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지현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하는 자는 바로 그녀와 같이 도움이 되기 위해 찾아온 플레이어였다.
첫 사상자. 땅속을 누비는 몬스터에게 사상자가 일어난 것도 어찌보면 그들 때문이었다.
군인들에게 플레이어란 맨몸으로 몬스터에게 맞서는 초인과 같은 이들이었으며 그들이 지원을 오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 한 군인이 방벽을 넘어 총을 쏜 것이다.
고작 한 발자국이었지만 그사이에 몬스터에게 끌려 들어간 것이다.
생각보다 플레이어들이 지원이 꽤 나 많았다. S급 플레이어 이상은 보이지 않았지만 플레이어들의 숫자만 보면 많은 편이었다.
루크가 왜 그녀에게 간단히 다녀오란 말을 한 지 알 것 같았다.
“아뇨. 전 그다지 한 게 없는걸요? 저분들에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음…….”
이지현 또한 S급 플레이어로서 몬스터들을 몰아내는데 많은 활약을 했지만 로스트 월드 3인방인 그녀들에겐 턱없이 모자랐다.
그녀의 앞에 선 플레이어들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머뭇거렸다. 이지현도 그들이 왜 머뭇거리는지 알고 있었다.
“크아악!”
“야. 인간 말을 할 줄 알면 인간 말을 해.”
로스트 월드 3인방. 그녀들은 몬스터의 무리에서 그 조그마한 리자드맨 하나를 잡아서 고문하고 있었다.
인간처럼 이족보행을 하는 리자드맨이었지만 크기가 그들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매우 조그마했지만 그게 면죄부가 되진 않았고 노라가 단검으로 비늘을 자르며 고문하는 모습은 플레이어들도 꺼릴 수밖에 없었다.
리자드맨의 온몸을 감싼 비늘은 이미 노라에게 죄다 뜯겨나갔지만 놈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고집이 쎄네. 말하면 곱게 죽여줄 텐데.”
분명 인간의 말을 할 줄 아는 리자드맨이다. 리자드맨도 그들 나름대로 대화체계가 있었지만 조그마한 리자드맨은 인간의 말을 하는 걸 노라가 직접 들었다.
사실 놈의 무력은 형편없었다. 저기 널려있는 일반 군인들에게도 맨손으로 잡힐 수준. 하지만 놈은 분명 몬스터를 다뤘다.
“힘 어쩌고 지껄이지 않았냐? 말해. 누구야?”
처음 노라가 달려들었을 때. 신의 힘 뭐라고 하는 걸 들었다.
“크… 배신하느니 차라리 죽겠다.”
무슨 백전노장이 적에게 잡혔을 때 말하는 대사 같았다. 어이가 없어진 노라는 단검을 역수로 들어 놈의 머리를 내려쳤다.
뭔가가 깨지는 소리가 나며 놈은 그대로 혼절했다.
“뭐야. 왜 이리 약해.”
“죽인 거 아니죠?”
“…아마도?”
다이아는 입에 게거품을 물며 쓰러진 리자드맨을 보며 말했다. 분명 머릿속 무언가가 부서진 것 같은 소리가 들렸는데.
고문이 끝나자 그제야 군인들과 플레이어들이 그녀들에게 다가와 감사를 전했다.
“혹시 로스트 월드에서 오신 인물들입니까?”
“무투대회 잘 봤습니다!”
플레이어들은 물론이고 군인들까지 노라와 다이아를 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라는 무투대회의 우승자인 가웨인과 싸웠다. 비록 졌지만 그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다이아는 또 다른 최강자 중 하나인 리아즈 칸과 싸웠다. 그녀 또한 졌지만 리아즈 칸 또한 그녀에게 입은 상처 때문에 다음 경기를 진행할 수 없었으니 사실상 무승부나 다름없었다.
그녀들이 로스트 월드에서 나왔다는 것과 그들의 주축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아름다운 외모는 화제가 되기 충분했다.
특히 다이아.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외모. 실제로 인간이 아닌 엘프였으니 아름답지만 얼굴에 큰 흉터가 져 인상이 무서운 노라보다는 그녀에게 이목이 쏠렸다.
하지만 군인들은 물론이고 플레이어들은 시선은 그녀들과 다른 아름답지만 신비한 분위기에 회색빛 머리의 여성. 세라스에게 향했다.
그녀는 스켈레톤 가디언을 살피고 있었다.
헬기와 탱크의 화력에도 버틴 거북이 몬스터를 손으로 찢어 죽인 스켈레톤 가디언이었다. 보기만 해도 섬찟해지는 괴물이었는데 세라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뭔가 알아보는 행태였는데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이 조금 두려웠다.
“마비아의 좀비, 이반과 비슷한 능력인 건가?”
“그는 신체 능력이 중심이었지만 저자는…….”
“그런데 저 여성도 로스트 월드 인물이야? 처음 보는데.”
다이아는 처음부터 로스트 월드를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아는 인물이다. 노라는 가웨인과 싸워 비등하게 겨룬 인물이었다.
하지만 세라스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노라도 처음 보는 자였지만 가웨인과의 싸움으로 인정받았다. 세라스는 그들의 주축으로 처음 등장한 3인방 중 하나였는데 왜 무투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나 그게 궁금한 자들이 많았다.
그 의문이 지금 풀렸다.
그녀의 힘은 고작 무투대회에서 볼 힘이 아니었다. 인간이 가질 힘이 아니다. 말 그대로 군단이다. 몬스터의 실상 군세를 혼자서 막은 것이다. 시간만 주었다면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났겠지.
몬스터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었지만 세라스의 스켈레톤 군단 또한 부서져도 계속해서 재생했다. 게다가 스켈레톤 가디언은 처음부터 끝까지 흠집도 나지 않았다.
세라스는 자신의 스켈레톤 가디언을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고작 이런 몬스터들에게 당할 가디언이 아니었지만 이상했다.
너무나도 강했다.
“…지상의 마기를 흡수한 건가?”
원래 그녀의 스켈레톤 가디언 뼈의 색은 새하얬다. 마찬가지로 다른 스켈레톤들도 하얬지만 지금의 놈들은 까맸다.
가디언보다는 비교적 회색이었지만 하나같이 전부 마기를 흡수한 것 같았다.
“뭐 문제 있어요?”
그때 노라가 기절한 리자드맨을 한 손에 들고 걸어왔다. 다이아도 몬스터들에게 박힌 화살을 수거하고 세라스에게 다가왔다.
“당신과 다른 마기가 느껴지네요. 이상하네요. 분명 이렇게 보면 확실히 느껴지는데 세라스 씨가 말하기 전까지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엘프들은 마기에 민감하다. 지금 살아있는 대부분 엘프가 과거 악마의 침공이 처음 있었을 때부터 싸워왔던 정예들이었다. 악마의 마기라면 학을 뗐다.
하지만 세라스가 말하기 전까지. 그리고 스켈레톤을 소환하기 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다 몰라도 하나는 확실해. 적어도 나보다 강한 악마가 벌인 짓이다.”
세라스가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보다 강한 악마는 몇 없었다.
대 악마. 그들이 벌인 짓이다.
* * *
이지현은 플레이어들과 군인들이 자신을 우러러보는 것이 뭔가 뿌듯했다. 뿌듯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그 감정을 느낀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S급 플레이어라면 어딜 가도 대우를 받았다. 일반 식당을 가도 서비스를 주며 몬스터와 싸워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게 바로 S급 플레이어였다.
노라와 다이아. 그리고 세라스는 몬스터 속으로 들어가 종횡무진하며 날뛰었으니 일반 군인들과 플레이어들에겐 거의 보이지 않았고 시선은 당연히 그들의 가장 앞에서 싸운 이지현에게 돌아갔다.
일반적인 그녀의 몸만 한 도끼를 휘두르다가도 조그마한 손도끼로 변형해가며 싸우는 모습은 가히 전장의 발키리처럼 보였다.
칠흑의 가죽 갑옷이 몸에 딱 달라붙어 여지없이 그녀의 몸매를 전부 드러냈으며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록색 구두는 오히려 시선을 그녀에게 쏠리게 만들었다.
과연 S급 플레이어. 일방적으로 밀리던 전세가 이지현이 정면에서 막는 것만으로도 태세를 바로잡는 데 충분했다.
군인 중에서도 플레이어가 있었지만 몬스터의 기세를 전면으로 나서서 막는 미친 사람은 없었다. 그건 지원 온 플레이어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지현이 먼저 앞으로 나서니 몬스터들이 그녀에게 묶였고 태세를 바로 잡으며 동시에 지원 온 플레이어들까지 가세했다.
이지현의 몸놀림은 가히 아름다웠다.
마치 춤을 추듯 몬스터들을 도륙 냈으며 그로 인해 피가 튄 그녀의 얼굴도 아름다웠다. 그녀 본인 또한 놀랐다.
지금 그녀의 눈에는 도끼를 어디로 휘둘러야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전부 눈에 그려졌다. 칠흑의 가죽 갑옷 덕분이었다.
도끼를 더 능숙하게 다루게 한다는 그저 그 한 마디가 적힌 아이템이었지만 이지현에겐 최고의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초록색 구두.
엘프의 발놀림이란 스킬이 붙어 있는 그 구두는 그녀의 몸을 한껏 가볍게 해주었다. 지금 그녀라면 구름을 밟고 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 이제 갓 S급 플레이어가 된 거 맞아요? 거의 최상위 S급 플레이어랑 다를 바 없는 것 같으신데?!”
“과찬이에요.”
전투가 끝나고 몬스터들이 물러나자 곧바로 본래의 전선을 되찾았다. 노라와 다이아, 그리고 세라스는 뭔가를 알아보는지 리자드맨을 데리고 더 깊숙이 들어갔다.
원래라면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막았어야 했지만 그녀의 힘을 목격한 그들은 그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이지현은 군인들과 함께 전선을 되찾는 데 도움을 주었다.
가끔 멀리서 땅이 울렸지만 이내 금방 멎는 걸 보면 로스트 월드 3인방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좀비 이반과 싸우는 것도 잘 보았습니다. 항복하시는 모습은 아쉬웠지만 그 좀비들을 보면 저라도 항복했을 것 같군요.”
플레이어들에게 둘러싸여 한껏 만족스러운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중국 안으로 들어갔던 3인방이 돌아오고 있었다. 손에는 피투성이가 된 리자드맨이 있었다.
이지현은 자신을 둘러싼 플레이어들을 밀어내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뭔가 알아낸 게 있으신가요?”
그녀의 물음에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리자드맨을 바닥에 내치는 노라였다.
“몰라. 이 새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몬스터들이 죄다 도망가던데. 하지만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우릴 감시했어. 기분이 더럽던데.”
땅에 던져진 리자드맨은 피를 토하고 있었다.
“쿨럭… 말했지? 내게서 무엇 하나 알아낼 수 없을 거다. 크륵.”
“아… 그냥 죽일까?”
스트레스 가득인 노라였다.
확실히 인간의 지능도 있고 말까지 할 수 있는 놈이라면 아는 것이 많을 거다. 몬스터까지 다룰 수 있는 놈이다.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겠지.
그때 얘기를 엿듣던 한 군인이 그녀들에게 말했다.
“기억을 읽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
그제야 같이 엿듣던 플레이어들도 한 인물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자 은퇴했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 내가 알기론… 김진석 플레이어의 기억을 읽은 다음 곧바로 은퇴한 것 같았는데?”
김진석의 이름이 나오자 그녀들이 흠칫 놀랐다.
“…걔의 기억을? 왜…….”
“그 남자 이름 알아요! 그… 김상훈? 맞을 거예요.”
이지현은 왜 김진석의 기억을 읽고 곧바로 김상훈이 은퇴했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지구에 몇 없는 김진석의 과거를 알고 있는 자다. 김진석 때문에 김상훈이 왔다는 것은 루크와 김진석을 직접 데려온 이지현과 그녀의 파티원만이 알고 있었다.
그 당시 밝힐 생각이 없었던 루크는 파티의 리더인 이지현만 따로 불러서 그녀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다.
왜 갑자기 멀쩡한 김상훈이 김진석의 기억을 읽고 은퇴하는지.
그때 루크는 그저 그렇게 말했다. 김진석의 과거가 너무나 끔찍했고 김상훈은 그걸 견딜 수 없었다고.
이지현은 노라와 다이아, 세라스의 선생 노릇 하면서 이들의 삶에 김진석이 꽤 나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도대체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기에 김상훈이 견디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김진석이 과거에 그런 끔찍한 일을 겪었다는 걸 이들이 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시골 어딘가로 귀촌했다고 알고 있어요. 금방 알아볼게요.”
“…….”
이지현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