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최초 플레이어-175화 (175/201)

175화

“레어마켓에서 좋은 도끼가 나왔다고 하던데.”

이지현은 특이하게도 플레이어 중에서도 도끼를 사용하는 플레이어였다. 그런데 이번 레어마켓에서 아이템이 풀렸다.

도끼는 희귀했기에 레어마켓에서도 잘 취급을 해주지 않았지만 한 플레이어의 실수로 인해 도끼가 나온 것이다.

문제는 그 도끼의 성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이지현은 지금 급전이 필요했다. 하기 싫은 강의를 해서라도 말이다.

강의라는 건 말만 강의지 사실 노하우의 전수라고 보면 됐다.

“아… 하기 싫어.”

온갖 미사여구를 다 붙이며 귀찮음을 토해낸 이지현은 이내 준비된 강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강의실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히 S급 플레이어 이상은 강의를 잘 하지 않았다.

A급 플레이어도 잘 안 하는 마당에 S급 플레이어가 하겠는가.

게다가 플레이어의 강의는 사실상 일회용이었다. 그 이후부터는 기껏해야 싸우는 방법이라던가 어떤 몬스터의 약점은 무엇이라던가 가 전부였다.

이지현은 형식상 알려줄 것만 생각하고 왔다.

플레이어가 되면 무얼 지켜야 하고 안 지켰을 때의 리스크 등.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녀의 길드장. 루크가 직접 이지현에게 권한 것이다.

그 의문은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며 더 증폭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웬 이상한 갑옷을 입고 강의실 안에서 정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지현은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이방인 길드?”

이방인 길드가 곧바로 생각났다. 몇 번 본 적은 없었지만 이지현은 그 특유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풍기는 분위기.

“안녕. 이번이 두 번째인가?”

거기엔 낯익은 인물. 피처럼 붉은 적발과 얼굴엔 기다란 흉터를 가진 여성. 노라가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그때 보았던 엘프 여성 다이아와 회색빛 머리의 세라스도 강의실 안 의자에 앉아있었다.

“반갑습니다. 이지현 플레이어. 강의에 도움을 드릴 이방인 길드의 가웨인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게다가 강의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이방인 길드의 최고 전력 중 하나. 가웨인이 이지현의 강의에 도움을 준단다.

이지현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러웠다.

“이분들 전원이 로스트 월드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비록 그들의 세계는 멸망했지만 지구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 강의를 부탁드린 겁니다.”

가웨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지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보이는 건 길드장. 루크의 전화번호였다.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하지. 이방인 길드에서의 의뢰이기도 하니 끝나면 섭섭지 않게 챙겨주겠네.”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루크였다.

이지현의 입에선 한숨밖에 안 나왔다.

* * *

“질문이 있습니다.”

“…얘기하세요.”

강의 중 유독 질문이 많은 남자가 있었다.

워낙 용모가 수려하고 금발인 그 남자는 처음부터 눈에 띄었지만 계속된 질문에 점점 지쳐가고 있는 이지현이었다.

“김진석 플레이어는 지구에서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저도 모릅니다만…….”

리차드라고 불린 그 남자. 아니 그뿐만 아니라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 대부분이 김진석에 대한 것만 물어보고 있었다.

정작 이지현은 잘 모르는데 말이다.

“그가 이 지구라는 세계에서도 가장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고 했죠. 만약 저희랑 비교하면 어느 정도입니까?”

“전 당신들의 힘을 잘 모르는데 말이죠.”

대부분 대화가 이런 식이었다.

이지현의 강의는 1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끝났다. 이들에게 딱히 뭘 알려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보다도 전투에 있어 서는 훨씬 스페셜리스트들이었으니깐.

그녀가 알려준 건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라라. 그게 전부였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과 화폐 등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이 쏟아져나왔다.

“이지현… 플레이어? 앉아서 얘기하기엔 좀이 쑤시니 친선전 같은 건 어떨까요?”

리차드의 말에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방금 이지현이 말했다시피 저들은 자신들의 힘을 잘 모르니 결투를 진행해 서로가 서로의 힘을 알아보는 친선전을 진행하자는 거다.

“어… 그건…….”

“나쁘지 않군요. 바로 추진해보죠.”

이지현이 말하기도 전에 먼저 수락한 가웨인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 특히 이방인 길드는 대부분 기사 아니면 마법사다. 생사가 걸린 결투가 아닌 서로 합의가 된 결투는 그들이 있던 세계에선 자주 있던 일이었다.

“걔가 이끌었던 길드라… 재밌겠는데?”

노라는 호승심 넘치는 표정을 지으며 가웨인을 바라봤다.

그녀가 보기에도 가웨인에게서 보이는 기도는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들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악마와 몬스터를 죽이면서 살아남은 그들은 이미 달대로 달은 노장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도 가웨인이란 자가 이 지구에서 나고 자란 자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아차렸다. 자신들과 같이 온갖 사선을 넘어온 이겠지.

“그래도 녀석이 살아있다는 건 알았으니… 마음 놓고 해도 되겠어?”

이지현의 한숨은 더욱 깊어질 뿐이었다.

* * *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과 이방인 길드의 결투가 일어날 것 같다고 이지현이 루크에게 말했지만 오히려 루크는 그걸 이용했다.

황혼 길드의 지위를 이용해 정보를 알렸다.

원래는 혼란을 일으킬 것 같아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선발대라는 사실을 듣고 난 이후.

그리고 이후에 후발대. 모든 이들이 넘어오자 이건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한 루크였다.

하나둘이 아니었다. 수백에서 천이 다다르는 인원들이었다. 그게 그 세계에서 살아남은 이들이라는 것에 의연했지만.

이지현과 가웨인의 말을 들어보면 저들은 알렉산더와 달랐다. 살고자 하기에 다른 차원인 이 지구로 넘어온 것이다.

저들의 심성 또한 나쁘지 않다.

이방인 길드의 마법사. 그리고 요정인 비비안과 모르간이 그들의 종족 자체의 특성인 색을 바라보는 능력으로 그들을 확인해보았다.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전부 밝은 빛을 띄었고 몇몇 인물도 회색. 악인은 아니었다.

그들의 확답을 들은 루크는 아예 이것을 하나의 행사로 알렸다. 이방인 길드와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의 결투.

한국에서. 적어도 플레이어가 로스트 월드를 모르는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로스트 월드를 들어갔다 살아나온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김진석이 숙청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더욱 알려졌었다.

그런데 그 로스트 월드에서 나온 인물들과 길드 중 가장 강하다는, 나라조차도 뛰어넘는 이방인 길드와 결투라니.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국을 제외하곤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을 경계했다. 지금까지 당한 것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루크는 사람들에게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로스트 월드에서 온 이들에게는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결투의 장소를 준비하고 알렸다.

그렇게 고작 일주일.

일주일 사이에 모든 게 준비되었고 그 결투는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다. 수많은 S급 플레이어들이 그들의 결투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아무리 전보다 교류가 많아진 이방인 길드라지만 그들의 정확한 힘은 아직 아무도 몰랐다.

일반적인 길드와 격이 다르다고 알려진 이방인 길드의 힘을 엿볼 기회였다.

* * *

“왜 이리 일이 커졌지…….”

이지현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다른 세계에서 온 이들에게 지구의 상식을 알려주는 것뿐이었는데 어느새 결투에 직접 참가하기까지 했다.

처음엔 이방인 길드와 로스트 월드의 인물끼리의 결투였지만 점점 인파들이 모이며 최상위 S급 플레이어들 또한 모습을 보이다 보니 루크는 취지를 바꾸었다.

서로의 무력을 겨루는 대회. 무투대회로.

참가 기준이 예외로 최상위 A급 플레이어 몇몇도 있었지만 기본이 S급 플레이어 이상이었다.

당연히 이방인 길드와 로스트 월드의 인물 전원이 참가한 상태였고 최상위 S급 플레이어 중 손에 꼽히게 강한 인물인 인도 왕자. 리아즈 칸이 참가 의사를 밝혀 더욱 화제가 되었다.

최근 몇 년간 마땅한 몬스터의 침략이 없었기에 평화로운 지금. 사람들은 이런 대형 이벤트에 환호했다.

이지현은 깊은 한숨을 또 한 번 내쉬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경기장은 전에 이미리의 리카이스와 김진석이 싸웠던 경기장을 넓혀 사람들을 수용하고 안전을 위해 여러 마법사 플레이어들을 불러 돔의 형태로 방어막을 쳤다.

최소 수천은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

저기에 사람이 꽉 들어찰 생각을 하니 이지현의 속이 답답해졌다. 하지만 자신의 손에 들린 도끼를 쳐다보고 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황혼 길드의 길드장 루크가 무투대회에 참가하는 길드원에게 선물을 약속한 것이다. 그것도 레어마켓에서 제공하는 아이템을.

이지현은 당연히도 레어마켓의 도끼를 원했고 루크는 허락해 곧바로 제공해주었다.

루크가 원한 건 황혼 길드의 저력. 비록 이방인 길드에게 많이 밀렸지만 황혼 길드 또한 한국 1위 길드로서 저력을 보여주기를 길드원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분명 도끼이긴 하지만 날은 마치 톱처럼 날이 듬성듬성 빠진 그 도끼는 상대의 몸에 박히고 살을 깎아내는 잔인한 모양새였다.

게다가 이지현이 그리 큰 키를 가진 여성은 아니라곤 하지만 그녀의 몸보다 더 큰 도끼는 한 신화 속 거인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도끼였다.

“마음에 드나?”

“…무척이요.”

어느새 그녀의 옆으로 다가온 황혼 길드장. 루크가 말을 걸었다.

그 또한 무투대회에 정식으로 참가했고 어쩌면 대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었다. 황혼 길드에선 이미리를 제외한 S급 플레이어 전원이 참가 의사를 밝혔고 전원 무투대회에 참가했다.

이미리는 최상위 S급 플레이어였지만 그녀의 힘인 수많은 몬스터를 제한하기 어려웠고 그녀 또한 그걸 원하지 않았기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길드장 님이 참가하실 줄은 몰랐어요. 바쁘지 않으세요?”

루크는 언제나 바쁘게 살아왔다. 분명 그를 보좌하는 비서들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일은 많았고 언제나 서류에 파묻혀 사는 루크였다.

“바쁘지. 아마 대회가 끝나면 또 일에 파묻혀 살 거야.”

“그런데 왜……?”

이지현은 궁금했다. 플레이어로서 몬스터를 잡는 일도 극도로 줄여가면서 최상위 S급 플레이어가 된 루크. 그가 왜 갑자기 이런 무투대회에 참가한 것일가.

“이번에 딸아이가 구경 온다고 해서 말이지. 아버지로서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지.”

“아… 벌써 그런 나이가 됐군요.”

루크에게 딸이 있다는 건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이미리 덕분에 첫 몬스터의 침공 때 비록 아내와 가족은 잃었지만 딸 만큼은 살아남았다는 것을.

한국 1위 길드의 길드장이기도 했지만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루크는 무투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대진에서 만나면 안 봐줍니다?”

“…자네가?”

물론 농담이었다.

갓 S급 플레이어가 된 이지현과 최상위 S급 플레이어인 루크와의 격차는 어마어마했으니깐.

“내일 바로 시작하니 컨디션 잘 유지하게.”

“길드장 님도요.”

둘은 각자의 각오를 다진 채 하루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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