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99화 (199/201)

199화

“어딜 도망가나?! 아크!”

마엔의 눈엔 김진석이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곧바로 나는 건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헤르메스의 신발에는 숨겨진 옵션이 있었다.

바로 하늘에 서 있을 수 있는 것.

김진석은 그 능력을 하늘에 발을 딛는 데 사용했다. 그는 날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하늘을 내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크는 김진석이 하늘을 달리면서 오는 모습을 보고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질린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인간이 맞나?”

또다시 바포메트와 같은 발록의 모습으로 변한 아크는 김진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마기로 된 거대한 채찍이 김진석을 휘감아왔다. 순식간에 눈앞까지 다가온 채찍은 마치 용이 되지 못해 독이 바싹 오른 이무기가 덮쳐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김진석은 이무기에게 잡아먹힐 한낱 미물이 아니었다.

김진석은 하늘에서 배면뛰기의 자세를 취하며 채찍을 뛰어넘음과 동시에 허공에 착지하며 날아가듯 달려갔다.

그런데 그 채찍은 갑자기 자잘해진 가루로 분해되며 그 분해낸 조각 하나하나가 전부 까마귀로 변하며 김진석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김진석은 그 까마귀들을 보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바라봤다.

까마귀가 김진석이 코앞까지 당도한 순간.

“…아버지 기준에 좀 맞추지 마세요!”

수십여 개의 단검이 까마귀들을 갈랐다.

마엔이 비틀거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단검들은 정확히 까마귀를 향해 날아갔다.

하지만 아크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발록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 아크의 염소와 같은 얼굴에서 브레스를 뿜어냈다. 마기로 된 브레스는 극도로 짙은 농도로 인해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있었다.

기괴한 모습이었다.

아크는 브레스를 김진석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다. 즉 새로 태어난 마기의 생명체들은 브레스에 다시 죽어 나갔다. 생명이 태어나고 동시에 죽어 나가는 기괴한 모습을 가진 브레스가 지금 김진석을 노리고 있었다.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으니깐.

문제는 마엔이었다.

“…응?”

비틀거리며 날아오는 마엔은 도저히 브레스를 피할 수 있을 거라고 보이지 않았다. 김진석은 마엔에게 곧바로 달려가 그녀를 안으며 동시에 옆으로 돌아 피했다.

“죄송…”

“그럴 새 없어. 맞으면 죽는 거야. 그거 하나만 생각해.”

마엔은 계속해서 방해되는 것에 죄송스러웠지만 김진석은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마엔과 카이는 아크를 상대해본 적 없는 이들이다.

설령 그의 대악마들이라도 아크를 상대할 땐 고전할 테니.

아크를 상대할 땐 별다른 걸 생각할 게 없었다.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됐다. 그뿐이다.

긴장을 놓을 새도, 한가로이 말할 새도 없었다.

김진석은 곧바로 아크에게 달려갔다. 마엔은 그의 등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검게 물들어 있었다. 마기에 잠식된 것이다. 그녀를 안고 피하느라 등에 브레스가 스친 것이다.

고작 스친 것만으로는 재생으로 금방 치유되었지만 그녀 때문에 아버지가 다친 게 중요했다.

그때. 까마귀가 마엔을 향해 달려들었다.

물론 까마귀에 당할 그녀가 아니었다.

마엔은 맨손으로 까마귀를 잡았다. 하지만 마기로 된 까마귀다. 맨손으로 잡기엔 위험이 있는 놈이다. 그 증거로 그녀의 손이 마기에 검게 잠식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줘 터트려 죽여버렸다.

“아프네…”

고작 손만 마기에 잠식된 것뿐인데 고통이 상당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는 등 전체가 마기에 잠식되어 있었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마엔은 손의 고통을 기억했다. 아버지는 지구에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아크를 생각해왔다. 염원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염원을 들어주진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 않겠는가.

“…진심으로 간다.”

그 말과 동시에 그녀의 모습이 하늘에서 사라졌다.

* * *

“흠?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인데.”

아크의 모습은 돌덩어리와 같은 근육질의 몸에 김진석의 두 배는 될 법한 거인이 자기보다 더 큰 대검을 들고 있었다.

그래도 김진석과 비슷한 크기로 최대한 크기를 줄인 아크였다. 등의 날개 또한 없었다.

아크는 거대한 대검을 그대로 김진석을 향해 내리쳤다.

건물이 무너져 오는 것 같은 모습.

김진석은 리딜을 손에서 떼어낸 채 양손으로 모글레이를 들고 적어도 그의 4배는 되는 거대한 대검을 휘둘러 쳐냈다.

“생각보다 가벼운데.”

“…역시 따라 하는 건 별로인 것 같군.”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김진석을 따라 한 아크였으니깐.

하지만 아크는 검을 쥐는 법도 모르고 휘두르는데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도 잘 몰랐으니 고작 따라 하는 것만으로는 김진석을 이길 순 없었다.

당연했다. 검을 생전 처음 쥐어보는 것인데 오로지 신체 능력 가지고 김진석을 이긴다는 건 불가능했다.

나름 그가 준비한 비장의 수였지만 가볍게 쳐내는 김진석의 모습을 보자니 맥이 빠졌다. 아크는 곧바로 모습을 바꿨다.

온몸에 기괴하게 난 촉수들과 근육질 가득한 몸. 팔의 길이가 길며 다리는 비교적 짧았지만 몸에 비하면 짧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팔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었을 뿐.

비교하자면 고릴라와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촉수들과 팔 길이가 차이점이었다.

처음 보는 형태. 촉수가 몸에 달라붙어 파고드는 듯했다. 마치 촉수가 고릴라의 몸에 기생해 기이하게 변한 모습 같았다.

“멋진데?”

저 손에 붙잡히는 순간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했다.

거인의 모습도 그렇고 지금의 모습도 그렇고 날개는 없었는데도 김진석과 마찬가지로 하늘에 서 있었다.

마기 자체인 아크는 날개 따위는 없어도 날아다니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크는 그 거대한 팔을 휘둘러 김진석을 향해 내려쳤다.

하늘을 전부 가리는 그 팔은 어둠이 내려오는 것 같았다.

김진석은 모글레이를 하늘로 휘둘러 그 어둠을 잘라내고 곧바로 아크를 향해 허공을 박찼다. 하지만 촉수가 그를 방해했다.

잘려 나온 팔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김진석의 몸에 달라붙었다.

기이하고도 역겨운 그 느낌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개의치 않고 아크를 향해 달려가려는 순간 어느새 마엔이 다가와 김진석의 몸에 붙은 촉수를 맨손으로 떼어내었다.

“몸 사리지 않는 건 키잔이랑 똑같네요. 아니 키잔이 아버지를 닮은 건가?”

김진석은 마엔을 쳐다봤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아크에 몰두해 있었다고 한들 마엔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내 팔을 잘라냈을 때 그 스킬인가?”

“…네.”

그 김진석이 팔이 잘린 적이 있었다. 바로 마엔에게.

카이의 화살조차 맨몸으로 피하는 김진석이 마엔을 감지하지 못했었다. 바로 그녀의 스킬, 궁극기 때문에.

김진석이 게임 캐릭터. 마엔을 키운 이유는 간단했다. 카이와 비슷하게 단검을 다루긴 하지만 단검이 주력 무기였기에. 그리고 PVP(Player versus Player). 서로 다른 플레이어끼리의 싸움에서 좋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직업. 도적이 PVP에서 좋은 이유 중 하나가 은신에 능한 캐릭터였으니. 심지어 궁극기 또한 은신에 관련되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엔이 들리는 목소리의 방향을 듣고 고개를 돌렸을 뿐. 그곳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절대 은신. 그녀가 공격하기 전에는 풀리지 않는 은신이다.

“네가 관건이다. 원래는 내가 집적 사용하려 했는데 경계심이 워낙 심해서 말이지. 신호를 줄 테니 던져.”

김진석은 인벤토리에서 유리병을 꺼내 마엔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 던졌다. 그대로 유리병은 허공에서 자취를 감췄다.

동시에 뻗어오는 촉수를 김진석은 모글레이로 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뭔지는 설명해 주셔야죠. 키잔과 똑같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 * *

인간들은 전보다 훨씬 여유롭게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 악마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건가?”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늘에서 똑같이 생긴 대악마끼리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도울 순 없었다.

저 싸움에 낄 엄두도 나지 않을뿐더러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었다. 한쪽이 밀리고 있다는 것을.

악마의 방주. 거대한 칠흑의 드래곤 아크의 등장은 전부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김진석으로 추정되는 자와 싸우고 있다는 것을.

김진석이 어떻게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덕분에 저 괴물이 이곳까지 당도하지 않았다.

문제는 대악마다.

저 괴물의 등장으로 대악마의 힘이 무척이나 올랐다. 단지 그가 지구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지구에 마기 농도가 극히 짙어졌다.

다행히 하늘에서 싸우고 있었지만 그 근처만 가도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문제는 김진석의 대악마들이다.

“왜 그러지?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큭!”

김진석의 세피드가 지구의 세피드에게 힘으로 밀렸다.

세피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바포메트와 비네. 전보다 힘이 배는 가까이 강해진 넬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기. 대악마들의 힘의 원천인 마기를 억제하고 있다 보니 밀리는 건 당연했다.

“하… 힘드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반 죽여놓을 걸 그랬나 봐.”

특히 비네와 넬이 가장 힘들었다.

그녀들은 신체 능력이 아닌 마기를 주로 사용하여 싸우는 대악마다. 그런 마기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구의 대악마들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악마의 방주. 아크가 뿜어내는 마기는 그들을 더욱 강하게 했고 그들이 마기를 사용하면 그게 아크를 강하게 하는 수순이 반복되었다.

“웃기네. 인간을 걱정하는 꼴이라니.”

“그 아크와 싸우다니. 대단한 인간이지만 결국엔 인간이다.”

지구의 비네와 바포메트가 말했다.

그들은 분하지만 알았다. 자신들은 눈앞의 자신들보다 약하다. 그나마 똑같은 자신이라 그런 걸까. 금방 인정하고 곧바로 계획을 바꿨다.

저들이 힘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힘은 아크에게 돌아간다.

아크가 돌아온 순간. 모든 것은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해본 적 없는 일이었지만 지구의 대악마들은 눈앞의 자신들을 도발했다. 하지만 그들도 쉽게 넘어가진 않았다.

“안타깝네. 대악마가 다른 악마를 의지하는 꼴이라니.”

“대악마의 위는 뭐 대대악마야?”

비네는 똑같은 말투로 받아쳤고 넬은 비꼬면서 말했다.

그러나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힘이 점점 부치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적어도 그들에겐 없었다.

그때였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가?!”

검은 연기와도 같은 남자가 대악마. 김진석의 대악마들에게 말했다.

“내 아버지께선 악마들에게 걱정 당할 정도로 나약한 자가 아니다!”

김진석의 대악마들조차도 잘 모르는 그의 자식과도 같은 남자. 그리고 그들과 비슷한 힘을 가진 유일한 인간. 카이가 소리쳤다.

“너희들이 진심으로 내 아버지를 걱정하면! 온 힘을 다해라!”

원래 카이는 성격상 조용조용히 말하는 남자였다. 화가 났을 때도 기분이 좋을 때도 크게 표현하지 않았다. 저렇게 목소리를 크게 내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 카이는 키잔을 생각했다.

아마 키잔이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하늘 높이 올라가 아버지를 도울 수 없는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김진석이 지키고 싶어 하는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선 그의 대악마들이 필요했다.

“하. 인간에게 얻어맞을 줄은 몰랐네.”

넬은 카이의 말에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냐… 라. 맞는 말이네. 우리가 누굴 걱정하고 있는 거지?”

김진석의 대악마들은 넬의 말에 피식 웃었다. 생각해보니 어이가 없던 것이다.

“그러네. 그에게 죽고 종속되었으면서.”

“그는 우리보다 한참 약했다. 하지만 우리가 죽었지.”

“지금은 우리보다 강하다. 지금 그의 힘은 우리가 측정할 수 없어.”

비네와 바포메트. 세피드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들이 걱정하는 존재는. 그들보다 훨씬 강한 존재였다.

“가자.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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