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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78화 (178/201)

178화

태양의 열선을 뿜어낸다고 알려진 태양의 검. 갈라틴.

돔 밖에서 보고 있는 김진석에게도 느껴질 만큼 돔 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살이 익어버릴 것만 같은 열기였다.

김진석의 모글레이에도 저런 기능은 없다. 이름 그대로 보구였다.

저 보구는 주인이 정해져 있다. 아무리 김진석이라도 저 보구를 들 순 없었다. 가웨인이 이방인 길드에서 우뚝 설 수 있었던 건 바로 저 갈라틴 덕분이었다.

그렇다고 가웨인 본신의 무력이 약하다는 건 아니었으니.

노라는 살이 익을 것 같은 열기를 느끼니 헛웃음이 나왔다.

“고작 단검 쳐낸 것만으로 이런 일을 벌여?”

“아직 다 보여주지도 않았습니다.”

가웨인. 황금의 기사. 혹은 태양의 기사로 불린 그의 진면목을 본 노라는 이젠 가릴 것이 없었다.

“전력으로 간다.”

노라는 단검을 역수로 쥔 채 각오를 다졌다. 결투 따위는 이젠 안중에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가웨인은 노라의 모습을 보고 더는 놀라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하지만 또다시 자세를 취하는 노라의 모습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건… 길드장 님의…….”

“내가 알려준 거야.”

김진석의 힘을, 그가 싸우는 방식을 눈앞에서, 이방인 길드에서 많이 본 자가 바로 가웨인이다. 저 자세는 김진석이 단검을 들고 스킬을 사용할 때의 자세였다.

그러고 보니 우스갯소리로 넘긴 그녀의 말이 기억났다.

“선생님… 이라고 하셨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라가 쇄도해왔다.

* * *

15분이 지났다.

가웨인의 힘을 본 다른 플레이어들은 경이로운 감정이 들었다. 리아즈 칸과는 달랐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플레이어들이 초인으로 보이겠지만 플레이어들에겐 가웨인이 초인처럼 보였다.

리아즈 칸은 아예 화염 능력자라 초능력자처럼 보였지만 가웨인은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였다.

그리고 그건 가웨인뿐만 아니라 노라에게도 느껴졌다.

신체 능력 또한 뛰어나지만 그녀는 오로지 기교로만 가웨인을 상대하고 있었다. 웬만한 플레이어는 그들의 움직임도 볼 수 없었다.

노라의 스텝은 기이했다. 마치 상대를 유혹하려는 창부의 발걸음처럼 고혹적으로 가웨인의 검이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물 흐르듯 피하는 그녀의 움직임은 오로지 그녀만이 가능했다.

검은 피했지만 검에서부터 나오는 태양과 같은 열기는 막을 수 없었다. 피부가 열에 익어 타고 있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고작 이 정도 상처는 악마를 상대할 때 수없이 많이 당해봤다. 상처를 입은 채 싸우는 게 익숙하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녀의 스킬은 가웨인에게도 위협적이었다.

황금 갑옷의 새겨진 전투의 흔적. 생채기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갑옷에 구멍까지 뚫어냈다.

그녀의 스킬은 상대를 죽이기 위한 스킬. 그 구멍들은 전부 목과 심장과 같은 급소에 구멍이 났으니.

하지만 구멍이 전부였다.

황금 갑옷이 뛰어나기도 했지만 그녀의 무기가 형편없어 15분 동안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 못했고 경기가 끝났다.

당연히 결과는 가웨인의 승리.

노라는 온몸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고 검게 탄 부위까지 있었다. 곧바로 의무실로 이송하려 했지만 그녀는 엄청난 정신력으로 본인이 직접 자신의 다리로 의무실로 걸어갔다.

가웨인은 분해하며 떠나는 노라를 바라봤다.

“만약 맨몸으로 싸웠다면… 이길 수 있었을까.”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싸움을 맨몸으로 하는 미친 자는 없었을 테니깐.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지만 가웨인은 굳은 얼굴로 경기장을 걸어 나갔다.

* * *

[노라 LV:82]

[가웨인 LV:88]

레벨 차이가 분명했다. 하지만 노라는 그걸 기량으로 극복했다.

김진석은 흡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가웨인의 굳은 얼굴은 여러 가지 감정이 들어있었다. 그 또한 이 평화로운 시대에 물들어버렸다.

계속해서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지만 총이 보급된 이후로 그들은 싸울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라는 달랐다.

가웨인보다 약했지만 그녀는 지구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악마와 싸우고 있었다. 실전 감각이 오를 대로 올라있었다.

사실 김진석은 총이 보급됐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그걸 걱정했었다.

고작 총으로 악마의 방주. 아크나 다른 대 악마들을 막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 결국 강력한 인물이 필요했다.

다행히 가웨인의 레벨은 강력하다고 봐도 충분했지만 문제는 레벨만 높다는 거다.

아니 사실 가웨인은 문제없었다. 그저 노라가 더 뛰어났을 뿐.

물론 가웨인이 이겼지만 그는 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변태도 아니고 왜 그리 웃고 있어요?”

그런 김진석의 모습은 이지현이 보기엔 미친놈처럼 보였다. 하필 노라는 태양의 검 갈라틴의 열기로 인해 가죽 갑옷을 입은 그녀의 옷 또한 타버렸다.

꽤나 위험한 모습이었는데 김진석은 그걸 보고 웃고 있었던 것이다.

“…….”

“아니… 농담이에요.”

그저 말없이 자신을 보는 김진석을 보고 이지현은 눈을 피하며 말을 철회했다.

* * *

“하… 이걸 지네.”

노라는 아쉬웠다. 가웨인의 힘은 대단했다. 보구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본인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웨인도 보구의 힘에 의지하고만 있지 않았다.

인공 태양조차 만들어내는 갈라틴이란 보구를 들고도 오히려 신체 능력을 위주로 싸우는 것을 보면 노라를 의식하고 있었다.

당연히 가웨인의 검을 모두 피하는 것은 노라라도 불가능했다.

그녀는 김진석의 싸움을 곁에서 지켜본 자 중 하나다. 김진석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 살을 주고 뼈를 택하는 방식은 언제나 잘 먹혔다.

하지만 가웨인의 황금 갑옷은 뚫을 수 없었다.

노라는 그걸 탓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템도 힘 일부니깐.”

그 아이템을 가지는 것도 제대로 다루는 것도 능력이다. 죽고 나서 아이템 빨이다 뭐 다 해봤자 아무 의미 없었다.

의무실에서 치료를 받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는 노라를 마중 나오는 자가 있었다. 노라는 다이아인 줄 알았지만 걸어오는 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었다.

“…너?”

“…….”

첫 번째 경기부터 눈을 즐겁게 한 인물. 마피아의 좀비. 이반이었다.

노라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반이 가웨인을 노리고 이 대회에 참가한 것이란 걸. 이반은 노라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고 돌아갔다.

“…뭘 말 하고 싶은 거야?”

“대단하더군요.”

이반을 뒤로하고 온 자는 다이아였다. 그녀도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노라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나요?”

“나도 몰라.”

노라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으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다음 경기는 네 차례니깐. 나처럼 꼴사나운 모습은 보이지 마?”

“걱정 마세요. 진심을 다할 겁니다.”

다이아 또한 앞선 경기를 전부 지켜보았다. 방심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 * *

다이아의 진심이 무색하게 그녀의 경기는 너무나도 빨리 끝났다.

상대는 한국의 S급 플레이어. 다이아와 같은 활을 사용하는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그게 폐인이었다.

동급의 활을 다루는 자들이라도 다이아에게 당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그녀는 엘프. 그 어떤 종족보다 활을 잘 다루는 종족이었으니.

고작 하수의 인간 따위에게 질 다이아가 아니었다.

활과 활의 대결은 특이했다. 이런 뻥 뚫린 경기장에서 변수가 있겠지만 누가 먼저 활을 상대에게 맞추냐의 싸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활을 쏘면 화살로 막고 거리를 좁히려고 해도 화살로 막는다.

날아오는 화살을 화살로 막는 건 아무리 S급 플레이어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고 그건 다이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면 승부는 감각으로 결정된다.

감각은 결국 엘프의 영역. S급 플레이어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화살의 비를 막아낼 수 없었다.

* * *

“오늘 일정은 끝났는데… 어쩌실 거에요?”

무투대회의 일정이 끝났다. 모든 이들이 싸운 건 아니었지만 주어진 6시간은 끝났고 남은 인원은 내일마저 진행하기로 예정되어있었다.

이지현은 김진석 덕분에 포인트를 많이 벌어서 사실 내일도 김진석이 오기를 바랐다.

“…할 일이 남았기에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지현 플레이어.”

“그래요… 언제 돌아오실 생각이세요?”

오지랖이긴 했다.

하지만 이지현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길드, 황혼 길드의 길드장 루크는 처음부터 김진석과의 연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었다.

루크는 김진석이 죽었다고 믿지 않았다.

허나 김진석이 사라졌다는 건 사실이었다.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인데 그 김진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문제가 많았다.

그는 김진석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루크는 황혼 길드를 최대한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두었다.

이지현은 그 목적의 희생양 중 하나였다.

루크는 그녀의 자질을 알아봤고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며 키워준 플레이어였다. 최종적으로 S급 플레이어까지 됐으니 이지현도 나쁠 건 없었다.

이지현은 루크에게서 김진석의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다.

최강의 플레이어, 최악의 플레이어 등 여러 이명을 가진 김진석의 이야기는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루크에게서 듣는 게 훨씬 흥미로웠다.

그중 가장 특이한 이명. 게임 속 최초의 플레이어의 이야기는 많이 들어본 이지현에게도 흥미로운 이야기였으니.

그 누구보다 먼저 게임 속 세계로 들어간 인물. 하지만 현실에 와서도 여전히 게임 속에서처럼 안하무인으로 군다는 것에 붙여진 이명. 게임 속 최초의 플레이어.

하지만 루크는 그 이명이 김진석에게 알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김진석은 극히 이성적인 인물이었다. 정말 게임 속 인물과 같이 안하무인처럼 굴었다면 이미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김진석은 게임 속 세계에서 있었던 일을 귀중하게 여긴다.

오히려 지구에 돌아오는 것을 더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자다. 강제로 지구에 돌아오게 됐을 뿐.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그는 지구에 별다른 애정이 없었다.

그 얘기를 들은 이지현은 궁금했다. 김진석의 목적이 무엇일까. 그 괴물 같은 힘을 가지고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죽은 행세까지 하면서.

“그거 아세요? 중국 한켠에 당신을 기리는 동상도 있다고 하더군요.”

김진석이 죽었다고 알려진 후. 김진석의 행보를 하나하나 곱씹은 이들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지구의 위기를 몇 번이고 벗어나게 해준 게 바로 김진석이다.

지금의 인간들이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아니었다. 김진석이 죽은 지 몇 년이나 지난 지금.

세상에는 그를 기리는 자가 많았다.

“…돌아가자. 넬.”

그녀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은 김진석의 뒤로, 기감이 뛰어난 이지현조차 눈치채지 못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 넬이 나타났다.

“꼭 하실 거예요? 이젠 그냥 평범히 살아가셔도 될 텐데…….”

“몸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계속해서 살아간다라… 적어도 난 그렇게 못하겠는데.”

넬의 굳은 표정과 함께 둘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이지현은 둘의 대화에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김진석 플레이어가… 시한부 인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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