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자동차 안에선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노라도 자신의 경솔함을 인정했다. 능력을 사용하면 기억에 혼동이 와 자신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죽음보다 더한 일이었다.
“하… 짜증나네.”
알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왔다.
그렇게 조용히 자동차는 움직였고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 *
“…길드장 님?”
“왔군.”
어느새 루크도 군인들에게 합류해 있었다.
루크는 그녀들에게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리자드맨은 어딨지?”
노라가 눈을 희번득 뜨며 말했다.
“타 길드의 플레이어가 리자드맨을 잡았기에 저희에겐 우선권이…….”
루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라를 비롯한 로스트 월드 3인은 동시에 한 방향으로 뛰기 시작했다. 뭔가 말하기도 전에 마치 짠 것처럼 뛰어가는 걸 보면 분명 그녀들에게 정확한 목표가 있었다.
“세라스 씨!”
“알고 있어.”
하지만 그녀들은 리자드맨을 찾으러 간 것이 아니다.
그녀들이 달려감과 동시에 경고음이 울렸다. 귀를 찌르듯 파고드는 소리. 몬스터들이 민가에 나타났을 때 울리는 경고음이었다.
“몬스터다!”
“준비해!”
소강되어 이제 간신히 휴식을 취하고 있던 군인들은 비상이었다. 총조차 내려두지 못한 채 등에 메고 휴식을 취하던 그들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길드장 님!”
“내가 선두에 서지. 태세를 정비하게!”
갑자기 울리는 비상 경고음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엄청난 속도로 몰려오고 있는 몬스터들이었다.
루크는 경고음이 울림과 동시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미 앞에선 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라스의 스켈레톤 군세가 땅바닥에서 기어 나오며 몬스터들을 덮치고 있었고 그 사이에서 노라와 다이아가 날뛰고 있었다.
이미 루크는 군인들과 아직 머무르고 있던 플레이어들에게 그녀들의 무력을 알아차렸다. 세라스의 경이로운 힘은 가히 대단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온갖 몬스터의 향연이었다.
거북이를 닮은 몬스터와 늑대를 닮은 몬스터는 양반이었다.
거머리처럼 다른 몬스터에게 붙어있다가 달려드는 기생충 몬스터.
사슴과 비슷한 모양새였지만 그 뿔에 인간의 살점으로 보이는 것이 달린 몬스터.
물속에 사는 물고기와 같이 반들거리는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2족 보행을 하는 몬스터.
분명 콘크리트 바닥이 분명한데 그 속을 유영하듯 움직이는 상어형 몬스터 등.
기괴한 몬스터들이 줄지어 달려들고 있었다.
루크는 중국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플레이어 중 하나였다. 그는 언젠가 이런 사단이 일어날 거라고 분명 말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계속해서 플레이어들을 투입해 계속해서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 시켰으며 위험한 몬스터는 전부 죽였다.
완벽하다고 생각했겠지.
루크는 중국 안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의 종류와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혹시 모를 사단이 일어날 수 있었고 그때 몬스터들에게 대항을 해야 했으니.
당연히 사람들도 그런 위험성을 대비하자는 마음은 전부 이해하고 있었으니 몬스터의 종류와 어디가 약점이고 급소인지 전부 정리한 도감 같은 것이 있었다.
루크는 그 도감을 전부 외우고 있었다.
“저런 놈들은 없었는데 말이지…….”
리자드맨은 물론이고 놈들과 같이 나타난 몬스터도 도감에 등록되어있지 않았다. 지금 몬스터의 군세 사이에도 리자드맨이 있었다.
“이지현 플레이어! 그녀들에게 전해주게! 리자드맨을 먼저 잡으면 전투가 끝난다고!”
루크는 전위에 서서 그녀들이 전부를 막지 못해 새어 나오는 몬스터들을 막으며 말했다. 타 길드의 플레이어가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저 몬스터들은 리자드맨이 소환한 놈들이다.
그리고 리자드맨이 아니다. 본인들이 말하길 고귀한 피를 이었다고.
그래봤자 겉모습은 조그마한 리자드맨이었으니. 그 리자드맨만 잡으면 남은 몬스터들은 사라진다.
소환된 몬스터였으니 주인을 죽이면 몬스터도 사라지는 건 플레이어들과 똑같았다. 하필 로스트 월드의 3인은 놈을 생포해서 몬스터가 죽지 않고 도망간 것이다.
이지현은 루크를 뒤로하고 급히 앞으로 달려나갔다.
모든 새어 나온 몬스터가 루크에게 향했다. 하지만 루크는 무투대회에서 2위를 기록한 자. 장판파의 장비처럼 모든 몬스터를 혼자서 막아내고 있었다.
“하!”
루크의 기합. 그건 기합만 담겨있는 게 아니었다. 레어마켓에서 무투대회의 2위를 한 그에게 선물한 아이템 중 하나의 스킬.
사자후.
천둥이 울리는 소리. 고작 단 한 음절로 몬스터들은 물론이고 군인들과 플레이어의 시선까지 전부 모였다.
아주 큰 소리를 내는 간단한 스킬이지만 전장에서의 사용법은 달랐다.
도발. 가장 큰 소리에 반응하는 건 본능이다.
콘크리트를 유영하는 상어가 달려들어도 루크는 그대로 입을 찢어버렸으며 지렁이와 같은 기생충은 몸을 잡고 반으로 찢어버렸다.
그 사이에 이지현은 유연한 몸놀림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피하며 몬스터의 군세 안에서 날뛰고 있는 로스트 월드 3인에게 달려갔다.
뭔가를 감지한 건지 늑대 몬스터와 사슴 몬스터가 이지현에게 달려들었다. 이지현 또한 S급 플레이어. 늑대 몬스터는 기껏해야 A급. 사슴 몬스터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속도가 비슷한 것 보면 등급도 비슷하겠지.
등에 멘 거대한 도끼를 손도끼로 변환시키며 휘두르려는 순간. 늑대 몬스터와 사슴 몬스터가 마치 슬라이딩하듯이 그녀의 눈앞으로 미끄러져 왔다.
놈들의 목에는 각각 정확히 하나의 화살이 박혀있었다.
“무슨 일 있나요?”
어느새 다가온 아름다운 엘프 여성. 다이아가 화살을 수거하며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몬스터들은 많았고 달려드는 몬스터를 이지현 또한 도끼를 휘둘러 목을 치며 말했다.
“리자드맨 죽이면 몬스터가 사라진다는데요?”
“…노라! 걔 죽여요!”
“…엉?”
이미 리자드맨은 노라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그녀는 다이아의 말에 의문을 가졌지만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목을 꺾어버렸다.
노라가 리자드맨을 잡고 있어서인지 몬스터 대부분이 그녀에게 달려들고 있었는데 리자드맨의 목을 꺾어버리자마자 동시에 빛으로 변해 사라졌다.
대부분 몬스터가 사라지자 남아있던 살아남은 다른 몬스터가 당황하는 것 같더니 곧바로 중국 안으로 도망쳤다.
하나같이 도망가는 몬스터는 도감 안에 등록된 몬스터들이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저도 몰라요.”
노라가 다이아에게 물었지만 그녀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저 이지현의 말을 곧바로 전했을 뿐. 다이아 또한 이지현의 말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지현의 심성은 알고 있었기에 믿은 것이다.
“저도 정확한 건 모르는데… 저놈이 소환한 거라던데요?”
그녀가 가리킨 곳에는 노라에게 목이 꺾여 죽어있는 리자드맨이 있었다.
경고음이 들린 게 무색하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리자드맨을 잡고 죽여 사라진 몬스터들이었다. 군인들은 나서지도 않았다. 루크가 전위에 서 막아주고 플레이어가 그 뒤를 보좌해주었을 뿐인데 끝났다.
세라스는 죽은 리자드맨의 시체를 바라봤다.
노라가 전에 잡았던 놈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그저 색만 다를 뿐. 노라가 잡은 놈은 검붉은 색이었다면 저기 죽어있는 놈은 완벽한 붉은색이었다.
세라스의 직업은 네크로맨서. 피를 통해 죽은 대상을 소환할 수 있는 특이한 직업이었다. 힘이 늘어난 그녀가 소환하지 못하는 대상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 되네.”
하지만 리자드맨은 불가능했다.
분명 놈은 딱히 별 능력이 없었다. 소환하는 능력이 있긴 했지만 만약 그녀가 그 대상을 되살려내면 소환하는 능력이 사라진 채 되살아난다.
즉 신체 능력이 쓰레기에 가까운 이 리자드맨이라면 되살려내도 쓸모가 없을 수준이지만 되살려지지도 않았다.
첫 노라가 잡은 리자드맨이 죽었을 때는 경황이 없어서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그때. 루크가 그녀들에게 다가왔다.
“정확히는 저도 잘 모르지만 자기 입으로 고귀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의 곁에는 한 플레이어가 있었다. 대충 봐도 동양인은 아니었다. 서양 백인 남성이었는데 외국에서 온 플레이어였다.
“반갑습니다. 존이라고 합니다.”
그 또한 무투대회를 직접 지켜본 인물로서 눈앞의 다이아와 노라를 알고 있었다. A급 플레이어로서 그녀들을 동경하기도 했다.
“리자드맨… 아니 다릅니다. 놈들은 용인족. 용의 피를 이은 몬스터입니다.”
“…용?”
악마의 방주 아크를 제외하곤 로스트 월드에서 용이란 존재는 없었다. 그녀들은 직접 아크를 본 적이 없었으니 그녀들은 용이 뭔지 몰랐다.
하지만 지구의 사람들, 플레이어와 군인들은 달랐다.
“그… 드래곤 말입니까?”
“위험한 거 아닌가요?”
흔히 알려진 용은 절대자였다. 존재 자체로 재앙이었으며 대부분 게임의 최종 보스역할을 맡는, 말 그대로 괴물이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 따라오는 것이 바로 용인족. 용의 수족과 같은 개념으로 용을 숭배하다시피 한다.
존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플레이어는 CIA 소속 플레이어였다.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에서 특수활동 부서인 SAC 소속 요원인 그는 적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그건 플레이어인 지금도 마찬가지였고 리자드맨. 아니 용인족에게서 정보를 알아낸 것이다.
“저기 죽어있는 조그마한 용인족 또한 만들어진 괴물입니다. 오로지 소환에 특화된 몬스터인 것이죠.”
그가 알아낸 정보에 따르면 용인족은 수많은 종류가 있었고 각, 개체마다 능력이 다르다.
조그마한 용인족은 소환. 인간의 2배는 될 법한 덩치와 거대한 두 개의 뿔을 가진 다른 용인족은 신체 능력, 앞서 소개한 놈과 똑같지만 머리에 뿔이 없는 용인족은 마법을 사용했다.
우선 알려진 것이 이것뿐이지 더 많은 용인족이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놈들의 목표는 하나. 인간의 멸절이다.
“지구를 망치는 인간을 몰살시키는 것이 바로 놈들의 목적입니다.”
용. 세계에서 중립으로 세계가 망가지지 않게 조율하는 종족으로 절대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들이 행동할 때는 하나. 세계가 망가질 때다.
즉 지구의 인간이 지구를 망치고 있다는 뜻이다.
“뭐… 그건 우리 알 바 아니지. 우리가 죽여야 할 존재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루크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주변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인간이 지구를 망친다는 말은 과거에도 많이 나왔다. 나무를 파괴하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인간으로 인해 멸종된 동물 등등.
그걸 안 사람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무분별한 파괴는 좋지 않았으니 그걸 막는 건 알겠다. 하지만 지금도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기 위한 실험도 진행 중이었다.
인간도 인간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뭐 어쩌라고.
“용. 놈의 힘은 어떻지?”
지금 그들이 궁금한 건 용의 존재다.
용인족이 있으니 용이 있는 건 당연하겠지. 그렇다면 놈의 무력은 어떨까.
“그걸 물어보자마자 정신이 나갔습니다. 마치 무언가에 억제되어있는 것 같더군요.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는 듯이.”
존 또한 그걸 알고 있었지만 정신이 나가버렸다.
갑자기 혀를 쭉 빼고 숨을 제대로 못 쉬더니 그대로 혼절했다.
곧바로 힐러 플레이어가 놈을 치료했지만 이미 정신이 나간 이후였다.
“…김상훈 플레이어가 더더욱 절실한데.”
루크의 말과 동시에 그의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고 무슨 얘기를 하더니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이지현과 로스트 월드의 3인에게 물었다.
“김상훈 플레이어에게 무언가 했습니까?”
“네? 아뇨. 저도 그의 사정은 그때 처음 들어서… 바로 나왔는데요?”
로스트 월드의 3인은 물론이고 이지현도 김상훈의 안타까운 사정을 듣고 곧바로 물러섰다. 기억을 잃는다는데 어떻게 부탁하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김상훈 플레이어가 그의 가족과 함께 사라졌다. 납치된 거 같다더군. 집을 뒤져봤지만 짐을 챙긴 흔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