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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83화 (183/201)

183화

김상훈의 소재는 30분도 안 돼서 알아냈다.

루크가 이미 그가 어딨는지 알고 있었고 그는 곧바로 이지현에게 위치를 전송하며 동시에 신신당부했다.

“절대 그의 과거를 알려주지 않게 해. 볼일만 보고 깔끔히 나와. 어차피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알려 주면 안 되지만 그들은 김진석 플레이어의 일이라면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어.”

“알고 있어요.”

당연히 김상훈은 수많은 플레이어의 기억을 읽은 만큼 엄중한 보호를 통해 관리되고 있었다.

그가 원해서 은퇴한다고 한들 그가 납치되거나 한다면 한국 플레이어의 정보를 허무하게 알려주는 게 되기 때문에 그는 평생 이런 감시 속에 살아가야 했다.

이지현은 그녀들이 김진석에 관해 물어보려고 한다면 그녀들이 잘 알지 못하는 법에 대해 운운하며 거절하면 됐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는 걸까.

“여기야?”

“네.”

허름한 집이 있는 곳.

전 정부 인사가 머물기에는 한참 모자랐지만 그는 자신의 가족과 함께 평범한 삶을 원했고 정부는 그걸 받아들였다.

그에게 몇천 평이 넘는 땅을 넘겨주었으며 김상훈은 그곳에서 정말 평범히 농사를 짓고 있었다. 중국에서 몬스터들이 날뛰고 있는 와중에 이곳은 너무나도 평화로웠다.

“응? 아줌마들은 누구세요?”

“…아줌마?”

그때 허름한 집 안에서 꼬마 여자아이가 나왔다.

고작 3살 아이의 어눌한 말에 노라가 발끈하려고 할 때 이지현이 그녀의 앞에, 서 말을 막음과 동시에 무릎을 숙이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안녕~ 꼬마 공주님? 혹시 아빠 집에 계시니?”

저 집에는 김상훈과 김상훈의 가족만이 산다. 그가 딸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 그의 가족, 딸이겠지.

“아빠. 일하고 있는데.”

“서아야?”

아이의 말과 동시에 허름한 집 안에서 여성이 나왔다. 빈말로도 아름답다고 말하긴 어려웠지만 시골의 순박한 처녀같이 보였다. 3살 아이의 엄마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가는 걸 보면 엄마는 확실했다.

“…누구세요?”

노라와 다이아 그리고 이지현은 지금 화젯거리였다. 전 세계로 동시 송출한 무투대회에서 활약한 인물들이었다.

비교적 이지현은 부족했지만 무투대회의 첫 결투를 화려하게 연 인물이었고 노라와 다이아는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그녀들의 외모는 눈에 띌 수밖에 없는데 이들은 흔한 TV도 집 안에 없는 것 같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황혼 길드의 S급 플레이어. 이지현이라고 합니다.”

이지현은 상대가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이었지만 무례하지 않게 말했다. 대부분 S급. 심지어 A급 플레이어도 거만한 경우가 많은데 그녀는 아니었다.

“…김민서에요.”

김민서는 그녀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남편 때문에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났다. 고작 시골의 순박한 처녀였던 그녀는 이젠 낯선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는 건 알았다.

“김민서 씨의 남편에게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혹시 김상훈 씨 어디 계신지 알고 있습니까?”

이지현은 그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니 최대한 숙이며 말했다. 물론 이지현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뭐 그렇다고 그녀들에게 시킬 건 아니지 않은가.

S급 플레이어였지만 결국 이곳에선 가장 약한 인물이었으니.

“…어떤 용건이죠?”

“별거 아닙니다.”

이지현의 시선은 노라의 손에 기절한 채 들려있는 리자드맨을 향했다. 노라는 리자드맨을 번쩍 들어 눈앞에 보여주며 말했다.

“기억을 읽는 능력? 그게 필요한데. 이놈 기억 좀 읽어줘야 해서.”

노라도 나름대로 부탁하는 자세를 갖췄지만 능력이란 말에 오히려 김민서의 경계심만 높일 뿐이었다.

“그이가 왜 플레이어의 세계에서 은퇴한 지 모르시는 건가요?”

김상훈이 은퇴한 이유. 자기 자신의 능력을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그런데 그에게 또 능력을 사용하라?

“미안한데 그건 내 알 바 아니야. 내버려 두면 많은 사람이 죽을 텐데? 다른 세계 사람인 나는 딱히 상관없는데 말이지.”

“…다른 세계?”

김민서는 노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이 죽는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불가능한 건 어쩔 수 없어요. 그이의 능력은 정신력. 지금 그이는…….”

“손님 왔어?”

그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덥수룩하게 난 수염과 플레이어인데도 푸석푸석한 얼굴. 온갖 풍파를 다 겪은 할아버지와 같았다. 그의 연배를 생각해보면 저런 용모가 나올 수가 없다. 정말 근처에 사는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의 나이를 모르는 로스트 월드의 3인방은 그것과 다른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로군요. 무슨 일 있습니까?”

김상훈은 은퇴한 이후로도 여러 이들이 그를 자주 찾아왔기에 오늘 같은 일은 흔한 일이었다. 그녀들이 느낀 건 그게 아니었다.

김진석의 기억을 읽고 은퇴했다고 했다.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부터가 신기했지만 그러하다니깐 그런 거겠지.

그런데 기억을 읽었는데 왜 자신들을 모르지?

그가 어떻게 어떤 기억을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들이 그의 기억에서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 남자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자신들을 처음 보는 것처럼 동공도 커지고 아내처럼 경계하고 있었다.

자의식 과잉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운 자신들의 외모를 잊었을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처음 보는 것이다.

“…이 녀석 기억을 좀 읽어줬으면 하는데.”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정확한 걸 몰랐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니깐.

노라는 리자드맨을 앞으로 내쳤다. 던지듯 날아간 리자드맨은 땅에 부딪히며 깨어났고 본능적으로 으르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시다시피 몬스터입니다만 인간의 말을 할 줄 압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중국 전선이 밀렸었습니다. 사상자도 꽤 많이 나왔습니다. 지금 당신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김상훈은 땅에 내던져진 리자드맨을 바라보고 있었다. 놈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리자드맨이라고 하니 리자드맨이라고 생각했지 사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모를 수준이었다. 김상훈의 눈에 들어온 건 조금 큰 도마뱀의 몸에 비늘이 전부 뜯겨져 나가고 눈마저도 없었다.

“불쌍하다 여기지 마. 이놈 때문에 몇의 인간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김민서는 급히 딸 서아의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 뒤로 보이는 김민서의 시선을 느낀 노라는 곧바로 그녀의 감정을 정정해주었다. 군인들이 태세를 갖추고 인원보고 할 때 알았다.

적어도 수 백이다. 리자드맨이 이끈 몬스터의 군세에 수백의 인간이 죽었다.

“또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건 너희에게도 우리에게도 좋지 않아. 협력해줬으면 좋겠는데.”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은 딱히 차별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목숨의 무게가 달랐다. 이들이 죽는 것보다 그들과 함께한 동료들의 죽음이 더 무겁게 다가오겠지.

하지만 그들도 이젠 동료가 될 이들이다. 자신들의 세계가 무너지고 이 지구의 세계에 위탁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은 해야겠지.

“…무엇을 알아내면 되죠?”

“여보!”

김상훈 또한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목소리가 가라앉아있었다. 김민서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당신! 지금…….”

“한 번은 괜찮을 거야. 한 번은…….”

지금 김상훈의 상태는 멀쩡하지 않았다. 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는 자는 오로지 그녀의 부인인 김민서밖에 없었다.

그녀는 표독스러운 눈으로 원망스럽게 노라들을 바라봤다.

정작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노라는 어이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자신이 뭐 죽을 일 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가 트라우마로 은퇴했건 뭐건 멀쩡히 잘 살아있으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힘 한 번 써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녀가 그리 생각하는 건 당연했다.

로스트 월드에선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켜주는 걸 당연시 여겼다. 그리고 힘없는 자는 그걸 당연시하지 않고 고맙게 여겼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일이었지만 세상은 당연하게만 흘러가지 않았다.

“됐다. 왜 녀석이 사람을 경계했는지 알겠어. 이런 세계에 있다 보면 나도 그러겠지.”

김진석이 몬스터들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이면서도 왜 그렇게 사람을 두려워하고 경계했는지. 노라는 이젠 알 것 같았다.

“시간만 낭비했네. 힘 한 번 쓰기 싫어서 다른 사람 죽게 내버려 두는 게 이 세계는 당연한 거구나?”

“…….”

이지현도 그녀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노라가 있던 세계는 게임. 상상 속에서나 있을 완벽한 세계가 바로 그곳이다. 지금 어디선가 굶고 있는 자가 있을 것이다.

만약 부자 몇몇이 재산의 아주 극히 일부만 그들에게 주어도 그들은 굶지 않게 되겠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누가 자신이 힘겹게 번 돈을 남을 위해 쉽게 기부하겠는가. 하지만 그녀의 세계는 다르다.

그게 당연했다.

정말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세계였다.

“…도대체 당신이 뭘 안다고…?!”

하지만 김민서는 아니었다. 세상 그 누구보다 자신의 남편을 사랑했고 딸을 사랑했다.

김상훈, 그는 사실 김진석의 기억을 읽지 못했다.

그만이 아니라 여러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의 기억을 읽지 못했으니 그게 그의 역량이었다. 그런데 그 뒤로. 김진석의 곁에 있던 넬의 기억을 읽으려는 순간.

과거 그가 읽었던 플레이어들의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그 이후로 김상훈은 제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자고 일어나면 자신이 누군지 헷갈렸고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점점 심해지더니 종국에는 자신이 다른 플레이어라고 착각하기까지 했다.

그 길로 은퇴했지만 김민서와 같이 잠이 들고 일어났을 때 그녀조차도 기억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신이 남편이 일어났을 때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기분을 알아? 자기 딸을 기억하지 못하는 기분을 알아?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기분을 알아? 아냐고?!”

김민서는 울분을 토해냈다.

김상훈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괜찮았으니깐. 아내를 기억하지 못할 때는 슬퍼했다. 딸을 기억하지 못할 때는 좌절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지만 그때마다 그를 위로해주었던 게 바로 그의 아내인 김민서다.

그렇다면 김민서는 무슨 기분이었을까.

“남들이 죽건 말건 당신 말대로 내 알 바야?! 난 내 가족 하나 지키는 것만으로 벅차!”

그저 위로해줄 뿐. 김민서가 김상훈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플레이어조차 아닌 그저 시골 처녀인 그녀가 느꼈을 무력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

노라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할 말을 잃었다.

아무도 김상훈이 왜 은퇴했는지 알아보려 한 자가 없었다. 루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내막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평생을 함께할 아내, 딸.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기억하지 못하는 기분은 과연 어떠할까.

싸늘한 정적이 흐르는 그때.

이지현의 주머니 속에서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예. 길드장 님.”

“리자드맨에게서 정보를 얻어낸 게 있나?”

전화를 건 자는 황혼 길드장. 루크였다.

“…아뇨.”

“그래? 이상하군. 뭐 어쨌든 바로 돌아와. 그들과 함께. 다른 곳에서도 같은 리자드맨을 생포했는데 놈이 정보를 내뱉었다.”

“뭣?! 그게 무슨…!”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기절에서 깨어난 리자드맨에게도 들렸고 그는 경악했다. 그리고 그게 그의 마지막이었다.

노라가 곧바로 놈의 머리를 차버린 것이다. 그대로 목이 돌아간 리자드맨은 즉사했다.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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