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94화 (194/201)

194화

“뭔 놈의 몬스터가 이리 몰려온담.”

“그러게 말이지.”

비네와 바포메트는 게이트 앞을 지키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몬스터들이 아무리 몰려와봤자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한 일이었다.

“재미없네.”

“긴장을 놓지 말게나. 언제 단탈리온 본인이 올지 모르니깐.”

“…그놈 힘 있는 거 맞아? 그런 힘 있었으면 내가 직접 다 죽이고 다녔겠네.”

그때. 갑자기 게이트가 일렁거렸다.

“어? 이러면 안 되는데…….”

마치 사라질 것만 같은 게이트에 비네가 허둥지둥할 때. 그 안에서 세 인영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나오자마자 게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졌다.

“밖엔 별 볼 일 없었나?”

김진석. 그가 다시 지구로 돌아왔다.

“어서 오십시오.”

“…이것들 안 보이세요?”

바포메트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비네는 퉁명스럽게 답했다. 김진석은 그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뒤로 보이는 수많은 몬스터의 시체들. 가히 시체의 산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쌓여있었다.

그러나 고작 숫자로는 그녀들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을 터이니 비네의 말은 투정이나 다름없었다. 귀찮은 것을 자신에게 시킨 것에 대한 투정.

“고생했다.”

김진석은 한마디로 그녀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들의 기운이 느껴지네요. 놈들은 알아챘어?”

넬은 오자마자 지구에 들어온 자신과 같은 대 악마들의 기운을 느꼈다. 그녀만이 아니라 다른 대 악마들, 비네와 바포메트는 지구에 있었던 만큼 이미 알아차린 상태였다.

“아니. 다른데 정신 팔려있나 봐.”

“다행히 알아차리기 전에 마기를 갈무리할 수 있었네.”

게이트가 있는 곳은 중국과 멀리 떨어진 곳. 그렇다고 한들 대 악마들의 기감은 그들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지금 인간들에게 관심이 쏠려있다.

고작 한낱 인간에게 정신이 팔렸다고 그들의 기운을 눈치채지 못할 수 있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인간은 고작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강한 인간들이었다.

“다른 기운은?”

“…무슨 다른 기운이요?”

비네는 김진석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김진석은 그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들은 시험의 탑에 대 악마들. 악마의 방주 아크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넬도 김진석의 가상 현실 안에서 아크를 처음 보고 당황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김진석과 같이 무효화 되는 게 아니었다. 마기 자체가 마치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악마의 방주임과 동시에 악마의 천적인 아크였다.

그런 기운을 이들이 못 느꼈다는 건 아직 지구에 아크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얘기.

“바로 가자.”

* * *

“다행히 늦지 않았군.”

김진석이 전장에 도착했다.

그가 전장에 와서 본 첫 소감은 무슨 우주 전쟁이 벌어진 것 같다, 였다. 탱크와 헬기는 물론이고 미래시대의 전함까지 나와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게다가 플레이어들의 마법과도 같은 스킬과 능력들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밀리고 있었다.

대악마가 자그마치 넷. 전원이 전부 등장했다. 아직 아크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들만으로 지구의 인간들을 상대하는데 충분했다. 그러나 인간들은 전력에 대비해서 꽤 나 몬스터들을 상대를 잘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당연히 그 자신이 만든 이방인 길드가 있었다. 김진석은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하게 웃었다. 그런데 중심엔 이방인 길드만 있는 게 아니었다.

“뭐지? 저 여자는.”

철갑마를 타고 전장을 휘젓는 이방인 길드의 옆에. 온몸을 철갑 플레이트로 두르고 있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여성형 갑옷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끝없이 소리치며 전장을 좌지우지하는 모습은 이방인 길드보다도 영향력이 뛰어나 보였다.

그에 김진석은 인상을 찌푸렸다. 괜히 경쟁 심리가 생기고 있었다. 자기가 키운 이방인 길드보다도 영향력을 행사하다니.

정작 인간들은 종말이 오네, 마네 하고 있었지만 김진석은 여유로웠다.

자신이 올 때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인간들은 할 일을 전부 다 해줬다. 최악의 경우 몬스터의 세상이 오는 것도 염두에 둘 정도였다. 그러나 저들은 잘 버텨주었다. 플레이어들과 군대의 희생이 있었지만 결국엔 버텨냈다. 물론 저들은 김진석이 오기까지 버텨낸 것이 아니다. 정말 필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을 뿐.

이제는 김진석이 그 보답을 할 차례였다.

“이젠 정말 막바지다. 힘 따위 숨기지 마. 너희들 세상이다.”

* * *

“뭐지? 스켈레톤들이 갑자기 날뛰고 있는데?”

갑자기 전장의 스켈레톤들이 몬스터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스켈레톤의 일부가 세라스의 스켈레톤이란 건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비네가 소환한 스켈레톤과 세라스가 소환한 스켈레톤은 색부터가 달랐다.

비네가 소환한 스켈레톤은 빛조차 빨려 들어갈 정도의 칠흑과도 같은 색이었고 세라스가 소환한 스켈레톤은 회색빛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날뛰는 스켈레톤들은 칠흑빛의 스켈레톤들이었다.

갑자기 주변의 모든 것을 공격하고 있었다. 같은 스켈레톤을 포함한 몬스터들까지 전부. 그걸 가장 먼저 발견한 자는 인간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아서왕 덕분에 안정되었던 전장이 마족으로 인해 다시 팽팽해졌고 대 악마가 참전했을 땐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플레이어들이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했고 그렇게 스켈레톤에게 한 플레이어가 당하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갑자기 다른 스켈레톤이 달려들어서 그를 구해주었다.

어리둥절했지만 거기서 어리바리할 플레이어는 이미 죽고 사라진 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물러나 뒤로 도망갔다. 도망가면서 뒤를 돌아봤는데 그제야 스켈레톤들이 서로를 향해 공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니. 스켈레톤만이 아니었다. 몬스터들까지도 서로를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장의 분위기가 달라진 건 그때쯤이었다.

“…뭐지?”

그걸 가장 먼저 알아챈 자는 바로 아서왕이었다.

그녀의 스승 혹은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인 멀린이 도움을 요청해왔다. 이미 죽은 자신을 어떻게 되살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멀린의 옆에 웬 일반인 할아버지가 있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알고 있던 멀린이 아니라는 건 알아차렸다.

그도 많이 바뀐 것이겠지.

그녀는 할아버지와 같은 멀린의 도움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응했다.

이 전장에서 가장 많은 전장을 경험한 자가 바로 그녀였다. 비록 여성의 몸으로 온갖 차별을 받아왔지만 그만큼 더 혹독한 생활을 해온 그녀로서 더 많은 것을 경험해왔다. 고작 전장의 분위기를 읽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사단을 물려라!”

낌새가 이상한 것을 눈치챈 아서왕은 원탁의 기사단 전부를 물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탁의 기사단에서 이름 높은 기사들은 그녀의 말에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곧바로 물렸다.

그건 새로이 기사단을 꾸린 것으로 보인 퍼시벌과 갤러해드. 그리고 가웨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방인 길드와 아서왕의 기사단이 일제히 물러나자 플레이어들도 전위에 나서서 몬스터들을 죽이는 기사단들이 물러나자 그들도 곧바로 물러났다.

이상했다. 마침 군인들도 재정비하느라 화력을 쏟아붓지 못하고 있었는데 전장이 유지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진작에 몬스터들이 밀고 들어왔을 텐데.

“뭔가 이상합니다. 몬스터가 서로를 향해 공격합니다.”

“스켈레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장에 와서 처음으로 아서왕과 이방인 길드. 그리고 플레이어들과 인간의 군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제야 그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고 소리를 쳐도 몬스터의 울음소리와 화약이 터지는 소리에 전부 묻혀버리니 제대로 된 정보를 교환할 수가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안정된 지금에서야 간신히 통성명을 할 수 있었다.

“아서왕. 펜드래건이라고 한다. 그대들의 지도자는 누구지?”

플레이어들과 군인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아서왕의 전설은 워낙 유명한 얘기다. 특히 그 원탁의 기사단의 일원인 가웨인이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지금 모르는 자는 없을 것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성일 줄은 몰랐겠지만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자는 많았다.

그러나 지도자는 말이 달랐다.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이 전부 모인 지금. 지도자를 찾는 말에 함부로 나섰다간 무슨 말을 들을지 몰랐다. 그렇기에 그들은 시선이 분산되었다.

가웨인을 보는 자도 있었고 리아즈 칸을 보는 자도 있었다. 간간이 루크를 보는 자도 있었지만 그 수는 적었다. 하지만 그들도 나서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강한 것과 지도자는 차이가 조금 많이 났으니깐.

그나마 인도 왕자인 리아즈 칸이 나서려는 순간.

“무슨 일이시죠?”

한 여성이 앞으로 나섰다. 웬 여성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순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모인 길드의 부길드장. 제이다가 앞으로 나선 것이다.

펜드래건은 이 세계에서의 지도자가 여성인 것에 놀랐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게 실례가 될 수도 있었기에.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상대도 이 세계의 지도자다. 예의를 차려야 했다.

“멀린의 뜻에 따라 이 세계에서 살아가려고 했는데 저 괴물들을 몰아내는 게 먼저인 것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묻는다. 그대들은 저것들의 정체를 아나?”

제이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에서 온 몬스터들입니다. 어느 세계에서 온 이들인지 알고는 있지만 정확한 건 저희도 모릅니다. 그전에… 여경래 씨?”

그녀는 아서왕의 옆에 서 있는 멀린의 곁에 마찬가지로 뻘쭘이 서 있는 여경래를 불렀다. 제이다는 아서왕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도 멀린과 같이 소환당했겠지.

그렇다면 그녀를 소환할 자는 단 한 명뿐이다.

“당신이 소환한 거죠?”

“…예.”

원래라면 나이가 훨씬 많은 그에게 존대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한 세상의 지도자로서 나선 곳에서 함부로 다른 자에게 존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여경래는 한참 낮은 레벨로 멀린을 소환했었다.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다르게 그는 멀린을 인간처럼 대해주었다. 그 증거로 멀린 또한 여경래가 죽어야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에 거절했었다.

“펜드래건 씨. 지금 당신은 한 나라의 왕이지만 여기선 고작 저분의 말을 강제로 들어야 합니다. 저분이 죽으면 당신도 사라지고요. 그건 알고 계시죠?”

“…그렇다.”

이 상황에서 할 말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제이다는 확인해야 했다. 김진석이 가장 중요시하는 게 바로 인성이다. 선한 왕으로서 알려진 아서왕이라고 한들 현 세계에서 어떻게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상관없습니다. 아. 통성명이 늦었군요. 제이다라고 합니다.”

아서왕과 같이 강한 개인이 날뛰는 건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킨 것이다. 당신이 날뛰는 순간 저 남자를 죽일 것이라고. 협박한 것이다.

여경래는 그 사실을 모르겠지만 말이다.

제이다는 그제야 자신의 이름을 밝히며 악수를 건넸다. 아서왕은 그녀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악수를 받았다.

“이 세계도 만만치 않군.”

약육강식의 중세시대에서 살다 온 아서왕이다. 그녀의 경고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었다.

“자. 상황정리는 이만 끝내고. 이젠 어떻게 할 거지?”

둘의 대화가 대충 끝나자 리아즈 칸이 특유의 친화력으로 말을 꺼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갑자기 벌어진 이상 현상에 잠시 멈칫했을 뿐.

“대 악마가 오기 전에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한다.”

그 말을 꺼낸 건 세라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