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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201화 (완결) (201/201)

201화

“…무슨?”

어리둥절한 아크의 뒤로. 조그마한 유리병이 날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김진석은 마기에 잠식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손은커녕 발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피부 속 힘줄이 검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마기에 대부분 잠식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입은 여전히 움직였다.

“미안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라서 말이야.”

그때. 무언가가 지상에서부터 올라와 아크의 몸을 꿰뚫었다.

“크아악! 이 무슨……?!”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무언가는 아크의 몸을 꿰뚫음과 동시에 아크의 뒤로 날아오던 유리병을 꿰뚫었다.

유리병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빛.

아크는 급히 시선을 지상으로 향했다. 그곳엔 검은 연기와도 같은 로브를 입은 남자가 활시위에서 손을 뗀 모습과 그 옆에 처음 보는 인간 여성이 있었다.

남자는 아크도 잘 알고 있었다. 대악마들과 비등하게 싸운 인간. 대악마의 대적자였다. 그런데 옆의 여자는 처음 보았지만 뭔가 꺼림칙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남자가 든 활은 검은 연기와도 같은 그와 달리 순백이 일렁거리는 활이었다.

“감히…!”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크의 양팔이 순식간에 잘려나갔다.

“이건 또 무슨…?!”

그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인물이 뒤를 기습했다.

김진석의 말에 지금까지 숨어있던 마엔이었다. 그녀는 아크가 약해진 틈을 타 그의 양팔을 자름과 동시에 김진석을 안고 멀리 날아갔다.

“…아버지.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셨죠?”

마엔은 김진석과 달리 피부가 깨끗했다. 마치 마기에 전혀 영향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아니 처음으로 김진석을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김진석은 마엔을 보고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난 버티잖아?”

유리병 안에 든 건 바로 성은(聖恩). 그것도 성녀의 성은이었다.

성녀. 김진석은 영국에서 나타난 악마를 처리했을 때. 성녀와의 관계를 맺어두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세상에서 둘만 아는 관계. 그때 김진석은 성녀의 능력을 눈에 깊게 새겨두었다.

비록 그녀의 결계는 넬에게 허무하게 뚫렸지만 확실한 타격을 입혔다. 성스러운 그녀의 기운은 악마와의 상성이 뛰어났다. 마기와 상성이 뛰어났다.

김진석은 카이에게 말해두었다. 지구의 인간. 특히 성녀를 지키라고. 그리고 때가 오면 그녀의 도움을 받으라고.

그녀의 스킬 중 하나가 카이에게 매우 도움이 됐으니깐.

홀리웨폰. 무기에 성 속성을 부여하는 스킬.

카이의 전용 무기. 고요한 카인의 활에 성 속성이 부여된 지금 그의 화살은 아크에게 치명적이었다.

김진석은 카이에게 또 하나 말해두었다. 마엔과 같이 신호를 보낸 순간. 화살을 쏘아내라고. 그 신호는 바로 유리병을 던지는 것.

성녀. 엘리자베스의 성은이 들어있는 유리병의 효능은 간단했다.

악(惡)한 것을 물리치는 것.

하지만 그건 여러 명이 사용하면 효과가 떨어지기에 김진석은 마엔에게 양보했다. 그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으니깐.

비록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엔 또한 분명 마기에 잠식되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네 반응 보니 내 생각이 맞았네.”

“참… 키잔과 똑같으시네요.”

원래라면 김진석 자신이 사용하려 했었다. 카이와 마엔이 살아있기 전부터 생각해둔 것이었으니. 그러나 카이와 마엔을 만나고 계획을 바꿨다.

“이게… 왜 이러지?”

김진석은 아크를 바라봤다.

아크는 당황하고 있었다.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꿰뚫었을 때 자신에게 좋지 않은 기운이 파고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화살. 그 안에는 성스러운 기운이 들어있었다.

꿰뚫린 몸이 재생되지 않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마엔에게 당한 양팔이 잘린 상처는 왜 돌아오지 않는 것인가.

자신을 안고 멀리 날아가려는 마엔을 말리고 김진석은 비틀거리는 몸을 하늘에 서며 말했다.

“내 마지막 수. 악마와 상반되는 기운을 지구에서 찾을 줄 누가 알았겠어.”

김진석은 지상을 바라봤다.

카이의 옆에 영문을 모른 채 서 있는 여성. 성녀 엘리자베스. 넬에게도 통하는 사특한 기운을 멸하는 그녀의 성스러운 기운은 아크에게도 통했다.

성녀의 성은. 그건 평생에 한 번만 만들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그녀는 그걸 김진석에게 양보했다.

성은은 근처에 있던 마엔의 몸을 완벽히 치료함과 동시에 아크의 힘을 극도로 억제했다.

김진석은 비틀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바로 세우며 아크에게 걸어갔다.

“네 폐인은 하나다.”

손에는 단검이 들려있었다. 그런데 마엔의 눈엔 그게 익숙했다.

“…어?”

그녀는 그녀의 허리춤을 더듬거렸다. 있어야 할 단검이 사라져 있었다.

죽음의 속삭임. 그게 지금 김진석의 손에 들려있었다.

대검을 들 힘이 없는 지금의 김진석은 그것이 최선이었다.

게임 속에서 잡다한 설명이 적혀 있는 죽음의 속삭임이었지만 김진석은 단 한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상에게 영원한 안식을 준다.]

한낱 미사여구일지 모르지만 상관없었다.

“넌 여전히 혼자였고.”

지금 아크를 죽이는 데 그리 많은 힘을 들일 필요는 없을 테니.

“난 힘을 빌렸으니.”

그때. 이상한 느낌을 받은 지구의 대악마들이 김진석의 대악마들을 무시한 채 날아왔다.

“…여전히 난 오만했던 것인가.”

“고생했다. 아크. 이만 죽어라.”

지구의 대악마들이 코앞까지 날아왔지만.

김진석의 단검은 아크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대적자의 이름이…….”

“김진석이다.”

“…기억하겠다.”

그와 동시에.

마기가 폭발했다.

* * *

대악마들의 눈앞에서 마기가 폭발했다.

마기로 된 폭풍이 지구 전체에 몰아쳤다. 대악마들조차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폭풍. 그들은 급히 손으로 바람을 막았다.

그때.

“돌아가라.”

마기로 된 폭풍이 그치고 모습을 보인 건 몸이 검게 물든 한 인간 남자였다.

“너희의 방주. 아크는 죽었다.”

김진석. 그가 최후의 승자였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그걸 알아챈 지구의 세피드가 뒤도 보지 않고 바로 창을 던졌다.

쾅!

“보내준다고 할 때 곱게 가. 뒤지기 싫으면.”

마엔이 어느새 부들거리는 김진석의 손에서 자신의 단검을 다시 채가 세피드의 창을 쳐냈다. 그러나 마엔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짜 보내줄 거예요? 아버지?”

다 잡은 물고기였다. 그들을 놓아주다니.

그들 전부 대악마다. 한 명만 살아있어도 위험한 놈들인데 그들 전부를 돌려보낸다니. 마엔은 아버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크가 사라진 이상 그의 대악마들은 이젠 조금이라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왜.

“한빈혁 디렉터 님에게 들었다. 애초에 우리는 싸울 필요가 없었다.”

악마의 방주. 아크가 실상 만악의 근원이었다.

악마들이 로스트 월드를 침공한 건 마기가 악마조차도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짙었기에 새로운 세계를 찾으러 간 곳이 바로 로스트 월드였던 것이다.

그러나 로스트 월드도 인간과의 싸움이 너무나도 길어진 탓에 로스트 월드에도 마기가 가득 담겨 있었고 결국 또 새로운 세계를 찾은 게 바로 여기. 지구였다.

그 마기에서 태어난 게 바로 아크였다.

그러나 한빈혁 디렉터에게 들은 이야기는 조금 달랐다. 악마의 방주 아크는 악마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자다. 하지만 김진석이 상대해 본 아크는 악마의 천적과도 같은 자였다.

왜. 악마의 방주라는 자가 왜 악마의 천적과도 같은 힘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아크가 모든 만악의 근원이었다.

아크로 인해 마기가 더욱 증폭되었고 짙어졌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결국 악마들이 새로운 세계를 침공하고 빼앗기 위해 간 이유도 전부 아크 때문이란 거다.

그 아크가 지금. 사라졌다.

“믿을 수 없겠지. 하지만 사실이다. 너희의 아버지와도 같은 자가 말한 것이니.”

그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 상관없었다.

마엔의 말대로. 죽기 싫다면 따라야 할 것이다.

“…만약 그 말이 거짓이라면…….”

“어쩔 건데. 올 거면 다시 와 보든가.”

그녀의 말은 거칠었지만 사실이었다.

이제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김진석의 뒤로. 대악마 넷과 마엔. 그리고 지상에서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카이. 심지어 마족과 몬스터들을 전부 정리하고 이곳을 지켜보는 인간들까지. 단순 전력으로도 악마가 인간에게 밀리고 있었다.

“돌아가라. 너희의 세계로.”

더는 싸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 * *

악마들이 본인들이 세계로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자마자 김진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쓰러졌다. 지금까지 버티었다는 것이 대단한 수준이었다. 온몸이 이미 마기에 잠식되어 있었다. 재생으로도 치유되지 않았다.

김진석의 대악마들조차도 지금의 김진석이 악마와 같이 느껴진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그의 몸에 자신들과 비슷할 정도의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비네!”

넬이 김진석의 상태를 보고 급히 비네를 불렀다.

대악마들 중에서 마기를 가장 잘 다루는 건 비네였다. 아무리 넬이라도 비네의 세심한 마기를 컨트롤하는 방법은 따라갈 수 없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그에게 맡겨야 해.”

하지만 그런 비네도 방법이 없는 건 똑같았다.

마기가 완벽히 김진석의 몸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걸 빼내는 건 다른 대악마의 몸에서 마기를 강제로 빼앗는 것과 똑같았다. 그게 가능했으면 아마 비네가 대악마 중 가장 강했을 것이다.

“비켜.”

그러나 마엔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유리병. 그 안에서 느껴졌던 기운이 저 아래. 지상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마엔은 비네와 넬을 밀쳐내 김진석에게 다가가 그를 안고 지상으로 향해 날아갔다. 카이의 옆. 한 여성의 곁으로.

* * *

성녀. 엘리자베스는 여전히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여러 플레이어를 치료하던 도중 갑자기 몸이 어디론가 끌려갔다. 뭔가에 잡힌 것처럼 저항조차 하지 못한 채 끌려갔다.

그렇게 전장의 한구석에서 멈춘 엘리자베스의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연기와도 같은 로브를 입은 미남자. 그리고 김진석 플레이어를 아버지라 부른 자. 영웅 카이.

“아버지가 그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네?”

그 말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카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하늘에선 김진석 플레이어와 엄청난 악의가 느껴지는 괴물과 싸우고 있었다.

악. 성녀인 자신과 상반되는 기운. 그 기운에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저 싸움에 직접 낄 수 있는 자는 없다시피 했다. 그녀도 마찬가지.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눈앞의 영웅. 카이의 활에 자신의 기운을 심어주는 것.

그렇게 하늘에서 엄청난 악의가 느껴지는 괴물이 사라지고. 그녀는 자신이 할 일은 끝난 줄 알았다.

“아버지를 구해줘!”

카이와 같은 영웅. 아름다운 녹색 원피스와 등에 난 요정 날개를 가진 여성. 마엔이 기절한 김진석 플레이어를 안고 날아왔다.

엘리자베스는 상황을 깨닫고 급히 김진석 플레이어를 확인했다.

김진석의 몸은 대부분 마기에 잠식되어 있었다. 온몸에 검은색 힘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눈엔 또 다른 거대한 악의가 눈앞에서 태어날 것만 같았다.

그래선 안 됐다. 눈앞의 플레이어는 지구의 희망이나 다름없는 자다. 그를 괴물로 만들 순 없었다.

그녀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위 치유 스킬.

“세인트 리커버리.”

게임 속에선 가진 모든 마나를 사용하여 대상의 생명력을 회복하는 스킬. 죽지만 않는다면 모든 대상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알려진 스킬이었지만 엘리자베스가 가진 마나로는 김진석을 완벽히 회복시키는 데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피부가 돌아왔다.”

김진석의 몸에 잠식된 마기가 전부 사라졌다. 피부색이 돌아왔다.

엘리자베스는 그 모습에 한시름 놓았다. 지금 그녀의 옆엔 대악마들과 영웅들이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부담감 백배였다. 긴장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다행히 그녀의 치료 스킬은 김진석에게 통했다.

피부색이 정상으로 돌아온 김진석이었지만 그는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크와 수십 시간을 전력으로 싸웠다.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사람이라면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기어이 살아남으셨군요.”

“…무슨?!”

대악마들과 영웅들이 모인 자리다. 그런데 그 누구도 뒤에 누가 다가올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단탈리온!”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알려진 악마. 단탈리온이 그들의 앞에 등장했다.

카이와 마엔 또한 단탈리온에 대해 알고 있었다. 게이트를 다루는 악마. 그리고 모든 사단의 근원인 악마였다.

대악마들과 영웅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자리에 나타났다. 그들이 전투태세를 취하건 말건 관심 없었다.

“그에게 전해라. 축하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과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기 전.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대의 선택으로 인해. 지구엔 마기가 퍼졌다. 그것도 극히 짙은 농도의 마기가. 주변을 봐라.”

대악마들과 인간 영웅들은 단탈리온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몬스터와 인간의 전쟁으로 인해 황폐화가 된 지금. 말라붙은 피로 인해 대지가 검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단탈리온이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

“…식물들이 죽고 있다.”

그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아 굳건히 버티고 있던 지구의 식물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지구에 퍼진 마기로 인해.

언제 어디서 악마가 태어나도 무방할 정도의 마기가. 지구 전체로 퍼져나갔다. 김진석이 마기 그 자체인 아크를 죽였기 때문에.

“인간들은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 지구에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저들처럼 다른 세계를 침략할 것인지.”

“…설마.”

지구에 게이트를 통해 들어온 몬스터들. 사실 몬스터들도 멸망한 자기들의 세계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지구로 온 것이었다.

결국 몬스터들도. 지구의 인간들과 같은 처지였던 것이다.

카이와 마엔은 알지 못했던 사실이다.

하지만 대악마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

“도망쳐라. 단탈리온.”

김진석이 깨어났다.

“지금의 내 몸이 좋지 않다면 네가 나타나지 않았겠지. 그러니 도망가라. 버러지 같이.”

대악마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김진석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크만 죽이면. 단탈리온이 준비한 모든 수가 끝나 해방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아크를 죽이는 건 자충수였다. 그를 어떻게든 살려두었어야 했다. 허나 그건 아크가 허락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김진석도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김진석은 그 말과 동시에 단탈리온의 목을 베었다.

너무나도 허무하게 잘려나가는 단탈리온의 목. 하지만 단탈리온의 몸에서 떨어져 나간 목은 여전히 웃으며 말하고 있었다.

“대단하시군요. 저를 죽일 참입니까? 세상 그 누구도 행하지 못한 일을?”

단탈리온의 세상은 지구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세계를 돌아다니고 그 세계에 관여한 단탈리온이다. 어쩌면 김진석보다 더 강한 자도 있는 세계가 있을 수도 있었다.

“세상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너도.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지.”

“…뭐죠.”

빛으로 변해 사라지고 있는 와중에도 웃으며 말하는 단탈리온이었지만 김진석의 말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모든 지식을 알고 있는 자신이 간과한 것이라니. 그게 무엇이지?

“결국 너조차도 창조된 생명체란 것을.”

단탈리온. 그 또한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인물이다.

즉 한빈혁 디렉터가 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흔하나의 목숨을 가진 악마여. 지금까지 몇 번. 혹은 한 번도 죽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전부 찾아서 죽여주마. 그러니 도망쳐봐라. 버러지 같은 악마여.”

“…….”

그 또한 대악마다. 꽤나 힘을 가졌겠지만 김진석이 보기엔 말 그대로 버러지와도 같은 힘이었다.

단탈리온은 반박하지 못한 채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김진석은 누가 봐도 다 죽어가는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리서 노라와 다이아, 세라스를 비롯한 제이다와 루크 등. 김진석과 관계를 맺은 자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지만 그들과 해후를 나눌 새는 없었다.

“엘리자베스 씨.”

“네… 네?”

전혀 자신에게 말을 걸 줄 몰랐던 엘리자베스는 깜짝 놀랐다.

“지구의 마기를 정화해주십시오. 당신이 지구를 살릴 마지막 희망입니다.”

그 아크의 마기를 몰아낼 수 있는 건 성녀 엘리자베스뿐이었다.

“…그럼 당신은?”

“떠날 겁니다. 단탈리온을 잡기 위해서.”

김진석은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노라와 다이아. 세라스를 바라봤다. 그의 은인과도 같은 이들이었다. 그녀들이 죽는 건 원하지 않았다.

“저희도 따라가도 되죠?!”

마엔의 말에 피식 웃은 김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우리는 다른 세계를 돌아다니며. 단탈리온을 찾아 죽인다. 그게 몇 번이고 몇 년이고 걸려도 상관없다.”

그 말과 동시에. 김진석과 대악마들. 그리고 영웅들의 인영이 사라졌다.

* * *

“야 이 개자식아! 또 사라지려고 하지?!”

노라는 멀리서 달려가면서 뭔가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들어맞았다. 김진석의 인영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멀리서 사라지기 직전. 김진석의 입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뭘 기다리라는 거야.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리라고…?”

그녀의 목소리는 김진석이 사라지고 난 지금. 허망하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지구는 성녀. 엘리자베스의 노력으로 간신히 작지만 마기가 없는 청정구역을 만들 수 있었다. 다른 여러 세계에서 온 이들과 합심해 이룰 수 있는 조그마한 기적이었다.

마기에 강한 특정 몬스터들은 여전히 지구를 침략하려 하고 있었고 인간들을 찾아 죽이려고 했지만 인간들도 만만치 않았다.

사실 놈들만 아니었다면 지구의 절반 이상은 엘리자베스가 정화했을 것이다.

최정예 플레이어들과 노라와 다이아. 세라스와 아서왕을 비롯한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은 꿋꿋이 견뎌 나갔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그래. 개자식아.”

노라가 혼자서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는 지금.

그녀의 눈앞에 김진석이 모든 볼일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등 뒤로.

바포메트, 비네, 세피드, 넬. 대악마 넷과.

영웅 카이. 마엔이 모습을 보였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꽤나 늙어버린 김진석의 모습이었지만 그 예전의 돌보다도 단단할 것 같은 탄탄한 근육질을 되찾은 김진석이 지구로 돌아왔다.

노라는 그를 보자마자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삐져나오는 걸 몰래 삼켰다.

“…다 죽였어?”

“예. 전부.”

노라도 알고 있었다. 김진석이 왜 떠났는지.

하지만 이제는. 그가 떠날 일은 더는 없었다.

“끝입니다. 더는 몬스터들이 지구를 침략할 일도 없을 겁니다.”

단탈리온이 완벽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가 없는 지금 새로운 게이트가 열릴 일은 없었다.

김진석은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과거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는 노라를 바라봤다.

“…강해지셨군요.”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어.”

[노라 LV:99]

그녀의 레벨은 김진석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껏 기대됐다.

“다른 이들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그렇게 말하며. 김진석은 인벤토리에서 광폭한자의 대검을 꺼냈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군. 청소를 시작하자.”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악마. 바포메트와 비네. 넬과 세피드가 날개를 펼쳐 날아갔고. 로스트 월드의 영웅. 카이와 마엔이 몬스터를 향해 달려나갔다.

“같이 가시겠습니까?”

이제는 중후한 목소리. 젊은 남성의 목소리에서 벗어나 늙은 김진석의 목소리였다.

그에 노라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야 너랑 같이 가보는구나?”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피식 웃음과 동시에. 눈앞의 몬스터를 향해 달려나갔다.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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