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김진석이 앞으로 달려가는 동시에 그의 곁으로 마엔이 따라붙었고 카이는 뒤로 뛰었다.
세피드를 상대할 땐 불가피하게 카이가 붙어서 싸웠지만 그의 진가는 당연히 활을 사용한 원거리 공격에서 나왔다.
따로 짠 것도 아니었지만 카이와 마엔. 그리고 김진석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급습.”
김진석은 리딜과 모글레이를 들고 도적 스킬. 마엔의 스킬을 사용했다. 마엔은 그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같은 스킬을 사용했다.
“급습!”
이름 그대로의 빛과 같은 속도로 상대를 습격하는 스킬인 급습을 동시에 사용한 김진석과 마엔의 단검은 나란히 아크에게 날아가듯 향했다.
“크아악!”
아크는 비늘에 뒤덮인 손으로 그들의 공격을 막으며 비명을 질렀다.
“…응?”
“방심하지마!”
그 모습에 마엔이 고개를 기울이며 의문을 가질 때 김진석이 급히 그녀를 당겼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목을 스쳐 지나가는 검은색 무언가가 있었다.
마기. 자의를 가진 마기가 그녀를 공격했다.
아크는 그들의 공격에 비명을 내지른 게 아니었다. 반동이었다.
그가 드래곤으로 변하기 위한 고통의 반동.
우드득.
뼈가 부러지고 다시 조립되며 나는 소리. 몸에 비늘이 일어나며 등에서 날개가 솟아났다. 고작 조그마한 인간의 몸에서 거대한 드래곤의 몸으로 변하기까지 고작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
“호들갑 떨지 마. 더한 상처도 너한테 입은 적이 있었는데 말이야.”
김진석 나름대로 상황을 풀기 위해 농담을 한 것이었지만 마엔에겐 아니었다. 애초에 팔을 잘라낸 게 마엔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마엔을 구하러 잡아당긴 김진석의 오른손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다. 고작 널려있는 마기에 그리 심한 상처를 입은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는 금방 재생되었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확실해. 더 강해졌다.”
처음 아크를 보았을 땐 30M에 다다르는 거대한 용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3배는 더 커졌군.”
가히 100M에 다다르는 모습.
마기 그 자체인 아크에게서 크기란 그의 힘을 대변하기도 했다. 단순 계산으로 그때보다 3배는 더 강하다고 보였지만 실질적인 힘은 직접 알아봐야겠지.
그러나 저 몸집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원래 아크는 그 거대한 몸을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마기 그 자체인 몸을 움직이는데 많은 마기가 드는 것 같았다. 손해가 크다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아니었다.
“뭔 놈의 바람이…”
그 거구가 날고 있었다.
가히 장관이었다. 100M에 다다르는 거구가 묵직하게 나는 모습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처음 보는 거대한 괴물의 모습이었지만 그들이 고작 거대한 몬스터라고 두려워할 이들이 아니었다.
“카이! 피막을 노려라!”
그 말과 동시에 카이의 화살이 등 뒤에서 날아왔다.
그의 원호를 받으며 김진석과 마엔은 날아오른 아크를 향해 달려갔다. 그 거구인 만큼 날아오르는 속도는 느렸고 김진석과 마엔은 놈의 발에 올라탔다.
물론 아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 거구를 조금만 움직여도 김진석과 마엔을 떨어뜨리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때 날아오는 카이의 화살.
빛과 같이 날아오는 화살은 거구의 아크가 피하긴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직접 피할 필욘 없었다. 마기가 알아서 날아오는 화살을 막아주었으니.
그런데 그 화살은 충분히 위협적이었고 아크의 시선이 아주 잠깐이라도 돌아가기 충분했다.
그사이에 김진석과 마엔이 스킬까지 사용하며 아크의 발에 올라탔다. 위험했다. 이대로 올라오게 내버려 둔다면 분명 죽는다.
아크는 모습을 바꿨다.
“호오.”
그 모습은 김진석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가상 현실 속에서도 본 적 없는 아크의 새로운 능력이었다.
서양 용의 모습인 아크에겐 발에 달라붙은 김진석과 마엔을 떼어낼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면 모습을 바꾸면 됐다.
염소의 다리와 얼굴. 그 위에 거대한 뿔과 기다란 손. 근육질 몸매와 변하지 않은 용의 날개. 날개를 제외하고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바포메트와 같은 모습이군.”
하지만 크기는 최소 50M 이상이었다. 말 그대로 대(大) 악마였다.
게다가 바포메트와 똑같이 채찍을 다뤘지만 불로 된 바포메트의 채찍과 다르게 아크의 채찍은 마기로 된 채찍이었다.
모습이 변하자마자 곧바로 마기로 된 채찍으로 카이와 마엔에게 휘둘렀다.
정직한 그 공격은 피하기 쉬웠지만 그 뒤로 이어진 마기가 주인의 의지를 알아차리고 카이와 마엔을 공격하는 것이 아닌 방패와 같이 넓게 펼쳐 둘을 밀어냈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벌일 수 있는 기행이었다.
하지만 김진석 또한 순순히 떨어지지 않았고 마지막 떨어지는 순간까지 모글레이를 이젠 비늘이 아닌 가죽에 박아넣으며 내려왔다.
물론 고작 그 정도 상처는 아크에겐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채찍으로 둘을 떼어낸 아크는 또다시 모습이 변화했다. 그런데 이번 모습은 특별할 것 없는 새의 모습이었다. 크기는 30M가 넘어갔지만 그저 평범한 새였다.
아크는 새의 모습으로 하늘을 유영했다.
김진석은 자기가 제대로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는 수작인 줄 알았다. 그때. 아크에게서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새의 깃털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이건?”
마엔이 떨어지는 검은 깃털을 손에 올리려는 순간. 김진석이 그녀의 손을 붙잡아 뺐다.
“주변 건물을 봐라.”
그녀는 아버지의 말에 건물을 바라봤다.
당연히 그녀들보다 조금 더 하늘에 닿아있던 주변 건물이 깃털에 먼저 닿았다. 그저 검은 깃털이 건물에 닿았을 뿐인데 건물 전체가 검게 부식되었다.
녹슬어 부식된 게 아니다. 마기에 잠식된 것이다. 고작 깃털 하나에.
건물을 볼 필요도 없었다. 마엔의 바로 아래. 그녀가 놓친 깃털이 땅에 닿음과 동시에 검게 변한 땅을 볼 수 있었으니깐.
고작 아크가 지구에 나타난 것만으로도 마기에 항마력이 없는 몬스터들이 마기에 잠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저 깃털이 몬스터에 직접 닿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대악마들과 오랫동안 함께 다니며 마기에 익숙해진 김진석조차 저 깃털에 담긴 마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저것이 인간의 몸에 닿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말 수단을 가리지 않는군?”
거대한 마기로 된 새로 변한 아크는 하늘을 여전히 유영하고 있었다.
깃털이 흩날리고 있었다.
아크는 방심하지 않았다. 아무리 전보다 강해졌다고 한들 김진석과의 정면승부는 피했다. 가슴이 뻥 뚫린 그때 그 상처에서 바람이 아직도 통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자신은 악마의 방주. 악마를 지키기 위해 태어난 악마다. 그런 그의 대적자라면 아마 그가. 인간의 방주와 같은 역할을 하겠지.
마기의 깃털이 흩날리는 건 그에게 매우 곤란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아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군.”
김진석은 인간의 방주 같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다. 인간들을 지킨 건 인간은 인간 사이에서 살아가야 하기에. 그저 그 이유 하나 때문이다.
인간들이 죽는다고 한들 김진석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김진석은 아크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일반인들은 마기에 저항력 따윈 없어서 깃털에 닿는 순간 죽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달랐다.
지금 전장에 있는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최정예 플레이어들이었다. 게다가 대악마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에서 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기에 대한 저항력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마기의 깃털에 닿는 순간. 그들이 악마라고 변한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의 마기가 저 깃털 안에 들어있었다.
즉 아크는 물불 가리지 않고 오로지 김진석을 죽이기 위해 모든 것을 이용하고 하는 것이다. 악마들이 한낱 벌레처럼 생각한 인간들의 힘까지.
그 모습이 김진석은 마음에 들었다.
“…광기에 잠식되지 않은 거 맞아요?”
마엔은 아버지를 보고 키잔이 투영되어 보였다.
그녀의 걱정을 본 김진석은 피식 웃었다.
“깃털에 닿지 않게 조심해. 자의는 가지지 않은 것 같지만 마기의 양이 심상치 않아. 우리라도 위험할 수 있다.”
“네… 그런데 저걸 어떻게 잡죠?”
마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이제는 거의 보이지도 않을 만큼 하늘로 올라가 깃털을 흩날리고 있었다. 카이의 화살도 저 정도 거리면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오긴 힘들어 보였다.
“날개도 뜯어낸 건 아쉽네.”
김진석도 저 아크를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아크의 모습에 키잔과의 동기화율을 줄이기 위해 몸에 실험한 모든 것을 없앤 게 괜히 후회됐다. 날개만은 남겨둘걸.
그때였다.
“김진석 플레이어!”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포탈이 생김과 동시에 한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그는 한 번이지만 본 기억이 있는 남자였다. 특이한 능력을 가진. 레어마켓의 심부름꾼. A급 플레이어 딜런이었다.
“한빈혁 CEO께서 주는 선물입니다!”
로스트 월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자. 한빈혁 디렉터. 이제는 CEO가 된 그가 김진석을 위해 선물을 준비했다.
잠깐 포탈을 열었을 뿐인데도 그의 피부가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마기에 잠식되는 것이다. 그는 포탈 속에서 급히 무언가를 던지고 포탈을 지웠다.
날아오는 무언가를 김진석은 확인했다.
[요정의 날개]
[헤르메스의 신발]
설명을 볼 필요도 없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아이템인 건 분명했으니.
요정의 날개는 여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한빈혁은 악마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연인으로 알려진 넬을 위해서 만든 아이템이었고 헤르메스의 신발은 김진석을 위함이었다.
비록 넬은 지금 여기 없었지만 마엔이 있었다.
“이거 입어. 지금 네 모습 심하게 부담스럽다.”
마엔이 지금 입고 있는 붉은색 원피스는 안 그래도 노출이 심했는데 찢어지고 파여서 눈 둘 데가 없었다.
김진석은 초록색 원피스인 요정의 날개를 그녀에게 던져주었고 그 자신은 가죽으로 된, 끝에 날개가 달린 신발을 신었다.
그 뒤로 카이가 그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김진석은 말했다.
“카이. 인간들에게 깃털에 대한 주의를 알려주고 곧바로 따라붙어라.”
쉽진 않을 것이다.
날개를 날 때부터 가지고 있던 자와 아이템으로 얻은 그들의 차이는 어린아이와 어른보다 더 큰 차이가 있을 테니.
“어떻게든 끌어 내려주마.”
하지만 김진석은 믿었다.
마엔과 카이를.
땅바닥에 발을 툭툭차며 몸을 푼 김진석은 곧바로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몸의 중심이 등에 있었던 전과 달리 지금은 발에 있어 중심을 잡기 어려웠지만 단 한 번 하늘을 향해 박차고 뛴 것만으로도 익숙해졌다.
“아니… 진짜 우리 아버지긴 한데 괴물이네.”
마엔은 초록색 원피스를 입자 곧바로 등에서 자라난 요정의 날개를 휘저으며 날아가려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네가 해볼래?”
“…나보고 원피스를 입으라고?”
그 말과 동시에 카이는 인간들에게 향했다.
“…에이씨.”
떠나간 카이의 빈자리를 허망하게 바라본 마엔은 곧바로 아버지를 향해 날아갔다.
비틀거리긴 했지만 어떻게든 그의 등을 따라 날아갔다.
“좀 같이 가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