는 인원은 5명 뿐이었다.

'그림자 무사가 되고 나서야 알았지. 납치되어 수련한 이곳이 황궁의 지하에 만들어진 금역이라는 걸. 대장 말로는 황궁에 있는 환관들조차 이곳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고 했었어.‘

나중에 그림자 무사가 된 후 중도에 탈락한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여 대장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대장이 말하기를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큰 부상을 입어 장애가 생긴 아이들은 은자림이라는 곳으로 보내져 평생 황궁에서 보살펴 준다고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림자 무사에 선발되지는 못했지만 사지가 멀쩡한 훈련생들은 전부 군부로 간다고 했다.

'어릴 적 그 아이들을 다시 만난다니 조금은 설레는걸.‘

그때 나와 같은 그림자 무사 예비 수련생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나처럼 숫자로 불리는 아이들!'

"18호 아직 안 떨어졌네?"

열 살인데도 등치가 제법 큰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 녀석은 날 항상 견제하며 귀찮게 하던 15호잖아!'

15호 놈도 나중에 그림자 무사로 뽑힌 다섯 명 중 하나였다.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내고 실력은 출중하였으나 잔혹하고 비열한 성품 탓에 가까이하지 않던 놈이었다.

"난 네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의외군."

내 말에 15호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짓더니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앞으로 훈련에서는 죽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던데 네놈이 첫 번째가 될 수도 있으니 몸조심해라."

‘너나 조심해라. 자꾸 내 앞에서 알짱거리면 네 놈부터 죽여버릴 테니까!'

"내 걱정을 다 해주고 고맙긴 한데 난 괜찮으니 네 걱정이나 해라."

대장이 오 십여 명의 훈련생들을 모아놓고 말을 하였다.

"너희들은 1차 수련을 무사히 마쳤다. 수고했다."

와!!!

훈련생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보들 1차 수련은 아무것도 아닌데 2차부터가 진짜야! 쯧쯧.'

"오늘부터 2차 수련에 들어간다. 이제부터는 진정한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생존훈련에서도 다들 무사히 살아남길 바란다."

생존이란 말에서 훈련의 강도를 짐작할 수 있었기에 대다수의 훈련생들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샌가 내 옆으로 7호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18호, 넌 전혀 긴장한 표정이 아니네. 이번 훈련도 자신 있는 거야?"

"나야 항상 자신 있지. 하하."

7호는 이번 훈련생 중에서 나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은 다섯명의 그림자 무사 중에 하나며 그 중 유일한 여성이었다.

처음에 7호를 봤을 때 예쁘장한 얼굴과 가녀린 몸매에 목소리까지 청아한 소녀라 가장 먼저 탈락할 줄 알았는데..

여성의 몸으로 그림자 무사가 되는 모든 관문을 통과했으니 독종이라 아니 말할 수 없었다.

그림자 무사가 되고 나서는 서로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동기 그림자 무사 중에는 그나마 친분이 있던 사이였다.

'어릴 적 모습을 다시 보니 반갑네. 어릴 적에는 이렇게 귀엽고 여성스러웠는데 그림자 무사가 되고 나서는 차가운 얼음마녀가 되었으니..'

생존 훈련은 무경원 내에 있는 동굴에 들어가 삼 년간 스스로 생활하면서 그림자 무사가 되어서 가장 필요한 능력들을 기르는 훈련이었다.

"자, 이번 훈련은 한 명씩 동굴에 들어가서 삼 년간 스스로 생존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간단하지?"

대장이 음성에 내공을 담아 말하자 무경원이 울릴 정도였다.

대장의 말에 훈련생 중 영특하기로 소문난 5호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5호는 나중에 그림자 무사로 뽑힌 다섯 명 중에 일인이었다.

"삼 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오면 어떻게 됩니까?"

"당연히 즉시 탈락이지."

"대장님, 먹을거리는 어떻게 구합니까?"

"걱정말거라. 동굴 안에는 삼 년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벽곡단이 준비되어 있다."

"마실 물이나 씻는 건 어떻게 합니까?"

"동굴 안에는 물길이 나 있으니 오시에 전체적으로 물을 보내줄 것이니 그때 통에 물을 담아 마시거나 씻으면 된다."

"삼 년 동안 저희는 동굴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동굴 안에 너희들 스스로 무공을 수련하도록 각종 무공 비급도 준비되어 있으니 열심히 수련하다 보면 어느새 삼 년이란 시간은 금세 지나갈 것이다."

5호의 질문에 대다수의 훈련생들이 궁금해하는 것들이 대부분 들어 있어서인지 더이상 질문을 하는 훈련생은 없었다.

"자! 지금부터 각자의 동굴 앞에 서거라."

대장의 말에 훈련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무경원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동굴.

그 동굴 하나하나에 훈련생들이 한 명씩 서 있다가 대장의 신호에 일제히 들어갔다.

나중에 그림자 무사가 되고 나서 대장에게 들으니 혼자 동굴 안에 갇혀있는 걸 못 견디고 중도 포기한 훈련생들이 꽤 있다고 했다.

나도 지정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동굴 안에는 누워서 잘 수 있는 작은 침상이 있었고 삼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양의 벽곡단과 각종 무공서적이 있었다.

'전에도 이 동굴에서 삼 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익숙해지지는 않네.'

난 전에도 이 동굴에서 삼 년간 각종 무공과 암기술을 익히며 버텼던 경험이 있기에 생존 훈련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벽곡단을 한 줌 집어 입에 털어 넣고 씹으며 침상에 누워 과거의 일들을 떠올렸다.

갑작스럽게 과거로 돌아왔기에 앞으로 삶의 방향을 구상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과 나의 선택들을 정리하기 위해..

'그래도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건 황녀님이 죽지 않고 황궁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거니까 이보다 기쁜 일은 없지.'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이내 다른 생각을 떠올려 지워야만 했다.

'난 그녀를 잊어야 해.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그녀는 또다시 불행해질 거야. 난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해.'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다시 황녀의 얼굴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직 시간의 여유는 있으니 서서히 잊자.'

침상에서 일어나 동굴 안을 둘러보다가 책장에서 무공서적을 꺼내보았다.

'이 무공서적을 보는 게 몇 년만 인지 모르겠구나.'

오랜만에 기초적인 무공서적을 보니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당시만 해도 이 무공서적들의 내용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너무 기본적인 내용이라 지루할 정도군.'

'하지만 이 책장 안에는 상급 무공비급도 있었지. 그 당시에는 암기술과 자객들의 살법을 익히느라 시간이 없어서 익힐 엄두를 못 냈는데.. 어디 있더라. 여기쯤인가?'

나는 기억을 더듬어 책장 안에 있는 무공서적을 뒤지다가 한 권의 무공서적을 꺼냈다.

창궁무애검법

처음 이 서책을 발견했을 때도 남궁세가의 대표적인 검법으로 남궁세가를 무림 오대세가 반열에 올려준 검법이고 남궁세가의 직계들만 배울 수 있다는데 어떻게 이곳에 이 무공비급이 존재하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과거에 수련할 때도 남궁세가의 창궁무애검법 서책에 눈길이 갔지만 그 때의 생각은 생존에 필요한 무공은 정파의 무공보다는 자객들의 무공이 더 적합하고 여겼기에 책장에서 한번 꺼내어 본 것이 다였다.

'삼 년 동안 창궁무애검법이나 익혀야겠군.'

지금의 몸 상태로는 당장 그림자 무사 시절만큼의 실력을 만들어내진 못하겠지만 이미 자객술과 그와 관련된 무공과 실전 경험은 머릿속에 가득 차 있기에 그와 다른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정파 무공을 택했다.

'이왕이면 내공심법도 남궁세가의 것으로 익혀야 검법의 위력도 올라가겠지?'

책장을 뒤져서 남궁세가의 내공심법인 창궁대연신공을 찾을 수 있었다.

난 바로 서책을 펼쳐놓고 가부좌 자세로 앉은 다음 서책에 그려진 그림대로 자세를 따라하며 무공 수련에 빠져 들었다.

'확실히 사파의 무공이었던 사신회의 무공을 수련할 때와는 느낌이 다르군.'

사파의 무공은 수련 즉시 빠른 성취와 강맹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반해 정파의 무공은 성취는 느리지만 진중한 기운이 몸 안에 자리 잡는 게 느껴졌다.

매일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창궁대연신공을 수련하는데 정진했다.

사파의 무공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매일 차곡차곡 쌓여가는 기운이 단전에 채워지자 몸 안의 혈맥들이 안정됨이 느껴졌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단전에 내공이 꽤 차 있음이 느껴졌다.

'단전에 창궁무애검법을 초반부를 수련하는데 필요한 내공은 충분히 모였군.'

상승검법은 내공이 동반되어야 하는 초식들이 많아서 기본적으로 내공이 받쳐주지 못하면 익힐 수가 없었다.

창궁무애검법도 초반부는 반갑자, 중반부부터는 일갑자의 내공이 필요했다.

다섯 살 때부터 내공 수련을 하여 어느 정도 내공은 있었지만 반갑자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반갑자의 내공이 있었기에 바로 창궁무애검법을 수련할 수도 있었지만 무공 수련 중에 반갑자 내공을 모두 소모하면 탈진이 일어날 수도 있고, 무리하다 보면 내상을 입을 수 있기에 두 달 동안은 창궁대연신공을 통해 내공을 늘리며 검법을 익힐 준비를 했다.

< 생존훈련 > 끝

ⓒ 청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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