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88화 (188/201)

188화

김진석과 대 악마들은 게이트 앞에 들어섰다.

적색 거대한 용이 나온 곳답게 게이트 또한 피처럼 붉었다.

“뭐 계획 있어요?”

비네는 무턱대고 찾아온 김진석을 보고 말했지만 김진석은 그저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럴 리가.”

“…….”

단탈리온이 게이트를 닫기 전에 빠르게 날아온 것이다. 계획이 있을 리가.

아무리 단탈리온이라도 최종 보스 격인 용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납치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하나.

“넬과 세피드. 너희는 나를 따라와. 바포메트와 비네. 너희 둘은 혹시 모를 단탈리온에 대비해 게이트를 닫지 못하게 해.”

“알겠습니다.”

“알았어요.”

언제든지 단탈리온이 올 수 있었다. 놈이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비네와 바포메트라면 충분히 잘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둘의 능력은 상성도 좋기에 나쁘지 않았다.

김진석은 심호흡했다.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새로운 세계. 그것도 게임 속 세계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로스트 월드의 세계는 김진석에게 나름대로 즐거웠지만 다른 세계는 어떨지, 어떤 괴물이 나타날지는 아무도 몰랐다.

“후… 가자.”

“거기 아니에요.”

이상한 곳으로 가려는 김진석을 넬이 붙잡고 포탈 속으로 들어갔다.

* * *

쉽게 끝날 것 같은 용인족과의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 되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용인족과 인간의 전쟁은 계속해서 서로를 물어뜯었다. 비교적 인간의 피해가 적었지만 몬스터를 계속해서 소환하는 용인족의 존재로 인해 교환이 성립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현과 같은 은신에 능한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전장에 숨어들어 용인족의 위치를 알아냈다. 처음엔 플레이어들이 몬스터를 소환하는 용인족을 몇몇 죽였지만 용인족도 그걸 보고만 있지 않았고 몬스터의 사이로 숨어버렸다.

은신에 능한 플레이어들과 같이 몬스터를 소환하는 용인족들도 마치 카멜레온처럼 주변 환경에 동화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플레이어들이 직접 전장에 숨어들어 찾아내는 방법을 취했다.

찾게 되어 위치를 알려준다면 이후에는 저격수의 역할이 중요했다.

저격수 또한 플레이어. 거대한 저격 소총은 일반인이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엄청난 반동으로 인해 일회용으로 변해 버린다. 그렇게 되는 건 원치 않는 일이었으니 신체 능력이 뛰어난 플레이어가 전문적으로 저격 소총을 다루는 방법을 읽혀 저격수의 역할을 수행했다.

거북이 몬스터의 외피마저도 뚫을 수 있는, 압도적인 화력의 저격 소총은 고작 몬스터를 소환하는 용인족의 비늘 따위는 가볍게 뚫어냈으니.

모습이 보이기만 한다면 족족 저격수에게 단말마도 내뱉지 못한 채 죽어 나가는 용인족이었다. 하지만 점점 모습을 숨기는 방식이 교묘해졌고 용인족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인간들이 별동대 플레이어들. 여러 길드의 각각 최강의 팀을 꾸려 군대의 화력을 뚫고 들어오는 괴물 같은 용인족들을 상대했다. 용인족들이 각개격파를 당하니.

용인족들은 원래는 개개인이 중요한 독립심이 강한 종족이었다. 각자 자신이 용의 총애를 받고 싶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용인족들이었고 그건 용의 명령으로 지구를 침공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게 있다가는 총애는커녕 자신들의 목숨도 온전치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의 저력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결국, 용인족들도 뭉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몬스터들을 던져서 인간의 화력으로 인한 용인족의 피해를 줄이며 처음으로 협력이란 것을 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협력이라고 하기에는 그저 뭉쳐서 인간들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위협이 되었다.

그때 나선 것이 인간 최강의 플레이어들.

가웨인과 그의 보구 갈라틴은 혼자서 능히 용인족 셋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무투대회에서 활약한 인물들이 용인족과의 1:1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인물. 무투대회에서 고작 1라운드에 아무것도 못 하고 탈락한 플레이어. 이지현의 활약이 눈부셨다.

그녀의 능력은 별 것 없었다. 신체 능력이 뛰어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능력이 없었고 오로지 기예와 기교만으로 몬스터를 잡는 그녀였다.

몬스터 상대로 그리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한 그녀였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S급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그녀의 유일하다시피 한 능력. 인간을 상대로 강해지는 그녀의 능력은 용인(人)족인 그들에게도 적용됐으니.

게다가 무투대회에서 포인트를 통해 얻은 새로운 칠흑의 가죽 갑옷과 초록색 구두. 그리고 그녀의 수족과도 같은 도끼와 손도끼를 오가는 그녀의 무기는 용인족의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최상위 S급 플레이어도 1:1로는 용인족을 상대하기 버거워하는 수준이었지만 그녀는 혼자서 능히 용인족을 상대했고 조건이 갖춰지면 둘도 상대했다.

용인족은 게임 속에서 무기의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만큼 검과 창 방패 대도 등 온갖 무기를 다뤘다. 하지만 이지현에겐 닿지 않았다.

체조하는 듯한 그녀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용인족의 공격을 피하면서 동시에 용인족처럼 자그마한 몬스터를 잡을 때 애용하던 손도끼를 사용해 놈들의 급소를 공격했다.

놈들의 비늘이 워낙 단단했기에 아무리 이지현의 도끼라고 한들 단번에 즉사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으니 그녀는 인간과 똑같은 신체 구조를 가진 점을 이용해 놈들의 힘줄을 끊어두었다.

비늘을 뚫을 순 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한 그녀의 공격력으로는 그게 한계였다.

그렇게 아름다운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용맹한 그녀를 보고 후에 그녀는 전장의 발키리라고 불렸다.

그녀는 리아즈 칸. 루크를 비롯한 최상위 S급 플레이어와 함께 전장을 누볐다. 하지만 그들도 범접하지 못하는 괴물들이 있었다.

바로 이방인 길드.

그들은 몬스터를 잡을 때 김진석과 함께했을 때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한 팀. 다섯 명 넘게 모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였을 때는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한다.

가웨인을 비롯한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제이다까지 합세한 완전체 이방인 길드는 말 그대로 몬스터를 갈아버렸다.

알렉산더의 철갑기병들에게서 빼앗은 철갑마들을 타고 이동하는 그들의 앞길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용인족이 얼마나 있건 상관없었다.

눈앞의 모든 걸 박살 내며 달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기사단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건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무력은 이방인 길드보다 약했지만 그들은 지구로 오기 직전까지 악마들과 싸워온 이들이다. 협력의 중요성은 그들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이방인 길드와 같은 철갑마는 없었지만 그들 전체가 여러 스킬을 가진 최정예 인물. 특히 그들의 대표인 노라와 다이아. 그리고 세라스가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세라스는 이런 전장에서는 무적이나 다름없었으니.

죽음의 기운이 넘쳐흐르는 전장은 그녀의 힘을 끊임없이 키워주었으니. 특히 비네가 왔다 간, 스킬까지 사용한 이 전장은 마기로 가득 차 있었다.

세라스가 날뛰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중국에서 쏟아져나오는 몬스터들과 용인족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전장도 넓었고 여럿이 있었지만 그녀가 혼자서 하나의 전장을 통째로 틀어막고 있었다.

용인족은 그녀의 스켈레톤 가디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최소 용인족 여섯이 모여야 상대가 가능한 스켈레톤 가디언은 영리하게 용인족들이 달라붙지 못하게 거대한 몸을 이용해 몬스터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몬스터에게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었다.

스켈레톤 군세는 인간 군대의 화력 못지않은 능력, 화살과 마법을 사용해 몬스터들을 쓸어버렸으며 동시에 스켈레톤의 군세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노라와 다이아는 각각 몬스터와 인간의 군세에 숨어 용인족을 암살. 보이지 않은 큰 활약을 해주었다.

그렇게 전장에서의 억겁의 시간이 끝나고.

결국, 인간들이 이겼다.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인간의 화력은 용인족의 마법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고 특히 끝이 없었다.

오로지 중국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만을 막으면 됐기에 보급이 자유로웠으니 인간들은 화력을 쏟아부었다.

플레이어들이 지치면 군대의 뒤에 숨으면 됐고 조금 밀린다, 싶으면 장갑차나 탱크. 단단하며 속도까지 빠른 탱크 몇 대를 별동대로 던졌다.

희생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소재로 만들어진 탱크와 장갑차들은 용인족을 제외하고는 부서지지도 않을 만큼 단단했다.

용인족들도 무턱대고 장갑차와 탱크를 쫓아갈 순 없었다. 언제 어디서 저격수들이 그들을 노릴지 모르기에.

그렇게 용인족들은 말라 죽었다.

“…힘드네.”

노라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뛰어다니며 용인족을 암살했다. 적어도 수십의 용인족을 암살한 그녀는 전쟁 승리의 숨은 일등 공신이었다.

“온 지 별로 안 됐는데 무슨 난리냐…….”

“그러게 말이에요. 이 세계도 문제가 많네요. 괜히 왔을까요?”

다이아 또한 저격수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수많은 용인족을 저격했다.

“이미 우리의 세계는 멸망한 거나 다름없었지. 악마들보다는 훨씬 낫지?”

세라스의 말에 노라와 다이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악마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군인들은 안타깝게도 많이 죽었지만 플레이어는 거의 죽지도 않았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희생을 강요했다. 그러지 않고는 악마들을 막아낼 수 없었으니깐.

“이 세계도 악마는 있잖아요?”

하지만 노라의 말도 틀리지 않았다. 그녀들은 직접 두 눈으로 악마를 바라보았다. 그것도 그녀들과 끊임없이 싸우던 악마, 그것도 대 악마들을.

“…우리를 지켜주는 듯한 모양새였다만.”

세라스는 대 악마. 비네가 소환하는 인간형 괴물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지구의 인간들의 반응도 지켜봤다.

그녀가 소환한 끔찍한 괴물들은 전부 이 세계의 인간들. 플레이어들이었다. 그런데 일반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범죄자. 로스트 월드에선 아디스의 인물들과 같은 이들이었다.

게다가 한둘의 숫자가 아니었으니 그녀가 이 세계에 오랫동안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비네는 놈들을 실험하고 소모품으로 몬스터들에게 던졌다. 인권 따위는 없다는 듯이. 그 방식은 어디선가 본 방식이었다.

“걘 도대체 어떻게 대 악마들을 구워삶았데?”

그녀들은 알고 있었다. 김진석은 아디스의 인물들과 친하게 지낼지언정 그들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의 비네와 같이 마족과의 전쟁 때 그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했으니깐.

“그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요?”

“알아서 하겠지. 우린 우리 알아서 살아남자고. 저기 봐.”

플레이어와 군인들. 전쟁이 끝나고 한숨 돌리고 있었다.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격렬한 싸움이었고 말 그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은 끝이 아니었다.

“하늘의 게이트가…….”

어디선가 들리는 허망한 목소리.

하늘에 게이트가 생겼다. 그런데 게이트가 하나가 아니었다.

하나, 둘… 여섯, 열.

적어도 십수 개의 게이트가 하늘을 뒤덮었다.

중국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는 장난이었다. 하늘에서 몬스터의 비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몬스터들은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의 눈엔 익숙했다.

“…젠장.”

토카, 꿔크, 갈룸, 헬 하운드, 늑대인간 등. 로스트 월드에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다행히 악마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언제 나타날지 모르겠군.”

그들의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