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80화 (180/201)

180화

레어마켓의 주인. 한빈혁 CEO였다.

“잘 고르셨습니까?”

“아…! 네. 다 좋아 보이는 아이템들이라 뭘 고르기 어렵더군요.”

“그런 것치고는 금방 나오신 것 같은데…….”

한빈혁 CEO는 그녀의 손에 들린 아이템들을 바라보더니 눈썹을 꿈틀거렸다.

“주변에 로스트 월드를 잘 아는 자가 있습니까?”

한빈혁은 이지현 플레이어를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도 무투대회를 전부 지켜본 인물이었고 비록 처음에 곧바로 졌지만 그 마피아의 좀비, 이반과 인상 깊게 싸운 걸 기억하고 있었다.

도끼를 사용하는 플레이어. 드물긴 했다. 그런데 그녀가 창고에서 가져온 아이템은 다른 3개는 몰라도 가죽 갑옷과 초록색 구두는 정확히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칠흑색 가죽 갑옷. 정예 미노타우로스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으며 도끼를 사용하는 미노타우로스답게 아이템의 옵션 또한 도끼에 치중되어있었다.

초록색 구두. 엘프가 주는 퀘스트를 깨면 얻을 수 있는 물건으로 이벤트로 한정된 기간에만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엘프의 발놀림이란 스킬을 추가한다.

게임 속에선 그저 이동속도를 높이는 그리 도움 되지 않는 스킬이었지만 현실에선 아니었다. 유연한 이지현의 움직임을 더욱 보조해주는 아이템이다.

칠흑색 가죽 갑옷은 도끼를 사용하는 직업군이 거의 없다 보니 인기가 있는 아이템은 아니었고 그건 초록색 구두도 마찬가지.

어지간히 로스트 월드를 좋아했던 자가 아니라면 알지 못하는 아이템이다.

“…무슨 문제 있나요?”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지만…….”

이렇게 된 거 이지현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물론 한빈혁도 어차피 주려고 한 아이템들이었기에 무얼 가져가던 별 상관없었다. 창고 안에는 수많은 아이템이 쌓여있었으니깐.

하지만 그녀가 고른 건 우연이라고 한들 너무나도 들어맞았다. 그 많은 것 중에 저렇게 형편 좋게 자기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고른다고?

만약 저 아이템들이 있었다면 이반과의 싸움이 다른 양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축하드립니다.”

“…네.”

이지현은 괜히 줬다 뺏는 거 아닌가 싶어 긴장했다가 축하해주는 모습에 안심하고 곧바로 건물을 나섰다.

“한빈혁 CEO가 저런 모습을 보일 정도라면… 잘 골랐나 본데?”

그녀의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폈다.

* * *

“적어도 지금 로스트 월드를 잘 알고 있는 자는 없는데 말이지.”

한빈혁 CEO. 아니 디렉터로서 그는 로스트 월드를 직접 플레이도 해 보며 정을 가졌다. 하지만 그조차도 이지현이 골랐던 그 두 아이템에 대해선 잘 몰랐다.

이번에 아이템을 만들었을 때 그도 그제야 기억날 정도였으니.

게다가 로스트 월드에 들어갔다 나온 자들은 대부분 김진석의 손에 사라졌다.

“…적어도 김진석 플레이어 정도가 아니라면 알 수 없을 사실일 텐데.”

김진석이 실종됐을 때. 한빈혁 또한 슬픔에 빠졌었다.

그는 어쩌면 지구에서 유일하게 김진석과 사적으로 만난 적이 있는 자다. 자주 보진 않았지만 김진석이 얼마나 로스트 월드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라면 충분히 그 두 아이템을 알고 있었겠지.

물론 운일 수도 있다. 이지현 플레이어가 수천 개가 넘는 아이템 중에서 정확히 그 두 아이템을 가진 건 정말 순전히 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빈혁은 다른 가정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김진석의 곁에는 대 악마. 넬이 있다는 것도 한빈혁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빈혁이 직접 디자인한 만큼 넬의 힘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능력 환각. 그것도 실체를 가진 환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게다가 다른 대 악마. 세피드 또한 김진석의 곁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악마. 중국에서 나타난 흑기사. 그건 시험의 탑 세피드의 오리지널 스킬인 날개깃 갑옷이란 걸 알아차렸다.

즉 중국에서 벌어진 일은 전부 세피드가 한 짓이다.

다른 대 악마들 또한 그의 곁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두 대 악마만으로 김진석의 힘이 어떻든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김진석이 죽었다. 아니 정확히는 실종됐다.

“죽었다는 건 애초에 처음부터 믿지 않았지… 살아계시는군요. 김진석 씨.”

* * *

무투대회가 끝난 직후.

기다렸다는 듯이 중국에서 몬스터가 쏟아져나왔다. 중국인들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 중국을 되찾았지만 문제는 그 지역을 어떻게 처리할지, 였다.

모든 나라가 나서서 탈환한 중국이다.

MIA가 대표로 나서긴 했지만 하나의 나라도 아님과 동시에 지분을 두기에도 애매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생각한 것이 하나의 관광지.

몬스터도 생명이라 우기는 무리가 있었지만 당연히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당장 인간들이 피해를 보는 마당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세계가 안정되니 몬스터들을 새로운 동물이라 생각해 멸종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중국은 땅덩어리도 넓고 플레이어의 숫자도 많았기에 수많은 몬스터가 중국에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었다.

MIA를 비롯해 여러 나라가 합심해 몬스터에게 대항할 화기들을 만들었고 웬만한 몬스터들은 일반 군인들로도 죽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몬스터들의 천국인 중국이었기에 아예 하나의 관광지로 만들었다. 지구에도 있는 대평원처럼 말이다.

아무나 갈 수 없고 간다고 한다면 플레이어를 대동한 채 자동차나 헬기 등을 타고 돌아다니는 형식이다.

물론 중국에서 벌어진 일은 전부 본인 책임이다.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긴 했지만 위성을 통해 한 몬스터가 너무 급속도로 불어나면 플레이어들을 투입해 숫자를 줄였으며 강대한 몬스터가 나타나도 마찬가지였다.

몬스터들의 생태계가 잡혀 이젠 정말 다른 멸종위기 동물처럼 다뤘다.

하지만 놈들도 결국 몬스터였고 갑자기 숫자가 급증해 중국에서 벗어나려는 몬스터들이 생겨났다.

범람하는 몬스터들을 막는 건 대부분 군인의 몫이었지만 이번의 경우는 달랐다.

* * *

“지휘 계통이 있다고요?”

“그래.”

이지현은 황혼 길드장 루크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루크는 무투대회에서 보여준 역량으로 인해 세계에서 꽤 나 유명해졌다. 강력한 플레이어들이 다수 참가한 무투대회에서 결승까지 올라갔으니 세계에서 2위로 강한 남자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이번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아무리 봐도 통솔하는 몬스터가 있어.”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조직적이었다. 심지어 몬스터들의 조합까지 까다로웠다.

대부분 몬스터들은 서로 적대한다. 그런데 이번 몬스터의 범람은 온갖 몬스터들의 총집합이었다.

선두에는 인간들의 화기를 정면으로 맞서는 가죽이 두껍거나 비늘을 가진 몬스터들이 포진되어 화기를 소모 시켰다.

당연히 화기는 재장전이 필요했고 그사이에 정확히 날개 달린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동시에 지진까지 일어나더니 땅속에서도 몬스터가 튀어나왔다.

무투대회가 끝날 때쯤 범람이 시작되더니 점점 조직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했다. 원래 몬스터들의 범람은 금방 끝이 났지만 지금 벌어지는 범람은 달랐다.

“사상자도 나오고 있다. 플레이어의 지원이 절실하다더군.”

심지어 죽는 사람까지 나오고 있었다. 이제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저에요?”

“이번에 새로운 아이템 얻었다고 자자한데 실험해 볼 곳이 필요하지 않나?”

이지현은 김진석이 추천해준 아이템을 곧바로 감정사에게 가져갔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창고에서 아이템을 가져갔지만 별다른 스킬이 없었던 그들은 제대로 된 아이템을 얻지 못했다.

물론 서로가 원하는 아이템으로 교환을 하긴 했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지현은 달랐다. 다섯 개의 아이템을 선택하긴 했지만 정확히 두 개의 아이템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게다가 창고에 있는 아이템은 최하품부터 상급까지 다양했지만 그녀가 고른 아이템은 상급이라 해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그녀의 입이 귀에 걸렸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마침 좋은 기회인데. 어떤가?”

“아니 사상자까지 나왔는데 좋은 기회에요?”

이지현은 어이가 없었다. 사상자까지 나왔는데 좋은 기회라고 보낸다고?

“미안한 얘기지만 죽은 자는 본인의 부주의였다. 그리고 플레이어조차 아니었지.”

죽은 자는 땅속에서 순식간에 튀어나온 몬스터에게 끌려 들어가 죽었다. 시신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끌려 들어갔는데 살아남았을 리가 없었다.

플레이어조차 아니었으니.

인간들은 땅속을 휘젓는 몬스터가 나온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곧바로 대비했다.

몬스터의 소재를 섞은 단단한 콘크리트로 공사한 곳 위에서 싸웠어야 했는데 그자는 발 한 번 잘못 내디뎌 끌려간 것이다.

“이미 플레이어들 여럿 파견되었다. 위험할 건 없어.”

몬스터들이 조직적으로 인간을 습격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몬스터다. 훨씬 조직적인 인간에게 대항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뭐…….”

“잘 선택했네. 아 그리고 로스트 월드에서 온 분들도 간다고 하니 잘 부탁하네.”

“…네?”

* * *

“또 보네?”

“…그러게요.”

이지현은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인물들이 온다길래 누굴까 싶었는데 하필 이들이었다.

무투대회에서 활약을 보였던 노라와 다이아. 그리고 세라스였다. 세라스는 무투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그들과 대화를 나눴던 이지현은 대충 알고 있었다.

세라스가 겉으로 보기엔 젊었지만 이중 가장 나이가 많았으며 동시에 정신적 지주였다. 동시에 가장 강한 인물이었다.

“이번에 좋은 아이템을 건졌다면서? 부럽네.”

이지현이 레어마켓의 창고에서 아이템을 얻었다는 건 이들에게도 소문이 퍼졌다. 가장 빨리 친해지는 방법이 무엇일까.

바로 싸우고 화해하는 거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몰라도 이방인 길드와 황혼 길드원들하고는 꽤 나 친해진 로스트 월드의 인물들이었다.

“그래도 그쪽만 하겠어요? 어때요? 건진 건 있어요?”

“몰라. 워낙 많아서 말이지. 과분한 선물이긴 한데 궁금하긴 하네. 우릴 태어나게 한 이들이 과연 어떤 인물인지.”

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게임 속 세계의 인물이란 걸 알아차렸다.

김진석이 어떻게 그렇게 정확히 자신들과 그 세계를 알고 있었는지 그 의문이 다 풀렸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아이템을 준 이들이 자신들을 태어나게 한 사람들이란 것도 알았다.

도대체 어떤 기분일까. 자신들이 고작 게임 속 인물이라는 것은.

눈앞의 노라는 별생각 없는 것 같이 보였지만 속은 어떨지 몰랐다. 물론 겉과 속이 같은 노라는 보이는 그대로 별생각 없었다.

게임 속 인물이든 아니든 어쨌든 자신들은 살아있었으니깐.

하지만 그거 하나만큼은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악마들을 만들었냐고.

“이건 뭐 다 죽으라는 거야 뭐야…….”

“네?”

“아냐. 혼잣말.”

그들은 자동차를 타고 중국으로 가고 있었다.

이미 북한은 멸망했고 몬스터들이 부순 땅을 전부 재건했으니 얼마든지 자동차를 타고 중국으로 향할 수 있었다.

쇳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에 도대체 무슨 원리일까 궁금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노라는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으며 다이아는 자동차의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둘 다 각자의 매력이 있는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김진석의 선생님, 스승이라고 알려진 그들은 세간에서 이목이 쏠렸다.

김진석이 비정상적으로 강하긴 했지만 그들 또한 강한 건 마찬가지였으니 어쩌면 자신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이지현은 무투대회를 통해 그들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상해. 왜 어딜 가든 사기와 마기가 느껴지는 거지.”

하지만 세라스는 몰랐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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