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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95화 (195/201)

195화

“대 악마?”

펜드래건이 물었다.

“혼자서도 이 세상을 점령할 수 있는 게 바로 대 악마다. 지금 둘은 그나마 영웅들께서 막아주고 계시지만…….”

“영웅들?”

하나같이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펜드래건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 전장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강대한 기운들이 계속해서 부딪치고 있었다. 설령 그녀의 보구를 꺼낸다고 한들 상대할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의 기운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아마 저 여성이 말한 대 악마와 영웅들이 강대한 기운들의 주인이겠지.

“그런데 영웅 중 가장 강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즉 영웅들이 언제 밀릴지 모른다는 뜻이지. 그전에 우리가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

세라스의 얘기는 그러했다.

영웅들이 대 악마들을 상대할 동안 최대한 빨리 몬스터들을 죽이고 그들을 도와야 한다고. 그러나 펜드래건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몇몇 인물들을 제외하곤 그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는데.”

사실이었다.

저 강대한 기운들의 싸움이었다. 함부로 그사이에 끼다간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게 어떤 말인지 몸소 겪어보게 될 것이다.

“상관없다. 그들이 이기지 못하면 결국 인간은 멸망할 테니깐.”

세라스의 말엔 확신이 있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펜드래건의 말에 세라스 대신 제이다가 말했다.

“그들의 세계가 저들에게 멸망했으니깐요.”

“…….”

이미 겪어본 이들이다. 더 할 말은 없다.

펜드래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돕겠…….”

“어? 저건…?”

펜드래건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한 나라의 왕과 한 세계의 지도자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든 여성의 목소리에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 이지현의 신경은 한곳에 쏠려있었다. 그에 펜드래건 또한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전장의 한가운데. 한 남자의 인영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남자의 모습은 전장에 어울리지 않게 비쩍 말라 있었다. 하지만 이지현의 얼굴엔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펜드래건도 그를 바라봤지만 그에게서 무언가가 느껴지지 않았다. 한낱 일반인과 다름없는 존재란 소리였다. 그런데 그녀는 도대체 어디서 희망을 느낀 것일까.

게다가 저 남자를 본 이 세계의 지도자조차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한시름 놓겠네요. 이 사이에 정비를 마치죠,”

“저자가 대체 누구길래…….”

펜드래건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전황은 너무나도 좋지 못했다. 영웅들은 대 악마들에게 묶여 있었고 몬스터들은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고작 사람 하나 추가된다고 어떻게 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고작 사람 하나가 아니었다.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자입니다.”

그녀의 곁에 있는 멀린이 그녀에게 몰래 속삭였다. 고작 그 말이 펜드래건에게 와닿진 않았다. 설령 영웅이라고 불린 이가 하나 더 나타났다고 한들 바뀌는 건 없을 테니.

“그리고 그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 * *

“이게 무슨…?”

로스트 월드의 비네는 당황했다.

갑자기 스켈레톤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지금껏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던 일이다. 마치 스켈레톤의 주도권이 남에게 뺏긴 건 같았다. 감히 그녀의 스켈레톤들을 빼앗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인간도 하지 못하는 일이다. 말도 안 된다. 적어도 그녀에게서 주도권을 빼앗으려면 그녀와 비슷하거나 더 강한 악마만이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몬스터들까지 그녀의 스켈레톤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바포메트!”

“미안하다만 내 지배를 벗어났다네.”

그건 바포메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지배하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지배에서 벗어나 날뛰고 있었는데 정확히 비네가 다루는 스켈레톤을 향해 공격했다. 누가 봐도 다른 자가 몬스터를 지배해 비네의 스켈레톤들을 공격하는 것이 분명했다.

세피드와 넬도 그 이상을 눈치챘다.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들은 그들의 숙적과도 같은 카이와 마엔과 싸우고 있었다. 악마의 싸움과 인간의 싸움은 결국 악마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종족의 차이다.

마기만 충분하다면 죽기 전까지 풀 컨디션으로 싸울 수 있는 게 바로 악마다. 지구전으로 가면 결국 이기는 건 악마가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한들 눈앞의 인간들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자칫하면 죽을 수 있었고 죽음의 위기도 여러 번 겪었다.

지금의 이상도 아마 이들이 무슨 짓을 벌인 것이겠지.

“…….”

하지만 둘도 아는 건 없었다.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일 뿐.

여유로워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그들의 몸은 행동과 대비되게 만신창이였다. 특히 카이가 무리했다. 원래 세피드는 키잔이 상대하던 대 악마였다. 그를 혼자서 감당하려 하니 한계에 다다를 수밖에.

그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만으로는 대 악마 넷 전원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세피드와 넬도 그걸 느꼈다. 저들의 목표는 자신들을 죽이는 게 아니었다. 결판을 내려는 게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오셨나 본데?”

“생각보다 일찍 오셨네.”

둘은 알 수 없는 말을 주고받았다.

세피드와 넬은 둘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전장은 바뀌고 있었다. 저들이 기다린 이유가 나타나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디론가 향해 달려갔다.

세피드와 넬은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는 둘을 곧바로 따라 날아갔다. 설령 저들이 기다린 이유가 있다고 한들 저들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였다. 지금 죽여놔야 했다.

그러나 그들이 도망치는 속도는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애초에 세피드와 넬이 정면 승부에서 밀린 것도 저 속도 때문이다. 그들이 맘먹고 도망치려고 하면 세피드와 넬이 그걸 막을 수단은 없었다.

그렇게 그들을 따라가고 있을 그때.

이 세상에 있어선 안 될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기운. 세상에 자신이란 존재는 하나일 뿐인데.

“…설마.”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엔 자신과 똑같은 이들이 존재했다. 단순히 똑같은 게 아닌 여러 새로운 능력을 가진 존재. 그걸 아는 이유는 직접 싸워보기까지 했었다.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저들이 향하고 있었다.

“…넬!”

“나도 알아!”

그녀 또한 느꼈다.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저들을 곱게 보내선 안 된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고 있었다.

넬의 능력은 환각. 그것도 실체를 가진 환각이다.

그녀는 곧바로 그들이 가는 길을 환각으로 바꾸었다. 그들 또한 그녀가 환각을 다룬다는 것도, 지금 바뀐 길이 환각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체를 가진 환각은 현실이나 다름없었고 저들이 환각에서 빠져나가려면 그 환각을 부숴야만 했다.

물론 환각은 그들이 수백 번도 넘게 겪은 것이고 빠져나가는 것쯤이야 찰나이겠지만 세피드와 넬에겐 그 찰나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어?”

그러나 그 찰나의 시간조차 벌지 못했다. 환각의 길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부서진 것이다. 마치 환각이 그들의 몸에 닿는 걸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세피드조차 그녀가 환각을 일부러 없앤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그럴 리 없을 테니 저건 명백한 이상 현상이다.

그때.

“자식 가는 길을 막으면 쓰나.”

환각이 부서지면서 나타난 건 파리한 목소리의 비쩍 마른 인간 남자였다. 본 적 없는 인간이다. 느껴지는 기운도 평범한 인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의 곁에 있는 자들은 눈에 익숙한 자들이었다.

눈에 익숙한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 그 자체였으니.

“…살려두었으면 뒀다고 말을 하지.”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로군요.”

“보기 싫은 얼굴들이지만.”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군. 그대들이 아니라 저자들을 말하는 거라네.”

그들과 같은 넬과 세피드서부터, 비네와 바포메트까지. 정작 그들은 자신들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쫓았던 카이와 마엔을 보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놀람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아버지. 저들을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 사이 안 좋은 거 뻔히 알면서.”

카이와 마엔이 지금껏 말했던 아버지의 존재. 그자가 바로 눈앞의 인간이었다.

“너희와 사이 안 좋을 게 뭐가 있나. 전부 내가 한 일이고 내 잘못인데. 싸울 거면 나하고 싸워. 너희들끼리 싸우지 마.”

아버지라 불린 자는 저들의 불만을 고작 몇 마디로 잠재웠다. 대 악마들과 그들의 대적자인 인간의 말을.

그는 카이와 마엔의 몸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카이는 검은 로브가 무언가에 잔뜩 젖어 있었다. 검은 로브라 티가 안 났을 뿐이지 저건 모두 그의 피였다. 특수한 아이템이라 망가지지 않았지만 그 안의 몸은 얼마나 상처가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붉은 원피스를 입은 마엔은 그 아름답던 붉은 원피스가 죄다 찢어져 있었고 그렇게 드러난 그녀의 몸은 선정적이긴커녕 상처로 가득해 볼품없었다.

“쉬어. 아니… 너희 성격에 쉬라고 해도 안 쉬겠지. 뒤로 가서 인간들이나 도와.”

그들의 아버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지구로 돌아오기 전부터 지구에 있었던 녀석들은 인간들을 지켜왔다. 게임 속에서처럼.

그때. 새로운 대 악마들의 기운을 느끼고 전장에서 의문을 느끼던 지구의 비네와 바포메트가 날아왔다.

“…쯧. 역시 내가 아니면 내 스켈레톤을 다룰 수 있을 리가 있나.”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군요.”

새로이 대 악마 둘이 더 참가했다.

카이와 마엔은 이를 악물며 본능적으로 활과 단검을 들었지만 그들의 앞으로 나서는 이들이 있었다.

“아버지라 불렀으면 아버지의 말 좀 따르지 그래?”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 기분이 오묘하군요.”

바로 아버지의 비네와 바포메트.

지구의 세피드와 넬도 앞으로 나섰지만 그건 아버지의 대 악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대 악마 여덟이 이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엔. 한 인간이 있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싸움이다.”

그 말을 끝으로. 여덟의 대 악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 * *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대 악마들의 싸움. 그것도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구경만 하실 겁니까?”

카이와 마엔은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대 악마끼리의 싸움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정작 그 상황을 만든 아버지는 그들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도대체 어떻게 저 악마들을 구워삶았는지는 그들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버지의 힘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는 수준이었으니.

직접 느껴봤으니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아버지가 싸움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의문이 들 수밖에.

“지금 내가 힘 빼봤자 좋을 게 없어. 이후의 싸움은 저 녀석들은 전혀 도움이 안 되니깐.”

“…네?”

카이와 마엔은 귀를 의심했다. 대악마 넷을 아래에 두고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다니. 도대체 아버지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그들의 표정을 본 아버지. 김진석은 그들이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희는 도움 되니깐 빨리 쉬어. 여기서 있다가 괜히 휘말리지 말고.”

물론 만신창이인 몸이라도 그들이 고작 싸움의 여파에 휘말릴 수준은 아니었다. 아버지도 그걸 알고 있겠지만 그 마음은 기꺼운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김진석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대악마끼리의 싸움이 있긴 했지만 김진석은 그걸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이후에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단탈리온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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